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146화 (146/155)

146화 계획대로 되고 있어 (2)

혹자들은 말하곤 한다.

단기전에서 전력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이 정규 시즌처럼 생각하고 플레이를 하는 거라고 말이다.

콜로라도 로키스 선수단이 그러했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수단은 그러하지 못했다.

1차전에서 고작 1득점에 그쳤고, 그마저도 유현의 빠른 발과 상대의 실책이 더해져서 만든 득점이었지만 콜로라도 로키스 타자들의 멘탈은 딱히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못한 게 아니라 상대가 잘한 거다.

어쨌거나 결과는 승리였고, 2차전부터는 조금 더 집중해서 득점 지원을 잘해 주면 된다.

단순한 계산법으로 접근했고, 그 단순함은 1회 초부터 놀란 아레나도가 그랜드 슬램을 터트리는 것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반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타자들은 4차전과 7차전에 유현이 등판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 경기 한 경기에 집중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패배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과도하게 긴장해버렸다. 과도한 긴장은 몸을 굳게 만들었고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투수들은 주요 상황에서 힘이 많이 들어가 실투를 던졌고, 타자들은 수비에 집중하지 못해 연달아 실책을 저지르거나 타석에서 조급함을 드러내며 카일 프리랜드의 노림수에 당해 줬다.

애초에 마음가짐부터가 달랐다.

콜로라도 로키스 선수단은 자신들이 강팀에 소속되어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만을 하지 않은 채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 나갔다.

패배하면 끝이라는 생각에 조급해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불리한 게 당연했다.

놀란 아레나도의 그랜드 슬램을 기점으로 1차전에서 침묵했던 콜로라도 로키스의 타선이 제대로 폭발해 버렸다.

그 와중에도 카일 프리랜드는 7회까지 단 1실점으로 마운드를 지키며 코칭스태프가 여유롭게 투수진 운용을 할 수 있게 해줬다.

1대11.

콜로라로 로키스가 1차전과 2차전을 내리 가져간 뒤 세인트루이스로 넘어갔다.

부시 스타디움에서 5차전까지 치러야 하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목표는 확실했다.

덴버로 다시 돌아와서 챔피언십 시리즈를 치르지 않는 것.

“월드 시리즈 진출 소식과 함께 덴버로 돌아와서 팬들을 마주하도록 하겠습니다.”

* * *

1차전과 2차전을 내리 가져오며 포스트시즌 5연승을 기록한 상황임에도 콜로라도 로키스 선수단은 방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3차전을 앞두고 1차전과 2차전을 치를 때보다 더욱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3차전이 쉽지 않을 거라고, 3차전을 내주면 분위기가 세인트루이스로 넘어갈 거라고 봤다.

그럴 만한 근거는 충분했다.

“오늘 경기는 난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불펜을 총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돼. 오늘 경기를 내주며 달아오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타선을 막기 힘들지도 모른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타선은 유독 홈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 주곤 했다.

2020시즌을 기준으로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 중 홈에서 가장 높은 타율과 득점권 타율을 기록한 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다.

시즌 막바지에 연승을 이어 나갈 때도 화끈한 타격으로 승리를 챙겼다. 마운드의 높이는 어정쩡했지만 화력으로 찍어 누르는 경기 양상을 보였다.

쿠어스 필드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타선은 처참할 정도로 침묵했지만, 그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부시 스타디움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

때문에 3차전은 무조건 가져와야만 했다.

굳이 상대에게 반전의 계기를 제공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일단 콜로라도 로키스 코칭스태프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양 팀의 타자들이 모두 화끈한 타격을 통해 선발투수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시작은 콜로라도 로키스가 좋았다.

1회 초부터 놀란 아레나도의 2경기 연속 그랜드슬램이 터지며 4대0으로 앞서가기 시작했고, 4회 초에는 마크 번칠의 2점 홈런이 터지며 6대0으로 스코어를 벌린 것이다.

반면 존 그레이는 5회 말까지 9안타를 허용한 가운데 투심 패스트볼을 통한 적절한 땅볼 유도로 2실점만을 한 채로 어렵사리 이닝을 틀어막았다.

문제는 6회 말에 일어났다.

1사 1루 상황에서 2점 홈런을 허용하며 4실점으로 추격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6대4의 스코어가 무너진 건 8회였다.

놀란 아레나도의 솔로 홈런으로 스코어가 벌어졌고, 콜로라도 로키스 코칭스태프는 8회 말에 마무리 오수완을 일찌감치 올리는 초강수를 던졌다.

푹 쉰 오수완에게 2이닝을 맡겨 확실하게 승리를 잡겠다는 계산이었지만…….

-호오오오오런! 장외 홈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콜로라도 로키스의 수호신을 무너트립니다! 스코어는 7대7! 너무 긴 휴식이 오히려 독이 된 걸까요?

-구위는 살아 있지만 운이 따르지 않은 것도 있고, 하필이면 결정적인 순간에 실투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푹 쉰 게 독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콜로라도 로키스 코칭스태프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겁니다. 오수완 선수가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오수완이 8회 말 2사 1․2루 풀카운트 상황에서 장외 3점 홈런을 허용하며 세인트루이스가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말았다.

스코어는 7대7.

투수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해서 시간을 끄는 사이, 더그아웃에서 묵묵히 응원을 하고 있던 한 선수가 점퍼를 벗어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감독을 향해 다가가며 물었다.

“이제 불펜으로 가면 되나요?”

“냉큼 꺼져 버려.”

“넵. 여부가 있겠습니까.”

* * *

오수완이 흔들렸다.

3점 홈런을 허용하며 리드를 지키지 못한 채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코칭스태프의 선택은 오수완에게 남은 이닝을 맡기는 거였다. 실점과 별개로 오수완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안타 두 개는 다 빗맞은 안타였고, 홈런을 허용할 때는 하필이면 실투가 나왔을 뿐이었다. 오수완의 구위라면 남은 아웃카운트 네 개를 실점없이 막아낼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몰라서 보험을 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수완에게 안정을 찾아 주고 세인트루이스 타자들을 조급하게 만들기 위한 보험이었다.

-유현 선수가 불펜으로 향합니다. 로키스가 유현 선수를 불펜으로 투입하려는 걸까요?

-글쎄요. 카디널스 타자들을 압박하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여차하면 투입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 1차전에서 유현 선수는 80구도 투구하지 않았습니다. 3차전을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투입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벤치가 술렁였다.

불펜 운용에 여유가 있는 콜로라도 로키스가 투수를 총동원해서 3차전을 잡을 거라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유현이 불펜으로 향하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스처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군.”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 생각이 분명합니다. 유현을 오늘 마운드에 올릴 일은 없습니다.”

“만약 확실하게 3차전을 잡고 4차전을 버릴 생각이라면? 그리고 5차전에서 유현을 롱 릴리프로 돌려 주요 상황에 등판시킨다면?”

“그건…….”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야.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배제할 수 없어.”

머릿속으로는 유현이 등판을 할 일이 없다고, 불펜에서 몸을 푸는 것으로 타자들에게 압박을 주려는 의도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정말로 등판한다면?

페이크가 아니라 진짜로 등판하기 위해 몸을 푸는 거라면 어떻게 하지?

극히 낮은 확률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수단이 경기에 집중하기 못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오수완은 큰 위기 없이 8회 말 남은 아웃카운트를 하나를 잡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어진 9회 초.

콜로라도 로키스가 반격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발 빠른 주자인 이안 세비지가 2루타를 기록하며 출루하자 희생타 두 방을 치며 득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스코어가 8대7로 다시 한 번 벌어졌다.

이제 콜로라도 로키스에게 남은 아웃카운트 하나를 확실하게 잡는 것뿐이었다.

9회 말.

오수완이 다시 한 번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유현은 여전히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아니, 푸는 척만 하고 있었다.

오늘 유현은 마운드에서 등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코칭스태프가, 그리고 해설진이 예상한 대로 상대를 흔들기 위해 언제든지 등판할 수 있다고 퍼포먼스를 하는 거였다.

유현에 대한 전력분석을 철저하게 했다면 뻔한 작전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타자들은 속았다. 마운드 위에 있는 오수완이 아니라 불펜에서 몸을 푸는 유현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타선에서 집중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바보들. 그렇게 계속 의식해라. 정신을 차려 보면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전패로 탈락해 있을 테니까 말이야.’

* * *

콜로라도 로키스 코칭스태프가 챔피언십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건 바로 유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였다.

리그 유일의 0점대 방어율 선발투수를 단순히 선발로만 기용하는 건 명백한 손해였다. 어떤 식으로든 추가 기용을 통해 상대를 뒤흔드는 용도로 사용해야지 남는 장사였다.

대타로 기용하는 것도 좋지만 뻔한 작전이고, 이미 보여 준 전략이기에 상대의 입장에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전략을 준비했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선행돼야 할 조건이 있었다. 바로 1차전과 2차전을 승리하고 세인트루이스로 원정을 가는 거였다.

일단은 코칭스태프가 원하는 대로 됐다.

마침내 치러진 3차전에서 접전 상황이 나오자 결국 콜로라도 로키스 코칭스태프는 준비해 왔던 전략을 꺼냈다.

바로 유현의 불펜 시위였다.

사실 이 역시 이미 노출된 전략이긴 했지만, 중요한 건 노출됐다 하더라도 상대의 입장에서는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는 거였다.

실제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타자들은 9회 말 승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허무하게 마지막 찬스를 날렸다.

연장으로 가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콜로라도 로키스였지만, 작전이 제대로 통하며 연장까지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콜로라도 로키스는 1차전과 2차전에 이어 3차전도 가져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4차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은 흡사 결연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기자들 앞에서 각오를 다졌다.

“남은 경기는 모두 총력전입니다. 이제부터는 뒤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를 잡는 데에 집중하겠습니다.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월드 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단 하나, 남은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가져가는 것뿐이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은 총력전을 선언했다. 뒤를 보지 않고 한 경기 한 경기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콜로라도 로키스는…….

-콜로라도 로키스, 4차전 선발로 유현 내정.

-베일에 감춰져 있던 콜로라도 로키스의 4차전 선발은 결국 유현.

-기승전 유현, 로키스의 믿음은 확고했다.

회심의 한 수를 던졌다.

계속해서 공개하지 않고 있던 4차전 선발로 유현을 예고한 것이다.

1차전부터 3차전까지는 계획대로 됐다.

이제 4차전만 잡아내면 전승으로 월드 시리즈 진출을 확정하게 되는 상황, 2007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콜로라도 로키스는 에이스 유현에게 4차전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타순 한 바퀴만 말이다.

“4차전은 오프너로 간다.”

유현을 오프너로 기용하는 것.

그것이 3차전까지 승리를 챙겼을 때, 4차전을 확실하게 잡기 위해서 콜로라도 로키스 코칭스태프가 준비한 회심의 한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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