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143화 (143/155)

143화 Roctober (4)

시즌 초만 하더라도 콜로라도 로키스의 득점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마크 번칠이나 이안 세비지의 잠재력이 폭발하기 전이었고, 헨리 곤잘레스와 랜디 오스틴 또한 5월이 돼서야 콜업이 됐으니까.

그 와중에도 콜로라도 로키스가 순항할 수 있었던 건 압도적인 마운드의 높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승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득점을 어떻게 쥐어짜야 하는지 타자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나 시즌 초.

유현이 출루했을 때 득점을 쥐어짜는 패턴은 콜로라도 로키스의 경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 중 하나였다.

포스트 시즌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전략은 다를 수 있지만 플레이는 같아야 한다.

정규 시즌과 같은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해야 포스트 시즌에서 오히려 좋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법이다. 긴장하거나 과하게 의욕이 넘치다 보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콜로라도 로키스와 LA 다저스 선수단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렸다.

LA다저스 선수단은 정규 시즌에서 보여 준 긍정적인 면모보단 투수 교체 타이밍과 득점력 부족 같은 부정적인 면모가 크게 부각된 반면, 콜로라도 로키스는 시즌 내내 지겹도록 보여 줬던 유기적인 플레이가 계속해서 드러났다.

유현의 도루 성공으로 콜로라도 로키스는 3차전에서 처음으로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보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때부터 콜로라도 로키스 타자들은 오로지 1득점만을 만들어 내기 위한 타격을 보여 줬다.

욕심을 내지 않았다.

모두가 철저하게 팀을 위해서 1득점을 만들어내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4번 타자 놀란 아레나도와 5번 타자 마크 번칠은 나란히 외야 플라이를 만들어 내며 유현이 한 베이스 더 나아갈 수 있게 발판을 만들어 줬다.

아웃카운트 두 개를 희생하긴 했지만 그 대신에 1득점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스코어는 1대0.

팽팽했던 무게추가 콜로라도 로키스 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고작 1점이긴 하지만,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하는 LA다저스 입장에서는 부담되는 점수인 게 사실이었다.

득점이 나오자마자 콜로라도 로키스 벤치는 빠르게 불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존 그레이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필승조를 모두 투입해서라도 실점을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드러낸 것이다.

8회 말 1아웃 상황.

존 그레이가 안타를 허용하자마자 콜로라도 로키스의 필승조가 줄줄이 마운드에 올랐고, 압도적인 구위를 바탕으로 LA다저스의 역전 의지를 완벽하게 찍어 눌렀다.

결국 3차전의 승자는 콜로라도 로키스였다.

1대0으로 3차전마저 가져오며 3전 전승.

콜로라도 로키스가 LA다저스를 셧다운시키며 가장 먼저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을 확정 지었다.

* * *

-콜로라도 로키스, 3전 전승으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 확정.

-2홈런 5타점 기록한 놀란 아레나도 디비전 시리즈 MVP 선정.

-놀란 아레나도 “Roctober가 시작됐다. 딱 8연승만 더 하겠다. 누가 올라와도 상관없다. 어차피 로키스를 막진 못할 테니까.”

-3차전 결승 득점 유현 “팀이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 오로지 승리만을 원한다.”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하게 될 4개 중 가장 먼저 한 자리를 차지한 건 콜로라도 로키스였고, 공교롭게도 다른 모든 팀들은 5차전까지 가며 피 말리는 접전을 펼쳤다.

콜로라도 로키스 입장에서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대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다른 팀들이 5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치르며 피로가 쌓이는 사이, 콜로라도 로키스는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며 상대 팀들에 대한 분석을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콜로라도 로키스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불펜 소모를 최소화했다.

2차전에서 1이닝, 3차전에서 2이닝.

고작 3이닝을 맡긴 게 전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등판 이닝이 워낙 적어서 실전 감각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해야 할 정도로 불펜 기용이 적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유현-카일 프리랜드-존 그레이로 이어지는 막강한 1~3선발이 있었다.

선발투수들이 최소한의 실점으로 긴 이닝을 소화해주니 투수진 운용에 숨통이 트였고, 실점이 적다 보니 승리를 위해 필요한 득점도 적어 타자들의 입장에선 부담이 적어 보다 편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는 게 가능했다.

콜로라도 로키스와 달리 다른 팀들의 상황은 그리 여의치 않았다.

그 어느 팀도 시리즈를 압도하지 못했다.

치고 박는 접전을 치르며 5차전까지 왔고, 5차전에서야 승부의 향방이 어느 정도 결정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마저도 실력으로 압도한 게 아니었다.

시리즈를 치르며 지친 팀들이 스스로 자멸하는 모습을 보여서 승패가 갈린 거지, 실력으로 압도했다고 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애초에 실력으로 압도했다면 콜로라도 로키스처럼 5차전까지 가지도 않았으리라.

유현은 쿠어스 필드에서 훈련을 하고 돌아와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알리사 메켄과 함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5차전을 시청했다.

승부는 3회 초에 갈렸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무려 6득점을 만들어 내며 오프너 전략을 들고 나온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마운드를 초토화시킨 것이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오프너 전략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서 연장 14회까지 가는 접전을 치러야 했다.

내보낼 수 있는 투수는 모두 내보냈다.

5차전에 내보낼 믿음직한 선발 투수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고, 오프너 전략을 통해서 상황을 타개해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기에는 투수들이 너무 지친 상태였다.

결국 마운드가 무너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는 생각보다 허무하게 무너지며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합니다! 리버스 스윕을 만들어 내며 콜로라도 로키스와 월드 시리즈 진출을 놓고 맞붙게 됐습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유현은 TV를 껐다. 동시에 알리사 메켄은 놀랍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걸 카디널스가 뒤집네요.”

“브레이브스가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총력전을 할 거라면 팽팽했던 3차전에 했어야 해요. 아니면 연장 14회까지 간 4차전이라도 무조건 잡았어야 돼요. 마운드가 탄탄한 팀이 아니라 쥐어짤 수 있을 때 쥐어짜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채 5차전까지 끌려갔으니 카디널스가 유리할 수밖에 없죠.”

“로키스 입장에서는 브레이브스가 나아요, 아니면 카디널스가 나아요?”

“흐음. 누가 올라오더라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카디널스가 더 좋아요.”

“어째서요?”

“빈볼 맞았던 거 복수해줘야 하니까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가 1차전과 2차전을 내리 잡을 때만 하더라도 챔피언십 시리즈에는 그들이 오를 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수단은 포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부정적인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볼 때 이를 악물고 승리를 위해 뛰었다.

3차전에서는 마운드의 힘을 바탕으로 1대2로 승리, 4차전에서는 연장 14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8대9로 승리, 5차전에서는 지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마운드를 폭격하며 11대2로 승리했다.

그리고 유현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챔피언십 시리즈 챔피언이 된 걸 진심으로 기뻐했다.

빈볼을 던졌던 그들에게 포스트 시즌에서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찾아왔으니까.

챔피언십 시리즈 파트너가 확정되자마자 콜로라도 로키스 감독은 선발 로테이션을 발표했다.

디비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유현-카일 프리랜드- 존 그레이 순으로 로테이션을 구성했지만, 역시나 4차전 선발은 밝히지 않았다.

4차전 선발에 대해 함구하는 것 또한 콜로라도 로키스가 준비한 전략 중 하나였으니까.

* * *

보스턴 레드삭스 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콜로라도 로키스 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보스턴 레드삭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도박가들도 승부를 쉽사리 예측하지 못할 만큼 접전이 예상됐지만, 콜로라도 로키스 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경우 대부분 의견이 비슷했다.

콜로라도 로키스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콜로라도 로키스가 몇 승 몇 패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느냐였지, 진출하지 못하는 걸 가정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수단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들마저도 인정하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콜로라도 로키스가 자랑하는 1~3선발을 무너트리지 못한다면 절대 승리할 수 없다는 거였다.

4선발?

솔직한 말로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설사 이제 막 지명된 루키가 선발로 올라와 4차전을 쉽게 가져갈 수 있다 치더라도, 1~3선발을 무너트리지 못한다면 LA다저스처럼 콜로라도 로키스의 제물이 된 뿐이니까.

압도적인 마운드의 높이.

그것은 콜로라도 로키스의 가장 큰 장점이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위해서는 상대 팀들이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벽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유현이 존재했다.

카일 프리랜드나 존 그레이는 전략과 타자들의 컨디션에 따라 공략이 가능한 투수였고, 실제로 시즌 중에 무너지는 경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유현만큼은 달랐다.

한 경기에서 가장 많은 실점을 한 게 3실점이고, 그마저도 한 번이 전부였다. 실점을 한 경기보다 실점을 하지 않은 경기가 더 많을 정도로 등판할 때마다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줬다.

어떻게 하면 유현을 공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유현을 상대로 승리를 가져오는 게 가능할까?

2020시즌 내내 거듭된 질문에 몇몇 감독들은 쓴웃음을 흘리며 명쾌하게 답을 내렸다.

죽어라 1점을 쥐어짠 뒤 실점을 하지 않고 버텨 내거나, 마찬가지로 무실점으로 버티면서 유현이 더 이상 투구할 수 없을 때까지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가거나.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다.

유현의 진가는 단기전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팀에게 확실하게 승리를 안겨 줄 수 있는 투수, 시리즈에서 최소 2승을 책임져 줄 확실한 승리 카드임과 동시에 등판하지 않는 날에는 대주자로서 상대 배터리를 흔들어 줄 수 있는 투수는 메이저리그에게 오로지 유현뿐이니 말이다.

콜로라도 로키스는 그런 유현의 장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챔피언십 시리즈를 앞두고도 4차전 선발은 발표하지 않았다.

상대 팀 입장에서는 4차전에서 유현이 선발로 나올지도 모른다 생각할 테고, 콜로라도 로키스가 우세를 점하고 있을 때는 조급증을 유발하는 게 가능하다.

뻔한 작전이기는 하다.

중요한 건 전력상 우위에 있고 시리즈에서 리드를 잡을 수만 있다면, 그 뻔한 전략이 최고의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확실히 감독이 머리가 좋아. 좋은 전력으로 어떻게 심리전을 걸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 너무 빤하고 의심되지만, 상대하는 팀들 입장에서는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거든.

‘4차전 선발이 누구일까? 감독님이 아직 발표를 하지 않았거든.’

-나라면 오프너 전략을 쓸 거야.

‘오프너를?’

-콜로라도 로키스의 필승조는 강한 편이고, 4선발과 5선발은 1~2회 실점이 많아. 반면 3회부터 6회까지는 실점이 적었지. 오프너 전략을 사용할 만한 근거는 충분해.

‘흐음. 확실히 괜찮을 수도 있겠는데?’

1회에 선발투수 대신 필승조를 등판시키는 오프너 전략의 핵심은, 상대 팀의 강력한 상위 타순을 필승조로 찍어 누르는 것이다.

이후 부담이 심하지 않은 상황에서 등판한 선발투수가 적절하게 4~5이닝 정도를 책임져 준 뒤, 다시 한 번 필승조를 투입해서 남은 이닝을 확실하게 지워 버리는 게 이상적인 오프너 전략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콜로라도 로키스는 오프너 전략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팀들 중 하나였다.

다만 1~3선발이 워낙 좋고, 4~5선발은 기복이 있긴 해도 메이저리그 평균 수준의 활약을 보여 주다 보니 정규 시즌에서는 딱히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거였다.

하지만 포스트 시즌은 다르다.

팀의 입장에서는 승리를 할 가능성이 높은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할 수밖에 없다.

유현을 4차전에도 등판시킬 게 아니라면, 오프너 전략을 사용하는 게 승률을 가장 높일 수 있는 방법인 게 사실이다.

게다가……

‘만약 시리즈를 4차전에서 끝낼 수 있다면 내가 구원 등판을 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여차하면 불펜 시위 좀 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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