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Roctober (1)
117승 45패.
메이저리그 한 시즌 팀 최다승 신기록을 수립한 콜로라도 로키스는 기분 좋게 샴페인을 터트리며 지구 1위를 자축했다.
물론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았다.
정규 시즌은 끝났지만 포스트시즌이 남아 있다.
한 시즌 팀 최다승과 지구 1위?
의미 있는 성과이긴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월드 시리즈 우승이다. 결국 모든 영광을 차지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월드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단 한 팀이니까.
콜로라도 로키스는 창단 이후 한 차례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적이 있었다.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를 7연승을 내달리며 로키스와 10월을 합친 Roctober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4연패를 당하며 전승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던 2007시즌에 말이다.
그리고 그 이후, 콜로라도 로키스는 단 한 번도 월드 시리즈 무대를 발지 못했다.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두 차례 올라가긴 했지만 한 발자국을 더 내딛지 못해서 두 시즌 연속으로 실패를 맛보고 말았다.
2020시즌.
유현의 영입과 존 그레이의 부활, 유망주 타자들의 연쇄적 포텐셜 폭발로 전력이 탄탄해진 콜로라도 로키스는 다시 한 번 월드 시리즈 우승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선수단은 휴식과 훈련을 병행하며 컨디션을 조율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정규 시즌 최종전 다음 날.
공식 훈련이 없기에 개인 훈련을 끝마친 콜로라도 로키스 선수 중 무려 10명이 유현의 집에 몰려들었다. 유현은 마당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놓고 일찌감치 삼겹살과 제육볶음과 닭갈비로 가득 찬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규 시즌 최종전 다음 날 모인 이유는 하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공동 2위를 차지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LA다저스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놓고 치르는 타이브레이커 경기를 다 함께 보기 위해서였다.
두 팀 모두 시즌 최종전에서 나란히 패배하며 결국 타이브레이커까지 오게 됐다.
타이브레이커에서 이긴 팀은 다음 날 바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러야 하고, 설사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하루 휴식을 취한 뒤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맞붙어야만 한다.
타이트한 스케줄이지만 양 팀 모두 반드시 타이브레이커에서 이겨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두 팀 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다른 한 자리를 차지한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상대 전적에서 두 시즌 연속 우위를 점하고 있기에, 일단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하기만 하면 디비전 시리즈 진출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어느 팀이 이기건 콜로라도 로키스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였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LA다저스, 그리고 밀워키 브루어스 중 어느 팀이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더라도 콜로라도 로키스는 이길 자신이 있었고 이번 시즌 상대 전적도 우위에 있었다.
애초에 117승 45패를 기록했으니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점한 팀을 찾기 어려웠다.
억지로 찾는다면 인터리그에서 2승 1패로 우위를 점한 템파베이 레이스가 유일했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에게 밀려 지구 3위로 시즌을 끝낸 그들을 포스트시즌에서 만날 일이 없기에 논외였다.
경기가 시작할 무렵.
술 대신 과일음료를 집어든 유현이 식사를 시작하면서 선수들에게 물어보았다.
“다들 누가 이길 것 같아요?”
“다저스가 이길 거 같은데? 에이스로 발돋움한 워커 뷸러를 내세웠잖아. 투수교체 타이밍만 조금 타이트하게 가져가도 웬만해서는 이길걸?”
“다저스가 두 시즌 연속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고도 우승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단기전에서 약한 건 아니거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최근에 단기전 경험이 없어서 힘들 수도 있어.”
“우리 입장에서 제일 껄끄러운 건?”
“다저스지. 단기전 경험이라는 게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 다들 알잖아.”
“뭐…… 그래 봐야 우리가 이길 테지만.”
선수들은 대부분 LA다저스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타이브레이커 매치에서 이긴 뒤, 밀워키 브루어스마저 꺾고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세 팀 중 최근 몇 시즌 동안 포스트 시즌에서 가장 뚜렷한 성과를 낸 팀이 LA 다저스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LA다저스에게 디비전 시리즈에서 패배해 시즌을 끝낼 거라 생각하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말이다.
* * *
콜로라도 로키스 선수단의 예상이 맞았다.
지난 몇 시즌 동안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단기전 경험이 풍부한 LA다저스가 에이스 워커 뷸러의 7이닝 1실점 호투를 앞세워 타이브레이커 매치에서 2대4로 승리를 거뒀다.
결국 밀러 파크로 넘어가 밀워키 브루어스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를 팀은 LA다저스였다.
그렇게 시작된 와일드카드 결정전.
돔구장을 가득 채운 대부분들의 관중들이 일방적으로 밀워키 브루어스를 응원하는 가운데, LA다저스는 팀의 상징인 클레이튼 커쇼를 출격시키며 필승 의지를 다졌다.
또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타이브레이커 매치에서 호투했던 워커 뷸러와, 디비전 시리르에 진출할 경우를 대비해 1차전 선발로 내정된 여환진을 제외한 모든 투수를 대비시켰다.
물론 이는 밀워키 브루어스도 마찬가지였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이겨야 디비전 시리즈 또한 있기에, 양 팀은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 등판할 선발투수를 제외한 모든 투수를 대기시키며 총력전을 선언했다.
경기 초반.
분위기를 가져온 건 LA다저스였다.
1회 초에 2득점, 2회 초에 2득점을 만들어 내며 4대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5회 초.
선발투수가 다시 한 번 흔들리자 밀워키 브루어스는 한발 빠르게 불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회까지는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불펜투수들이 호투를 해주는 사이 밀워키 브루어스 타선이 힘을 냈다. 6회 말 클레이튼 커쇼에게 2득점을 만들어 내더니, 7회 말에는 연속 안타를 터트리며 마운드에서 끌어내린 것이다.
하지만…….
무사 1․2루의 득점 찬스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는 끝끝내 득점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4대2로 9회 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렇게 맞이한 9회 말.
2아웃까지 수월하게 잡아냈던 LA다저스는, 불규칙 바운드가 튄 유격수 앞 땅볼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며 실책으로 주자를 출루시켰다.
그때부터 경기의 흐름이 묘해졌다.
무려 11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2점 홈런이 터지며 4대4 동점이 된 것이다.
실책 하나로 인해 다 잡은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가게 된 상황.
집에서 알리사 메켄과 둘이서 오붓하게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감상하고 있던 유현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걸 연장을 간다고?”
야구는 9회 말 2아웃부터라는 말이 있다.
밀워키 브루어스가 9회 말 2아웃에 보여 준 동점 홈런은 분명 극적이었고,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제대로 보여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느슨한 플레이가 있었다.
LA다저스의 유격수가 조금만 더 집중했더라면, 그리 어렵지 않은 불규칙 바운드를 깔끔하게 처리했더라면 동점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어쨌거나 밀워키 브루어스는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가는 데에 성공했고, 양 팀은 기용할 수 있는 투수들을 모조리 기용하며 반드시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승부가 결정 난 건 16회 초였다.
홈런 한 방으로 치열했던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끝나고, 콜로라도 로키스와 디비전 시리즈에서 맞붙을 파트너가 결정됐다.
* * *
LA다저스 대 콜로라도 로키스.
대부분은 콜로라도 로키스가 LA다저스를 꺾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할 거라고 예상했다.
타이브레이커 매치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고 올라온 LA다저스가 전력이 탄탄한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고전할 거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콜로라도 로키스는 자신감이 넘쳤다.
콜로라도 로키스 감독은 1차전부터 3차전까지의 선발을 미리 발표했다. 유현-카일 프리랜드-존 그레이를 내보내며 필승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4차전 선발을 발표하지 않았다.
4차전 선발로 누구를 예상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콜로라도 로키스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을 내비췄다.
“4차전 선발이 왜 필요합니까? 어차피 4차전까지 가지도 않을 건데 말이죠.”
자신감이 넘칠 만도 했다.
이번 시즌 콜로라도 로키스는 117승 45패로 메이저리그 한 시즌 팀 최다승 신기록을 세우며 최고의 정규 시즌을 보냈으니까.
거기에 디비전 시리즈 파트너인 LA다저스의 컨디션이 썩 좋지 않기도 했다.
타이 브레이커를 치른 다음 날,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연장 16회까지 가는 접전을 치른 끝에야 어렵사리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다.
기용할 수 있는 투수는 대부분 기용했고, 이틀 연속 벼랑 끝 승부를 펼친 선수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그 와중에 주어진 휴식일은 고작 하루였다.
시리즈가 다저스타디움에서 시작했다면 그나마 나았을 테지만, 하필이면 모든 투수들이 마운드에 서고 싶지 않아 하는 쿠어스 필드에서 2차전까지 치른 뒤에 이동해야만 한다.
LA다저스의 목표는 확실했다.
쿠어스 필드에서 1승 1패를 챙긴 뒤, 다저스타디움으로 돌아가 2승을 하고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을 확정 짓는 거였다.
5차전은 다시 쿠어스 필드에서 치러야 하니 자신들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콜로라도 로키스의 생각은 달랐다.
3대0.
무조건 스윕을 해서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을 확정, 휴식일을 하루라도 더 길게 가져가며 컨디션 관리를 수월하게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디비전 시리즈 1차전 날이 다가왔다.
유현과 여환진의 맞대결에 대한민국 야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유현은 잔뜩 들떠 있는 봉식이와 스칼렛의 흥얼거림을 들으며 쿠어스 필드로 출근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Roctober를 보여 주자고! 사상 최초의 포스트시즌 전승으로 월드 시리즈까지 제패해서 역사에 남는 거지!
-지금 로키스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포스트 시즌 경험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요.
-월드 시리즈 경험이 없긴 하지만 1차전만 잘 풀어낸다면 이후에는 기세를 타서 무난하게 이길 거라고 봐요.
-당연하죠. Roctober 앞에서는 그 어떤 팀이 와도 다들 패배할 뿐이라고요.
콜로라도 로키스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전력을 2020시즌에 구축했다. 당장 2020시즌이 끝나고 필승조 중 3명이 FA로 풀리기에, 어쩌면 지금과 같은 전력은 다신 구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전승 준우승에 머물렀던 2007시즌의 악몽을 지워 버리고 월드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에 적기였다.
팬들도 선수단도 알고 있었다.
이번 시즌을 놓치면 월드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기회가 다시 찾아오기 힘들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자고로 기회는 찾아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
포스트시즌을 기분 좋게 시작해야 할 콜로라도 로키스의 에이스 유현은, 두 땅의 정령의 Roctober 타령에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Roctober 타령 너무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설레발치지 말고 묵묵하게 응원하기나 해. 그럼 트로피 들어 올려 줄 테니까.”
-1차전이 중요하다는 거 잊지 않았겠지?
“당연하지. 기선제압을 확실하게 해 줘야 하지 않겠어? 더군다나 상대가 상처투성이라면 그 상처를 후벼 파 줘야 하는 법이니까.”
-너무 긴장하지는 말고.
“긴장?”
봉식이의 말을 들은 유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긴장은 내가 아니라 다저스 선수들이 하겠지. 오늘 난 타석에서 스윙을 안 할 거거든.”
포스트시즌을 앞둔 유현의 전략은 단순했다.
타석에서 일절 스윙을 하지 않고 오로지 피칭에만 집중하는 것, 모든 에너지를 마운드 위에서 쏟고 내려오는 것.
그렇게 시작된 1회 초.
“스트라이크!”
와아아아아!
쿠어스 필드가 들썩였다.
유현이 던진 초구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이, 이번 시즌 처음으로 100마일을 기록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