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122화 (122/155)

122화 VS 레드삭스 (1)

6월이 빠르게 흘러갔다.

유현은 다저스타디움에서의 등판 이후 쿠어스 필드에서만 두 번 더 등판했고, 각각 8이닝 1실점과 9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14승과 시즌 15승을 수확하는 데에 성공했다.

콜로라도 로키스는 6월의 마지막 3연전을 앞두고 88경기에서 68승 20패로 경이로운 페이스의 승수 쌓기를 하고 있었다.

기대를 모았던 뉴욕 양키스와의 인터 리그에서는 2승 1패로 우세를 점했다.

상당수의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콜로라도 로키스의 기세가 6월쯤에는 한풀 꺾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콜로라도 로키스의 기세는 좀처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카일 프리랜드-유현-존 그레이로 이어지는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1~3선발, 리그 평균 수준의 4~5선발과 확신하게 계산이 서는 필승조, 유망주들의 연쇄적인 잠재력 폭발로 제법 괜찮은 모습을 갖추게 된 타선까지.

막강 타선과 준수한 투수진의 힘을 바탕으로 지난 두 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1위로 순항했던 보스턴 레드삭스와 비견될 정도로 팀의 짜임새가 견고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콜로라도 로키스는 투수진이, 보스턴 레드삭스는 타선이 상대적으로 더 좋다는 것 정도였다.

여하튼 콜로라도 로키스는 6월이 끝나갈 무렵까지도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보스턴 레드삭스는 전체 2위로 순항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마침내 두 팀이 만났다.

두 팀 감독은 서로를 상대로 반드시 위닝 시리즈를 거둘 거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는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다.

지난 두 시즌 연속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했고 월드 시리즈까지 제패했던 팀과, 두 번이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발목이 잡혔으나 이번 시즌만큼은 다르다는 듯 메이저리그 전체 1위로 폭발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팀.

서로가 서로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만에 하나 월드 시리즈에서 만났을 때, 인터 리그의 승패가 영향을 미칠 거라는 걸 두 팀의 감독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콜로라도 로키스는 카일 프리랜드-유현-존 그레이를 3연전의 선발투수로 예고하며 필승 의지를 내비쳤다.

* * *

콜로라도 로키스가 2020시즌 경이로운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데에는 유현의 역할이 컸다.

부족했던 선발진의 한 자리를 유현이 완벽하게 채워줬다. 아니, 완벽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의 활약을 보여 줬다.

15번의 등판에서 모두 승리를 챙겼다.

선발투수 한 명이 6월까지 팀의 15승을 책임졌는데, 이 활약을 어떻게 말로 평가할 수 있을까.

유현이 15연승을 내달린 시점에서 더 이상 저평가 따윈 남아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유현의 연승가도가 언제 끊길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다.

메이저리그 최다연승 기록인 24연승과, 단일 시즌 최다연승 기록인 19연승.

둘 중 어느 기록을 갱신하건 메이저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경이로운 기록임이 분명했다.

거기에 여전히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15경기에서 무려 125이닝을 소화하며 압도적인 이닝 소화 능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마저도 득점 차이가 제법 났을 때는 완투를 하지 않도록 조치하며 소화 이닝을 조절해 준 거였다. 유현의 컨디션을 보면 시즌 초반 몇 경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완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투구 수 관리를 잘했고 경기 내용 또한 좋았다.

불과 15경기.

아직 시즌이 절반가량 남은 상황임에도 유현은 콜로라도 로키스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심장인 놀란 아레나도 다음으로 관련 상품 판매가 많은 것만 보더라도, 팬들이 유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카일 프리랜드가 1선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1선발로서 최고의 활약을 해줬다.

6월 마지막 날 전까지 15경기에 등판해서 12승 2패 방어율 1.45를 기록하고 있었으니까.

이날까지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10경기 이상 선발로 등판해 1점대 방어율을 유지하고 있는 투수는 고작 네 명뿐이고, 그중 두 명이 콜로라도 로키스 소속이다.

유현이 워낙 괴물 같은 활약을 하고 있어서 그렇지, 카일 프리랜드 또한 강력한 사이영 상 후보 중 한 명이었다.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원정 3연전 첫 경기에서도 카일 프리랜드는 분명 좋은 활약을 해줬다.

7이닝 4피안타 1피홈런 무사사구 5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1회 말 2아웃 상황에서 강태영에게 허용한 솔로 홈런 외에는 실점을 하지 않고 7회까지 이닝을 잘 틀어막았다.

다만 팀의 승리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최근 5경기, 콜로라도 로키스 타선은 도합 9득점을 만들어 내는 데에 그쳤습니다. 3승을 챙기긴 했지만 득점력의 부족은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지만 하필이면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원정 3연전을 앞두고부터 방망이가 식은 건 콜로라도 로키스 입장에서는 그리 기분이 좋지 않을 겁니다.

-1차전을 내주긴 했지만 2차전에서는 필승 카드인 유현 선수가 선발로 등판합니다. 콜로라도 로키스는 2차전을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2차전을 패배하면 이번 시즌 첫 스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1차전의 패배와 최근 다섯 경기 득점력 저하로 팀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언론은 이번 시즌 필승 카드인 유현의 등판에서만큼은 콜로라도 로키스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1차전이 끝난 뒤.

유현은 강태영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 * *

“파티하자면서 한참을 떠들어놓고 하는 게 삼겹살 구워 먹는 거냐?”

“미국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 거면 진수성찬 아니냐? 소주 한 잔 할래?”

“됐다. 주스나 줘.”

“하여간 자기관리 진짜 철저하다니까. 옛다.”

차영석, 강태영, 유현.

한 때 같은 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모처럼 만나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눴다.

“현이 넌 어째 미국에서도 날아다니냐. 네가 잘할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싱커까지 장착할 줄이야. 하여간 진짜 난놈이라니까.”

“저보다는 태영이가 난 놈이죠. 이번 시즌에는 50홈런 달성할 기세던데요?”

“50홈런은 현실적으로 힘들고 40홈런 정도 보고 있어. 부상만 없으면 가능할 거 같아. 현이 넌 0점대 방어율이 목표지?”

“어. 다른 건 별로 관심 없어. 있다고 해 봐야 월드 시리즈 우승 정도?”

“다른 사람이 0점대 방어율 타령했으면 허세라고 생각했을 건데,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달성할 거 같단 말이야. 너 지금 시즌 방어율 얼마지?”

“0.64일걸?”

“대단하다, 대단해.”

“난 나보다 선배님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선배님도 대단하시지. KBO리그 하위권 팀들이 죄다 차기 감독으로 오퍼를 넣고 있다잖아.”

“얼씨구. 매 시즌 1000만 달러 넘게 버는 놈들이 연간 10억도 못 버는 KBO리그 감독 치켜세우고 있네. 누구 놀리냐?”

원래 차영석은 지난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가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한 뒤 대전 펠컨스로 돌아가 배터리 코치를 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보스턴 레드삭스가 차영석을 잡았다.

지난해 후반기, 차영석이 트리플 A에서 가르친 백업 포수가 타격과 수비 모두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주며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결국 차영석은 미국 연수 1년 만에 보스턴 레드삭스의 배터리 코치를 맡게 됐다.

2020시즌 보스턴 레드삭스의 포수들은 주전과 백업 모두 수비에서 한층 안정감을 얻었고, 투수 리드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6월까지의 성적만을 놓고 봤을 때 2020시즌보다 팀 방어율이 0.41이 낮아졌는데, 포수들의 수비와 투수 리드 향상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게 구단 내외의 일관된 평가였다.

유현은 어떤 의미에서는 강태영보다 차영석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서 좋은 활약을 보여 준 이들은 더러 있었지만, 불과 1년 만에 빅 마켓 팀의 배터리 코치가 된 선수는 없었으니까.

KBO리그의 다수 구단들이 일찌감치 차기 감독으로 차영석을 눈독 들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고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차영석은 오퍼를 받아들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말이다.

복귀하더라도 대전 펠컨스의 배터리 코치로 복귀하지, 다른 팀의 감독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걸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이었고 말이다.

“내가 홈런 쳐서 네 16연승을 저지하면 언론이 엄청나게 주목하겠지?”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선 상대로 완봉승하면 압도적인 사이영 상 후보가 되는 건가?”

“태영이가 홈런 치고 현이가 완투승으로 시즌 16승 하면 대한민국 야구팬들이 난리가 나겠네.”

유현과 강태영은 절친이다.

2018시즌 대전 펠컨스에서 다시 만나게 된 이후로 급속도로 친해져 아직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친분과 경기는 별개의 문제였다.

유현의 목표는 확실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최대한 긴 이닝을 소화하며 팀이 승리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드는 거였다.

* * *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인터리그 2차전.

콜로라도 로키스의 타자들이 1회 초 삼자범퇴로 허무하게 물러난 가운데, 1회 말 유현이 펜웨이 파크의 마운드에 올랐다.

관중석을 꽉 채운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들에게 기가 죽을 법도 하건만, 유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마운드에 올랐다.

“스트라이크!”

그리고 초구부터 과감하게 몸쪽 놓은 코스에 98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을 찔러 넣으며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바깥쪽으로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로 헛스윙을 유도하며 2구도 스트라이크, 그리고 3구는 초구보다 살짝 더 높은 코스로 들어가는 포심 패스트볼을 선택했고…….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가뿐하게 삼구삼진을 잡아냈다.

유현은 2번 타자 또한 삼구삼진으로 잡아냈다. 두 타자 연속으로 삼구삼진을 잡아내며 경기 초반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무엇보다 포심 패스트볼의 무브먼트와 제구가 최상이었다. 이런 날의 유현은 작정하고 삼진을 잡아도 타자들이 제대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경기 운용을 하기가 쉬웠다.

괴물 같은 타자만 없다면 말이다.

와아아아아아!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펜웨이 파크가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강태영.

지난해 월드 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한 걸로도 모자라, 이번 시즌에도 6월까지 무려 25홈런 69타점을 기록하며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몸소 보여 주고 있었다.

사실 KBO리그를 초토화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강태영에게 소포모어 징크스를 언급하는 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강태영에 대한 분석은 지난해 후반기에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팀들이 집요하게 했지만, 강태영은 월드 시리즈까지 꾸준한 활약을 보여 줬다.

분석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클래스의 타자라는 걸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앞선 두 타자가 삼구삼진으로 허무하게 물러난 상황, 강태영은 첫 타석을 준비하며 유현의 투구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스윙을 하며 타이밍을 잡아보려는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1스트라이크 1볼 상황.

딱!

강태영이 몸쪽으로 파고든 투심 패스트볼을 제대로 공략해서 펜스를 직격하는 큼지막한 3루타를 만들어 냈다.

2루타가 됐어야 할 코스였고 중견수 이안 세비지의 수비가 나쁘지 않았지만, 빠른 발을 이용한 강태영의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가 돋보였다.

이번 시즌.

유현의 투심 패스트볼은 단 하나의 장타도 허용하지 않았었다. 지저분한 무브먼트로 인해 타자들이 좀처럼 정타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실투가 아니었다. 예리하고 몸쪽을 파고들었고 무브먼트 또한 좋았는데, 강태영이 그걸 제대로 노려친 거였다.

동시에 유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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