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102화 (102/155)

102화 맞대결 (2)

지난 두 시즌.

LA다저스와 콜로라도 로키스는 지구 우승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다.

특히 2018시즌은 나란히 91승 71패를 기록하며 타이브레이커로 지구 1위를 가렸다.

2019시즌도 단 1경기 차이로 콜로라도 로키스가 지구 우승을 차지했을 만큼, LA다저스와의 지구 우승 경쟁이 치열했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LA다저스의 지구 우승 경쟁 팀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다. 그들은 순위 경쟁에서 밀려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도 LA다저스가 해내지 못한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2018시즌과 2019시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2년 연속 지구 4위를 기록하며 무너졌다.

전력보강 실패와 플라이볼 혁명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이 독으로 작용했다는 게 대부분 야구 관계자들의 시선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주춤하는 사이 콜로라도 로키스가 치고 나오며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신흥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졌다.

개막전부터 LA다저스와의 3연전이 예고되자 쿠어스 필드는 일찌감치 매진이 됐다.

그렇게 시작된 개막전.

클레이튼 커쇼 대 카일 프리랜드의 선발 맞대결에서는 두 선수 모두 웃지 못했다.

클레이튼 커쇼가 6이닝 6피안타 1사사구 8탈삼진 3실점, 카일 프리랜드가 6과 3분의1이닝 4피안타 1피홈런 2사사구 5탈삼진 3실점으로 승패와 관련 없는 상황에서 물러난 것이다.

두 팀의 명암이 엇갈린 건 불펜 싸움이었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필승조는 2와 3분의2이닝 동안 단 하나의 피안타도 허용하지 않으며 완벽투를 선보였다.

반면 LA다저스 필승조는 매 이닝 실점을 허용하면서 무너졌고, 결국 7대3으로 시즌 첫 번째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결국 개막전 첫 경기는 오수완이 승리투수가 되며 콜로라도 로키스가 승리를 가져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유현은 여환진과 저녁 식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마지막으로 본 게 4년 전이었던가?”

“네. 레오파즈 스프링캠프 때 뵀었죠.”

“세상 일 참 알다가도 모르는 거라니까. 네가 데뷔 시즌에 맹활약할 때만 해도 부상과 부진으로 은퇴를 고민할 줄은 몰랐고, 펠컨스랑 재계약할 때까지만 해도 네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냐.”

“아무도 예상 못했을 걸요. 저도 못했는데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어요.”

유현은 다시 돌아온 친정팀 대전 펠컨스에서도 실패하면 미련 없이 은퇴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1군 스프링캠프에서 낙오됐을 때만 하더라도 유현이 2018시즌 커리어 하이를 기록할 거라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유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대만 2군 캠프에서 땅의 정령을 만나 자신의 인생이 바뀌게 될 거라고 어떻게 알았겠는가.

여환진이 기분 좋게 유현과 어깨동무를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며 같은 한국인 선수를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메이저리그에서 보게 되니까 더 반갑네. 가자. 맛있는 거 사줄게.”

“그렇다고 내일 안 봐드립니다.”

“내가 타석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 때려도 울고 그러면 안 된다.”

“그럼 전 인사이드 파크 홈런으로 선배님 멘탈을 박살내겠습니다.”

신인 시절 대전 펠컨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경험 때문일까?

유현은 몇 년 만에 보는 여환진이 반가웠다.

다만 냉정하게 말해 반가운 건 반가운 거였고 맞대결은 맞대결이었다.

물론 유현이 상대하는 건 여환진이 아니라 LA다저스 타선이지만, KBO리그 출신이자 대전 펠컨스 에이스였던 투수들의 맞대결에 다수의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관심이 집중된 매치 업이니만큼 호투하고 싶었다. 승패와 상관없이 좋은 투수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다.

‘아마 내일 타순이 발표되고 나면 놀라겠지? 하긴. 감독님 말을 듣고 나도 놀랐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 * *

1회 초.

유현은 세 타자 모두에게 땅볼을 유도하며 기분 좋게 삼자범퇴로 첫 이닝을 틀어막았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급격하게 변화하는 투심 패스트볼이 타자들의 히팅 포인트를 흐려놓은 게 주효했다.

그리고 이어진 1회 말.

선두타자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난 상황에서 2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동시에 여환진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 참. 인사이드 파크 홈런 타령을 계속 해대서 뭔가 했더니, 이거였냐?’

개막 2차전.

콜로라도 로키스의 2번 타자는 유현이었다.

득점을 만들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1차전에서 테이블 세터가 제대로 밥상을 차려주지 못했고, 하위 타순에서는 주요 상황마다 병살타가 나왔다. 득점권에서 흐름이 뚝뚝 끊기다 보니 안타를 무려 17개나 쳐놓고도 5득점에 그치며 어려운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클린업 트리오는 맹활약을 했지만 앞뒤에서 받쳐주지 못하고, 주전 포수 마크 번칠이 1타점을 올리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득점 루트가 아쉬운 게 사실이었다.

2차전을 조금 더 쉽게 풀어가기 위해 콜로라도 로키스 감독은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투수인 유현을 2번 타자로 출장시키기로, 유현을 통해 득점 루트를 다양화하기로 말이다.

유현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였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아웃카운트가 1아웃이나 노 아웃일 때는 어떻게 해서든지 진루타를 만드는 것, 그리고 출루를 한 상황이라면 적극적인 베이스 러닝으로 상대 배터리를 흔들 것.

유현은 그린 라이트를 부여받았다.

투수가 그린 라이트를 부여받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유현이 스프링 트레이닝과 시범경기에서 보여 준 주력을 감안하면 도루를 자유롭게 하도록 놔두는 게 팀에 이득이었다.

유현이 신나게 흔들어 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유현은 코칭스태프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딱!

초구부터 1루 쪽으로 뛰어나감과 동시에 기습 번트를 댄 것이다.

타구가 투수 정면으로 향했지만 바운드가 튀었다. 여환진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공을 잡아내고서 1루를 향해 송구했다.

기습 번트 후 내야 안타를 노리는 건 발이 빠른 타자들이 종종 써먹는 작전이다.

투수의 멘탈을 흔들기에도 좋고, 내야수들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번트만 제대로 댄다면 출루 확률이 높기도 하다.

그리고 LA다저스는 유현이 기습 번트를 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전날 테이블 세터가 무안타로 침묵하며 클린업 트리오에게 밥상을 차려주지 못했기에,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든 유현을 이용해서 출루를 시도할 거라고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생각보다 바운드가 크게 튀었다는 것.

그리고 유현의 주력이 LA다저스가 생각한 것 이상이라는 거였다.

여환진이 매끄러운 수비를 보여 줬지만, 유현은 비교적 여유롭게 1루 베이스를 밟았다. 번트를 댈 때부터 몸이 1루 쪽으로 치우쳐 있었고, 타구를 확인하지도 않고 전력질주를 하다 보니 출루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임무 완료.’

-진짜 발 하나는 미치도록 빠르단 말이야. 타격만 조금 더 잘 했으면 진짜로 이도류 했어도 될 것 같은데?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그래도 나 정도면 투수치고 타격도 잘하는 거 아니냐?’

-갖다 맞추는 건 잘하지. 투수치고 밀어치기가 기가 막힌 것도 맞아. 장타력이 없고 정교함이 떨어져서 말 그대로 투수치고는이라서 문제지.

‘그래도 투수 중에 나처럼 기습 번트로 내야 안타 만들고 도루로 상대 배터리 흔들어 대는 미친놈은 나밖에 없을걸?’

-그건 인정한다.

-확실히 유현 씨의 주루 센스는 타자였다면 도루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웠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판단됩니다. 제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득점 루트가 부족한 로키스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감독님은 날 2번에 놓은 걸 후회하실 거야. 너무 잘해서 1번으로 배치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시게 될 거거든.’

유현은 리드 폭을 크게 잡았다.

언제든지 뛸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하면서도, 정작 무게중심은 1루 쪽에 두고 있었다.

도루는 단순히 발이 빠르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상대 배터리의 타이밍을 뺏어야지만 성공할 확률이 높다.

뻔히 예상하는 타이밍에 뛰면 아무리 발이 빨라도 잡힐 수밖에 없다.

유현은 지난 2년 동안 차영석과 지석한과 호흡을 맞추며 주자들의 도루를 수도 없이 잡아냈다. 자신을 상대로 어떻게든지 득점을 만들어 내기 위해 도루를 시도, 스코어링 포지션에 들어가려 하는 타자들은 차고 넘쳤으니까.

그래서 잘 알고 있었다.

어떤 타이밍에 도루를 시도해야 상대 배터리의 멘탈을 흔들 수 있는지 말이다.

1볼 2스트라이크 상황.

여환진이 자신의 전매특허인 체인지업을 던져 찰리 블랙몬의 헛스윙을 유도했다.

찰리 블랙몬은 움찔하긴 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벗어난 체인지업은 볼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사이 유현은 여유롭게 2루 베이스를 밟았다. LA다저스의 포수는 송구조차 하지 못한 채 타이밍을 뺏기고 말았다.

1차전과 달리 콜로라도 로키스가 1회부터 득점 찬스를 맞이하게 됐다.

양 팀의 벤치에서 분주하게 사인을 나왔다.

그리고 콜로라도 로키스의 작전은…….

딱!

또다시 기습 번트였다.

3루 쪽으로 흘러간 번트를 3루수가 잡았을 때, 일찌감치 스타트를 끊은 유현이 3루 베이스에 근접해 있었다.

결국 3루수는 유현을 잡는 걸 포기했다.

그 대신 찰리 블랙몬을 잡고 아웃카운트 하나를 추가하기 위해 스텝을 밟은 뒤 송구를 했다. 급하게 송구하지 않아도 찰리 블랙몬을 잡아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다했다.

“홈! 홈!”

“젠장! 빨리 던져!”

동시에 깨달았다.

자신이 1루를 향해 스텝을 밟고 송구 동작을 취하던 그 순간, 유현은 망설임 없이 3루 베이스를 돌아 홈을 향해 내달렸다는 걸 말이다.

1루수가 송구를 받자마자 홈으로 송구했다. 3루에서 멈추지 않은 유현을 잡아내서 실점 위기를 벗어나기를 바랐다.

포수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며 홈 베이스에 내뻗는 유현을 향해 태그를 시도했다. 태그가 되긴 했지만 유현이 몸을 살짝 틀며 슬라이딩을 하는 통에 원하는 타이밍에 되지는 않았다.

“세이프!”

그리고 결과는 세이프였다.

플라이볼 혁명이 시작된 이후 메이저리그에서는 도루가 많이 줄어들었다. 더 정확히는 부상 위험이 높은 도루를 선수들이 꺼려하게 되면서 도루 시도 자체가 확 줄어들었다.

부상 위험을 감수하고서 도루를 시도하느니 타석에서 조금 더 집중해 좋은 결과를 내는 게 낫다는 것이 선수들의 일괄된 생각이었다.

때문에 LA다저스 선수들은 유현처럼 적극적으로 베이스 러닝을 하는 선수를 최근 들어서 거의 보지 못했다.

심지어 적극적인 베이스 러닝으로 팀의 첫 득점을 올린 선수는 무려 투수였다.

그것도 쿠어스 필드를 홈으로 쓰는.

콜로라도 로키스 소속의 다른 투수들이 타석에서 스윙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과 달리, 유현은 무모하리만큼 정신 나간 베이스 러닝을 보여 줬다.

심지어 세이프 판정을 받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데 숨조차 차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체력이 좋은 타자들도 쿠어스 필드에서 전력질주를 하고 나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말이다.

여환진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저게 사람이야? 도대체 안 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이 저렇게 돼?”

일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

유현이 상대 배터리의 멘탈을 어느 정도 뒤흔드는 데에 성공했다.

-문제는 상대가 여환진이라는 거지. 대전 펠컨스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서 멘탈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선수라, 아마 크게 흔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이럴 때는 천적이 한 건 해주면 좋은데 말이야.’

-여환진을 상대로 통산 타율 4할을 기록하고 있으니까 뭐 하나 보여 주지 않을까?

선취점을 만들어 낸 상황에서 주자 없이 2아웃, 여환진의 천적 놀란 아레나도가 타석에 들어섰다.

딱!

놀란 아레나도는 초구부터 거침없이 스윙했다. 그리고 그 결과, 타구가 쭉쭉 뻗어 나가며 아예 경기장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큼지막한 장외 홈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봉식이가 스칼렛과 함께 유현의 머리 위에서 내려가며 속삭였다.

-오늘 이기겠네. 더그아웃에서 느긋하게 구경하고 있을 테니까 힘내라.

-끝나고 불화산 치킨 먹으러 가야 되니 힘내세요. 이왕 먹으러 가는 거 기분 좋게 이기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역시 스칼렛. 맞는 말만 골라서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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