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72화 (72/155)

72화 끔찍한 혼종 (2)

2019시즌 들어 서울 나인테일즈를 세 번째로 상대하게 된 유현과 지석한 배터리는 지독히도 극단적인 볼 배합을 가져갔다.

일단 포심 패스트볼과 스플리터는 2개씩 던진 게 고작이었고, 나머지는 커터와 투심 패스트볼을 7대3 비율로 던졌다.

문제는 이 투구 패턴이 먹혔다는 것이다.

서울 나인테일즈의 라인업을 꽉 채운 우타자들을 상대해서 몸쪽으로 파고드는 커터와 바깥쪽으로 빠지는 투심 패스트볼.

단조로운 투구 패턴에도 서울 나인테일즈 타자들은 유현을 공략하지 못했다.

타구는 더러 만들어 냈다.

다만 제구가 잘 된 투심 패스트볼은 배트 끝에 걸렸고, 커터는 배트 안쪽에 맞으면서 결코 정타를 허용하지 않았다.

거기에 커터는 제대로 구사됐을 때 타자들의 배트를 부러트리기까지 했다.

“……저놈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놈이기에 구위가 저래? 알고 치는데도 힘에서 밀리는 건 너무한 거 아냐?”

“흐음. 명우 선배 말이 맞나 보네요?”

“명우 형? 그 양반이 뭐라고 했어?”

“네. 지난번에 저희랑 경기할 때 그러더라고요. 유현이 작년보다 구위가 좋아진 것 같다고요.”

“구위가 좋아졌다고?”

“가운데로 살짝 몰린 포심 패스트볼을 제대로 노려 쳤는데도 배트가 밀려서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데요. 작년이었으면 안타가 됐을 타구였을 거라고, 구위가 좋아져서 밀린 것 같다 그러던데요?”

스플리터의 장착, 제구력의 향상.

그로 인해 시즌 초 여섯 번의 등판에서 매 경기 10탈삼진 이상을 수확하며 지난해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유현이 이제는 구위까지 좋아졌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서울 나인테일즈 타자들이 절망에 빠졌다.

1회 초에 내야 하나를 하나 만들어놓은 걸, 유현이 탈삼진을 잡기 위한 피칭을 하지 않는 걸 진심으로 다행이라 여기며 타석에서 적극적으로 스윙하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결과는 죄다 내야를 벗어나지 못한 먹힌 타구로 끝났지만 말이다.

“그래서, 저 망할 괴물 새끼는 언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데?”

서울 나인테일즈 타자들이 진심으로 바랐다.

올해 몇 번을 더 만나서 져도 되니까, 제발 이번 시즌 끝나고 은퇴할 때까지 유현의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있기를 말이다.

* * *

-나인테일즈 타자들 슬슬 눈치챈 거 같네.

‘이제 눈치챈 게 더 신기하다. 지금껏 내 구위에 대해서 이야기가 안 나온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 전력분석 제대로 하는 건가 싶어.’

-다들 스플리터랑 탈삼진 페이스에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걸 놓친 거지.

‘오늘 경기가 끝나면 다들 무슨 반응을 보일까?’

-대전 펠컨스를 제외한 구단들이 올스타 브레이크 끝나고 특별 조항 만들어서 메이저리그로 보내 버리면 안 될까 진지하게 고민하겠지.

‘그럴 거면 작년에 보내 주지.’

-내 말이 그 말이다.

2019시즌.

유현을 상대하는 대부분의 타자들은 스플리터의 장착과 제구의 향상으로 인해 공략이 불가능한 투수가 되어 버렸다고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일부 선수들은 생각은 달랐다.

리그에서 손꼽히는 강타자들은 말했다.

유현을 상대하기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는 지난 시즌보다 구위가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투구폼의 변화가 없음에도 구위가 좋아진 건 오프 시즌부터 제구력 강화 훈련과 함께 꾸준히 해온 악력 강화 훈련 덕분이었다.

악력이 좋아지면서 공의 회전수가 늘어났다.

구속은 차이가 없지만 회전수의 증가로 인해 타자들은 타이밍을 제대로 맞춰 타격해도 배트가 밀리곤 했다.

포심 패스트볼의 경우 컨디션이 좋을 때 던지면 정말 라이징 패스트볼로 보일 만큼 수직 무브먼트가 좋았고, 커터의 경우 우타자를 상대로 던졌을 때 배트를 자주 박살냈다.

이제 겨우 6회가 시작한 상황에서 유현이 무려 여섯 개의 배트를 부러트리자, 대전 펠컨스 팬들은 기분 좋은 고민에 빠졌다.

앞으로는 유격수 앞 땅볼과 더불어 배트를 부러트릴 때마다 카운트를 해야 할지 말이다.

물론 유현을 상대하는 서울 나인테일즈 타자들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대놓고 투심 패스트볼과 커터만 던지는데도 공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구가 잘 되면 정타를 만들기 어려운 코스로 들어오는 것도 컸지만, 그나마 잘 맞았다 생각한 타구들도 힘에서 밀리며 내야를 벗어나는 꼴을 보기 힘들었다.

진짜로 내야에 벽이라도 세워놓은 것 같았다.

9이닝 2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

일곱 경기 연속 10탈삼진 이상을 기록하는 데엔 실패했지만, 유현은 앞으로 자신을 상대하게 될 모든 구단들에게 확실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 날.

유현이 기록한 투구 수는 고작 80구였다.

굳이 탈삼진을 잡으려 하지 않아도 강하다는 걸, 효율적으로 투구 수를 관리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경기였다.

덕분에 각 팀 전력분석원들은 미칠 노릇이었다.

삼진을 잡으려고 마음먹으면 10개가 기본이고, 대놓고 투심 패스트볼과 커터만 던져도 공략이 안 되는 투수를 어떻게 분석한단 말인가.

급기야는 유현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전력분석이 나오기까지 했다.

[안 되면 그냥 몸에 맞아라. 억지로 바짝 붙어서 맞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헛스윙 삼진을 당하거나 유격수 앞 땅볼을 내주거나, 미친 커터에 배트가 박살 나는 걸 보느니 차라리 맞아라. 죽도록 아프겠지만 1루 베이스를 밟을 수 있으니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 * *

대전 펠컨스는 5월까지 총 54경기를 치르며 40승 14패를 기록했다.

2위인 울산 알바트로스가 33승 19패로 제법 선전하고 있지만 대전 펠컨스의 기세가 워낙 매섭다 보니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지난 해.

서울 레오파즈가 전반기에 압도적인 1위를 내달릴 때만 해도, 대부분의 구단들은 향후 몇 년간 서울 레오파즈가 압도적인 성적을 만들어 낼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기대감을 모았던 서울 레오파즈는 투수진의 줄 부상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불안함을 노출했던 선발진에 구멍과 불펜의 과부하 문제가 한꺼번에 터지고 만 것이다.

그 와중에도 화수분 야구의 저력을 보여주며 29승 23패를 기록하며 3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지난 해 정규 시즌 1위 팀의 성적이라고 보기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서울 레오파즈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건 완벽한 투타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는 대전 펠컨스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세 명의 선수가 있었다.

선발투수로 전향한 뒤 11경기에서 10승 1패 방어율 1.21 112탈삼진을 기록하며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 엿 바꿔먹은 김정수, 벌크업과 타격폼 번경으로 5월까지 타율 3할 8푼 5리 21홈런 55타점을 기록하며 펄펄 날고 있는 최수환.

그리고 유현이었다.

유현은 5월까지 등판한 11경기에서 99이닝을 투구해 11승 무패 98탈삼진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페이스를 이어나갔다.

그의 방어율은 여전히 0이었다.

다승 1위, 방어율 1위, 탈삼진 2위, 피안타율 1위, WHIP 1위, 11경기를 치르는 동안 내준 사사구는 고작 5개.

메이저리그의 수준급 선발투수가 싱글A나 더블A를 초토화시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유현의 기세는 엄청났다.

매 경기.

유현은 상대하는 팀들은 대기록을 내주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득점이 아니라 안타를 쥐어짜고 삼진을 당하지 않는 걸 목표로 삼았다.

유현의 투구 스타일은 등판 당일의 컨디션에 따라 전혀 다른 투수라 생각될 만큼 변화했다.

포심 패스트볼과 스플리터가 좋으면 삼진 위주로, 투심 패스트볼과 커터가 좋으면 땅볼 위주의 피칭을 펼쳤다. 전부 다 좋으면 경기의 반으로 나눠 투구 패턴에 변화는 주는 식으로 경기 운용을 해나갔다.

그리고 이 방법은 항상 먹혔다.

유현이 무슨 짓을 해도, 심지어 한가운데로 찔러 넣어도 타자들은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결국 유현은 5월의 마지막 등판에서 지난 해 막바지부터 이어온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을 121이닝까지 늘렸다.

이쯤 되니 한 스포츠 채널에서는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 몇몇 해설위원들을 초대해 유현과 관련된 특집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미리 준비한 전력 분석 자료를 보여주고 해설위원들의 시즌 전망을 들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누가 유현 선수에게 그러더군요. 끔찍한 혼종이라고.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땅볼 유도 잘하고, 심심하면 타자들 배트 부러트리고, 마음먹고 피칭하면 한 경기 10탈삼진은 기본이죠. 이제는 모두가 인정할 겁니다. 유현 선수는 그냥 클래스가 다릅니다.”

“무려 121이닝 무실점입니다. 이건 말로 설명이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유현 선수가 KBO리그에 어울리지 않는 괴물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죠.”

“지난해보다 좋아진 제구력과 스플리터의 장착, 거기에 볼의 회전수 증가로 인한 구위와 무브먼트의 상승까지,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투수라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만약 지난 해 특별 규정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어땠을까요?”

“강태영 선수가 펄펄 나는 것처럼 유현 선수도 펄펄 날고 있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 메이저리그에서도 유현 선수처럼 투구하는 선수는 극소수입니다. 모두 사이영 상 경쟁을 하는 선수들이죠. 그 외에는 유현 선수보다 좋은 공을 던지는 선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다음 시즌에는 유현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관건은 몸값이 될 거 같은데요. 유현 선수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요?”

메이저리그에 정통한 한 해설위원은, 다른 해설위원의 질문을 받고서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일단 최고 입찰액을 기록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고, 몇몇 팀에서 최대 1억 달러를 배팅할 거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15승이 확실하게 가능하고, 적응만 잘하면 사이영 상을 노려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다는 게 현지의 평가입니다. 투수력 보강을 통해 월드 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몇몇 팀들이, 빅 마켓이 아님에도 현찰을 장전하고 있습니다.”

“어떤 팀들인가요?”

“유현 선수의 협상에 지장을 줄까봐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대부분의 팬들이 예상하는 빅 마켓 팀과 계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다저스나 양키스나 레드삭스 같은 팀들은 말씀하시는 거죠?”

“네. 해당 팀들도 경쟁을 하겠지만, 유현 선수를 더 적극적으로 원하는 팀들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팀들 중 한 곳과 계약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최대 1억 달러.

역대 포스팅 시스템 사상 최고 규모의 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인터넷이 후끈 달아올랐다. 특히나 메이저리그에 정통한 해설위원이 한 말이라서 더 신빙성이 있었다.

여환진과 강태영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계약 규모와 팀까지 정확하게 이야기한 해설위원이기에 팬들의 신뢰를 듬뿍 받았다.

-예상 못한 팀이 어디지?

-유현 콜로라도 가즈아!!!

-ㄴㄴ. 아무리 유현이라고 해도 쿠어스 필드는 좀 아닌 듯;;; 거긴 사이영 상 수상자들이 가도 경기가 안 풀리는 날에는 배팅볼 투수가 되는 동네라서 절대 안 됨.

-근데 투수력 보강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노릴 만한 가장 유력한 팀이 로키스인 건 맞잖아.

-ㅇㅇ맞음. 로키스한테 디그롬 같은 투수 있었으면 작년에 월드 시리즈 갔을 듯.

-의외로 투자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팀이기도 하고. 근데 투수들 데리고 왔다가 대부분 x망한 게 함정.

-어딜 가든 돈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나 진짜 진심으로 궁금한 건데, 왜 안 보낸 거임? 작년에 특별법으로 보냈으면 강태영이랑 같이 메이저리그 씹어 먹고 있을 텐데.

-그땐 유현이 이렇게 생태계를 파괴할 줄 몰랐겠지. 대전 펠컨스가 한국 시리즈 우승한 것도 배 아픈데 특혜 주기 싫었을 수도 있고.

-지금쯤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듯.

-이러다 진짜 올스타 브레이크 끝나고 특별 조항 만들어서 강제로 쫓아내는 거 아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그러는 편이 나을지도. 탈삼진도 잘 잡고 땅볼 유도도 잘하고, 가끔씩 대놓고 실투를 던져도 공략이 안 되는 투수가 있는 팀을 상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통이잖아. 포스트시즌 가면 더 무서워질 거고.

-작년에 유현이 어마어마하긴 했지.

-미래에서 왔습니다. 유현이 2승하고 4대 떡으로 대전 펠컨스가 한국 시리즈 우승합니다.

-나 알바트로스 팬인데 x발, 올해도 망했어. 어느 팀이 올라가건 상관없이 유현이 꺼져야 한국 시리즈에서 답이 나올 듯.

-레오파즈 팬으로서 공감한다. 우리도 작년에 그 기분 제대로 느꼈다. 유현 나오면 그냥 1승 내준다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함.

대부분의 야구팬들 생각은 비슷비슷했다.

유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대형 계약을 따냈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유현이 있는 한 한국 시리즈 우승은 힘들 수도 있다는 거였다.

최악의 경우 대전 펠컨스는 1차전과 4차전과 7차전 선발을 유현으로 내세워서 3승을 확실하게 챙기는 작전을 구사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대전 펠컨스의 다른 투수들이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상대하는 팀 입장에서는 도무지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다들 진심으로 빌 뿐이었다.

매 경기 타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저 끔찍한 혼종이 얼른 시즌을 끝마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말이다.

6월 1일 토요일.

11경기 연속 완봉승과 121이닝 연속 무실점, 9이닝 최다 탈삼진 신기록과 퍼펙트게임까지 달성하며 더 이상 보여줄 게 없을 것 같던 유현이, 서울 레오파즈와의 시즌 8차전에 등판했다.

그리고 경기는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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