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71화 (71/155)

71화 끔찍한 혼종 (1)

5월 2일까지.

팀별로 최대 29경기에서 최소 27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KBO리그의 판세는 크게 2강 5중 3약으로 분류됐다.

2강은 대전 펠컨스와 울산 알바트로스였다.

각각 22승 7패와 19승 9패로 서전하며 시즌 초이지만 중위권 팀들과의 격차를 차근차근 벌려나가는 중이었다.

그 밑으로는 서울 레오파즈, 인천 그리핀스, 광주 앨리펀스, 대구 재규어스, 창원 샤크스가 3위부터 7위를 형성하고 있었다.

7위인 창원 샤크스가 14승 14패로 정확히 5할을 사수하고 있고, 3위인 서울 레오파즈가 17승 12패일 정도로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다.

거기서 한 단계 내려오면 12승 16패의 부산 유니콘스, 11승 18패의 서울 나인테일즈, 9승 19패의 수원 매지션즈가 존재했다.

4월 28일까지 10승 16패였던 서울 나인테일즈는, 대전 펠컨스를 만나기 전 주중 3연전에서 위닝 시리즈를 거두고 싶었다.

하지만 경기는 마음 먹은 대로 풀리지 않았다.

첫 경기는 타선이 폭발하며 7대10으로 승리했지만, 이후 두 경기에서 내리 투수들이 무너지고 타선이 침묵하며 루징 시리즈를 당하고 말았다.

최근 대전 펠컨스의 기세는 매서웠다.

한 경기를 지더라도 남은 두 경기를 잡으며 절대 루징 시리즈를 내주지 않았다.

강팀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연패를 최소화하고, 웬만해서는 루징 시리즈를 내주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굳이 스윕을 할 필요도 없다.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모든 매치업에서 위닝 시리즈를 기록한다고 가정했을 때 96승 48패를 기록할 수 있으니까.

물론 말이야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아무리 강팀이라도 어느 순간 팀이 흔들리는 시점이 오기 마련이고, 지난 해 정규 시즌 우승 팀인 서울 레오파즈도 최대 7연패를 겪으며 잠시 주춤하던 시기가 있었으니까.

적어도 4월까지의 대전 펠컨스에게는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더 문제는…….

안용석 감독이 5월 4일 토요일에 치러질 시즌 7차전에서 세미 제이슨을 복귀시키기로 결정했다는 거였다.

이에 따라 선발 로테이션이 조절됐다.

유현-세미 제이슨-김정수-김용우-이재왕까지 5선발 라인업이 확정됐고, 기복 있는 모습을 보여준 윤기준은 잠시 2군에서 컨디션을 회복한 뒤 불펜으로 합류할 예정이었다.

유현과 세미 제이슨과 김정수를 상대해야 하는 서울 나인테일즈는 죽을 맛이었다.

안 그래도 팀의 분위기가 쳐져 있는 상황에서, 대전 펠컨스의 완성된 1~3선발을 상대하는 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최하위만큼은 절대로 안 됐다.

지난 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긴 했지만 잠시나마 1위를 했어도 한 동안 2위 싸움을 했던 팀이 시즌 초에 최하위를 기록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서울 나인테일즈의 전력이 부상으로 빠진 김형주와 양수안을 제외하면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는 거였다.

선수는 그대로인데 경기력이 엉망이 됐다.

선발투수들이 부진하거나 기복 있는 피칭을 보여주고, 이제 막 5월이 된 시점에서 블론 세이브가 4개나 됐다.

팀 타율은 3위로 나쁘지 않았다.

다만 득점권 타율 7위에 병살타 2위일 정도로 주요 상황에서의 내용이 썩 좋지 못했다.

한 마디로 투타 모두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렇다고 2군에서 올릴 만한 마땅한 선수도 없고, 트레이드를 통해 돌파구를 찾아내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하필이면 대전 펠컨스를 만나게 됐다.

위닝 시리즈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 서울 나인테일즈 코칭스태프는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

스윕만 당하지 말자. 어떻게든 1승이라도 챙겨보자. 잡을 수 있는 경기라고 판단되면 총력전을 펼치는 한이 있더라도 잡아내자.

지난 해 포스트시즌 경쟁을 했던 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안쓰러운 판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기도 했다.

한편…….

서울 나인테일즈 선수단의 간절함과 별개로, 루틴대로 훈련을 끝마친 유현은 라커룸에서 부모님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반찬 잘 먹고 있어요. 역시 우리 농장 오리고기가 제일 맛있는 거 같아요.”

[다 떨어지면 말해. 바로 보내줄 테니까.]

“한 달은 먹지 않을까요?”

[그럼 5월 말에 한 번 더 올라가면 되겠네. 네 아버지가 자주 직관가자고 난리야. 다음에는 동네 사람들 다 데리고 가겠다던데?]

“제가 구단에 말해서 표 구해드릴 테니까 미리 일정만 말해주세요. 어르신 분들 단체로 초대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부모님 다음은 알리사 메켄이었다.

“알리사, 전화했었네요? 훈련 끝나고 부모님이랑 통화하고 있었어요.”

-컨디션은 좀 어때요?

“당연히 최고죠. 알리사는요?”

-전 최악이에요. 벌써부터 시즌을 포기하고 탱킹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취재하면서도 힘이 안 나더라고요. 클럽 하우스 분위기도 어수선하고요.

“올스타 브레이크 전에 올라오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아. 망할 프런트. 겨울 내내 아무것도 안하고 손가락 쪽쪽 빨고 있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시애틀 매리너스는 2018시즌 와일드카드를 통해 챔피언십 시리즈에 올라가 3승을 선취하는 파격 행보를 보여줬으나, 리버스 스윕을 당하며 월드 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시작된 2019시즌.

클린업 트리오의 줄 부상으로 인한 공격력 약화로 인해 13승 20패로 썩 바람직하지 못한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탱킹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정도였고, 시애틀 매리너스 전담 기자인 알리사 메켄 입장에서는 연일 패배하는 팀을 취재하다 보니 기운이 쭉쭉 빠졌다.

알리사 메켄을 위로해준 뒤 유현은 통화를 끝마쳤다.

이후 오래된 MP3와 이어폰을 챙겨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땅의 정령이 유현의 정수리를 꾹꾹 누르며 말을 걸었다.

-오늘따라 여유가 넘치는군.

‘초조한 건 내가 아니라 나인테일즈일 테니까. 2주 만에 다시 만나는 건데 잘못하면 최하위로 떨어질 수도 있잖아. 조급해 할 게 뻔해서 그런지 오히려 마음이 편하네.’

-나인테일즈 상황이 말이 아니기는 하지.

‘대기록을 두 번 연속으로 내준 것도 못내 신경 쓰일 테고 말이야.’

-나인테일즈 라인업 봤어?

‘봤지. 커터 던지기 좋은 라인업이더라.’

유현을 상대로 한 서울 나인테일즈의 라인업은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우타자로 채워져 있었다.

* * *

유현을 상대로 우타자 일색 라인업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지난해부터 더러 나왔던 이야기다.

피안타율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우타자 상대로 더 많은 안타를 허용했기에, 대부분의 팀들은 유현을 상대로 우타자 일색 라인업을 꾸렸지만 대부분 별 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다.

올해는 작년과 분위기가 달랐다.

좌타자건 우타자건 크게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현장에서 자주 나왔다. 어차피 어떤 타자를 세워놔도 유현을 공략하지 못할 테니, 하던 대로 라인업을 짜는 게 속이 편하다나 뭐라나.

그럼에도 서울 나인테일즈가 우타자 일색 라인업을 꺼내든 건, 최근 들어 좌타자들의 타격감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좌완투수가 우타자에게 상대적으로 약하니, 득점은 하지 못할지언정 안타라도 만들어내서 지난 경기처럼 무기력하게 대기록을 내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존재했다.

다행히 서울 나인테일즈 코칭스태프의 바람은 1회 초부터 이뤄졌다.

유현이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한 것이다.

-유현 선수가 선두타자에게 내야 안타를 허용했습니다. 유현 선수가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맞은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안 납니다.

-바운드가 애매하고 타자주자가 워낙 빨리 달려서 3루수 송영인 선수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었던 타구입니다.

-서울 나인테일즈의 더그아웃이 분주해지고 있습니다. 선두타자가 출루한 만큼 어떻게든지 이번 이닝에 득점을 만들어내고 싶을 텐데요.

-일단은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으로 보내려고 할 텐데요. 문제는 유현 선수가 등판할 때 다른 팀에서도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으로 보내려고 시도했지만, 그 중 반 이상은 실패했다는 겁니다.

일단은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으로 보내서 병살타의 위험을 없애자.

그렇게 판단을 내린 서울 나인테일즈 코칭 스태프가 작전을 지시했다.

초구부터 과감한 도루.

2019시즌 13차례 도루를 시도해서 10번을 성공시킨 주자의 발을 믿었고, 보통 초구부터 과감한 도루를 시도하지 않기에 허를 찔렀지만…….

유현과 지석한 배터리는 초구부터 피치아웃을 시도했고, 주자가 2루 베이스에 4분의 3 정도 도착했을 즈음 이미 지석한의 송구가 유격수 하지성의 글러브를 파고든 상태였다.

“아웃!”

작전 지시로 인해 무사 1루가 순식간에 1아웃으로 바뀌고 말았다.

아무리 발이 빠른 주자라도 도루를 한다는 걸 간파당한 상황에서는 아웃을 당할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유현을 상대하는 대부분의 팀들은 주자가 나가면 어떻게든지 1점만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으로 작전을 지시한다. 지난해에도, 그리고 올해도 대부분의 팀들이 1점 쥐어짜는 야구를 추구했다.

초구에 도루?

흔히 나오지 않는 작전이긴 하지만 유현의 입장에서는 더러 겪은 작전이었다.

강공으로 득점을 만들어내기 어려우니 도루를 통해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으로 보낸 뒤 아웃카운트와 1점을 맞바꾸려고 얼마나 많은 팀들이 시도를 했던가.

게다가 유현은 3볼에 몰린 상황에서 과감하게 스트라이크 존으로 투구할 수 있는 선수다. 압도적인 구위를 안정적인 제구력이 뒷받침해주기에 볼카운트는 그에게 있어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그렇기에 초구부터 피치아웃을 통한 과감한 도루 견제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죠?

‘어째 나를 상대하는 팀들은 죄다 도루를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석한이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도루 저지율 4할이 넘는 건 아나 모르겠네.’

-너랑 할 때는 전부 다 잡았을 걸?

‘그래? 수훈선수 인터뷰하면 꼭 물어봐야겠다.’

선두타자를 내야 안타로 출루시킨 위기 이후, 유현에게 더 이상 위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사이 대전 펠컨스의 타자들은 1회 말부터 최수환과 제라드 캠프의 백투백 홈런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득점을 해 나갔다.

5회 말이 끝났을 때.

스코어는 0대8이 되어 있었다.

사실상 균형의 추가 완전히 기울어버린 상황에서, 서울 나인테일즈 타자들은 유현을 상대하며 안도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삼진은 많이 안 잡네.”

“1회 초에 안타를 만들어 낸 게 그나마 다행이야. 오늘 커터가 미쳐서 타구가 아예 내야를 벗어날 생각을 안 해.”

“형. 저 오늘 배트 2개 부러졌어요.”

“빨리 경기 좀 끝났으면 좋겠다. 저 미친 놈 상대하려니까 죽을 거 같아. 젠장. 작년에 특별 규정 이야기 나왔을 때 선수협에서 들고 일어나서 규정을 통과시켰어야 하는 건데.”

유현은 5회까지 41구를 투구했고, 그중 27구가 커터였다. 반면 스플리터는 고작 1개 던지면서 대놓고 땅볼 유도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삼진을 고작 하나 내주는 데에 그쳤지만 서울 나인테일즈 타자들이 느끼는 무기력감은 9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을 내줄 때 못지않게 컸다.

커터를 던지는 걸 뻔히 알고 배트를 휘둘러서 타구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문제는 배트 안쪽을 파고드는 커터로 인해 타구가 죄다 내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유격수 앞으로 타구가 날아갈 때마다, 펠컨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카운트가 울려 퍼지며 서울 나인테일즈 타자들을 더욱 위축시켰다.

6회 초.

빠각.

선두타자가 커터를 노리고 스윙했지만 배트가 부러지고 말았다.

붕 뜬 타구는 투수의 머리 위로 향했고, 유현을 대신해서 유격수 하지성이 내려와 깔끔하게 타구를 잡아냈다.

-유현 선수가 1구로 아웃카운트를 손쉽게 잡아냈습니다.

-타자의 배트가 또다시 박살 납니다. 이걸로 유현 선수는 오늘만 6개 째 배트를 부러트렸습니다. 유격수 앞 땅볼도 마찬가지로 6번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의 투구 콘셉트는 그라운드 볼러 겸 배트 브레이커인 것 같습니다.

-끔찍한 혼종이로군요.

-하하하. 네. 서울 나인테일즈 입장에서는 스플리터와 하이 패스트볼로 삼진을 잡던 모습보다, 지금의 유현 선수가 더 끔찍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타구가 계속해서 내야를 벗어나지 못할 때 타자가 느끼는 무기력함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거든요.

오늘 경기에서 타자의 배트를 여섯 번째 부러트렸을 때.

유현이 땅의 정령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한 경기에서 배트를 가장 많이 박살 냈던 게 총 몇 번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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