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61화 (61/155)

61화 스프링캠프 (5)

당초 세이부 라이온스 감독은 리그의 수준 차이가 있음에도 5대4로 신승을 거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재경기를 요청했다. 다시 맞붙을 때는 신승이 아닌 압승을 거둘 생각으로 말이다.

문제는 전날 경기 이후 이를 악문 게 세이부 라이온스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대전 펠컨스 타자들 또한 이를 악물었다.

최수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맥을 추지 못했고, 불펜투수들에게 부담을 줘서 역전의 빌미를 제공한 게 못내 미안했다.

다시 한 번 주어진 기회에선 더 많은 득점을 만들어 투수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싶었다.

다행히 대전 펠컨스 타자들의 염원은 이뤄졌다.

5회 초까지만 9득점을 만들어 내면서 투수들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만들어 준 것이다.

최수환-제라드 캠프-펠릭스 곤잘레스로 이어지는 중심 타석이 각각 2안타에, 선발 타자 전원이 안타를 기록할 정도로 타자들이 분전해줬다.

아무리 의미 부여를 한다고 해도 승부의 세계에서 패배는 결국 패배일 뿐이다.

연습경기라고는 하지만 한 경기를 내준 상황에서, 안용석 감독은 두 번째 경기마저 내주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김정수의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지난해 첫 선발 등판에서 호투한 이후 선발진에 안착하며 포텐셜이 폭발한 중고 신인 김용우였다.

김용우는 좌완 투수지만 파이어볼러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투수였다.

최고 구속이 148km까지 나오긴 하지만 평균 구속은 141km 정도에서 머물렀고, 구위로 찍어 누르기보단 안정적인 제구를 바탕으로 타자와 승부하는 스타일의 투수였다.

이날 경기에서 김용우의 최고 구속은 142km, 평균 구속은 137km 정도에서 머물렀다.

같은 좌완이면서 유현이나 김정수보다 구속이 느린 김용우를 상대하게 된 세이부 라이온스 타자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김용우를 비롯해서 이후에 나오는 모든 투수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득점을 만들어 내며 역전을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딱! 딱! 딱!

김용우의 공을 쳐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김용우가 5회와 6회, 두 이닝을 삼진 하나 없이 삼자범퇴로 막아냈다는 것이다.

세이부 라이온스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스윙을 했지만 죄다 범타가 되면서 안타로 이어지지 못한 채 다시 한 번 타선이 틀어 막혔다.

7회 초.

공수 교대를 준비하던 세이부 라이온스 타자들이 굳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확실히 좀…….”

“변화구야 그렇다 치더라도, 패스트볼이 마지막에 살짝 휘어져 들어오는 것 같던데. 잘못 느낀 거 아니지?”

“제대로 본 거 맞아. 투심인 것 같더라.”

“투심?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없던 구종이잖아.”

“저 자식들은 왜 우리 상대로 자꾸 스카우팅 리포트에 없는 구종을 던지고 지랄이야? 심지어 쓸데없이 완벽하게 구사하잖아. 미묘하게 히팅 포인트를 빗겨 나가서 정타가 안 나오고 있어.”

“하. 이대로 지면 쪽팔려서 안 되는데…….”

김용우가 땅볼을 만든 비결은 바로 유현으로부터 전수받은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다만 유현의 투심 패스트볼과는 성질이 달랐다.

유현의 투심 패스트볼은 볼 끝의 변화가 심한 반면, 김용우의 투심 패스트볼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면서 살짝만 변화하며 타자들의 히팅 포인트를 흐트러트리는 정도에서 그쳤다.

문제는 포심 패스트볼의 최고 구속이 141km를 기록한 상황에서, 투심 패스트볼의 구속이 142km를 기록했다는 데에 있다.

그랬다.

김용우는 특이하게도 투심 패스트볼을 포심 패스트볼보다 빠르게 구사하고 있었다.

거기에 지난 시즌 선발로 안착하면서 보여 준 안정적인 제구력에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까지 섞어 던지니 김정수보다 구속이 안 나옴에도 수월하게 세이부 라이온스 타자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7회 초에 대전 펠컨스 타선이 다시 한 번 폭발하면서 3득점을 추가했다.

스코어는 어느새 12대1.

경기를 지켜보던 유현은 어느새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느긋하게 감상 모드로 접어들었다.

-캬아. 오늘 주모 바쁘겠네.

‘정수도 정수지만 용우가 생각보다 잘해 주네. 투심 패스트볼 배워서 쏠쏠하게 써먹는데?’

-지금처럼 내가 전수한 구종이 대전 펠컨스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투수들에게도 얼마든지 가르쳐 줘도 된다. 아. 물론 그래 봐야 원조인 너보다는 잘 구사하지 못하겠지만.

‘뭐…… 나보다 잘 구사하면 다들 메이저리그 진출하겠지.’

김정수와 김용우.

유현으로부터 스프링캠프에 그립을 배운 여러 선수 중 유독 두 선수만이 장착에 성공한 건, 자신만의 스타일로 구종을 변화시킨 덕분이었다.

유현과 달리 커터를 슬라이더와의 중간 형태로 변화시킨 김정수, 무브먼트를 줄인 대신 구속을 올려서 포심 패스트볼과의 구분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 김용우까지.

유현은 후배들의 활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두 선수가 선발로서 계속 맹활약을 해 준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이 메이저리그로 떠난 뒤에도 대전 펠컨스가 계속해서 강팀으로 남아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결국 대전 펠컨스는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두 번째 연습경기에서 13대2로 완승을 거뒀다.

전날 경기에서 5대4 신승을 거두며 구겼던 자존심을 피려 했던 세이부 라이온스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 팀을 무시한 대가로 11점 차 대패를 맛봐야 했다.

세이부 라이온스 입장에서 봤을 때는 연이틀 자존심을 구긴 경기였던 반면, 대전 펠컨스 입장에서는 얻은 게 많은 경기였다.

가장 큰 수확은 선발진을 구축해 줘야 할 좌완 투수 3인방인 유현과 김정수와 김용우의 새 무기가 어느 정도로 통할지 확인했다는 것이다.

스플리터, 커터, 그리고 투심 패스트볼.

신무기는 세이부 라이온스 타자들에게도 제대로 통했으니, 일단 스프링캠프에서의 구종 장착 시도는 성공적이라고 봐야 했다.

게다가 선수단 전체의 자신감이 올라갔다.

첫 연습경기 때도 자신감을 얻었는데, 13대2로 완승을 걷었으니 자신감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반면 세이부 라이온스는 일부 일본 언론을 통해 나라 망신을 시켰다, 재팬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반납해야 한다는 등 다소 자극적인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1.5군도 아니고 우승 멤버를 내보내고 패배했기에 후유증이 상당한 걸로 보였다.

재팬시리즈 우승 팀을 상대로 연습경기에서 1승 1패를 거두는 성과를 냈음에도 안용석 감독은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라고?”

“2019시즌 통합 우승입니다!”

“아직 첫걸음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준비 단계에서 잘했다고 너무 들뜨지 말도록. 시즌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일희일비할 필요 없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다 같이 들뜨자. 오늘은 삼겹살 파티다. 재팬시리즈 우승 팀을 이긴 너희가 진심으로 자랑스럽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안용석 감독은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아는 감독이었다.

선수단이 자만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심어 주면서도, 한식이 고픈 선수들에게 사비를 털어 삼겹살 파티를 열면서 격려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연습경기 결과와는 상관없이 대전 펠컨스 선수단은 자만하지 않았다.

훈련을 통해 완벽하게 몸 상태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며, 이후에 진행된 KBO리그 팀들과의 연습경기에서는 실전 감각을 계속해서 점검했다.

스프링캠프 연습경기 내내 보여준 대전 펠컨스의 기세는 매서웠다.

투수들의 경우 아직 컨디션이 덜 올라온 선수들도 있어 기복이 있긴 했지만, 타자들의 경우 상대하는 팀 마운드를 계속해서 초토화시키며 지난해 타격 지표 하위권 팀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맹활약을 이어 나갔다.

덕분에 대전 펠컨스는 연습경기에서 연전연승을 이어나갔다.

스프링캠프 막바지.

대전 펠컨스에 희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부상으로 인해 스프링캠프에 참여하지 못했던 세미 제이슨이 마침내 합류한 것이다.

5월 초에나 복귀가 가능할 걸로 보였지만, 부상을 털어내고 팀에 합류한 것만으로도 대전 펠컨스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세미 제이슨의 합류로 대전 펠컨스는 은퇴한 차영석, FA계약을 하지 않은 몇몇 선수를 제외한 한국시리즈 우승 라인업을 갖춘 채로 시범 경기를 맞이하게 됐다.

* * *

시범 경기.

페넌트레이스가 시작하기 전, 10개 구단의 전력을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무대.

도합 9경기가 책정된 시범 경기에서 야구 팬들이 관심을 가진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였다.

대전 펠컨스가 연습경기에서의 파괴적인 경기력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 것이냐, 지난해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했지만 시즌 후 일부 선수들의 수술로 전력이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서울 레오파즈가 얼마만큼 선전할 것이냐.

일단 대전 펠컨스는 선전했다.

서울 레오파즈와의 마지막 경기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8전 전승을 거뒀으니까.

반면 서울 레오파즈는 투수진이 붕괴된 상황에서 주축 타자들마저도 아직 컨디션이 덜 올라온 모습을 보여 주며 4승 4패에 머물렀다.

대전 펠컨스의 선전이 고무적인 이유는 유현과 세미 제이슨 원투펀치가 단 한 경기에도 등판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승을 거뒀다는 데에 있었다.

서울 레오파즈와의 마지막 시범 경기.

유현과 함께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땅의 정령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하아암. 별로 재미가 없군.

‘내가 등판하지 않아서?’

-짜증나지만 맞는 말이라 아니라 할 수가 없군. 네놈이 시범 경기에서 한 경기도 등판하지 않으니까 흥이 나질 않잖아!

‘감독님이 등판하지 말라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에이스면 감독님한테 팀을 위해 등판하고 싶다면서 어필 정도는 해야지!

‘시범 경기에서 어필하는 미친 에이스도 있냐. 이따가 등판할 건데 왜 그렇게 보채?

-흥. 네놈이 타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걸 보면 속이 뻥 뚫린단 말이야.

‘네네. 이따가 뻥 뚫어 드리겠습니다.’

유현이 등판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스프링캠프에서 몸 상태를 충분히 체크했으니, 시범 경기에 등판하지 않더라도 개막전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코칭스태프가 판단한 것이다.

투수의 어깨는 소모품이다.

지난해 선발로 전향한 이후 많은 이닝을 던진 유현을 굳이 개막 전부터 무리시킬 이유가 없었다. 스프링캠프 당시에도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를 제외하면 등판 때마다 20구로 투구 수를 조절했고, 충분히 컨디션이 올라왔다고 판단되니 시범 경기에는 등판을 시키지 않았다.

물론 아예 등판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서울 레오파즈의 마지막 시범 경기에서 선발투수 김용우가 60구 이후 실점 위기에 몰리면 등판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6회 초.

4대1로 대전 펠컨스가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김용우가 선두타자에게 2루타를 허용했다.

유현이 송현수 투수코치를 바라보았다.

끄덕.

사인이 떨어지자 유현은 지체하지 않고 불펜으로 가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그 모습에 펠컨스타디움을 찾은 5천 명의 관중들이 목청껏 환호성을 내질렀다.

시범 경기 내내 일절 등판을 하지 않아 부상 의혹까지 나돌았던 유현이 불펜으로 향했다는 것만으로도 대전 펠컨스 팬들에게는 큰 의미였다.

2루타를 허용한 이후 김용우는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사용해 헛스윙 삼진을 유도하며 아웃카운트 하나를 잘 잡았지만, 다음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며 1사 1․2루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그 순간.

송현수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불펜에서는 몸을 풀고 있던 유현이 뛰어나와, 홈 팬들의 열렬한 환호성을 들으며 마운드로 향했다.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고생했어. 아이싱 하면서 편하게 쉬어.”

팡! 팡! 팡!

유현은 연습 투구를 5구 정도로 끊은 뒤 포수 지석한과 짧게 대화를 나눴다.

“클래식하게 가자.”

“네. 클래식하게 리드하겠습니다.”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그리 긴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볼 배합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나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왜냐면 유현은…….

팡!

“스트라이크!”

초구로 몸쪽 꽉 찬 높은 코스에 156km짜리 포심 패스트볼을 찔러 놓을 정도로 시즌을 치를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상태였으니까.

‘아무리 전력 이탈이 심해도 레오파즈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확률이 높겠지?’

-그렇다고 봐야지.

‘그럼 개막 전부터 우릴 만나면 오줌부터 지릴 만큼 확실하게 기선 제압을 해 줘야겠네.’

유현이 미소를 지었다.

클래식한 볼 배합.

유현은 자신이 2019시즌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서울 레오파즈 타자들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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