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60화 (60/155)

60화 스프링캠프 (4)

연이틀 펼쳐지게 된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두 번째 연습 경기에서, 안용석 감독은 김정수를 선발투수로 예고했다.

한국 시리즈가 끝난 이후.

안용석 감독은 팀의 미래를 위해, 10년 이상을 보고서 김정수에게 선발 전환을 제안했다.

대전 펠컨스 팬들이 거는 기대감은 엄청났다.

데뷔 시즌부터 155km의 강속구와 여환진을 연상시키는 예술적인 서클 체인지업을 던지는 이 루키가, 장차 선발투수로 전향해서 팀의 에이스가 되어 주기를 바랐다.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안용석 감독은 포심 패스트볼과 서클 체인지업 투 피치만으로도 김정수가 선발 투수로서 성공할 거라 봤지만, 김정수는 한 가지 구종 정도는 더 장착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래서 스프링캠프 내내 선배들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신에게 맞는 구종을 찾으려 노력했다.

‘정수가 서드 피치를 장착했을까?’

-모르지. 전에 가르쳐 준 투심은 보여주기 용으로 쓰는 게 한계여서 포기한 것 같던데, 커터는 다를 수도 있으니까.

‘배워서 잘 써먹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중요한 건 구종을 자기에게 맞게 변형해서 습득하는 거야.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준 구종들은, 너에게 특화된 것들이니까. 다른 선수들이 따라한다고 해서 같은 위력이 날 순 없어.

‘그건 그렇지.’

모든 선수의 투구 폼과 피칭 스타일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같은 구종을 가르쳐 주더라도 그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새로운 구종을 장착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선수의 것이었던 구종을 자신의 것으로 어떻게 변화시켜 받아들이느냐다.

이른바 야구 지능이 필요한 과정이다.

그리고 유현은 김정수가 그리 어렵지 않게 새 구종을 장착할 거라 믿었다.

고교 시절 세컨드 피치였던 커브를 버리고 프로에 와서 삽시간에 서클 체인지업을 장착한 만큼, 손에 맞는 구종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완성도를 높이는 건 순식간일 거라고 본 것이다.

전날 경기와 마찬가지로 선취 득점은 대전 펠컨스에서 나왔다.

1회 초 2아웃에서 최수환이 2루타를 친 뒤, 전날 경기에서 무안타로 침묵했던 4번 타자 제라드 캠프가 2루타를 터트린 것이다.

스코어는 1대0.

팀이 선취득점을 올려 준 상황에서 김정수가 긴장감 가득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보더라인 피칭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긴장 때문인지 제구가 되지 않아 조금씩 존에서 벗어났다. 결국 첫 타자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고 말았다.

2번 타자를 상대로는 포심 패스트볼을 결정구로 헛스윙 삼진을, 3번 타자에게는 서클 체인지업을 던져 땅볼을 유도했지만 그사이 1루 주자가 2루 베이스를 밟았다.

2사 2루 상황.

전날 경기에서 유현에게 꽁꽁 막히긴 했지만 이후 분노의 3점 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일조한 마쓰이 아이토가 타석에 들어섰다.

‘포심 패스트볼도 좋고 서클 체인지업도 좋지만 어제 그 녀석에 비한다면야…….’

김정수는 분명 좋은 공을 던진다.

데뷔 시즌에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셋업맨으로서 맹활약한 것만 보더라도 그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문제는 공이 좋지만 투 피치라는 것.

수싸움에서 밀리지만 않는다면 안타를 만들어 내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정수가 초구로 선택한 건 마쓰이 아이토의 약점으로 알려진 몸 쪽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딱!

마쓰이 아이토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거침없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타이밍이 늦긴 했지만 맞추는 데에는 성공했고, 반강제로 끌어당겨서 어렵사리 파울 타구를 만들어 냈다.

‘위력적이네. 하지만 역시 그놈보다는 아니야.’

전날 유현을 상대했기 때문일까?

최고 구속 148km를 기록할 정도로 페이스를 잘 끌어올리고 있는 김정수를 상대하면서 마쓰이 아이토는 위압감을 느끼지 못했다.

몸 쪽으로 파고든 공은 유현처럼 존 끝자락에 바짝 붙지도 않았고, 구위가 좋긴 하지만 라이징 무브먼트를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게다가 파울이 되긴 했지만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 다시 같은 코스로 들어온다면 장타는 아니더라도 안타는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2구는 서클 체인지업이었다.

예상하고 배트를 휘둘렀음에도 또다시 파울 타구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공이 예상한 것보다 더 가라앉으면서 정타가 되지 않았다.

‘서클 체인지업은 죽이네. 시즌 중에 포심이 155km를 찍었다고 했나? 저러니까 투 피치로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

마쓰이 아이토는 김정수를 인정했다.

최고 구속 155km에 달하는 묵직한 포심 패스트볼과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건 물론이거니와 떨어지는 무브먼트까지 보이는 서클 체인지업이 위력적이라 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농락을 당하는 건 유현 하나로도 충분했다.

3구째.

존 안으로 들어오는 공을 모두 쳐내겠다는 생각으로 마쓰이 아이토가 거침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딱!

일단 공은 배트에 맞았다.

문제는 히팅 포인트가 아니라 배트 안쪽을 맞으면서 유격수 방향으로 힘없이 굴러가는 내야 땅볼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마쓰이 아이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유현도 그렇고 김정수도 그렇고, 스카우팅 리포트에 존재하지 않은 공을 던졌다. 예상하지 못한 구종에 허무하게 당하고 말았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간 마쓰이 아이토가 인상을 쓴 채 생각에 잠겼다. 김정수가 던진 구종을 어디서 많이 상대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슬라이더? 아니…… 커터인가? 어제 그놈이 던진 구종이랑 비슷한데…….’

* * *

안용석 감독으로부터 2019시즌에 선발 경쟁을 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들은 후, 김정수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프 시즌 내내 열심히 훈련하고 스프링캠프에서는 새 구종을 습득하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선배들로부터 다양한 그립을 전수받았지만 손에 맞는 그립이 적었다. 설사 손에 맞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구위가 나오지 않았고, 구위가 받쳐 주면 제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차라리 지난 시즌 유현으로부터 살짝 전수받았던 투심 패스트볼을 더 파고들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그만뒀다.

무브먼트는 나쁘지 않았지만 유현처럼 적은 구속 차이를 유지하지 못했고, 가끔씩 보여 주는 정도면 몰라도 결정구로 사용하기에는 부족한 구종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중.

김정수는 마침내 자신에게 맞는 구종을 찾았다.

변형 커터.

유현으로부터 전수받은 커터 그립을 살짝 바꿨다. 패스트볼과 같은 폼으로 던지지만 슬라이더와 커터의 중간 정도를 생각하고 던졌다.

그리고 그 효과는 뛰어났다.

아직 컨디션이 덜 올라온 상태임에도 구속이 141km까지 기록됐다. 베스트 컨디션이라고 감안했을 때 140km 후반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고, 커터보다 더 휘어지는 무브먼트를 보이니 결정구로 사용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제구 또한 수월했다.

김정수는 자체 청백전에서만 커터를 몇 번 테스트했을 뿐, 연습 경기에서는 일절 던지지 않았다. 개막 이후 중요한 상황에서 비장의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 꽁꽁 감춰 뒀다.

원래는 개막 전까지 절대로 외부에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연습 경기가 추가로 한 경기 더 잡히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자신의 공이 일본 타자들에게도 통하는지, 재팬시리즈 우승 팀을 상대로 얼마나 호투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1회 말 실점 위기를 넘긴 김정수는, 2회 말 세 타자를 모두 삼진을 돌려세웠다. 결정구는 각각 서클 체인지업과 포심 패스트볼과 커터였다.

-김정수 저놈, 생각보다 네 커터를 잘 훔쳐 갔는데? 세미 제이슨이 투심을 습득한 것 이상의 성과야. 저 정도면 그냥 자기 거라고 봐야지.

‘그러게. 슬라이더와 커터의 중간 개념으로 생각하고 습득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구종을 습득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자기 스타일로 바꾸는 건데, 김정수는 그걸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에 해냈어. 그만큼 야구 지능이 뛰어난 거지. 누구와 다르게.

‘네네. 저는 땅의 정령님이 없었으면 지금쯤 은퇴하고 오리나 키우고 있을 겁니다요.’

-흥. 알면 됐다.

‘진짜 계약만 아니었음 오늘 저녁 굶길 텐데.’

-응. 그럼 넌 내일부터 배팅볼 투수.

유현과 김정수는 좌완 파이어볼러는 공통점이 있지만, 피칭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유현이 철저하게 계획한 대로 투구하면서 상대 타자의 심리에 따라 영리하게 볼 배합을 바꾸는 스타일이라면, 김정수는 기세가 오르면 타자를 윽박지르며 투구하는 스타일이다.

이어진 3회 말, 김정수는 기세가 오른 자신이 어떻게 투구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몸 쪽으로 과감하게 승부하면서 커터와 서클 체인지업을 적절하게 섞어 던졌지만, 정작 결정구는 모두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아자!”

2회 말에 이어 3회 말도 세 타자 연속 탈삼진으로 마무리한 김정수는, 유현의 전매특허인 어퍼컷 세레모니를 하며 기쁨을 표출했다.

전날에 이어 또다시 선발 투수를 공략하지 못하며 세레모니까지 보게 된 세이부 라이온스 타자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음. 난 어퍼컷 세레모니는 가르친 적 없는데.’

-김정수 저놈에게도 광역 어그로를 끌 자질이 보이는군. 타자들 열 받게 하는 데에 재능이 있어. 네 후계자가 될 것 같은데?

‘야. 난 그래도 마운드 위에서 소리는 안 지르잖아.’

-세레모니는 네 쪽이 더 열 받을걸?

‘열 받으면 홈런 치고 배트 플립 시원하게 하라 해. 난 배트를 돔구장 천장까지 던져 버려도 뭐라고 할 생각 없으니까.’

-세레모니를 안 할 생각은 없고?

‘응. 없어. 내가 안 한다고 타자들이 배트 플립 안 할 건 아니잖아?’

유현과 땅의 정령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김정수는 4회 말에도 폭주했다.

2번 타자부터 시작해서 4번 타자 마쓰이 아이토까지,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아홉 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한 것이다.

마쓰이 아이토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하이 패스트볼의 구속은 150km까지 나왔고, 원래부터 구위가 좋긴 했지만 살짝 라이징 무브먼트를 보일 정도로 공의 회전이 좋았다.

-야. 나 쟤 좀 무서워.

‘……나도. 기분파가 흥이 오르면 홈런 한 방 때리기 전까지는 절대 못 막지.’

* * *

무려 9타자 연속 탈삼진을 잡아내며 압도적인 피칭을 선보인 김정수가 첫 실점을 허용한 건 5회 말이었다.

선두 타자로 나온 5번 타자 오다 히데키를 상대로 초구로 던진 몸 쪽 포심 패스트볼이 살짝 가운데로 몰리며 홈런을 허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직후 김정수는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4이닝 1피안타 1사사구 10탈삼진 1실점.

2018시즌 재팬시리즈 우승 팀을 상대로 보여 준 압도적인 피칭에, 김정수는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마자 선수들의 격렬한 칭찬을 받았다.

홈런 하나를 맞았지만 삼진을 10개나 잡았다. 연습 경기 전부터 콧대가 잔뜩 높아져 있던 재팬시리즈 우승 팀 타자들을 상대로 말이다.

유현도 그렇고 김정수도 그렇고, 선발투수들이 압도를 해주니 더그아웃 분위기가 확 살아났다.

분위기가 살아난 건 더그아웃뿐만이 아니었다.

인터넷 중계창 또한 유현과 김정수의 연이은 호투에 채팅이 폭발하고 있었다.

[다시는 KBO리그를 무시하지 마라. 2선발이 부상으로 없는 상황에서도 재팬시리즈 우승 팀을 상대로 9타자 연속 탈삼진 정도는 가뿐하게 잡는 게 한국시리즈 우승 팀이니까.]

[연습 경기 전에 쉽게 이길 거라고 오지게 입 털더니, 선발투수들한테 연달아 털리는 거 보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심지어 어제는 이기기라도 했지 오늘은 개 털릴 각인데?]

[한 경기 더 하자 했다가 개망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습 경기는 콜드 게임 없냐? 이 정도면 콜드 게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근데 펠컨스 진짜 무서운 듯. 김정수가 슬라이더인지 커터인지 애매한 저 구종을 완전히 장착하면, 선발진 너무 탄탄한 거 아냐? 다른 팀들이 상대하기 힘들겠는데?]

[몰라. 나 레오파즈 팬인데 일단 세이부 라이온스 개 터는 거 보면서 즐기자. 페넌트레이스는 나중에 가서 생각하고. 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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