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57화 (57/155)

57화 스프링캠프 (1)

스프링캠프를 떠나기 전.

대전 펠컨스는 선수단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내부 FA 선수들과의 계약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내부 FA 선수들과 어느 정도의 규모로 FA 계약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또 거듭했다.

그리고 12월 말.

대전 펠컨스는 내부 FA 선수들에게 계약을 제시했다.

협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FA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그만큼 거품 또한 커지고 있었다. 대형 FA 선수가 아님에도 비정상적으로 높은 몸값을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대전 펠컨스는 선수들에게 끌려다닐 생각이 없었다.

선수 가치에 맞는 합당한 수준의 계약을 제시했고, 옵션 정도를 조정할 순 있지만 큰 틀에서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계약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결과, 다섯 명의 내부 FA 중 송영인과 윤기준만이 대전 펠컨스와 계약을 했다.

송영인은 4년 32억 원에 옵션 포함 총 38억 원, 윤기준은 4년 24억 원에 옵션 포함 30억 원의 규모였다.

계약을 하지 않은 세 선수 중에서 의외인 건 중견수 이영우였다.

다른 두 선수가 2018시즌 팀의 성적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은 반면, 이영우는 부상과 긴 슬럼프가 있긴 했어도 타율 3할 1푼 1리를 기록하며 대전 펠컨스의 정규 시즌 2위와 한국시리즈 진출에 나름 기여했었으니까.

대전 펠컨스가 이영우와 계약하지 않은 건 둘 사이의 계약 규모의 차이가 커서였다.

프런트와 코칭스태프는 시즌 내내 부상으로 고생한 데다 타율에 비해 세부 스탯이 좋지 않았던 이영우를 두고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다 판단했고, 아직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 선수 측과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주전 중견수와 좌익수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대전 펠컨스 코칭스태프는 흔들리지 않았다.

시즌이 끝난 직후부터 강태영와 이영우의 공백을 예상했고, 마무리캠프 때부터 새 외야수 발굴을 위해 노력했기에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일단 외국인 타자 제라드 캠프와 펠릭스 곤잘레스가 외야 두 자리를 맡아 줄 터였다. 남은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마무리 캠프 때부터 젊은 선수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그리고 대전 펠컨스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의 경쟁에 불을 붙였다.

체력 테스트에서 떨어진 선수를 스프링캠프에 데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중도 합류 또한 없이, 체력 테스트에서 떨어진다면 대만 2군 캠프에서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고 확실하게 못을 막았다. 주전이건 비주전이건 예외 없이 체력 테스트에서 낙오되면 스프링캠프에 참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유현은…….

당당하게 체력 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했다.

-허구한 날 데이트만 해서 걱정했는데 1위라니, 다른 선수들이 관리를 못한 건지 네가 잘한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잘 한 거지. 알리사랑 할 거 다 하면서도 꾸준히 훈련했잖아.’

-너, 작년에는 몇 위나 했어?

‘3등.’

-오. 생각보다 잘 했는데? 날 만났을 때 체력이 너무 저질이라서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기본 체력이 좀 되나 보네?

‘저질 맞아. 뒤에서 3등 했거든.’

-……쓰레기였네. 넌 진짜 나한테 감사하게 생각해라.

‘매일매일 음식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잖아.’

유현은 땅의 정령을 만난 이후, 땅의 정령이 허락한 날이 아니라면 단 하루도 훈련을 빼먹지 않았다. 오프 시즌에도 꾸준히 훈련에 임했고, 심지어는 크리스마스에 알리사와 호텔에서 알콩달콩 시간을 보낼 때도, 시간이 나면 호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은 하고 왔다.

그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를 한 덕분에, 지난 해 체력 테스트 때는 뒤에서 3등을 했지만 이번에는 당당하게 앞에서 1등을 차지할 수 있었다.

유현은 땅의 정령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땅의 정령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자신의 야구 인생이 지금과 많이 달랐을 거라는 걸 유현은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2018시즌을 끝으로 미련 없이 은퇴를 하고 고향에 내려가 오리를 키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땅의 정령을 만났기에, 땅의 정령의 도움을 받은 지난해 정규 시즌 MVP를 수상한 유현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유현은 모처럼 땅의 정령과 불화산 치킨을 원 없이 먹었다. 스프링캠프를 떠나기 전까지 땅의 정령이 먹고 싶은 걸 잔뜩 사주는 걸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애리조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시즌의 태동을 알리는 스프링캠프 참여를 위해 말이다.

* * *

대전 펠컨스에서 강태영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걸 제외한 채 성적만 놓고 보더라도, KBO리그에서 활동한 8년 동안 도합 53.4의 WAR로 리그 1위를 기록할 만큼 맹활약을 했으니까.

강태영 한 명이 빠지는 것만으로도 대전 펠컨스가 전력의 3분의 1을 잃는다고 했던 한 해설위원의 발언은 허언이 아니었다. 일단 강태영의 유무만으로도 타선의 무게감이 확 달라지는 데다, 강태영의 존재감을 대체할 만한 선수를 발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물론.

대전 펠컨스 코칭스태프는 강태영이 없더라도 2019시즌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강태영의 빈자리를 완전히 채울 순 없지만, 어느 정도 부족함을 보충할 방법을 마무리캠프 때부터 차분히 준비해 나갔다.

강태영의 자리를 차지할 외야수 후보는 세 명이었다.

그 세 명의 선수들이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내내 경쟁을 할 예정이었다. 심각한 부진이나 사생활 문제가 터지지 않는 한, 마지막에 살아남는 선수를 붙박이 주전으로 기용하며 경험을 쌓게 해 줄 생각이었다.

사실 강태영이 없더라도 대전 펠컨스 타선이 약한 편은 아니다.

지난해 30-30클럽에 가입하며 맹활약을 한 제라드 캠프, 6월에 합류했음에도 25홈런을 기록하며 맹타를 휘두른 펠릭스 곤잘레스, 트레이드 이후 잠재력이 만개한 최수환, 여전히 3할에 15홈런은 거뜬한 김태성 등, 강태영이 없더라도 타선의 무게감 자체는 수준급이라고 봐야 한다.

타선이 지난해 6월 이전까지의 부진한 모습만 보여 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투수들이 지난해와 같은 활약만 보여 줄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대권을 노려볼 수 있다는 게 내부의 판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건 역시 유현과 세미 제이슨 원투 펀치였다.

지난해 각각 20승과 21승을 기록한 두 투수가 제 몫을 해주기만 한다면 포스트시즌 진출은 거뜬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세미 제이슨, 발가락 부상으로 스프링캠프 합류 늦춰져]

[안용석 감독, “세미 제이슨 2월 중순에야 스프링캠프 합류 가능할 것”]

[세미 제이슨, “팀에 미안하다. 딸이랑 놀아 주다 다칠 줄 몰랐다. 면목이 없다” 밝혀.]

세미 제이슨이 발가락 부상으로 인해 2월 중순에야 스프링캠프 합류가 가능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계획이 살짝 꼬였다.

대전 펠컨스 코칭스태프는 다른 선수들보다 한 달 늦게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세미 제이슨이 시즌 초에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마운드에 오르기 힘들 거라고 봤다.

그래서일까?

유현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세미 제이슨이 시즌 초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기 힘들어 보이는 상황에서, 유현이라 도 베스트 컨디션이길 바랐다.

지난해와는 입지가 180도 달라졌다.

지난해에는 결국 경쟁에서 밀려 대만으로 가야 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갑작스런 부상을 입는 게 아니라면 대만에 갈 일이 없을 터였다.

‘휘유. 기대감이 엄청나네.’

-기대감이 큰 게 당연하지. 세미 제이슨이 황당하게 부상을 입으면서, 시즌 초에 네가 제 몫을 해줘야 계산대로 팀을 운용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페이스대로면 별문제 없지 않을까?’

-살짝 늦추는 게 좋을 거 같아. 내가 볼 땐 오버 페이스야.

‘오케이. 조절할게.’

유현은 코칭스태프의 기대감을 배신하지 않았다.

보통 스프링캠프 초반에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끌어 올리는 데에 집중하다, 어느 정도 컨디션이 올라왔다 싶으면 자체 청백전과 연습 경기를 치르게 된다.

2019시즌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의 첫 자체 청백전.

팡!

“스트라이크!”

유현은 초구부터 하이 패스트볼을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구속 측정기에 기록된 구속은 무려 146km.

유현을 상대로 타석에 선 최수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니, 첫 청백전부터 146km를 던지면 어떻게 합니까. 진짜 펠컨스 와서 다행이지, 알바트로스에 계속 있었으면 만날 때마다 쌍욕했겠네.’

상당수의 투수들이 베스트 컨디션일 때도 기록하지 못하는 구속을, 유현은 첫 자체 청백전부터 가볍게 기록했다.

베스트 컨디션일 때 최고 구속 158km를 기록했다는 걸 감안해도 컨디션이 올라오는 게 살짝 빨랐다. 오프 시즌에 신경 써서 몸 상태를 끌어 올린 덕분이었다.

물론 페이스는 적절히 조절할 생각이었다. 잘못했다가 오버 페이스가 되면 시즌 막바지에 고생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와 별개로 컨디션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은 타자들에게, 146km의 강속구를 안정적으로 제구하는 유현은 괴물 그 자체였다. 보통 자체 청백전에서는 타자가 투수보다 컨디션이 빨리 올라와서 유리하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유현이 세 타자를 가볍게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1회 초를 마무리했다.

2회 초에는 땅볼 세 개로 가볍게 이닝을 정리, 2이닝 동안 17구를 던지며 퍼펙트로 임무를 끝마친 뒤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타자들은 유현의 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정도로 유현의 컨디션이 좋았다.

“와. 선배. 자체 청백전부터 146km는 너무한 거 아니에요?”

“진짜 우리 상대 팀으로 만나지 마요. 다른 팀 갈 거면 메이저리그로 가요. 알겠죠?”

“다른 팀 타자들이 괜히 현이 상대할 때마다 쌍욕하는 게 이제 좀 이해가 되네.”

-컨디션 괜찮아 보이던데?

‘어. 구속이 안 나오기는 해도 제구가 괜찮았고 무브먼트도 나쁘지 않더라. 제구 잡으려고 죽어라 연습한 게 효과가 있나 본데?’

-흥. 당연하지. 누가 가르쳐 준 훈련법인데.

‘네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요.’

-그나저나 스플리터는 안 던지던데, 일부러 그런 거야?

‘당연히 일부러 그랬지.’

유현이 오프 시즌, 그리고 스프링캠프 초반에 집중한 건 크게 세 가지였다.

체력을 끌어올리는 것, 조금 더 제구를 안정적으로 하기 위한 훈련, 그리고 스플리터에 익숙해지는 거였다.

솔직한 말로 스플리터를 지금 당장 던져도 결정구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KBO리그 다른 팀들과의 연습 경기에서도 스플리터를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새 무기를 그렇게 쉽게 공개하는 건 유현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았다.

‘스플리터는 일본 가서 던져야지.’

-역시 네가 재미를 좀 아는군. 그래, 비장의 무기는 강한 놈들한테 써먹으면서 첫 공개를 해야 재밌는 법이지.

‘아마 이닝 제한이 있겠지?’

-길어야 5이닝일걸.

‘그럼 5이닝 퍼펙트 하고 내려오면 되겠네.’

-좋은 마음가짐이다.

2차 스프링캠프가 열릴 오키나와.

그곳에서 일본 1군 팀과의 연습 경기를 치를 때 스플리터를 처음으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본 팀을 상대로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자신의 공이 어느 수준까지 통하는지 말이다.

‘일본 팀을 상대해 보면 알 수 있겠지. 내 공이 국내용인지, 아니면 더 높은 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을지 말이야.’

벌써부터 일본 1군 팀을 상대로 마운드에 오를 걸 생각하며 기대감에 부푼 유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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