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46화 (46/155)

46화 플레이오프 (1)

-정 해설위원님, 펠컨스타디움 구내식당에서 오리 불백 드셔 보셨죠?

-그럼요. 현역 시절 제가 제일 좋아하던 메뉴가 오리 불백입니다. 지금도 펠컨스타디움에서 경기가 있을 때마다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맛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저도 먹어 봤는데 맛이 좋더라고요. 제가 왜 오리 불백 이야기를 꺼냈냐면, 오늘 시구와 시타를 대전 펠컨스에 20년 동안 양질의 오리고기를 유통마진 없이 납품해 주고 계시는 한마음농원의 유정석 씨와 한미자 씨가 맡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 그리고 제작진으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에 따르면, 이분들이 대전 펠컨스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합니다.

-특별한 인연이요?

-네. 바로 이번 시즌 최고의 성적을 거둔 유현 선수의 부모님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오셨는데 유현 선수의 표정이 왜 저러죠? 못 볼 걸 본 표정인데요?

-유현 선수는 부모님이 시구와 시타를 한다는 걸 전혀 몰랐거든요. 유현 선수에게는 철저하게 1차전을 직관하겠다는 말 정도만 한 채로 비밀리에 시구와 시타를 준비했습니다.

-아하. 그렇다면 저 반응이 이해가 되네요.

마운드 위에 선 유현은 여전히 당혹감 가득한 표정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보며 사태 파악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해설을 듣고 있는 야구팬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

유현의 아버지가 던진 공이 홈플레이트 근처까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어머니는 배트를 크게 헛스윙했다. 깔끔하게 공을 포구한 포수 지석한은, 마운드로 걸어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유현의 아버지와 가볍게 포옹을 했다.

뒤이어 아버지와 포옹한 유현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아버지를 향해 속삭였다.

“아버지. 왜 여기 있어요?”

“뭐가? 직관 온다고 했잖아? 직관하고 있고.”

“아뇨.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왜 두 분이 시구와 시타를 하고 있냐는 건데요. 저한테 미리 말이라도 해 주시지 그랬어요.”

“말하려고 그랬는데 하지 말라더라.”

“누가요?”

“너희 팀 연봉 1위가. 그리고 몇 명 더 그러던데? 서프라이즈해 주는 게 재밌을 거라고.”

유현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좌익수로 출전한 강태영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더그아웃에서는 유독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박수를 치는 김정수, 웃으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차영석을 비롯한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잘 던져. 맛있는 거 먹으면서 구경할 테니.”

“아버지.”

“응? 왜?”

“앞으로 제 등판 경기 보실 때마다 소파에 드러누워서 편하게 보실 수 있게 해드릴게요.”

“그래. 제발 그럴 수 있게 해주라.”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구단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VIP석으로 향했고, 유현은 마운드 위에서 당혹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며 투구를 준비했다.

-선수들은 다들 너희 부모님이 시구와 시타를 할 걸 알고 있었던 눈치인데?

‘그런 거 같지? 분위기 보니까 나 놀라게 하려고 말 안 하고 있었던 거 같아.’

-놀랐어?

‘제대로 서프라이즈했지.’

확실히 놀라긴 했다.

직관을 한다던 부모님이 시구와 시타를 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유현은 지금껏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다. 감사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정도만 말했지 부모님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이 부진한 성적을 거둘 때, 혹여나 팬들의 화살이 부모님에게로 향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부모님이 먼저 시구와 시타를 통해 자신과의 관계를 알리고 나섰다. 당혹스럽긴 했지만, 그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야구를 잘한다고 인정받는 것만 같았다.

심호흡을 몇 차례 한 유현이 연습 투구 후 타자들을 상대할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첫 타자를 상대로 스트레이트 포볼을 내주며 출루를 허용했다.

-유현 선수가 선두타자를 포볼로 출루시킵니다. 선두타자 포볼은, 그것도 볼만 네 개 연속으로 던진 건 이번 시즌에 처음 아닌가요?

-처음일 겁니다. 흐음. 포볼을 내주긴 했지만 제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보면 좌우로 번갈아 가며 코너워크를 했는데, 볼 한 개 정도 차이로 간격을 좁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스트라이크 존을 파악하기 위한 투구인 것 같습니다. 아마 다음 타자를 상대로는 별 문제없이 투구하지 않을까 싶어요.

선두타자에 이어 유현은 2번 타자에게도 2구 연속으로 볼을 내주며 2볼로 카운트가 몰렸다.

6구 연속으로 볼.

다만 이는 해설위원이 지적한 대로 제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 스트라이크 존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의 주심은 스트라이크 존이 경기마다 다르기로 유명한 주심이었다. 어느 날은 좁고 어느 날은 넓고, 심지어는 경기 중에도 존이 몇 번이나 바뀌는 경우마저 있었다.

그래서일까?

해당 심판이 주심을 보는 경기에서는 유독 난타전이 많이 나오곤 했다.

본격적인 승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유현은 존을 넓게 잡은 채 조금씩 간격을 좁혀 나갔다. 그렇게 경계선을 명확히 만들어 놔야 타자들과 편하게 승부를 할 수 있으니까.

6구 연속으로 볼을 내주고 7구째.

“스트라이크!”

드디어 몸 쪽으로 찔러 넣은 포심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8구 또한 스트라이크였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것 같다가 스트라이크 존 외각을 아슬아슬하게 파고드는 투심 패스트볼로 타자의 허를 제대로 찔렀다.

유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8구를 희생해서 스트라이크 존을 확실하게 파악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매 경기마다 스트라이크 존이 오락가락하는 주심을 상대로, 오늘의 스트라이크 존을 확실하게 파악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다만 유현이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바로 아버지의 반응이었다.

2스트라이크 2볼 상황.

본격적인 승부를 시작하려는 찰나 땅의 정령이 유현의 머리를 꾹꾹 누르며 말을 걸었다.

-스트라이크 존 파악 끝났지?

‘어. 이 정도면 충분해.’

-그럼 투구하면서 들어. 삼진을 잡던 땅볼을 유도하던, 일단 아웃카운트 하나 늘려. 그리고 나서 VIP석을 봐봐.

‘오케이.’

유현은 땅의 정령이 시키는 대로 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몸 쪽 하이 패스트볼을 던져 헛스윙을 유도하며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것이다.

동시에 슬쩍 VIP석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깍지 낀 채로 있는 게 보였다.

-너 포볼 내주고 계속 저 상태야. 트라우마가 도진 것 같은데?

‘으음. 설마 직관해서 제구가 흔들린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지. 뭐해? 얼른 아버지 걱정 덜어 드리지 않고. 애초에 제구가 흔들린 적 없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 주란 말이야.

‘그래야지.’

* * *

유현은 시즌 내내 포볼을 거의 내주지 않았다.

설사 포볼을 내주더라도 풀카운트 승부까지는 갔고, 6구 연속으로 볼을 허용한 건 사실상 이번 시즌에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유현의 아버지는 불안함을 느꼈다.

자신이 직관하러 와서 유현의 제구가 흔들린다고, 이러다가 시즌 최악의 피칭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만약 유현이 1회 초에 실점을 한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들이 자신 때문에 경기를 망치는 걸 보느니, 조금 서운해 하더라도 직관을 포기한 채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여보. 우리 그냥 집에 갈까?”

“당신도 참. 아직 1회고 점수도 안 내줬는데 뭘 그렇게 불안해하고 그래?”

“나 때문에 현이가 경기를 망칠 수도 있잖아.”

“당신이 직관한 날마다 현이가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 그냥 현이가 못 던진 거라도 그러네.

“아, 몰라. 난 안 볼 테니까 이닝 끝나면 말해 줘. 점수 내주면 그냥 집에 가자.”

유현이 6구 연속으로 볼을 내주는 순간, 유현의 아버지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차라리 안 본다면, 눈을 감고 있으면 유현이 좋은 피칭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안 되면 정말로 자리를 박차고 경기장을 나갈 생각까지도 할 만큼 불안했다.

하지만…….

유현의 아버지는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걸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애초에 유현은 제구가 흔들린 적이 없었으니까.

[하나!]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팬들의 덕분에 유현의 아버지는 유격수 앞 땅볼이 나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현이 유격수 앞 땅볼을 유도할 때마다, 팬들이 목청껏 외치는 카운트가 들려왔으니까.

그럼에도 유현의 아버지는 눈을 뜨지 않았다.

유격수 앞 땅볼 하나로 이닝이 끝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유현의 아버지가 생각한 것과 달리 팬들의 카운트와 동시에 이닝은 끝난 뒤였다.

“여보. 이닝 끝났어요.”

“……정말?”

“진짜예요. 그러니까 얼른 눈 떠요.”

유현의 아버지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서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아웃카운트 세 개가 모두 올라가고 이닝이 바뀌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야구에 대해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가 아들 때문에 전문가가 된 유현의 어머니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호들갑을 떤 남편을 보며 혀를 찼다.

“쯧. 호들갑 좀 떨지 마요. 당신 그러고 있는 거 카메라에 다 찍힌 거 알아요?”

“흠흠흠. 이 사람도 참. 누가 호들갑을 떨었다고 그래?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야?”

“볼 두 개 내주고 3구 연속 스트라이크 잡으면서 삼진, 유격수 앞 땅볼로 6-4-3병살 유도하면서 이닝을 끝냈어요. 제구가 흔들린 게 아니라, 스트라이크 존을 잡으려고 일부러 볼을 내주면서 간격을 좁혀나간 건데 뭘 그렇게 겁먹고 그래요?”

“겁을 먹긴 누가 겁을 먹어?”

민망함에 큰 소리를 친 유현의 아버지가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이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제구가 흔들린 게 아니라 스트라이크 존을 잡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덕분에 한 가지가 확실해졌다.

“우리 아들 최고다! 파이팅!”

지금 해야 할 건 트라우마 때문에 불안해하는 게 아니라, 아들이 마운드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목청껏 응원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 * *

‘이 정도면 안심하셨겠지?’

-표정 보니까 괜찮은 것 같은데?

‘다행이네.’

1회를 삼진과 병살타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유현은 미소를 지은 채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스트라이크 존을 확실하게 잡았고, 불안해하던 아버지가 다시 고개를 들고 경기를 지켜보게 됐으니 충분히 의미 있는 이닝이었다.

1회 말.

대전 펠컨스가 기가 막힌 찬스를 잡았다.

선두타자 이영우가 볼넷을 얻은 상황에서 2번 타자 겸 지명타자 정경우가 번트를 댔지만, 상대 3루수의 수비 실책으로 인해 무사 1,2루가 됐다.

딱!

그리고 강태영은 우측 펜스를 통타하는 2루타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앞에 밥상을 차려준 두 선배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제라드 캠프가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5번 타자 펠릭스 곤잘레스가 홈런을 치며 스코어는 순식간에 4대0으로 벌어졌다.

유현의 이번 시즌 최다 실점이 3실점이라는 걸 감안할 때, 대전 펠컨스 입장에선 1회부터 확실하게 승기를 잡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넉넉한 점수 차에서 유현은 2회 초 선두타자로 박명우를 상대하게 됐다.

울산 알바트로스의 4번 타자이자 강태영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포.

유현과 지석한 배터리는 그를 상대로 계획했던 대로 투구했다. 미디어데이에서 약속한 대로 초구를 한가운데로 찔러 넣은 것이다.

다만…….

몸쪽으로 바짝 붙은 채 들어오다가, 존 언저리에서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며 한가운드로 몰리는 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딱!

그리고 박명우는 유현이 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는 예상이라도 한 듯이 몸을 빼지 않고서 거침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 배트 끝에 맞긴 했지만 힘이 제대로 실린 타구였기에, 내야를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타구가 날아가는 방향에 2루수가 떡하니 서 있었다. 가볍게 점프해서 타구를 잡아내며 허무하리만큼 쉽게 아웃카운트를 내주고 말았다.

결국 유현은 약속대로 한가운데에 찔러 넣었음에도 아웃카운트를 얻었다.

박명우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박명우는 유현이 투심 패스트볼을 구사할 거라 예상했고, 덕분에 비교적 정확한 타이밍에 타격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유현의 구위가 너무 좋아서 타이밍이 정확했음에도 타구가 뻗어나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그아웃에 들어오고 나서도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푹 쉬고 나온 유현의 공은 묵직했다.

‘오늘 공 미쳤는데?’

박명우는 직감했다.

오늘 유현을 상대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다.

반면.

박명우를 손쉽게 잡아낸 유현은 기분 좋게 다음 타자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

‘약속을 지켰는데 아웃카운트 하나를 얻었네? 이거 완전 이득 아니냐.’

-박명우가 원한 건 그런 한가운데가 아닐 텐데?

‘뭐 어때. 한가운데 줬으면 된 거지.’

-그래. 약속 지켰으면 된 거지. 야. 너희 아버지 어퍼컷 한다. 너보다 잘하는 듯?

‘그래? 그럼 계속 어퍼컷 하게 해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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