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44화 (44/155)

44화 미디어데이 (1)

훈련을 마친 유현이 회의실로 향했다.

유현은 미리 와 있던 차영석과 투수들, 그리고 전력분석원과 함께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팀들의 전력분석 자료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장기전과 단기전은 다르다.

단기전은 철저한 전력 분석과 경험과 기세 등 복합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한다.

대전 펠컨스는 경험이 부족하다.

2007년 마지막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을 당시 현역이었던 선수는, 김태성과 송영인을 비롯해 소수에 불과하다. 거기에 FA로 영입한 이영우와 정 경우와 정우연 등, 선수단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포스트 시즌을 경험해 봤다.

반면 대전 펠컨스를 제외하고 2018시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팀들은 모두 최근 몇 년 사이 포스트 시즌 경험이 있고, 그중 몇몇 팀은 우승 경험까지 있는 강팀들이다.

경험만 놓고 보면 대전 펠컨스가 포스트 시즌 진출 팀들 중 가장 약팀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방법은 하나다.

상대 팀의 약점이 뭐고 우리의 장점이 뭔지, 어떻게 볼 배합을 유도하고 타석에서 어떤 노림수를 가지고 들어가야 할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작전을 내려야 할지, 철저한 전력분석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거기에 선수 시절과 코치 시절에 모두 한국 시리즈 우승을 경험해 본 안용석 감독의 감 또한 중요하게 작용할 게 분명했다.

한국시리즈를 우승한 감독들은 말한다.

단기전은 계획도 계획이지만, 때로는 감을 믿어야 하는 순간도 있다고, 전력분석에만 의존하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없다고 말이다.

전력분석 자료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연구해야 하지만, 중요 순간에서 전력분석 자료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는 아이러니한 말이었다.

대전 펠컨스 선수단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훈련으로 컨디션을 조절한 이후 죽어라 전력 분석 자료에 매달렸다.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기 전까지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준비라고는 휴식과 훈련의 병행, 그리고 전력분석 자료를 달달 외우는 것과 타 팀의 경기를 지켜보는 게 사실상 전부였으니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력분석 자료 검토를 끝마친 김정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배님들. 결국에는 그리핀스가 플레이오프에 올라올 확률이 높겠죠?”

“흐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재규어스의 기세가 매섭긴 한데, 그리핀스도 막판에 6연승을 내달리며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그리핀스의 진출 확률이 조금 더 높다고 보는 게 맞겠지.”

“우리 입장에선 그리핀스가 안 올라오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겠지만 말이야.”

“그리핀스를 만나면 이상하게 경기가 안 풀리는 것 같지 않아요?”

“확실히 그런 느낌이 있긴 하지.”

후반기 상승세를 통해 결국 4위로 시즌을 끝마친 대구 재규어스, 불펜진이 무너지며 고생했지만 대전 펠컨스와의 트레이드 이후 안정세를 되찾으며 5할 싸움에 성공한 5위 울산 알바트로스가 와일드카드전을 펼친다.

대부분의 해설위원들은 대구 재규어스의 승리를 예측했다. 후반기 전체 승률 3위를 기록하며 매서운 기세를 보여 준 대구 재규어스가 상대 전적에서 앞서고 있는 울산 알바트로스를 상대로 4위 팀의 1승 어드밴티지를 앞세워 이길 거라고 봤다.

그리고 두 팀 중 누가 올라가더라도 플레이오프에는 인천 그리핀스가 진출할 거라고 했다.

단기전에서 철저한 전략을 바탕으로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포스트시즌은 상위 팀이 이점을 살려서 이기는 게 현실이다.

메이저리그야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해 올라온 팀이 월드 시리즈 우승까지 하는 경우가 많지만, 상위 팀이 체력 비축을 충분히 할 수 있는 KBO리그의 특성상 기가 막힌 반전은 나오기 힘든 게 현실이다. 몇 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한국 시리즈 전까지 팀을 재정비할 수 있는 페넌트레이스 1위 팀이 대부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물론 예상은 예상일뿐이다.

단기전은 페넌트레이스와 달리 변수가 많다.

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 한국 시리즈 우승이라는 반전을 만들어 내야 할 대전 펠컨스 입장에서는, 반드시 변수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를 위해 이왕이면 상대 전적이 열세인 인천 그리핀스보단, 대구 재규어스나 울산 알바트로스가 플레이오프에 올라오길 바랐다.

그리고.

모두가 인천 그리핀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예상할 때, 한 선수만큼은 다른 생각을 했다.

“흐음. 그리핀스라…….”

“왜? 현이 네 생각은 달라?”

“전 알바트로스가 올라올 것 같아요. 더 정확히는 알바트로스가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전력분석원이나 다른 선수들의 생각과는 달리 유현은 알바트로스가 올라올 거라 예상했다.

정확히는 알바트로스가 올라오기를 바랐다.

대전 펠컨스가 최근 몇 시즌 동안 인천 그리핀스에게 약세를 보인 것과 달리, 울산 알바트로스와는 상대 전적이 엇비슷하거나 살짝 뒤처지는 정도에서 그쳤다. 2018시즌만 놓고 한정해 보면 9승 7패로 우세였고, 스윕도 한 차례 거뒀을 만큼 좋은 기억이 있다.

인천 그리핀스보다는 울산 알바트로스를 상대하는 게 훨씬 더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선수들의 말대로 인천 그리핀스를 상대할 때는 텍사스 안타가 많이 나오는 등 유독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경향이 있었기에, 이왕이면 플레이오프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물론 유현은 상관없었다.

인천 그리핀스를 상대로도, 울산 알바트로스를 상대로도 호투했으니까.

다만 다른 선수들의 입장까지 고려하면 인천 그리핀스는 분명 껄끄러운 상대였다.

“알바트로스는 올해 잡음이 많았고 관중 수도 많이 줄었잖아요. 그 와중에도 8월에 외국인 선수 둘을 교체한 걸 보면 포스트 시즌을 대비해서 승부수를 띄운 거라고 봐야 하는데, 아마 재규어스를 상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거예요. 최소 플레이오프 정도는 올라오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흐음. 하긴, 등 돌린 팬들을 다시 야구장으로 데려오려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최고긴 하지.”

“게다가 알바트로스가 그리핀스 상대로 유독 강하잖아요. 재규어스만 꺾으면 플레이오프에 올라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는 편이 우리 입장에선 편하긴 하겠지.”

인천 그리핀스는 까다롭다.

워낙 상대전적이 열세이다 보니 기세에서부터 밀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아니라 해도 상대 전적에서 밀리다 보면 위축되기 마련이다.

반면 울산 알바트로스와의 상대 전적은 딱히 밀리는 편이 아닌데다가, 인천 그리핀스에 비해서는 약점이 뚜렷한 편이라고 봐야 한다.

대전 펠컨스 입장에서는 인천 그리핀스가 아닌 울산 알바트로스를 상대하는 게 좋다.

‘진짜로 알바트로스가 두 팀을 꺾고 올라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재규어스를 꺾을 수만 있다면 올라올 가능성이 높지. 그리핀스 상대로 접전을 치르긴 하겠지만, 상대 전적을 무시할 순 없는 법이니까.

‘나야 어느 팀이 올라와도 상관없긴 한데, 다른 선수들은 알바트로스를 상대하는 게 편하겠지. 제발 알바트로스 올라와 주세요.’

-알바트로스 상대로 3대0 가즈아!

* * *

반전의 연속.

와일드카드전이 싱겁게 끝날 거라는 해설위원들의 예상과 달리, 2차전까지 이어진 경기는 울산 알바트로스가 반전 드라마를 써내며 2승으로 준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1차전과 2차전 모두 8회에 승부가 갈렸다.

분명 8회까지는 대구 재규어스가 각각 4대2와 6대3으로 리드하고 있었지만, 울산 알바트로스가 8회 초에 승부를 뒤집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는 메이저리그 도전을 끝마치고 2018시즌 복귀한 울산 알바트로스의 4번 타자, 3연속 홈런왕을 차지했던 거포 박명우의 존재가 있었다.

1차전에서는 1사 만루에서 12구까지 가는 집요한 승부 끝에 밀어내기로 득점을 올려 승리의 발판을 만들더니, 2차전에서는 그랜드 슬램으로 판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당연히 MVP는 박명우가 선정됐다.

2018시즌 홈런왕은 53홈런을 기록한 강태영이고, 2위는 42홈런을 기록한 박명우였다.

단, 강태영이 136경기를 소화한 것과 달리 박명우는 부상으로 인해 99경기를 소화하면서 홈런을 칠 기회 자체가 적었다는 걸 감안하면 경이로운 홈런 페이스였다.

8월 이후 미친 듯한 몰아치기로 절정의 컨디션을 자랑한 게 와일드카드전까지 이어지며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이어진 준 플레이오프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난타전이었다.

양 팀의 투수들은 타선의 맹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난타를 당했다.

매 경기 양 팀이 10안타 이상을 만들어 내며 투수들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한 팀이 홈런을 치면, 다음 이닝에 상대 팀에서 똑같이 홈런을 치며 맞불을 놓는 모습도 나왔다.

그 결과.

4차전까지 양 팀 모두 10득점 이상을 기록하며 치열한 난타전 끝에 2승 2패로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고, 결국 인천에서 5차전이 열렸다.

플레이오프 진출 팀을 가리게 될 벼랑 끝 승부에서 울산 알바트로스가 1회 초부터 확실하게 승기를 잡는 모습을 보였다.

-큽니다. 큽니다. 아아아! 넘어갑니다아아아! 김현성 선수와 박명우 선수의 백투백 홈런! 울산 알바트로스가 4대0으로 앞서갑니다!

-이렇게 되면 투수의 입장에서는 제정신을 차리기 어렵거든요. 타이밍을 끊어 주면서 안정을 찾아 줘야 합니다.

-그리핀스의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과연 투수가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요?

1회 초부터 3점 홈런에 이은 백투백 홈런으로 4실점을 허용하며 불안함을 노출한 인천 그리핀스의 외국인 선발 투수는, 2회 초에 3연속 2루타를 허용하며 3점을 추가로 내주고 말았다.

결국 인천 그리핀스는 3회 초에 선발투수가 안타를 허용하자 지체없이 불펜투수들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더 이상 실점을 하면 이번 경기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

문제는 한번 불이 붙은 울산 알바트로스의 타선이 방어율 2위를 자랑하는 인천 그리핀스의 불펜진마저 완벽하게 무너트렸다는 거다.

홈런 7개에 도합 17득점.

울산 알바트로스의 타선이 대폭발하며 홈런 공장 인천 그리핀스를 무너트리는 데에 성공했다.

대전 펠컨스의 플레이오프 파트너가 확정됐다.

* * *

10월 19일.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를 앞둔 유현이 잔뜩 긴장한 채 대기실에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함께 선수단 대표로 참여하게 된 강태영과 차영석은 그런 유현을 실컷 놀려댔다.

“너는 마운드 위에선 다 찢어 죽일 듯이 투구하는 놈이, 왜 카메라 앞에만 서면 긴장하고 그러냐.”

“이 자식 맨날 인터뷰에서 매크로 답변하잖아요.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팀이 원하는 보직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승왕에 욕심 없습니다. 타이틀에 욕심 없습니다. 한국시리즈 우승하고 싶습니다.”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고 갈까요?”

“크흐흐. 기 싸움 하다 보면 너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 풀려 있을 거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

포스트 시즌 미디어데이에서는 기 싸움이 팽팽한 편이다. 또한 선후배 관계가 명확한 KBO리그에서 설전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도 하기에, 팬들은 많은 관심을 가진다.

보통 입담이 좋은 선수나 팀의 간판선수들을 내보내는 경향이 있다.

대전 펠컨스의 경우는 둘 다였다.

입담으로는 어디서 빠지지 않는 차영석, 입담 좋은 프랜차이즈 스타 강태영,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 KBO리그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떠오른 유현이 대표로 미디어데이에 참여했다.

미디어데이 초반, 기자들의 질문은 입담 좋기로 유명한 차영석에게로 집중되는 모양새였다.

“차영석 선수. 2차 드래프트 이적 첫해에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 팀을 2위로 이끄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이번 시즌을 끝내고 은퇴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으신 겁니까?”

“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좀 쉬어야죠. 한 시즌 더 뛰면 이혼 당할지도 몰라요.”

“차영석 선수 하면 미디어데이에서 보여 주는 걸출한 입담이 화제가 되곤 하는데요. 은퇴 전 마지막 포스트시즌을 앞둔 기분이 어떠십니까?”

“석한이가 잘해서 제가 포수 마스크를 쓸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출장 한 번 안 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도 괜찮잖아요?”

“만약 플레이오프 중에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제가 왜 미친개라고 불리는지 알게 되겠죠. 그런 일 없게 서로 평화롭게 경기합시다. 사랑해요, 알바트로스.”

차영석은 유쾌하게, 그러면서도 기세에서 밀리지 않게 간간히 뼈 있는 말로 알바트로스 선수들을 자극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다만 도발은 하지 않았다.

몇 년 전이었다면 도발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곧 은퇴를 하는 마당에 괜한 도발로 선수들과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다.

이는 강태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쾌하면서도 간간히 뼈 있는 말을 하며 기세에서 밀리지 않는 것에 신경 썼다.

그리고 유현은…….

“유현 선수. 와일드카드전부터 울산 알바트로스의 타선이 뜨거운데요.”

“네. 방망이가 뜨겁더라고요.”

“특히나 박명우 선수가 펄펄 날고 있습니다. 어떻게 상대하실 생각이십니까?”

“흐음. 박명우 선배가 와일드카드 전부터 준 플레이오프까지 도합 6홈런을 기록하며 펄펄 나셔서 무섭네요. 긴장해서 초구가 가운데로 몰릴까 봐 걱정됩니다. 아…… 근데 박명우 선배님이 강속구에 약하셔서 괜찮을 것도 같네요. 그냥 한복판으로 찔러 넣겠습니다.”

미디어데이 전까지만 하더라도 청심환을 찾으면 긴장했던 것과 달리, 울산 알바트로스를 향해 광역 도발을 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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