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37화 (37/155)

37화 휴식 (2)

유현은 원래 2021시즌이 끝난 뒤에야 포스팅 자격을 얻을 수 있었는데, 포스팅 시스템에 변화가 생기며 2019시즌이 끝나면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일까?

KBO의 발표가 나자마자 몇몇 기자들이 유현에게 연락을 했다. 인터뷰를 따기 위해 다급히 펠컨스타디움으로 향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이미 알리사 메켄이 가장 먼저 인터뷰 기회를 잡았다는 걸 모른 채 말이다.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거냐는 알리사 메켄의 질문에, 유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땅의 정령은 메이저리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2020시즌부터는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을 거라고 항상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현의 목표 중 하나가 됐다.

결과적으로 땅의 정령이 말한 대로 됐다. 이제는 메이저리그 진출이 가시권에 들어왔으니 더 이상 욕심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네. 기회가 된다면 진출하고 싶습니다.”

“생각해 두신 구단은 있으신가요?”

“몸값도 몸값이지만, 그보다는 월드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가능성이 높은 팀과 계약하고 싶습니다. 강팀의 1선발투수가 되어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모든 투수들이 원할 듯한 정석적인 목표네요.”

인터뷰 내내 알리사 메켄은 유현에게 메이저리그 진출과 관련된 질문을 많이 했다. KBO리그의 포스팅 시스템 개정과 동시에 인터뷰를 한 것이다 보니, 아무래도 초점이 메이저리그 진출 쪽으로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계속된 질문에 답변을 해주던 유현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에 떠올랐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유현은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하고서 인터뷰 내내 느꼈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

“메켄 기자님은 혹시 제가 매리너스로 갔으면 하나요?”

“유현 선수가 매리너스에 왜 와요?”

“매리너스 전담 기자님이라 제가 매리너스로 가는 걸 원하지 않나 싶어서요.”

“음. 매리너스 전담 기자이자 팬으로서 보면 그렇긴 한데, 유현 선수의 개인적인 팬으로서는 매리너스에 와서 좋을 게 없다고 봐요.”

“매리너스는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할 확률이 낮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이번 시즌에 와일드카드 경쟁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전통적인 강팀은 아니니까요. 유현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매리너스에 유현 선수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하지만, 생각보다 별로더라고요. 전 제가 좋아하는 선수가 월드 시리즈 우승 가능성이 높은 팀으로 강팀으로 가서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면 좋겠어요. 연봉도 많이 받고요.”

“그럼 어떤 팀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으음. 후보야 많죠. 빅 마켓이고 지구 우승 확률이 높은 전통적 강팀이 좋지 않겠어요?”

“빅 마켓이라…….”

알리사 메켄의 대답에 유현은 미소를 지었다. 매리너스 전담 기자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팬으로서 하는 말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혹시 매리너스에 올 생각이 있었어요?”

“아뇨. 없어요.”

“그럴 줄 알고 있었어요. 유현 선수가 원하는 조건이랑 매리너스랑은 거리가 머니까요.”

“맞아요. 거리가 좀 있죠. 매리너스가 전통적인 강팀은 아니잖아요. 전력이 탄탄한 것도 아니고.”

“동의해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면 어떤 팀으로 갈 것인가에 대해, 유현과 땅의 정령은 집에서 할 일이 없을 때면 종종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럴 때마다 결론은 항상 비슷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지구 우승을 꾸준히 한 강팀 중에서 내야 수비가 좋고 자신에게 적절한 몸값을 지불할 수 있을 것 같은 팀.

그렇게 하다 보니 후보가 몇 개 추려졌다.

그리고 그중에 시애틀 매리너스는 없었다.

시애틀 매리너스가 이번 시즌 와일드카드 경쟁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전통적인 강팀은 아니고, 무엇보다 유현 한 명이 합류했다고 해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노려볼 수 있을 정도 팀 전력이 탄탄한 것 또한 아니었다.

월드 시리즈 우승.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시애틀 매리너스에 가지 않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슬슬 말을 해도 괜찮을라나?’

한편 알리사 메켄은 고민에 빠졌다.

인터뷰를 통해 유현에게 메이저리그 진출 의사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하고 나눈 대화를 통해 어떤 팀으로 가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고민한 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알리사 메켄은 슬슬 자신이 유현을 만나고 싶어 했던 진짜 이유를 꺼낼 때가 됐다고 느꼈다.

“사실 제가 대한민국에 온 건 유현 선수의 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 부모님의 사업과 관련되어 있기도 해요.”

“부모님?”

“메켄 코퍼레이션 들어본 적 있어요? 저희 아버지가 대표로 있는 에이전트 회사인데.”

유현의 두 눈이 커졌다.

메켄 코퍼레이션.

미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에이전트 회사로, 미식축구․농구․야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다수의 스포츠 스타들과 계약한 회사다.

유현이 가장 최근에 메켄 코퍼레이션의 이름을 들은 건 강태영을 통해서였다.

강태영은 2019시즌을 끝으로 FA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대전 펠컨스가 이번 시즌 한국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로 구단과 이야기를 끝내 놓은 상황이다.

올해 아니면 내년에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하는 게 확실하다.

문제는 에이전트다.

능력 있는 에이전트와 계약해야 유리한 계약을 따내는 건 당연하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던 몇몇 선수가 에이전트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기대 이하의 계약 조건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고생한 전례가 있기에, 강태영은 시즌 전부터 에이전트 계약을 놓고 조율을 해왔다.

고민 끝에 최근에서야 결정을 내렸다.

메켄 코페레이션과 아시안게임 브레이크 기간에 계약을 하기로 말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은 상황에서, 메켄 코페레이션의 대표가 알리사 메켄의 아버지라는 건 유현으로선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메켄이란 성을 가진 미국인이 어디 한둘인가.

성만 가지고 두 사람의 관계를 유추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넌 알고 있었어?’

-어제도 말했지만 나라고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야. 매리너스 전담 기자의 아버지가 메켄 코퍼레이션의 대표인 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우연이라는 거네?’

-우연치고는 나쁘지 않아. 메켄 코퍼레이션이면 일 잘하는 회사로 유명하고, 일찌감치 계약해 두면 여러모로 네게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걸?

‘메켄 코퍼레이션이라…….’

고민하던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켄 코퍼레이션에서 저와 계약을 하고 싶어 하는 건가요?”

“아시아 시장에서 유현 선수만큼 매력적인 선수가 몇 명이나 되겠어요? 아버지는 이틀 후에 한국에 오세요. 공식적으로 접촉하기 전에, 제가 먼저 유현 선수를 만나 의중을 확인하려고 했던 건가요? 혹시 불편하셨나요?”

“메켄 코퍼레이션 이야기가 나와서 의외이긴 했지만 불편하진 않았어요.”

“다행이네요. 사실 유현 선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메켄 코퍼레이션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말을 꺼냈어요. 혹시 따로 생각해 둔 에이전트가 있는 건 아니죠?”

“없어요. 이번 시즌이 끝나고 에이전트를 알아보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다행이네요. 그렇다면 메켄 코퍼레이션은 어때요? 유현 선수의 구체적인 계획을 도울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가 될 거라고 자신해요.”

땅의 정령과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연하지만 에이전트와 관련된 이야기 또한 나왔다.

당시 땅의 정령은 에이전트 세 곳을 추천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메켄 코퍼레이션이다.

메켄 코퍼레이션과 계약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유현의 머릿속에 땅의 정령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아. 저 예쁜 여자가 저렇게 애틋하게 쳐다보니까 거절하지 못하겠다. 메켄 코퍼레이션이면 좋은 에이전트이고,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군.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

-내가 관심법으로 다 봤다. 거짓말 할 생각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해라.

‘……예쁜 건 맞잖아?’

-인정한다. 저 여자 예뻐. 자. 그럼 이제 메켄 코퍼레이션과의 계약을 미끼로 저 여자가 한국에 있는 동안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그렇고 그런 일을 하면 되겠군.

‘……좀 닥쳐 줬으면 좋겠어.’

땅의 정령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이, 유현이 결정을 내렸다.

“좋아요. 메켄 코퍼레이션과 일단 대화를 나눠보고 결정할게요.”

* * *

데이비드 메켄.

메켄 코퍼레이션의 대표가 대한민국에 방문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게 될 몇몇 선수와의 계약을 타결하기 위해서라는 게 그 목표였다.

데이비드 메켄이 한국에 와서 가장 처음 한 일은 딸 알리사 메켄과 한국의 유명한 불고기 맛집에서 식사를 하는 것, 그 다음이 통역사와 함께 숙박하고 있는 호텔 카페에서 유현을 만나는 거였다.

“반갑습니다, 유현 선수.”

“반갑습니다. 메켄 기자님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저에게 관심이 있다고요.”

“모든 에이전트 회사들이 유현 선수에게 관심이 있겠죠. 저희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면 메켄 코퍼레이션과 다른 에이전트 회사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유현 선수가 원하는 팀과 원하는 조건에 계약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단, 터무니없는 조건이 아니어야 합니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제 방에 잠시 같이 갈 수 있겠습니까?”

유현이 통역사를 바라보았다.

통역사가 미소를 지은 채 갑자기 방으로 가자고 한 이유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해줬다.

“유현 선수를 위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해 왔거든요. 유현 선수만 괜찮으시다면, 계약 여부와 관계없이 자료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보러 가죠.”

유현은 흔쾌히 데이비드 메켄과 통역사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위해 프리젠테이션 자료까지 직접 준비해왔다고 하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몇 분 후.

호텔 스위트룸 안에서 오로지 유현만을 위한 메켄 코퍼레이션 직원들의 미국 진출 관련 프리젠테이션이 시작됐다.

-메켄 코퍼레이션이 준비를 잘 해왔군. 널 원한다면 이 정도는 해야지.

‘마음에 드네. 알리사 메켄도 그랬지만, 나에 대해 장단점을 제대로 분석하고 있다는 게 특히나 마음에 들어. 단순히 성적을 보고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거라 확신하고 접근을 한 거잖아.’

-이게 메켄 코퍼레이션이 수많은 거물들과 계약을 한 이유지. 객관적인 자료와 진정성을 더해서 접근하거든. 선수가 원하는 걸 반드시 얻게 해주는 걸로 유명하기도 하고.

메켄 코퍼레이션은 유현이 이해할 수 있게 한글로 자료를 준비해왔다. 게다가 유현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오기까지 했다.

덕분에 유현은 메켄 코퍼레이션에서 자신을 원하는지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모두 봤을 즈음.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만약 제가, 이번 시즌이 끝나고 떨어지는 공을 제대로 장착할 수 있다면, 제 몸값은 지금과 얼마나 차이가 납니까?”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빅 마켓의 2선발 수준의 몸값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2선발이라…… 몸값을 조금 낮추는 대신, 성적에 따른 옵션을 왕창 넣는 것도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유현이 원하는 수준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도 만족스럽다면 계약하겠다는 생각으로 유현이 입을 열었다.

“아까 카페에서 제가 원하는 팀과 계약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셨죠?”

“네. 가능합니다. 어느 팀을 원하십니까?”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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