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29화 (29/155)

29화 변화 (1)

대전 펠컨스의 필승조로 2017시즌 3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던 베테랑 불펜 투수 두 명은, 2018시즌 초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다.

두 선수는 최근 몇 년간 불펜투수 최다 이닝 1위와 2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많은 이닝을 소화한 후유증으로 시즌 초 마음먹은 대로 구위가 올라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결국 2군에서 차분히 컨디션을 끌러 올려, 5월 말부터는 지난해의 구위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들은 7월 말이 될 때까지도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팀 방어율 1위를 자랑하고 있는 대전 펠컨스의 불펜에는 그들의 자리가 없었다.

게다가 팀 성적이 2위라서 그렇지, 대전 펠컨스의 2018시즌 원래 목표는 리빌딩이었다.

베테랑에 비해 기량 면에서 다소 부족한 젊은 선수더라도 적극적으로 기용해 경험을 쌓게 하는 게 안용석 감독식 리빌딩이었다.

2016시즌과 2017시즌의 대전 펠컨스는 부상 병동이었다. 베스트 라인업을 갖춰 본 게 손에 꼽을 정도로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아팠다.

이에 대해 구단 내부에서는 전임 감독의 훈련 스타일보다 선수들의 노쇠화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2군으로 내려간 베테랑 투수 두 명은 여전히 좋은 활약을 해 줄 수 있는 선수들이지만 팀의 리빌딩 기조와 안 맞고, 풀타임 소화가 힘들다는 게 구단과 코칭스태프의 판단이었다.

문제는 1군에서 몇 시즌 동안 살아남았던 수준급 불펜투수에게 2군은 너무 좁다는 거였다.

한 선수는 팀에 대놓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대로 1군으로 올려 주지 않을 거라면 트레이드를 시켜 달라고, 트레이드 마감 시한이 지날 때까지 소식이 없다면 은퇴하겠다고.

얼마 남지 않은 현역 생활을 2군에서 낭비할 생각이 없었고, 팀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할 수 있는 요구였다.

결국 베테랑 투수 두 명이 트레이드를 통해 울산 알바트로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그 대신 대전 펠컨스는 트레이드를 통해 송영인의 부상 공백을 메우고, 장차 팀의 주전 3루수로 성장할 수준급 군필 유망주를 얻게 됐다.

송영인이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이고 별 문제가 없는 한 FA때 잡을 예정이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구단 내부에서는 송영인이 앞으로 풀타임을 소화하기 힘들 거라고 예상했다.

고질적인 허벅지 부상과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걸림돌이라고 본 것이다.

송영인이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하더라도 수준급 3루수인 건 맞지만, 대전 펠컨스 입장에서는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일찌감치 주전 3루수로 성장시킬 재목을 점찍고 백업으로 경험치를 쌓아 점차 출장 수를 늘려갈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팜 내에 수준급 3루수가 없다는 거였다.

다행히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며 적절한 시기에 이번 트레이드가 진행됐다.

그리고 땅의 정령은 트레이드 소식을 접하고서 그 좋아하는 불화산 치킨조차 먹지 않은 채 소파 위에서 방방 뛰며 좋아했다.

-프런트가 대박을 쳤다! 대박을 쳤어!

“넌 이번 트레이드의 승자가 펠컨스라고 생각하는 거야? 수준급 불펜 투수 두 명을 내주고 3루수 백업을 데려왔는데도?”

-당연하지! 최수환은 풀타임을 뛰면 3할에 20․20정도는 가뿐하게 기록할 호타준족이야. 거기에 수비도 송영인에 비해 떨어지지 않지. 아마 허벅지 부상이 있는 송영인의 출장 수를 줄이면서 최수환을 키우려고 할걸?

“3할에 20․20을 해주는 핫 코너라면 어느 팀에서건 붙박이 주전이겠네. 야수진이 풍부한 알바트로스라서 백업으로 쓰고 있었던 거고.”

-더 중요한 건 뭔지 알아?

“뭔데?”

-최수환은 지난 시즌부터 서울 레오파즈와 인천 그리핀스 상대로 유독 강했다는 거야. 아마 서울 레오파즈 상대로는 타율 4할이 넘을 걸? 반대로 송영인은 두 팀 상대로 통산 타율보다 저조한 타율을 기록 중이고.

“포스트 시즌까지 고려해서 최수환을 데려왔다는 말이네?”

-1군 즉시 전력감인 베테랑 투수 둘을 내주면서 유망주 한 명을 데려왔다는 건, 그만한 투자 가치가 있기 때문이야. 대전 펠컨스가 포스트 시즌에 가면 최수환이 큰 도움이 될 게 확실해.

남은 경기에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대전 펠컨스가 후반기에 연승을 내달리고 서울 레오파즈가 갑작스런 하락세를 타지 않는 한 1위는 뒤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선 가장 가능성이 높은, 플레이오프부터 포스트 시즌을 치른다고 가정해보자.

플레이오프 파트너는 인천 그리핀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상대 전적이 열세인 인천 그리핀스를 꺾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해서 서울 레오파즈까지 꺾어야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다.

이번 트레이드는 그래서 의미가 컸다.

유독 특정 팀에 강한 타자를 데려왔다는 건, 해당 팀들과의 단기전을 고려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울산 알바트로스가 손해를 봤냐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선수들이 지금껏 보여준 걸로만 따지면 울산 알바트로스가 이득이었다.

2군을 초토화시키며 무력시위 중이던 베테랑 불펜투수 둘을 얻으며, 7월에만 다섯 번의 역전패를 허용하며 무너진 불펜을 보강해 5위 싸움에 탄력을 받게 됐으니까.

다만 대전 펠컨스 입장에서 보자면 장차 주전 자리를 꿰찰 가능성이 높은 수준급 3루수를, 전력 외인 투수 두 명을 내주고 데려온 거였다.

수준급 선수 둘을 내줬음에도 전력 유출이 없다시피 하기에, 결국 서로 득을 본 트레이드라는 게 세간의 평가였다.

최수환.

울산 알바트로스에서는 세 시즌 연속 3할에 30홈런을 기록한 3루수로 인해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던 26살의 군필 3루수는…….

딱!

-호오오오오옴런! 1회 말부터 균형을 무너트리는 2점 홈런이 나옵니다!

-최수환 선수! 트레이드 후 첫 타석에 홈런을 기록하며 대전 펠컨스 팬들의 뇌리에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킵시다!

트레이드 되자마자 광주 앨리펀츠와의 주중 3연전 첫 경기에서 2번 타자 겸 3루수로 출장해, 이적 후 첫 타석에서 큼지막한 2점 홈런을 기록하며 대전 펠컨스 팬들을 설레게 했다.

최수환의 활약은 수비에서도 이어졌다.

2회 초.

1사 만루 상황에서 3루 선상으로 빠질 뻔한 타구를 잡아냈고, 곧장 홈으로 송구하며 3루 주자를 잡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최수환의 감각적인 수비가 아니었다면 최소 2점을 허용했을 법한 날카로운 타구였다.

그 호수비 덕분에 1사 만루 찬스가 2사 만루로 변모했고, 선발투수 윤기준은 다음 타자에게 포크볼을 던져 헛스윙 삼진을 유도하며 만루 위기를 어렵사리 벗어났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위기를 맞이하지 않았다.

4회 말.

최수환은 9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커브를 통타해서 두 타석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그 홈런이 기폭제가 되어 광주 앨리펀츠의 선발투수 헌터 로아스는 4회에만 무려 5실점을 하며 와르르 무너졌다.

반면 대전 펠컨스의 선발투수 윤기준은 2회 초의 1사 만루 위기를 벗어난 이후 큰 위기가 없었다. 솔로 홈런 두 개를 허용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고, 결국 7회까지 2실점으로 광주 앨리펀츠의 타선을 틀어막고 자신의 임무를 끝마쳤다.

결국 이날 경기는 7대2로 대전 펠컨스가 손쉽게 승리를 가져갔다.

주중 2차전과 3차전에서도 최수환은 맹타를 휘둘렀다. 주중 시리즈에서 도합 13타수 7안타 3홈런 7타점 2도루를 기록했고, 유독 3루 방향으로 타구가 많이 갔음에도 안정적으로 수비를 해내며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최수환의 맹활약을 비롯한 타선의 넉넉한 득점 지원, 그리고 투수들의 호투를 바탕으로 대전 펠컨스는 광주 앨리펀츠를 상대로 시즌 두 번째 스윕을 거두는 데에 성공했다.

동시에 광주 앨리펀츠는 5위 울산 알바트로스와의 승차가 3경기로 벌어졌고, 7위 대구 재규어스에게 반 경기 차로 따라잡히며 5위 싸움에 빨간불이 들어오게 됐다.

주중 3연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한 대전 펠컨스는, 목표로 한 주중 5할 승률 달성에 일찌감치 성공했음에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타격감이 떨어진 일부 선수들은 특타를 자청할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승차가 4경기로 좁혀진 상황에서 1위 서울 레오파즈와의 3연전을 치르게 됐으니까.

대전 펠컨스의 목표는 확고했다.

위닝 시리즈.

세미 제이슨과 유현 원투 펀치가 동시에 출격하는 주말 홈 3연전에서, 1위 서울 레오파즈에게 최소 2승을 확보해서 승차를 좁히고 싶었다.

서울 레오파즈 또한 동기부여가 제대로 됐다.

주중 3연전에서 근 10년 만에 인천 그리핀스에게 뼈아픈 스윕을 당했기에, 대전 펠컨스와의 3연전에서 최소 위닝 시리즈를 거두며 추격을 허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일단 분위기는 대전 펠컨스가 더 유리했다.

최근 투타 모두 힘이 떨어진 듯한 모습을 보이는 서울 레오파즈와 달리, 대전 펠컨스는 최수환의 합류로 타선이 살아나는 모양새였으니까.

주말 시리즈 1차전.

미리 보는 한국시리즈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두 팀은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8회까지 나란히 2득점을 기록하며 팽팽한 투수전과 호수비가 이어졌다.

9회 초.

대전 펠컨스는 셋업맨 김정수를 마운드에 올렸고, 안타 하나를 허용하긴 했지만 삼진 두 개와 중견수 플라이로 실점을 허용하지 않은 채 9회 말을 맞이하게 됐다.

그리고 이어진 9회 말.

대전 펠컨스가 서울 레오파즈의 마무리 투수 한대주를 상대로 2사 만루의 기회를 잡았다.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건, 공교롭게도 이날 대전 펠컨스의 2득점을 홀로 책임지며 3안타를 기록한 최수환이었다.

-서로 좋은 득점 기회를 몇 차례 놓치고 결국에는 2사 만루라…… 하필이면 레오파즈 킬러인 수환이의 타석이네. 너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

‘나야 당연히 보더라인 투구를 하겠지.’

-그럼 마운드에 있는 레오파즈의 투수는 안타 하나면 패전투수가 되는 상황에서 보더라인 투구를 할 수 있을까?

‘유인구 한두 개 던지다가 수환이가 속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지 존 안으로 던진 공이 살짝 몰리면서 시원하게 안타 하나 맞을 듯?’

-희망사항이 디테일하네.

‘네 생각은 어떤데?’

-최수환이 안타 쳐 줄 거야. 끝내기로 5연승을 이끌 거야. 나는 믿을 거야, 최수환 믿을 거야.

딱!

결과적으로 최수환은 대전 펠컨스가 어째서 투수 2명을 내주면서까지 자신을 데려왔는지 몸소 증명해 보였다.

-최수환 선수가 초구를 공략합니다. 타구가 쭉쭉 뻗어갑니다. 중견수 박영우 선수가 빠르게 뛰어가서 펜스 플레이를 시도합니다. 잡지…… 잡지 못했습니다!

-경기 끝! 최수환 선수가 팀의 3득점을 홀로 만들어 내며 5연승을 이끕니다! 역시 레오파즈 킬러다운 맹활약입니다!

1군에서 110경기 뛴 게 전부인 3루수가 한 팀을 상대로 4할이 넘는 타율에 홈런만 8개를 기록했다는 건, 해당 팀을 상대로 엄청난 강점이 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그리고 최수환은 자신이 왜 레오파즈 킬러인지 증명하며 팀의 5연승을 이끌었다.

이적 후 네 경기에서 연일 맹타를 휘두르는 모습은 마치 코칭스태프와 팬들에게 실력으로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송영인의 빈 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 내가 펠컨스 핫 코너의 새 주인이라고.

-어쩌면 야수진 리빌딩에 생각 이상으로 가속도가 붙을지도 모르겠는데?

* * *

최수환의 트레이드 발표 직후.

안용석 감독은 자신의 모든 걸 이번 시즌에 바치겠다는 다소 도발적인 인터뷰를 했다.

물론 인터뷰 내용과는 달리 안용석 감독의 경기 운용은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전과 마찬가지로 경기를 운용했다.

선발투수들에게는 실점이 더러 있더라도 최대한 긴 이닝을 끌고 가며 도망 다니는 피칭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불펜진은 전원이 필승조라 생각하고 컨디션과 투구 이닝, 상대 전적까지 모두 고려해서 최선의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했다.

유일하게 달라진 게 있다면 타선이었다.

핫 코너에 컨디션 난조를 보이던 송영인 대신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다리며 날을 갈고 있던 최수환이 들어가면서 짜임새가 더 좋아졌다.

신예들은 기회를 잡기 위해, 베테랑들은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가 5연승이었다.

5연승을 이끌었음에도 안용석 감독은 무덤덤했다. 여전히 시즌은 많이 남아 있었고, 한 경기로 일희일비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안용석 감독은 서울 레오파즈에서 투수코치와 수석코치를 지내며 두 번의 한국 시리즈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경험했다.

그 때 느낀 교훈 중 하나가, 감독이 조급해하면 선수들도 조급해한다는 거였다.

1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승부수를 던질 생각이 없었다. 승부수가 빗나갔을 때 팀이 겪는 후유증은 정상적인 경기 운용을 했을 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크니까.

그래도 이번 서울 레오파즈와의 3연전에서만큼은 위닝 시리즈를 기록하고 싶었다.

승차도 따라 잡고,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상대 전적을 좋게 만들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상대가 흔들릴 때는 상처를 후벼 파고 죽어라 괴롭혀야지 다음에 만났을 때도 편한 법이니까.

일단 첫 경기는 잡았고, 두 번째 경기도 유현이 등판하는 만큼 잡을 확률이 높다고 계산했다.

무패 요정.

최근 유현에게 붙은 새로운 별명이었다.

선발 등판한 모든 경기에서 팀이 승리를 챙겼기에 붙은 별명이었고, 안용석 감독은 개인적으로 그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대전 펠컨스의 승리 요정은…….

1회 초에만 2실점을 하며 2018시즌 선발 등판한 경기 중 처음으로 2실점을 기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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