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절반의 완성 (3)
야구와 관련된 격언 중에 그런 말이 있다.
위기를 막아내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찬스를 잡았을 때는 반드시 그 기회를 살려야 한다. 기회를 놓치는 순간, 분위기가 상대에게 넘어가는 사례는 야구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더군다나 상대가 팀 타율 9위지만, 8회 이후로 한정하면 2위가 되는 역전의 명수일 땐 더더욱 잡은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6회와 7회, 유현은 자신에게 닥친 두 번의 실점 위기를 실점 없이 막아 냈다.
그리고 이어지 8회 초.
대전 펠컨스 타선은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지켜준 에이스에게 보답했다.
1번 타자 2루수 장영학의 내야 안타로 출루했고, 2번 타자 중견수 정장혁이 사사구를 얻으며 무사 1․2루 찬스가 만들어졌다.
강태영이 타석에 들어선 상황, 1스트라이크 1볼 카운트에서 대전 펠컨스 작전의 상징과도 같은 더블 스틸 시도가 나왔다. 강태영이 일부러 크게 헛스윙하며 주자들의 베이스 러닝을 도왔고, 허를 찔린 포수는 송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더블 스틸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중심 타선의 3연속 2루타가 터지며 내리 4득점, 스코어는 6대0으로 벌어졌다.
8회 말.
3루 정면으로 간 평범한 땅볼 타구를 3루수 송영민이 더듬으면서 타자주자가 1루에서 세이프, 대구 재규어스가 이 날 경기에서 세 번째 찬스를 잡게 됐다.
결과는 실책으로 기록됐다.
실책으로 타자를 진루시켰지만 유현은 적절한 땅볼 유도와 삼진 하나를 곁들이며 추가 실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땅의 정령은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이후에도 송영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흐음. 송영인 몸 상태 안 좋은 거 같은데.
‘그러게. 송 선배가 정면으로 오는 쉬운 타구를 실수할 분이 아닌데 말이지.’
-타격할 때도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더라고. 허벅지가 아프니까 밸런스가 무너진 건데, 그게 수비에도 영향을 끼친 거야. 아무래도 계속 출장하지는 못할 느낌이야.
‘3루수 백업이 마땅치 않아 계속 허벅지 부상을 달고 경기에 임한 게 문제가 된 건가.’
-부상은 푹 쉬고 완벽하게 치료하지 않으면 나을 수 없으니까. 별거 아닌 부상이라 참고 뛰다 보니 점점 악화되는 거지.
2018시즌.
커리어 하이를 기록 중인 3루수 송영인은 6월 이후로 컨디션 난조를 겪고 있었다. 주요 상황에서의 클러치 능력은 여전했지만, 허벅지 부상이 타격과 수비 모두에 영향을 끼쳤다.
한 경기에 네 번이나 삼진을 당한 적도 있고, 방금 전처럼 쉽게 처리했어야 할 타구를 더듬다가 실책하는 상황도 더러 나왔다.
결국은 부상이 문제였다.
어느 팀이건 베스트 라인업으로 한 시즌을 모두 치를 순 없는 법이다.
대전 펠컨스는 지난 해의 불펜 필승조 전원이 시즌 초에 낙마했고, 주전이었던 베테랑 타자들이 연달아 부상으로 고생하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이번에는 FA를 앞둔 시즌을 치르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던 송영인까지 부상에 발목을 잡히는 모양새였다.
대전 펠컨스가 2018시즌 선전할 수 있었던 건, 위기 상황에서 포지션 공백을 매우는 미친 선수들이 계속해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3루수는 다르다.
송영인 외 네 명의 선수를 시즌 중에 기용했지만 모두 결과가 좋지 않았다. 송영인이 부상을 안고도 계속해서 출장했던 건, 그를 대체할 백업 3루수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 * *
유현은 결국 경기가 끝날 때까지 대구 재규어스 타자들에게 득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9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14탈삼진 무실점.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루킹 삼진으로 잡아내고 어퍼컷 세레모니를 하는 에이스를 향해, 원정 응원석을 가득 채운 대전 펠컨스의 팬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유현의 완봉승에 힘입어 대전 펠컨스는 주간 승률 3승 3패를 마크, 후반기 목표로 천명한 5할 승률 사수에 성공했다.
당연히 이날은 수훈 선수는 두 차례의 위기를 병살타로 극복하고 결국 27개의 아웃카운트를 모두 책임진 유현이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것도 잠시, 유현은 수훈선수 인터뷰를 위해 더그아웃 앞으로 나가야 했다.
“유현 선수, 시즌 11승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경기에서 시즌 최고 구속인 158km를 기록하셨는데요. 평소와 달리 탈삼진 위주의 피칭을 한 게 구속 때문인가요?”
“네. 구속이 잘 나와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1회에 고개를 한 번 저은 거 말고는 차영석 선배님의 리드를 따라서 던졌는데, 워낙 리드를 잘해 주셔서 편하게 투구할 수 있었습니다.”
유현은 인터뷰에 집중하지 못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오늘 경기 운용 중 아쉬웠던 부분들이 계속해서 떠올랐으니까.
솔직한 말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였다.
최고 구속이 158km가 나올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지만, 동시에 유현에게는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느낀 경기이기도 했다.
공격 일변도의 피칭은 패스트볼 3종 세트를 투구하는 유현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유현의 단점이기도 했다.
유현의 패스트볼 3종 세트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구속 차이는 고작 1~2km 정도에 불과하다.
그 말도 안 되는 구속 차이가 유현을 정상급 투수로 성장시켜 줬지만, 구종들의 구속이 비슷하다는 건 타자들이 타이밍을 잡기에 비교적 수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경기 초반에 유현의 공에 적응하지 못하던 타자들은, 후반이 되면 어느 정도 타격 타이밍을 맞추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리고 타자의 노림수가 제대로 먹히거나 운이 따르지 않을 때는 출루를 허용하고 만다.
물론 대부분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단점을 감안하더라도 유현은 현재 KBO리그 최고의 투수다.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중 유일하게 0점대 방어율이다. KBO리그를 초토화시키는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웠다.
유현이 클로저였다면, 경기의 마지막 1~2이닝만 책임져야 했다면 패스트볼 위주의 투구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유현은 선발투수다.
앞으로도 선발투수일 거고, 훗날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릴 때도 선발투수로서 도전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유현은 빠른 인터벌과 두뇌 피칭으로 단점을 보완했고, 그 전력이 제대로 먹혀 리그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해서 단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리그 방어율 1위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유현은 아쉬웠다. 구속 상승과 동시에 단점이 눈에 들어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오프 스피드 피치나 브레이킹 볼이 있었다면 경기 운용이 조금 더 쉬워질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욕심이 과하다. 그게 다 머릿속에 마군이 가득해서 그런 거야. 만족하지 않고 발전하려는 건 좋지만, 분에 넘치는 걸 욕심내면 자빠져.
‘뭐…… 아쉽다는 거지, 브레이킹 볼이나 오프 스피드 피치에 욕심이 있는 건 아니야. 장착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방법은 그것뿐인가?’
-최선은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지. 아.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뭐? 조언할 거 있어?’
-아니. 생각해보니까 한국 시리즈에 목마른 건 너뿐만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조만간 트레이드 시장이 한 번 열릴 테니 기대해도 좋아.
결국 답은 하나였다.
해낼 수만 있다면, 단점을 확실하게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경기 후 진행된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 목표가 있냐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유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펠컨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이 목표입니다. 개인 성적은 관심 없습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수만 있다면, 시즌이 끝날 때까지 1승도 못 챙겨도 괜찮습니다.”
한국시리즈 우승.
대전 펠컨스가 통산 두 번째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유현은 미션의 보상으로 네 번째 구종을 배워 완전체가 될 수 있다.
유현이 공식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야욕을 제대로 드러냈다.
자신뿐만 아니라 선수단과 구단, 그리고 팬들의 염원이 담긴 목표이기도 했다.
* * *
80년대 후반에 창단된 대전 펠컨스는 긴 암흑기에도 불구하고 해탈한 듯한 모습으로 끝까지 응원하는 골수팬이 많은 걸로 유명해졌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은 대구 재규어스와 더불어 역대급 불운한 팀으로 꼽혔다.
그들의 전성기였던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중반은, 한국 시리즈 최다 우승의 주역인 광주 앨리펀츠의 전성기와 겹쳤으니까.
대전 펠컨스는 3년 연속 정규 시즌 1위를 한 89년도부터 91년까지 광주 앨리펀츠의 한국시리즈 3연패의 희생양이 됐다.
결국 대전 펠컨스는 다이너마이트 타선과 초호화 선발진의 조화로 후반기 기록적인 승률을 기록했던 99년도에서야 첫 한국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대전 펠컨스 팬들 중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99년도의 한국 시리즈 우승이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 될 거라는 걸, 2007년을 마지막으로 10년 동안 포스트 시즌조차 진출하지 못하는 암흑기를 겪을 거라고 말이다.
성적과 상관없이 해탈한 것처럼 응원한다 해서 욕심이 없는 게 아니다.
2018시즌.
2위를 유지하며 기적과도 같은 반전 시즌을 보내고 있는 대전 펠컨스를 향해, 팬들은 평일에도 펠컨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만원 관중으로 보답하고 있다.
그리고 2위를 계속 지키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 시리즈 우승이라는 욕심이 생겼다.
팬들뿐만 아니라 구단 내부에서도, 코칭스태프도 조심스러워 말을 못 꺼내고 있지만 대권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대전 펠컨스에게, 3루수 송영인의 허벅지 부상으로 인한 4주 결장은 재앙이었다.
아시안게임 브레이크가 끝나면 복귀할 수 있다지만, 문제는 그 전까지 툴이 부족한 백업 3루수들을 데리고 시즌을 치러야 한다는 거였다.
대전 펠컨스가 최근 몇 년 동안 투수 위주의 드래프트 픽을 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투수진에 비해 야수진의 리빌딩이 쉽지 않았다.
특히나 3루수는 시즌 내내 별에 별 시도를 다 해봤지만 내부 자원만으로는 송영인의 백업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만이 도출됐다.
군 복무를 끝마친 야수들이 돌아온다면 3루수 백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테지만, 적어도 이번 시즌에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2루수는 포텐셜이 폭발한 장영학이, 유격수는 신예 장이원이, 1루수는 2년 연속 20홈런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연 이정협으로 인해 고민이 줄어들었다. 포수와 외야수도 이제는 고민이 덜하다.
백업이 마땅치 않은 3루가 문제지.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 시즌 대전 펠컨스의 단장으로 부임한 배종한 단장이 송영인의 부상 여부와 무관하게 전반기 막바지부터 수준급 3루수 백업을 트레이드로 데려오기 위해 물밑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일단 송영인 선수의 부상은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트레이드 건이 마무리되는 대로 바로 발표하는 걸로 가죠.”
“네. 그렇게 알고 입단속 철저히 시키겠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트레이드를 마무리해서 감독님의 부담을 덜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구단에서는 트레이드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송영인의 부상에 대해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송영인을 비롯해 부상 사실을 알고 있는 모두가 함구령을 지켰다.
주전 3루수의 체력 안배와 미래를 위해 수준급 백업을 트레이드하는 것과, 주전 3루수의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트레이드 하는 건 천양지차다.
송영인의 부상이 알려지는 순간 트레이드에서 손해를 볼 게 뻔하다.
함구령이 내려지는 건 당연했다.
다행히 송영인의 부상 소식은 주말을 지나 월요일 저녁이 될 때까지도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사이.
배종한 단장은 새벽까지 이어진 긴 협상 끝에 트레이드 카드 조율을 끝마쳤고, 아침 해가 뜨자마자 KBO의 승인을 받았다.
그 날 정오.
대전 펠컨스는 송영인의 부상 소식과 트레이드 소식을 동시에 발표했다.
[송영인, 햄스트링 부상으로 2군행, 아시안게임 브레이크 이후 복귀 예정]
[대전 펠컨스, 울산 알바트로스와의 2대1 트레이드 통해 3루수 영입 승부수]
[대권 도전을 위한 펠컨스의 마지막 퍼즐.]
[안용석 감독 “프런트의 과감한 결단 고마워, 나의 모든 걸 이번 시즌에 바치겠다.”]
베테랑 투수 둘을 보내고 이번 시즌 3할 1푼 5리 9홈런 41타점 35득점 12도루를 기록하며 포텐셜이 폭발한 군필 3루수를 영입.
대전 펠컨스가 한국시리즈 우승 도전을 위해서 과감한 승부수를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