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10화 (10/155)

10화 갯벌 야구 (1)

대전 펠컨스.

2007년 이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적이 없는 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최고 성적이 6위인 팀, 지난 두 시즌 동안 스윕승이 없었던 팀.

그런 팀의 감독에 선임되고 개막전을 준비하기까지, 안용석 감독은 스트레스로 인해 8kg이나 빠질 만큼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필승조 두 명과 선발투수 한 명이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수술을 받았다.

안용석 감독은 시즌 구상에서 그들을 지웠다. 동시에 빈 자리를 채울 방법을 고민했다.

대체자 후보군 투수들의 기량을 몇 달 사이에 끌어 올리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선수는 1군에서, 어떤 선수는 2군에서 기량을 갈고 닦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안용석 감독을 가장 기분 좋게 한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유현이었다.

반드시 이겨야 할 경기에서 투입해야 할 불펜투수 두 명을 선택하라면, 망설이지 않고 유현과 정우연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가 생겼다.

거기에 이재왕과 서규영이 새로 필승조에 합류하며 불펜 운영에 계산이 서기 시작했다.

선발투수들의 기복과 오락가락하는 타선은 여전히 숙제로 남았지만, 불펜이 좋아진 것만으로도 팀 운영에 숨통이 트였다.

포수 운용이 매끄러워진 것도 호재였다.

대전 펠컨스의 주전 포수로 낙점된 지석한은 2017시즌까지 고작 30경기에 출장한 게 전부인 젊은 포수다.

리빌딩 기조에 따라 앞으로의 10년을 보고 주전 포수로 낙점하긴 했지만,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더러 있었다.

시즌 초 투수들의 부진은 포수 지석한의 경험 부족 또한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다행히 차영석이 적절한 시기에 1군에 올라오며 지석한은 부담감을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됐다.

또한 지석한은 차영석을 졸졸 따라다니며 틈만 나면 질문을 하고, 포수로서 필요한 기본기를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차영석은 기특한 후배에게 자신의 모든 걸 아낌없이 가르쳐 줬다.

자신의 역할은 주전이 아니라 백업 포수라는 걸, 지석한이 풀타임 주전을 소화할 역량을 갖출 때까지 도와주는 거라는 걸 제대로 인지하고 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당분간 지석한은 외국인투수 두 명과 4년 차 선발투수 한 명, 차영석은 남은 선발투수 두 명과 호흡을 맞추기로 했다.

또한 지석한이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경기라 하더라도 경기 후반 리드 상황에서 승기를 확실하게 굳혀야 한다고 판단되면 차영석으로 교체할 계획을 가졌다.

굳혀야 하는 경기에서는 포수 리드에 일가견이 있는 차영석을 기용하는 게 안정적이니까.

사실 제일 이상적인 건 차영석이 풀타임에 가깝게 시즌을 소화해 주고, 지석한은 찰떡 호흡을 자랑하는 세미 제이슨과 호흡을 맞추며 경기 후반 대타 및 대수비로 들어와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이긴 했다.

문제는 차영석의 체력이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고생했던 데다 나이가 있어 풀타임 소화를 바라는 건 무리였다. 선발투수 두 명을 담당하면서 경기 후반 대수비 및 대타자로 교체 기용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차영석이 1군으로 올라온 이후.

팀은 점차 안정세를 찾아갔다.

그리고 1335일 만에 부산 유니콘스와의 3연전을 스윕했을 때, 안용석 감독은 속에서 짜릿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동시에 확신을 품었다.

‘할 수 있다. 이길 수 있어.’

대전 펠컨스는 서울 레오파즈가 아니다.

화수분 야구.

한 선수의 공백이 생기면 귀신같이 새 얼굴이 나타나 공백을 메꾸는 서울 레오파즈의 야구는, 최근 4년 동안 세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차지하며 그들의 야구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입증했다.

안용석 감독이 원하는 것 또한 서울 레오파즈와 비슷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였다.

문제는 시스템은 하루 이틀 사이 갖춰지는 게 아니고, 선수단의 체질 개선도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란 거였다.

그럼에도 안용석 감독은 페넌트레이스를 넘어 가을야구를 정조준했다.

‘그러려면 역시 유현을……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준비를 하긴 해야겠어.’

* * *

“이틀 동안 불펜 근처에서 코빼기라도 비추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

“더그아웃에서 성대 결절 올 것처럼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바람직한 자세야.”

서울 나인테일즈와의 시즌 2차전에서 10회와 11회를 말끔하게 지워 버린 유현에게 안용석 감독은 이틀간의 휴식을 부여했다.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목요일과 금요일 경기에서는 출전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투구 수가 많지 않았지만 2이닝을 소화했고, 불과 며칠 전에 3연투를 한 선수의 관리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선택이었다.

짜릿한 역전승 덕분일까?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 대전 펠컨스는 3차전에선 1회 말부터 화끈한 공격으로 기선제압을 했다.

테이블 세터 이영우와 정경우가 연속 안타로 출루를 한 상황에서, 서울 나인테일즈의 선발투수 임정규는 강태영을 상대로 승부를 하지 못했다.

패스트볼이 강점인 투수가 계속해서 유인구만을 던졌다. 누가 봐도 정면승부를 피하고 강태영의 방망이가 따라 나오길 바라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강태영은 임정규의 바람대로 방망이를 휘둘러 줄 타자가 결코 아니었다.

칠 수 있을 것 같은 공이 들어와도 꾹꾹 참았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빠지는 유인구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결과는 1스트라이크 3볼 상황에서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는 서클 체인지업을 참아내며 포볼.

-강태영 선수, 아주 살짝 빠지는 서클 체인지업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참아내며 포볼을 얻어냅니다. 대전 펠컨스가 무사 만루 찬스를 잡습니다.

-강태영 선수에게 유인구로 삼진을 잡고 싶으면 공격적으로 투구해야 합니다. 저렇게 도망만 쳐서는 절대 강태영 선수를 속일 수 없어요.

-확실히 강태영 선수는 이런 상황에서 포볼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곤 하죠.

-강태영 선수가 정말 대단한 건 홈런왕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포볼/삼진 비율이 현역 1위라는 겁니다. 뛰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투수가 자신과의 싸움을 피해 간다고 생각될 때면 귀신같이 포볼을 얻어내곤 합니다. 그러다가 카운트를 잡으려고 존 안으로 집어넣으면 쾅! 투수들의 입장에선 악마가 따로 없죠.

그렇게 만들어진 무사 만루의 찬스.

4번 타자 제라드 캠프와 5번 타자 김태성이 풀카운트까지 승부 끝에 연속 2루타를 만들어 내며 스코어는 4대0이 됐다.

2회 말.

하위 타선에서도 3연속 안타가 터지며 대전 펠컨스 타선이 다시 한 번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결국 임정규는 2회를 채 채우지 못한 채 1과 3분의 2이닝 9피안타 1사사구 8실점을 기록하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이후 5회까지 매 이닝 득점을 올리며 점수 차이가 13대 0까지 벌어졌다.

반면 대전 펠컨스의 든든한 1선발 세미 제이슨은 7이닝 2피안타 1사사구 무실점의 완벽투를 선보이며 서울 나인테일즈의 타선을 꽁꽁 묵었다.

최종 스코어는 13대1.

이어진 대구 재규어스와의 주말 3연전에서는 선발투수 앤드류 헤일러가 4이닝 8실점으로 난타를 당하며 첫 경기를 내줬지만, 토요일과 일요일 경기에서는 1점 차 박빙 승부에서 모두 승리를 가져왔다.

그 중심에는 유현과 정우연이 있었다.

믿음직한 셋업맨과 클로저 콤비는 토요일과 일요일 경기의 8회와 9회를 깔끔하게 지워버리며 대전 펠컨스 팬들이 경기 후반을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전 펠컨스도 유현도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유현 개인적으로는 팀의 첫 20경기에서 3승 4홀드를 기록했고, 10경기 동안 16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자신의 반등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결 증명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팀은 20경기에서 11승 9패를 거뒀다.

압도적인 꼴찌 후보였던 대전 펠컨스가 5할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정작 안용석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은 5할 승률에도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시즌은 길고 144경기 중 이제 겨우 20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가을야구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기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시즌 초에 잘 나가다가 여름쯤 돼서 고꾸라진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리고 대전 펠컨스는 이어진 서울 레오파즈 전에서 1승 2패를 기록, 울산 알바트로스와의 3연전에서는 세 경기를 모두 내주며 주간 1승 5패, 시즌 12승 14패로 한 주를 마무리했다.

그즈음.

언론에서는 대전 펠컨스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면 비슷한 어조로 입을 모아 말했다.

올 게 왔다고.

대전 펠컨스가 제자리를 찾아가려 한다고.

거기에 시즌 중 경질된 전임 감독의 광팬들이 대전 펠컨스에 대한 비하를 쏟아내며 주요 기사의 베스트 댓글이 부정적인 내용으로 도배가 됐다.

-펠컨스가 펠컨스 했을 뿐인데 뭐 문제라도?

-꼴닭들 양심 어디 감. 저 전력으로 가을야구 이야기하면 안 쪽팔리냐.

-펠컨스는 꼴찌가 딱이야~

-난 솔직히 올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솔직히 갓동님이 팀 체질 개선하고 기량 미달인 선수들 데리고 2년 연속 가을야구 싸움했는데, 그런 갓동님 경질하고 데려온 게 팀빨에 묻어서 우승한 안용석? 망하는 게 당연함 ㅇㅇ

-응. 아니야~ 느그 갓동님 7위랑 8위 하셨구요~ 투수 8명 수술시켰구요~

-분탕질 작작하고 단체로 사랑방 신문이라도 뒤지지 뭐하냐. 운 좋으면 잘나신 느그 갓동님 사회인야구 감독직이라도 구할 수도 있잖아?

-야. 근데 솔직히 갓동님이 안용석보다는 훨씬 더 낫지 않음?

-응, 아니라고. 그 잘난 갓동님 작년에 26경기에서 7승 19패 했으니까 좀 꺼지라고.

주간 1승 5패.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한 가지 이유만으로 주간 성적이 밑바닥을 찍을 리가 없다.

주말 3연전을 스윕 당한 후 안용석 감독은 이른 아침까지 잠을 청하지 못했다. 팀의 운용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4월 23일 월요일.

몇몇 선수들이 자율적으로 나와 훈련을 했다.

그중에는 저녁에 먹을 음식 타령을 하는 땅의 정령에게 시달리며 묵묵히 러닝을 하고 있는 유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펠컨스타디움에 모습을 드러낸 안용석 감독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선수들을 지켜보다가 홀연히 감독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선발투수 두 명을 내리고, 2군에 있는 투수 두 명을 콜업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두 사람 다 컨디션은 좋습니다. 재형이는 커브와 체인지업의 제구가 많이 안정됐고, 민수는 최고 구속이 149km까지 올라왔습니다.

“고생 많았네. 덕분에 한시름 덜 수 있게 됐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정만찬 2군 투수코치.

안용석 감독은 90년대에 함께 팀을 이끌었던 후배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해설자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정만찬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내려놓고 제안을 받아들여줬다.

그리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2군에서 묵묵히 투수들을 가르치며 1군이 흔들릴 때마다 활력소가 되는 선수들을 공급해 줬다.

1군 투수코치인 송현수가 투수들을 잘 이끌어 주고 있는 것도 고맙지만, 아마 정만찬 투수코치가 없었다면 대전 펠컨스는 12승 14패가 아니라 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정만찬 투수코치가 있어 진심으로 다행이었다.

“아. 그리고 불펜투수 한 명이 필요하네. 지금 당장은 아니고, 7월 이후로 쓸 수 있도록 기량을 끌어올린다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괜찮은 재목이 여럿 있습니다. 원하실 때 올려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해 놓겠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안용석 감독은, 정만찬 투수코치의 도움을 받아 미래를 준비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 * *

유현은 팀이 5할 승률에서 내려가며 12승 14패를 기록하는 동안 단 한 경기도 등판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점수를 많이 뽑거나, 많이 내주거나.

불과 일주일 전까지 이 페이스대로라면 시즌이 끝날 즈음 부상으로 쓰러질 거란 이야기가 나왔던 유현은, 일주일 동안 좀처럼 등판 기회를 잡지 못하고 푹 쉬었다.

덕분에 몸이 근질거렸다.

몇 이닝이건 상관없다. 설사 원 포인트 릴리프라도 좋았다.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지고 싶었다.

‘등판하고 싶다. 격렬하게 등판하고 싶다. 나 혼자서 이닝을 꾸역꾸역 씹어 먹고 싶다.’

-너 이러다 시즌 끝날 때까지 등판 못할 듯.

‘……5할 승률에서 내려왔다고 너무 막말하는 거 아냐? 내려온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아니다! 네 잘못이다! 지고 있으면 대타로 나가서 만루 홈런이라도 쳐야 될 거 아니냐!

‘그럼 다음 보상은 배트를 휘두르면 무조건 만루 홈런이 나올 수 있는 능력을 주던지.’

-후우. 괜찮아. 내 생각엔 광주 앨리펀츠와의 3연전에서 2승 1패, 대구 재규어스와의 3연전도 2승 1패 하면서 주간 4승 2패로 다시 5할 승률을 맞출 수 있을 거야. 나는 믿어, 안용석 감독님 믿어. 사!랑!해!요!펠!컨!스!

서울 나인테일즈와의 3연전에서 자신이 대전 펠컨스의 광팬임을 반쯤 드러냈던 땅의 정령은, 이제는 대놓고 대전 펠컨스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현은 이번 주 경기가 땅의 정령이 말한 대로 풀리기를 바랐다.

4승 2패로 다시 5할 승률에 복귀할 수 있다면 팀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달아오를 테니까.

하지만.

광주 앨리펀츠와의 주중 3연전 첫 경기는 심각한 미세먼지 농도로 인해 취소가 되며 땅의 정령이 말한 주간 4승 2패는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유현은 일주일 만에 등판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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