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편
챕터 17.
-모두가 모인 건가.
성지의 기운이 집중될수록 그는 점차 육체를 버려 갔다.
육체란 한계치가 존재하기에 이는 어쩔 수 없는 일. 많은 자들이 그를 아쉬워하였지만, 막을 순 없었다.
정점에 이른 그가 멈추어 선다면,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어센션조차 멈출 테니까.
그런 그의 주변으로 점차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현재의 마법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낸 베빈. 틈을 열어낼 수 있으나, 열지 않고 테스 옆을 지키고 선 그녀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 몰래, 신계에서 그녀를 채 가려 하였으나 그녀는 끝끝내 자리를 지켜줬다. 그런 그녀기에 가장 믿음직하였다.
그렇기에 다시 전처럼 대하라 말한 테스의 의견을 그녀는 바로 받아들였다.
전과 같은 공손함은 없으나, 다시 친근함이 보이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테스는 꽤 중한 일을 맡겼었다.
-그래. 오랜만이군. 일은 끝마친 건가?
-반쯤은. 이번 일에 있어선 저 지저의 것들도 나서지 않을 거야. 다만 마족은 모르겠어. 협상을 했으나…… 지키는 자들이 아니잖아?
-그쯤이면 되었다.
그가 그녀에게 맡긴 일은 악마가 사는 ‘지저’와 마족이 있는 마계와의 협상.
-후에 많은 걸 요구할 거야. 지저는 신계 일부를 떼어 달라더군.
-얼마든 줄 수 있지. 어차피, 우리 계획대로라면 그게 얼마든 상관없지 않나?
-키킥. 그놈들이 신계 꼴을 보고 나중에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니까.
-악취미야. 그래도 덕분에 협상은 잘 된 거로군.
베빈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결과물을 가져왔다.
다른 자들도 나쁜 결과물들을 가져온 건 아니었다.
-여어. 뭐 그리 말들이 많은 거야? 무슨 재밌는 일이라도?
야만족 비욘.
이젠 야만신의 무너져 내린 신좌를 물려받은 그녀.
그녀가 가져온 결과물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였다. 그녀는 자신들 야만족이 믿는 신으로부터 신좌를 물려받음을 넘어, 미리 준비된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고대에 있던 자들 몇을 깨우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전대의 라그라뢰크에서 패배하였으나, 한때 신좌에 있던 자들. 현재의 신좌를 채우고 있는 자들에게 이를 갈고 있는 그들은, 좋은 지원군이었다.
-흐…… 요즘은 제가 가장 늦는 거 같군요?
관측을 통해 외해를 불러일으키는 그레놀.
제 자신의 수련을 대신해, 그는 관측을 통해 시야를 넓혔다. 넓힌 시야를 통해 힘을 늘린 그는 결국 외해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가 부리는 외해의 짐승들은 일견 신좌보다도 더 거대하며, 강력한 터.
외해의 존재기에 현세에 있음으로 막대한 힘이 깎이긴 한다.
그러나 그 강대함은 이루 말할 필요 없이 강력하기에, 어지간한 하위 신들 정도는 저 짐승들에 의해 먹힐 예정이었다.
-저희도 왔어요. 스승님.
-오랜만이에요.
-정말로 벗어던지는 데 성공했구나.
-덕분에요.
그 뒤로 이어져 오는 프로스와 에나. 이소프, 이튼, 샤널…….
그의 제자였으며, 지금에 이르러선 반신으로 강림한 하위 신들을 무너트리고 격을 올리는 데 성공한 자들이 막 도착해 자리를 차지했다.
* * *
중심에 선 테스. 그 아래로 수십여 명이 자리하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흐으음…….
테스는 저들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왜 아니겠는가.
성지에서 떨어져 내리는 모든 힘을 풀어내며, 성장을 유도하여 끌어 올린 자들 모두가 이 자리에 도착하였으니 흡족할 수밖에.
그의 예상보다 더 많은 자들이 경지에 올라섰으며.
-마이틀도 곧일 거예요.
-플라스도 금방이겠더군요.
앞으로도 더 많이 올라올 터였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분명 그리될 거였다.
그러나.
허락된 시간이 그의 예상보다 짧았다.
-아쉽게도 이 이상은 불가능하겠구나.
-네?
-천계의 것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일을 더 벌일 여지가 없을 건데요?
계속해 밀려나는 천계. 되레 시간이 지날수록, 어센션 성장의 자양분이 되고 있는 것들. 갈수록 힘의 격차가 좁혀져 가고 있기에 안달이 난 그들에게 남은 건 결국 광기였다.
-그래. 그래선지, 신계 자체를 신좌를 유지하기 위한 제물로 바치려 하더구나. 놈들은, 신좌를 빼고 남은 모든 걸 이곳에 털어내려 하고 있다.
-……미친!
그러한 광기가 빚어내는 방식은 하나였다.
차원의 영락!
저 드높은 천상을 땅 아래로 떨구어, 어센션을 부수는 폭탄으로 이용할 생각인 게 분명했다.
-막을 수도 없잖습니까?
-여기선 불가능하지.
그 방식. 테스가 신계로 다시 올라가지 않는 한은 결코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계가 이곳 차원에 제한된 힘만 사용할 수 있듯이, 테스 또한 저들 천계에 사용할 수 있는 힘에는 제한이 있으니까.
수많은 힘을 보내 천계를 괴롭힐 수 있을지언정, 저들이 본격적으로 벌이는 일을 막는 건 분명 한계가 있었다.
저들이 전력을 다하는 일을 막는 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테스는 어센션을 크게 키워, 천계를 떨어트리려 하였다. 그리함으로써, 천계의 신좌를 전부 영락시키려 하였다.
하나, 천계가 이리 나오면 그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저기 천계에 있는 것들은 자신들이 앉을 신좌만을 남긴 채, 남은 모든 것들을 이 세계에 떨굴 폭탄처럼 사용할 생각이니까.
분리돼 떨어져 내린 차원이 진짜 폭탄처럼 터질 리는 없으나.
-……흉측하게 변하겠군요. 관측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겠어요.
-외해도 쉽게 쳐들어오겠지.
-막장으로 가자는 건가.
그보다 더한 현상이 일어날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악마, 마족, 몬스터. 그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날 터였다. 외해는 당연하며, 어쩌면 여태껏 관측되지 않던 차원들이 들이닥칠 수도 있었다. 그리된다면.
-……신계만 남아서 뭘 하겠다고.
신계는 분명 남을 수 있을 터였다.
그를 대신하여 이 세계는 모든 가능성을 잃겠지. 천계가 벌이려 하는 일들은 분명 그러한 일들이었다.
그를 막기 위해선,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다시 올라가는 수밖에 없겠군요.
저 높은 천계로 다시 올라서는 것.
전이라면 모를까. 성지의 힘을 받아 강해진 지금이다. 다시금 승천을 위한 틈을 벌리는 것 따위, 테스에겐 쉬운 일이었다.
문제는 그 뒤다.
-……불리하겠지.
-패배할 수도요.
영락해 가고 있으나 신은 신이다. 광기와 함께 남아 있는 게 신좌다.
-개새끼도 제 집에선 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인데, 신좌가 있으면 패배는 확실하겠죠.
결국, 노골적이나 확실한 그레놀의 표현대로다.
그러나 이대로 있어도 패망에 들어서는 것이 확실하였으니. 결국 외통수다. 움직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고민했다. 다시금 틈을 열고 테스가 올라가는 것이 맞는지를.
그 이상의 의견을 낸 자도 있었다.
-저도 같이 틈에 들어갈게요.
-저도요!
아직 신좌를 완성하진 못했으나, 그 경지에 오른 자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같이 승천에 들어서길 원하였다.
한 손이라도 보태어, 신좌를 가진 신들과의 싸움에 힘을 보태기 위함.
그러나.
-……그렇다 해도 승리는 관측되지가 않는군요.
이런 식으론 패배가 확정이다. 패배자가 늘어나는 더 큰 패배만 만들어질 뿐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테스는 홀로 생각해낸 방법이 있었다.
-왜 꼭 저들만 차원을 떨어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예?
-무슨 말씀이신지…….
혼란스러워하는 그들에게 테스는 바로 말을 보탰다.
-우리가 어센션 자체를 끌어 올리면 어떻게 될 거 같나?
-……허.
-어센션이란 걸 차원 자체로 끌어 올리자. 그럼으로, 우리는 신좌를 갖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질 수 있을 테니까.
저들과 같은 방식으로. 아니 그들보다 더 강력한 방식을 말하고 있었다.
저들이 차원을 떨어트리기 전에, 먼저 올라선다는 계획!
그의 말대로만 된다면, 승리는 확정이었다.
신좌를 대신할 어센션이 있고.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진법들이 그들의 신좌를 대신하여 힘을 보태 줄 테니까.
문제는 결국 하나다.
-그게 가능할까요?
-차원을 끌어 올리는 게?
어센션을 끌어 올릴 수 있느냐는 것!
다들 말도 안 되는 짓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휘저을 때.
관측으로 지금의 경지에까지 이른 그레놀은 주변을 살폈고, 알게 되었다.
‘가능하다. 몇 번이고 가능해!’
관측의 눈을 지닌 그였기에, 그만이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차원을 끌어 올리는 것.
분명 가능했다. 아니, 가능하게 만들었다.
‘언제부터? 대체…….’
문제는 그걸 언제 했느냐였다.
관측자인 그도 모를 정도로, 은밀히 준비하는 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데, 그게 가능하다는 증거물들이 그 눈앞에 관측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모르고 있던 게 말이 안 될 정도로, 수많은 가능성들이 보였다.
그의 낯빛이 흐려졌다.
‘성좌에 이르렀다 싶었는데도…… 아직 못 따라잡았나.’
새삼, 테스와 자신의 격차를 느꼈기 때문. 어느샌가 따라잡았다 싶었는데, 그는 더 멀리에 있었다.
창백한 낯빛이 된 채로, 그가 물었고.
-가능성은…… 확실해. 설마……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걸 본 겁니까?
-물론!
-허…….
테스는 가벼이 확답하여 줬다. 이 말도 안 되는 짓이 가능하다고. 그럼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격차야 나중에 좁히면 될 일이니…….’
지금은 테스와 자신의 격차 따위를 고민할 시간이 아니었다.
-제 관측이 더해지면 확률은 더 상승하겠죠?
-그러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처음 성지들을 차지하고, 내 계획에 걸맞은 변수들을 만들어낼 때부터 말이야.
-……하 참. 천계를 공격하고, 힘을 비축하는 데만 사용하는 진법인가 했더니, 이런 짓들을 벌일 줄이야. 뭐, 감탄은 나중으로 미루죠.
-승리를 하고 나면 감탄할 시간은 충분할 거니까.
-뭐, 좋습니다. 바로 관측을 시작하죠.
지금은 격차를 느낄 시간 따위가 아닌, 어렵사리 관측된 승리를 향하여 손을 보태야 할 때였다.
그리고 그러한 손을 보태는 자들은.
-베빈. 너도 관측을 도와주도록 해.
-얼마든지.
-에나. 선을 잇도록 하고.
-예, 스승님.
-프로스. 정령계로부터의 협약은?
-이미 되었습니다. 그 대가로 제가 꽤 오래 정령계에 있어야 할 테지만요.
-고맙군.
-아버지에게 안부나 전해 주시죠. 후후.
테스의 옆에 선 모두들이었다.
각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어센션 자체를 저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리기 위하여 힘을 보태었다.
* * *
그리고 그 결과.
쩌저저저적-!
이전에 테스가 만들었던 그 어떤 승천의 문보다도 거대한 틈이 만들어졌다.
그의 영역, 어센션. 그곳을 끌어 올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은 차원문.
-가자.
그 안으로 테스를 포함한 어센션 전체가 격을 올리며 넘어서기 시작했다.
어센션.
에나원, 프로스트, 셀리언, 샤너드, 플라드…….
어센션의 중심이 되었던 도시와 영지들, 그 안에 있던 자들 모두가 차원을 도약하는 데 성공하는 그 순간.
-아아아.
“……해보자고.”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들은 새로운 격을 얻음에 환호를 지르고.
이곳 차원에까지 오기를 자원하며, 따라온 자들은 곧이어 벌어질 전투를 향한 전의를 불태웠다.
쩌어어억-!
차원의 틈을 넘어서 그들에게 보이는 건.
-저들이!
-무지몽매한 것들이 결국 일을 벌이는구나!
자신들의 신좌를 제외하고, 남은 모든 걸 버려서라도 버티려고 하던 추악한 신이라는 족속들. 아니 한때는 영예로운 승천자였으나, 이제 와선 그 누구보다 영락해 버린 한때의 승천자들이었다.
-추악해졌구나.
한때는 아름다웠을 그들의 모습은, 테스의 말대로 악마보다도 더한 추악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한때 그들을 따르던 추종자, 성자와 성녀, 천사, 성도…… 그 모든 걸 버린 것에 대한 대가가 바로 저러한 추악함이었다.
그들은 끝끝내 자신들이 얼마나 추악해진지 모르는 채로.
-죽여라!
-죽여!
이젠 존재치도 않는 제 추종자들에게 명을 하였다.
그러나 이제 와 영락해 버린 그들을 따를 자들이 또 있겠는가.
설사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
-…….
남아 있는 자들 모두 그들을 따를 생각이 없었으니까.
바로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을 버리려던 신들이다. 자신들을 포함한 차원을 침몰시켜, 어센션을 폭파시키는 제물로 사용하려 하지 않았던가.
그런 신을 따를 자들은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영락해 버린 저들에게 남은 건 하나였다.
-이제 낡아빠진 신좌를 교체할 때도 되지 않았나?
추락이다.
자기 자신을 넘어, 제 추종자 전부를 데리고 온 테스에게 당할 추락!
덜덜 떨어 대는 영락한 신들. 테스는 그들을 가리키며 시원스레 명령을 내렸다.
-모두 쓸어버려!
그의 명을 따라 같이 온 어센션의 모든 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가장 앞 열에 존재하는 건, 당연하게도 테스였다.
그는 마지막 한마디를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이젠 정말로…… 내가 나보다 낫지 않느냐?’
되뇜 뒤에 쏘아지는 테스의 속도가 상승하고 있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