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편
챕터 16.
“지원은!?”
오스텔. 의선문의 제3대 제자가 된 지 오래인 그의 외침에 주변이 움찔한다. 그의 목소리에 퍼져 나간 기운이 그만큼 거대했다.
대답은 그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오 분 내로 온답니다!”
“빨리 오라 그래! 다 죽게 생겼다고 전하라고!”
“……방금 들었답니다. 삼 분, 삼 분만 더 버티랍니다!”
“이 망할! 다 뒤지겠네!”
그는 잔뜩 제 불만을 얘기하면서도 제 할 일에 충실했다.
“너, 너 너! 셋은 나 따라서 선두로!”
“명!”
“씁…… 죽을 길을 가자고?”
“어서!”
“알았어!”
셋을 골랐다. 둘은 동기요, 하나는 브리드의 제자다. 의선문 1대 속가 제자가 만들어낸 검파 브리드에서도 알아주는 수재.
‘제 몫은 하겠지.’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결코 약한 자가 아니기에 선택됐다.
그 선택이 곧 죽음을 향하는 길이지만 어쩌랴.
강하기 때문에, 더 무거운 짐을 지는 건 이 전장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셋이 따라붙는 걸 느끼자마자, 오스텔은 속도를 더 높였다.
“죽여!”
-키에엑!
바로 앞. 달려드는 그를 향해 괴성을 지르는 괴물!
콰아아앙-!
입을 쩌억 벌리고, 온몸을 가시로 무장한 그것. 분명 전에 없던 괴물이었으며, 이 전장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새로이 태어나는 변종 중에 하나였다.
그 힘의 기원은.
“이 망할 게 무슨 생명신의 족속이라고!”
생명신 피리엘의 조악한 손길이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그 이전에,
“어쭈, 안 죽어?”
-키이!
“한때 같은 인간이었던 게 신기할 정도다.”
파아앙-!
한때 오스텔과 같은 동족인 인간이었다.
-키이…….
“지겨운 것들.”
쿠우웅.
이전의 전장까지만 해도, 분명 인간이었던 것들. 지금에 와선 몬스터도 악마도 그 무엇도 아닌 개체를 바라보는 오스텔의 눈은 짜게 식어 있었다.
그렇다 해서 멈출 순 없었다.
-키에에엑!
-키이!
“신을 위하여!”
-키키킥. 역시 이곳만큼이나 재밌는 곳이 또 없다니까?
이 전장에 그가 쳐 죽여야 할 적은 넘쳐났으니까. 아니, 넘쳐나게 생성돼 가고 있으니까.
“오스텔! 왼쪽!”
“알고 있어!”
지속되는 전장에 피로감을 표출하기보단, 그 시간에 적을 죽이는 게 남는 장사였다. 한 번이라도 더 휘둘러, 전장이 빠르게 종료돼야 쉴 시간이 조금이나마 생겨나니까.
‘대체 이 망할 전장은 언제 끝나는 건지…….’
후우웅-!
그렇기에 그는 끝없이 창을 휘둘렀다.
장로가 된 지 오래면서도, 사형이라 불러 달라는 테론. 그로부터 배운 창술이 전장에 쉼 없이 펼쳐진다.
창이 초식에 따라 선을 그릴 때마다, 적의 몸에도 선이 그어진다.
파아앙-!
-킥…….
그럴 때마다 적이 쓰러져 나간다. 그러나 동시에 들어차는 적들이 있었으니.
스스스스-
“지겹지도 않나!”
죽은 자가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이미 죽었던 시체가 서로 합하여지며, 새로운 육체를 구성한 괴물들. 전장에 휘도는 힘이 다할 때까지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적은 죽여도, 죽여도 다시 깨어난다.
이러한 상황을 막을 수 있는 건 하나.
의선문의 1대 제자라 할 수 있을 자들이었다.
테스의 말로 흔히 화경을 넘어 현경에는 도달했다 하는 그들이 와서야 이 일대를 정화하는 게 가능했다.
그들 정도 수준이 돼서야 신의 힘이 깃든 이 전장의 기운을 씻어낼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대체 언제 오냐고!”
“지금이다.”
“헛……!”
버텨 낸 지가 2분. 1분은 더 버텨 내야 한다 여겼는데, 기대치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삼키는 오스텔의 어깨를 상대가 두드려 왔다.
“고생했다. 지금부터는 쉬도록 해라.”
“플라스 님. 저라도 손을 보태겠…….”
1대 제자 플라스. 외공을 중점적으로 익혔던 그는 오스텔의 답조차 듣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쫓을 수조차 없었다.
한 걸음으로 시작된 그의 몸은 어느새 전장 한가운데 도달해 있었으니까.
‘……언제!’
오스텔은 일순간 그 움직임을 놓쳤다.
같은 의선공을 기반으로 한 자의 걸음걸이라 하기엔 그 격차가 너무도 컸다. 얼마나 넓고, 깊은 격차가 있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놀람은 거기서 멈출 일이 없었다.
“흐으음…….”
전장 한가운데서, 주변을 살피던 플라스. 그가 주먹을 휘두른 순간 거대한 풍압이 전장을 휩쓸었다.
후우우웅-!
“읏…….”
-키이익?
불어닥치는 거대한 바람!
일개 인간이 만들어낸 풍압이라기엔, 거대한 그 바람에 기운이 실렸다.
실린 기운의 주인은 플라스!
외공을 대성함을 넘어 내공까지 넘보고 있는 그의 기운들이 원하는 바는 하나였다.
신에 먹혀 버린 일대의 정화.
거대한 기운이 주변의 기운을 살라먹기 시작했다.
-크르륵!
신의 기운들이 그 기운에 대응코자 형상화된다.
곧바로, 피리엘의 형상을 한 기운들이 그의 기운에 대응했다.
와즉-!
바람을 잡아먹고자 휘둘러지는 피리엘의 손길들.
그러나.
바람은 잡을 수 없는 법이었다.
그것이 설사 기운이라 할지라도, 바람의 속성을 머금고 형상화된 이 순간.
“소용없는 짓이야.”
샤아아아아-!
피리엘이 만들어낸 거대한 기운은 주변을 잡아먹었다.
* * *
피리엘의 기운이 잠식한 북서부. 한때 제국의 영지가 자리해 있던 그곳에서의 전투가 끝이 났다. 남은 건 수습이었다.
“하윽…… 하…….”
“조금만 참아. 곧 사형들이 오니까.”
“크으윽…….”
살아남기만 하였다면, 죽지는 않을 거였다.
“여깁니다! 어서요!”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형들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의선문에서 의원직을 맡고 있는 사형들이 있는 한, 목숨줄만 있다면 죽음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스스스-
주변엔 계속해 몇 개의 기운이 떠돌고 있었다.
하나는 그들이 익힌 의선공과 비슷한 기운. 또 다른 하나는 선천진기라 명명해 놓은 기운들이었다.
샤아아-
“흐으…….”
“성소의 기운이 도달했다.”
이 둘의 기운이 전장을 감싼 지 오래다. 저 멀리 있는 스물 성소 중 하나가 작용한 거다.
성소의 기운이 빠르게 떨어져 내리던 그들의 기운을 다시 차오르게 하고 있었다.
부상자의 몸이 절로 회복됐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중상을 입은 자들. 그들조차도 절로 회복이 될 정도였다.
기운으로 되지 않는 치료는.
“기혈부터 제대로 잡아줘. 세밀하게 잡지 않으면 후유증이 있을 수 있으니까.”
“이쪽은 내장부터 자리를 잘 잡아줘야겠는데.”
“이야. 크게 당했구만.”
먼저 나선 의선문 의원들이 처리를 하였으니, 더 많은 자들이 죽을 일은 없었다.
‘빌어먹을…….’
다만,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오스텔로선 신물이 날 뿐이었다.
그는 제 손에 쥐어진 연초를 쭉 빨아대며, 부관으로 있는 제 사제에게 물었다.
“오늘도 얼마나 죽은 거냐?”
“이백서른하나요.”
“빌어먹을. 많이도 죽었구만. 플라스 님이 왔는데도 그리됐다고?”
“오늘따라 사납게 달려들었으니까요. 알잖습니까? 제국 북부로 갈수록 신이란 족속들의 힘이 더 커지고 있는 거. 그만큼 반항도 커지고 있는 거죠.”
“……빌어먹을 것들. 저런 거나 만들어 대는 놈들이 무슨 신이라고.”
다 피운 연초를 지르밟는 오스텔. 그의 시선은 부산물로 취급되어 치워지고 있는 적병의 시체로 가 있었다.
‘빌어먹을 족속들…….’
적병들.
한때는 인간이고, 지금에 이르러선 강제로 신의 힘을 주입받아 괴물이 되어 버린 것들.
그들은 원해서 그리된 것도 아니었다. 광신도가 넘치던 성국과 달리 제국은 되레 신을 믿는 자가 드물었으니까.
그저 강제로 그리 당했을 뿐이었다.
제국의 신민들을 보호해야 할 오대 공작은 신이 보낸 하위 신들의 강림에 잡아먹힌 지 오래. 그 위에 있는 황제조차도 무얼 하는지 황궁에서 나서지 않고 있었으니까.
‘갇혀서 겨우 버티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겠지.’
테스를 제외하고 한때는 인간 중 최강이라 일컬어지던 황제.
그런 그였으니, 신에게 잡아먹히지는 않았을 거다. 다만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겠지.
문제는 그거다.
제국이 신들에게 강제로 잡아먹혔다는 거.
그리고 그러한 신들이 원하는 건 어센션의 패망이었기에, 끊임없이 쳐들어오고 있단 거다. 그러니 오스텔로선 신물이 날 수밖에.
“그래도 여기는 그나마 사정이 낫잖습니까.”
“이게 낫다고?”
“남부는 더 난리랍니다. 거긴 어인종이 지랄났잖습니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네.”
하기야, 사제의 말대로 북부의 괴물들이나 상대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남부의 어인종들.
남부에 존재하는 작은 소국들을 잡아먹고 움직이는 그들은, 타락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 자체가 타락한 자들에 의해 빚어진 것들이었으니까.
그들을 빚은 건 다름 아닌 마족과 악마!
“신이란 것들이 제 놈들이 가장 혐오하는 마족이랑 계약이나 하고, 아주 말세란 말이지.”
“키킥. 왜 아니겠습니까?”
“대체 뭔 거래를 한 건지…… 쯧.”
자신들의 위상과 신좌를 지키고자, 신들은 저 지저와 마계를 전부 끌어들였다.
어떤 거래를 했을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걸 바라본다는 그들의 주군, 테스.
그조차도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모종의 거래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대가가 어마어마할 것은 분명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세계의 절반쯤 넘겨준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겠지. 빌어먹을 것들이, 여길 살아가는 건 분명 우리인데 주인 행세는 지들이 다 한단 말이지.”
“본래부터 그런 놈들이지요.”
대륙의 절반. 어쩌면 그 이상을 넘길지도 몰랐다.
알려지기로, 신들은 저들이 가진 신좌를 지키기 위해선 그게 무엇이든 감수하는 것들이니까.
‘라그나뢰크가 싫어서 주군을 떨궜다면서…… 지금 이 꼬라지가 라그나뢰크지 또 뭐야.’
덕분에 이 세계서 살아가는 이들이 처절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저들은 테스의 어센션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테니까.
그나마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들으셨습니까? 그 아르펠이 드디어 쓰러졌답니다.”
“오. 그래? 누가? 어느 분이?”
“에나 님이라고 하시던데요.”
“허! 그분이? 프로스 님에 이어서 두 번째로구만…….”
강대한 신의 힘만큼이나, 그에 대응하는 어센션도 점차 강대해져 가고 있었다.
의선문의 1대 제자. 베빈을 포함한 마탑의 원로, 관측자…….
어센션의 수많은 강자들이 점차 강자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었다.
“에나 님이라면 정말로 프로스 님에 이어서 테스 님의 뒤를 따르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분명 그리되실 겁니다. 그리고 그리되신다면…….”
“……신좌를 차지하고 선 놈들보다, 이 어센션에 승천의 경지에 오른 자가 많아질 수도 있겠지.”
승천. 지금에 이르러선 신이 될 수 있을 방법이라 널리 알려진 길.
오스텔은 꼭 그 자신이 아니더라도, 승천에 이른 자들이 많기를 바라였다. 그리해야만.
“몇 명이나 더 오르면 이 빌어먹을 전투가 끝날 수 있을까?”
“곧 아니겠습니까? 정말로 곧이요. 에나 님에 이어서 몇 명만 더 가게 되면…… 그때는…… 저희가 분명 더 많을 거니까요.”
저 신계를 압도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분명 있었다.
“그 전에 신계가 나설 일은 없는 거고?”
“으음…….”
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선 뭐든 하는 신들이지 않은가.
그들이라면 더 많은 자들이 승천에 이르기 이전에, 또 어떤 일을 벌일지 몰랐다. 저 멀리 외해에 있는 것들까지 데려올 수도 있는 게 그들이 한때 모시던 신들이었다.
“……외해라. 그리되면 정말 끝도 없는 전쟁일 건데.”
“그렇겠죠.”
그때는 정말로 끝이 없다. 꿈이나 희망 따위를 말할 것도 없이 끝.
제발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오스텔. 그 옆에 있는 사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바랐다.
“그 전에 무슨 수라도 내주시지 않겠습니까?”
“빌어먹게도, 어서 내주셨으면 좋겠군.”
그 테스가 무슨 수라도 내주기를. 이 지루하도록 이어지고 있는 전쟁의 끝을 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기를!
‘제발 부탁합니다요. 제발!’
그런 그의 바람이 들리기라도 한 것일까.
저 멀리서 힘을 비축하고 있던 테스.
-때가 되었다.
그가 마지막 수단을 위해서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