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8편
챕터 13.
성지를 구축하고 있을 그 힘이 사라짐에 무너져 내려가는 성지.
달리 이야기하면 유지를 위한 힘을 채워주기만 한다면, 성지는 계속해 존재한단 의미였다.
스스스-
그렇기에 테스는 제가 지닌 힘 중 일부를 이 성지 앞에서 꺼내들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성지가 다시 만들어지고 있잖아요!”
“그걸 원하는 거다.”
그의 기운을 받아들인 성지가 다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찬란하기만 했던 신전이 세워지고, 결계는 저 끝에서부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이를 부수기 위해 몇 달을 노력했던 에나로선 당황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테스는 그녀의 당황을 뒤로한 채로, 계속해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했다.
기운을 크게 끌어올려 주입하는 한편.
‘옳지. 이 녀석, 이게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빛의 신이 심어 놓았을 성지의 의지. 여태껏 살아남아 버티고 선 의지와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성지는 그의 힘을 받아들여 빛으로 변환. 다시금 성지를 일으키는 데 사용하고자 하였다.
반대로 테스는 성지에 계속해 힘을 주입하면서도, 한 가지 꾀를 몰래 심어 넣었다.
‘빛이라고 다 같은 빛이더냐.’
그 한 가지 꾀는 단순하나 교묘했다.
겉으로 봐선 쉽게 주도권을 뺏기는 듯 보이나, 그 안엔 여전히 그가 만들어낸 새로운 의지 중 하나가 숨 쉬고 있었다.
수호자!
그가 이전에 만들어낸 새로운 종족. 그들이 지닌 의지 중에 하나를 몰래 숨겨 놓은 것이다. 본래라면 쉽지 않은 일일 터였다.
그러나.
‘네놈들이 전장에서 계속해 저주를 내린 덕에, 힘에 대한 이해는 충분히 했단 말이지.’
지난 성국과의 전투에서 빛의 신이 지닌 힘 따위 이해한 지 오래인 테스였다.
즉, 적인 성지가 지닌 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단 의미. 그런 그이기에 작은 의지를 몰래 심는 건 일도 아녔다.
쯔으윽-
그의 의도는 눈치채지도 못하는 채로. 성지에 남은 의지는 게걸스레, 지금이 기회인 양 그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일부러 내어주는 건지도 모르는 채로.
점차 점차 스며들어 간 힘들.
이전의 성지를 구축하기 위해 있던 힘보다도 더 많은 힘들이 성지에 차올랐다.
화아아악-!
그러자 결계는 다시금 일어났고.
신전은 전보다 더 휘황찬란하게 변하였으며, 동시에.
드드드득-
-침입자를 처단한다.
성지를 수호하기 위한 전대의 병기들이 몸을 일으켰다.
신의 힘으로 빚어서 만든, 성지의 수호자들이었다. 테스가 만들어낸 것과 별개로 만들어진 최강의 병기 중 하나!
그 위용과 힘만 놓고 보자면, 어지간한 영지 몇 개는 쉽게 쓸어버릴 힘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둘 중 누구도 겁을 먹진 않았다.
“으아…… 겨우 부숴 놨더니!”
“이야, 내가 만들어낸 수호자랑 비슷한 게 존재하긴 했구나? 다만, 너무 구식이야.”
되레 그걸 보고 품평하거나, 처리할 게 늘었다고 귀찮아할 뿐이었다.
“어떻게 좀 해 보세요, 스승님! 이것도 바로 수련용으로 쓰라고 할 건 아니죠?”
“흠. 수련용이라. 꽤 쓸만은 해 보인다만, 지금은 그럴 시간까지는 없지. 걱정 마라, 이번은 내가 처리해 주마.”
후우우웅-!
성지 수호자의 주먹이 날아듬에도, 둘의 태도는 여전했다. 둘 모두 피할 생각은 않은 채로, 그 주먹을 바라볼 뿐이었다.
에나는 그런 테스를 믿고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 상황을 만들어낸 테스는.
“됐다!”
제가 의도했던 바를, 순식간에 펼쳐냈다.
우뚝!
그의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날아들던 성지 수호자의 주먹이 멈췄다.
드드드득-
-크읏…….
성지 수호자의 의지는 아니었다. 성지 수호자는 급작스레 멈춘 반동으로 인한 타격에 신음을 했을 정도다.
성지 수호자는 여전히 그를 적대시하고 있었다.
우우우웅-!
그에게 힘을 보태는 성지도 같은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단지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할 뿐이었다. 그 이유.
-대, 대체 무슨 짓을…….
“무슨 짓이라니. 재밌는 일을 한 거지. 너 뭔가 안에서 느껴지는 게 없나?”
-헛소리라면…… 어엇…… 큿…….
“이제 먹혔구나. 후후.”
테스가 부린 수작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
“이겨낸다면, 내 이 성지를 인정해 주마. 한번 버텨내 보라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전에 있던 전장에서 죽은 수호자 녀석 중 하나. 그놈의 의지를 심어 줬을 뿐이다. 이 성지를 완벽하게 장악하라고 말야.”
“……그냥 부수는 게 아니라, 끝까지 뜯어먹겠다는 게 그런 의미였어요? 이 성지조차 완벽히 뺏겠다는 의미?”
“아무렴! 적이라면 그 피와 살은 물론이고, 흔적까지 다 뜯어먹는 게 정석이지 않겠느냐?”
“으으……. 하여간 지독하시다니까요.”
결국 그의 의도는 성지의 완벽한 장악!
질린 표정을 짓는 에나. 그런 에나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는 테스가 있는 평온함 가운데서도, 성지의 내부는 쉼 없는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커어어억……. 아, 안 돼!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수호자였다. 수천 년 넘도록 이어지던 의지가 무너져 내렸다.
쿠우웅.
뒤이어 그의 육체가 스러지기 시작했다. 꽤 오랜 세월을 격하고 일으킨 몸이 가루가 되며 사라져 갔다.
“이야. 저건 아까운데. 연구할 거리가 넘치는 녀석이었단 말이지.”
테스가 사라져 가는 성지 수호자의 몸을 보고 혀를 찰 무렵.
우우우웅-!
성지 내부에서의 다툼도 끝을 고하고 있었다.
그 결과.
-주인이시여…… 명을!
“이겨냈구나? 후후.”
테스가 성지에 밀어 넣은 의지의 승리였다.
수천 년은 똬리를 틀고 있었을 성지의 의지를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수호자의 의지가 무너트린 것이다.
테스의 수작이 들어가 있다 해도, 이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 터!
‘만족스럽구만.’
그걸 알기에 테스는 오랜만에 환하게 웃음을 지었고.
스스스스-!
그를 기다렸다는 듯, 성지에 남은 모든 기운들은 반전했다.
반전된 모든 기운.
본래 빛을 머금고 있어야만 할 성지의 기운을 완벽히 탈바꿈시켰다.
빛이 아닌 다른 힘으로.
“……스승님의 것과 완벽히 비슷하네요?”
“그러라고 만들어낸 것이니까.”
바로 테스의 힘으로 물들어 있었다.
빛의 신이 지녔던 힘은 티끌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음을 느낀 그.
그는 곧바로 다음 단계를 행했다.
-이곳을 나의 성지 중 하나로 선포한다!
그것은 승천에 성공한 그만이 내릴 수 있는 신언(神言).
이 세계서는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선포 중 하나였다. 현재 땅에 떨어져 내린 신은 오로지 그뿐이었으니까.
화아아악-!
그의 선포가 끝남과 동시에, 성지는 완벽히 그의 것이 되었다.
다른 신이 와 다시 성지를 빼앗지 않는 한은, 영원토록 이곳은 그의 성지 중 하나가 될 터.
“축하드려요!”
“이제 막 한 단계 성공했구나.”
테스는 만족스런 눈으로 제 성지가 된 이곳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런 그를 향해 진심으로 축하해 오는 에나.
만족스런 시간은 단 몇 분으로도 충분했다.
“자, 바로 다음으로 가자꾸나.”
“엑? 그 무슨…….”
“남은 성지가 몇이나 되더냐? 다 가져와야지.”
그는 아직 배가 고팠고, 그 배를 채우기 위한 제물들은 온 곳곳에 넘쳐나게 있었다.
* * *
빛의 신 핀도르가 지녔던 성지. 그곳을 필두로 하여 테스는 남은 모든 성지를 향해서 제 몸을 들이밀었다.
-……선포하노라!
-이곳의 수호자들을 전부…….
-다시는 전쟁의 신이 발을 디디지 못하도록 그 안을…….
성지 온 곳곳에서 그의 선포가 울려 퍼졌다.
전대 신이 지녔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의 것으로 채우는 건 시작일 뿐이었다.
때로는 수호자 여럿의 의지를 심어, 성지 안을 지키고 있던 성지 수호자의 육체를 뺏기까지 했다.
적이라 할 수 있는 신들의 이 세계 남은 잔재들을 손수 지워 버리고 있는 셈이었다.
적들의 반항도 심심찮게 나오긴 했다.
크그극-!
기운을 쏘아 보내는 건 기본.
“부숴라……. 크윽…….”
“신께서 알아주실 거다!”
남아 있는 광신도들을 이용하여 테스가 도달하기도 전에 성지부터 부수려 했다.
그에게 성지를 빼앗기느니 차라리 제 손으로 부수겠다는 독심의 발현!
쿠궁-!
광신도들은 눈물을 머금고, 성지를 제 손으로 파괴했다.
그러나, 성지를 뺏는 덴 이골이 난 테스였다.
“이건 완전히 다 부순 거 아니에요?”
“흔적이 있잖느냐. 이 남은 흔적만으로도 다시 세우는 건 가능해. 성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의미지, 물리적 실체 따위가 아니거든.”
“이해가 가면서도 안 가는 말이네요.”
“이해해야 할 거다. 너도 이를 이해해야, 내 옆에 설 수 있을 테니까.”
“……해 볼게요.”
스스스스-
그는 완벽히 부서진 성지마저도 쉬이 재생시켰다.
“참고로 재생 이후는 내 것으로 삼기 더 쉽단다. 저들로선 나를 저지하려 부순 거겠지만, 되레 날 돕는 셈이지.”
장악은 전보다 더 빨랐다.
그렇게 이뤄진 성지의 장악.
테스는 숨어 있는 성지까지 기어코 찾아내며, 성국 터 곳곳에 흩뿌려진 성지를 전부 제 것으로 삼는 데 성공했다!
그 모든 성지를 완벽하게 차지함으로써 그는 몇 가지 이점을 얻었다.
“다른 신의 힘이 쉽게 내려오질 못하네요.”
“매개체인 성지가 사라졌으니까. 효율이 떨어지는 거지.”
“……반대로 스승님의 효율은 상승하고요?”
“물론이다. 안 그래도 나는 직접적으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데, 그 매개체까지 얻었으니 오죽하겠느냐?”
“영향력 하나만은 최고겠네요.”
“그런 셈이지.”
이 세계에 영향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렸고.
그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온 곳곳에 그의 힘을 퍼트리는 게 가능하게 됐다.
스스스스-
어센션의 영역과 더불어 온 곳곳에 그의 힘이 퍼져 나갔다.
이는 저 위에 있는 신들의 힘이 내려옴을 방해함과 동시에, 그 아래에 있는 인간들에게 한 가지 도움을 주었다. 그건.
“가, 각성인가?”
“또!?”
바로 각성이었다.
그의 힘이 곳곳에 퍼져 나가며, 안 그래도 널리 퍼지고 있던 각성을 촉발시켰다. 대범람, 마계 침공에 이어 테스의 힘이 더해지니 너무도 당연했다.
그러한 각성을 이룬 자들이 자연스레 어센션을 향하도록 유도하는 그였다.
여기까지는 그가 성지를 얻음으로 생긴 이점의 잔가지 정도.
그가 애써 시간을 들여가면서 성지를 차지한 이유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준비되었다는데요?”
“가자꾸나.”
영지 어센션의 중심. 어센션에서 처음 수확제가 열렸던 그곳에 그는 전에 없이 거대한 비를 세워 놓았다.
일견 오벨리스크라 불리는 것과 비슷한 비는 직경만으로 수십여 미터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 안에 오밀조밀하게 새겨져 있는 것들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었다. 마법진과 진법을 섞어 만든 것이었다.
그를 위해 애를 쓴 건.
“……완료했어요.”
“고생했어, 베빈.”
승천 이후 그를 따르기로 마음먹은 베빈.
그녀의 고생이 스며 있었다. 테스 다음으로 진법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그녀. 오직 그녀만이 이 작업을 도울 수 있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이 정도로 새겨 넣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았다.
화룡점정이란 말이 있듯, 아직 마지막 한 단계가 남아 있다.
그 마지막을, 만들어내는 건 테스일 수밖에 없었고.
“자, 끝내 보자꾸나.”
그는 망설임 없이, 제단을 향한 마지막 획을 그려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