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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87화 (186/191)

제187편

챕터 12.

그 누구보다 무덤덤해했다.

“그런가.”

누군가 본다면 건조하다고 했을 정도의 반응.

옆에서 그를 보던 에나가 그의 반응을 보고 놀라 물었다.

“기쁘지 않아요? 적수라 할 수 있는 성국을 보낸 건데요.”

“적수라…… 한때는 그랬지.”

성국이 적수도 되지 못한단 말. 오만하나, 그가 말하기에 오만치 않았다. 실제 그 일을 행하기까지 하였으니까.

성국의 잔재들은 그의 검이 두려워 피하고 있을 뿐이었고.

그 아래에 있던 자들은, 구속구로부터 풀려나자마자 어센션을 향해 오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착취가 이뤄지던 고향 따위는 지긋지긋하다며 움직이는 자가 다수였다.

일반적인 정복자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일.

그러나 테스는 성국이 무주지가 되어가고 있음에도, 되레 전 성국민들의 이주를 도울 정도다.

그 뒤 남은 폐허조차도 수호자를 보냈다.

성국의 흔적조차 지워 버리기 위함이었다. 신정이고, 성물이고 무엇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럼으로 테스는 찬란했던 성국의 역사를 지우고 있었다.

그런 그였기에, 할 수 있는 말.

에나도 내심 수긍했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해도.

뒤이어지는 말에, 그녀는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에 이르러선 적수라 할 만하지 못한 곳이야. 그리고, 진짜 적수들은 따로 있단다.”

“저 위요?”

“아니. 신계는 되레 나를 떨굼으로써 제대로 달려오지 못할 거다. 대신 다른 수를 쓰겠지. 그러자면, 동원할 곳은 하나뿐이지 않더냐?”

“예? 성국이 아닌 다른 곳이라뇨. 도무지가…….”

“당장은 떠오르지 않을 거다. 뭐, 상관없지. 나도 아니길 바라는 일이니까.”

테스는 성국을 다 끝내 놓고도,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말하고 있었다.

성국도 신계도 아니다라.

그렇다면 남은 세력은 대체 무얼까.

‘……제국인가? 그럴 리는 없을 거 같은데. 아니 설사 제국이 나선다 해도…… 지금의 어센션 전력이라면 상대할 만해. 대체 어디지?’

영특한 그녀가 머리를 굴려 보지만, 떠오르는 바는 없었다.

그 어떤 세력과 비견해도 어센션을 이길 자들이 연상되지 않았으니까.

설사,

‘제국을 포함한 남은 모든 왕국이 덤벼 와도…… 상대가 될 거 같은데?’

어센션 외에 그 모든 게 쳐들어온다 해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녀다.

복잡해하는 에나.

그런 그녀가 귀여워 보인 걸까.

테스는 몇 년 전의 둘만 있던 저택에서의 그때처럼,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네가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다. 당장에 모습을 드러낼 것들이 아니거든. 아니, 못한다 봐야겠지.”

“……누가 보면 예측이라도 하는 거 같네요.”

그녀는 오랜만에 느껴진 테스의 손길을 잠시 기꺼워하다가도, 슬쩍 피하였다.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대하는 테스에 대한 반발감일지도 몰랐다.

그러한 반발감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오래전에 깨달은 에나다.

그러나, 인간을 벗어난 지 오래된 그의 앞에서 그 감정을 꺼낼 요량까진 없는 그녀였다. 적어도 그의 곁에 완벽히 설 만한 자격을 갖추기 전까진 그러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녀의 내심을 짐작한 듯한 테스.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그는 자연스레 주제를 바꿨다.

“어쨌건, 적은 걱정하지 마라. 당장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은 다른 데 있으니까.”

“……정말 그 미친 계획을 실행하려고요?”

그 주제.

테스로선 쉽게 말하지만, 그녀로선 감히 상상도 가지 않는 일이었다.

어쩌면 테스가 승천하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

“아무렴. 신이란 족속들이, 황혼이 두려워 신계에 들어서지 못하게 한다면 이 방법밖에 없지 않더냐?”

“될까요?”

“되게 해야지. 저 신계에 내가 올라설 수 없다면, 아예 끌어내려 줘야 하지 않겠느냐. 이 어센션 자체를 더 위로 끌어 올려서라도 말이다.”

“결국 격을 올려서 신계 자체를 뒤바꾸겠다는 거잖아요.”

“그런 셈이지.”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아요.”

“후후. 보면 알게 될 게다.”

신계로 올라서지 못한다면, 어센션을 신계 그 이상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광오한 계획이었다.

그러한 계획을 그는 살풋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아주 가벼이.

‘……도무지가 따라잡을 수가 없어.’

에나로선 이전에 그의 계획을 들었던 그 순간에도, 몇 번이나 들은 지금도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 일.

그러나 그는 그러한 일을 묵묵히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 중 하나를 에나한테 맡겼기에 그는 동시에 그녀에게 묻고 있었다.

“너와 아이들에게 맡겼던 일의 수행은 다 끝났더냐?”

“예. 해낼 수 있었어요.”

임무를 잘 수행했느냐는 물음이었고, 그 답은 긍정이었다.

그 답이 마음에 들었던지, 테스는 크게 웃어 보였다.

“그래? 그럼 같이 가서 한번 확인해 보자꾸나.”

“저도 같이요?”

“꽤 재밌는 구경이 될 게다. 자자, 이리로 오려무나.”

그러곤 상이라도 주듯 오랜만에 동행을 요청했고, 에나는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가 곁에 서자마자.

“바로 가자.”

파앗-

그와 그녀의 몸이 산란하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

* * *

둘이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 성국의 성지가 있던 곳이었다.

열세 명의 신들이 각자 가진 성지. 어센션군에 의해 성국이 무너질 때도, 성지만큼은 튼튼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 신, 각자가 지닌 신성력으로 성지가 보호받고 있었으니까.

테스는 이러한 성지들을 그의 제자들에게 뚫도록 명하였다.

그 자신이 금방 뚫어낼 수도 있으나.

-뚫어 보다 보면 얻는 바가 있을 거다.

한편으로 제자들의 성장을 바라기에 내린 명령이었다.

제자들이 그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해내겠노라고 말하였고, 각기 흩어져 저만의 방식으로 성지 뚫어내기를 시도했다.

에나는 검술로.

프로스는 정령과의 합일로.

이소프는 독을 사용하였고.

또 누군가는 제 피에 타고난 힘들을 사용했다.

테스도 생각지 못했던 방법들이 꽤 나왔다.

그렇게 이어진 몇 달의 시도였고, 결국 성공했다.

“깨끗하구나. 결계가 완벽히 사라졌어.”

“연결을 끊었으니까요.”

“연결이라. 과연. 네 말대로면 연류신공에서 말하는 연(聯)을 다 이해한 게로구나?”

“네. 여기 있던 결계. 꽤 쓸 만한 것들이었어요. 신성력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끊어낸다는 거 자체가 제겐 재밌는 도전이 됐거든요. 끝없이 도전했고, 결국 얻은 거죠.”

“후후. 잘하였다.”

그를 통해 제자들은 성장했다. 저만의 방식을 단련할 수 있었으니까. 에나의 성장도 그중 일부였다.

그는 그러한 성장들이 기꺼웠다.

‘천계를 아래로 처박으려면, 제자들의 힘은 필수지.’

그의 최종 계획에 있어, 제자들의 역할이 지대하기 때문.

최종 신좌에 들어서지 못한다면, 신계와 신좌를 스스로 만들어서라도 입성하려는 그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들어가 보자꾸나.”

“네!”

테스는 폐허가 되어 버린 성지 안으로 들어섰다.

스스스스-

그가 다가가자 그에게 반항하려는 듯 기운이 쏟아져 온다.

최후의 발악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간지러움조차도 되지 못했다.

그는 마지막 남은 기운들을 싸그리 흡수했다.

동시에 안으로 들어서며, 여전히 흔적이 남은 성지를 유심히 바라봤다.

“힘의 잔재를 보아하니, 핀도르의 성지였구나. 과연 빛의 신은 신이란 건가.”

성지를 보호하던 결계는 사라진 지 오래였으나, 안은 여전히 빛이 그득했다.

핀도르가 관장하는 영역은 빛.

빛이 존재하는 한, 이 눈앞의 성지는 언제고 결계를 되찾을 터였다. 그리고 이 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신도들을 찾겠지.

그 방식이 이 세계 신들이 자신의 영역을 키우는 방식이자, 최후까지도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성지가 있는 한 저들이 지닌 이 세계의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렇게 둘 순 없지.’

그렇기에 테스는 저들이 자랑하는 성지를 완전히 무너트리고자 했다.

* * *

그를 위한 일차적인 일.

“저들이 그리 신성하다고 하는 곳인데, 완전히 더럽혀 버리고 싶지 않으냐?”

“으으…… 그거 완전히 악취미라고요. 그래도, 저들이 해 온 게 있으니 나쁘지는 않죠.”

그는 저들 신이 다시는 성지를 되찾지 못하길 바랐다.

“역시 그렇지. 지금부터 잘 봐두거라. 성지를 더럽힌다는 걸 보는 거 자체가 네게는 큰 도움이 될 거니까.”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볼게요.”

“오냐.”

스스스스-

테스는 에나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 기운을 성지 전체에 펼쳤다.

떨어졌으나, 이미 승천자가 된 지 오래인 몸.

그가 기운을 펼친다 하는 건 신이 신성력을 뿌리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아래로 떨어졌기에, 이 세계의 규칙에 갇힌 건 여전하나 상관없었다.

‘능히 뚫을 수 있거든.’

그의 기운이 퍼지자.

투웅-!

그에 화답하듯, 주변의 빛들이 그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반발이었다.

성지에 빛이 아닌 다른 힘이 물드는 것을 막기 위한 반발.

화아아악-!

“어쭈?”

저 높이서도 그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아래로 신성력이 뚫고 내려오기까지 했다.

다른 어떠한 곳보다도 신의 힘이 잘 먹히는 게 성지. 그 힘을 투영하는 것에 대한 대가조차 적기에 내려오는 힘은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멍청이들. 너희는 나를 내려오게 한 거부터가 잘못이라고.”

저 멀리 신계에서 힘을 투사하는 것보다, 바로 이곳에 머물며 힘을 투사하는 게 더 강한 게 당연하지 않은가.

설사 그 힘이 신이 지닌 힘 중 상위라 칭해지는 빛의 힘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투아아앙-!

테스는 급격히 기운을 끌어올려, 아래로 내려오는 빛을 막아섰다.

그러며 동시에, 이 성지 안에 남아 있는 빛을 빨아들였고. 빨아들이고 제 육체에 들어온 기운을 제 ‘군위’의 기운으로 화(和)하게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일순간!

빛의 신 핀도르의 기운을 성지에서 전부 소멸시켰다.

그그그긍-

성지를 지탱하던 기운이 사라지자, 결계가 무너짐에도 여전히 버티고 서 있던 성지가 무너져 내려갔다.

쓸모를 다했으니, 사라지려 하는 것.

“어딜, 그리 쉽게 가려고.”

그러나 적이라 판단되면 설사 신이라도 모든 걸 남김없이 먹어 치우는 게 테스였다.

베빈이 예상하기로 그가 신좌를 가지게 된다면 그건 ‘군위’가 아니라 ‘탐욕’일 거라 장담하기까지 하던 그이지 않은가.

그는 제 게걸스러움을 표출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기에.

“갈 때 가더라도, 제대로 뜯어먹히고 갈 순 있잖아?”

그는 성지를 부서트림을 넘어, 곧바로 한 발자국을 더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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