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편
챕터 11.
처음 균열을 넘었을 때.
‘……해냈다. 내가 해냈단 말이다. 전생의 나란 놈아.’
테스는 전에 없던 희열을 느꼈다.
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해진 지 오래지만, 그 순간만은 제가 느끼는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균열을 넘는 이 순간이. 그에게 있어 최종 종착지였으니까.
지금에 이르러, 수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승천을 통해 도달한 이곳이 최대 목표란 사실만은 달라질 이유가 없으니까.
“후으읍…….”
그렇기에 테스는 균열을 넘어 도달한 그곳에서, 처음 태어난 아이처럼 가쁜 숨을 쉬었다.
승천 후 도달한 곳.
흔히 천계라 불리는 그곳의 기운을 여실히 느껴 보기 위함이었다.
쓸데없는 일은 아니었다.
스스스스-
숨 한 번에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막대한 기운!
전생에서도, 현생의 이 세계서도 느끼지 못할 만큼 거대한 기운들이 안에 들이찼다.
‘과연……!’
진법 따위로 끌어올릴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이곳은 수준 자체가 달랐다.
‘이 정도라 이거지.’
삼류 심법을 익힌 무인이 와서 무공을 익혀도, 최상승의 심법보다 나은 결과를 가질 곳이리라.
말 그대로 신지(神地)다.
하나, 승천에 이른 지금 그러한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쉼을 반복함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느껴졌다.
‘……저절로 들이차 오르는구나.’
이 세계의 생경한 지식, 저 아래 그가 승천해 온 세계에 관한 시야, 그가 관장하게 될 영역에 대한 이해…….
수많은 것들이 그가 가만히 존재함에도 저절로 들이찼다.
신계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하였다.
오래도 걸리지 않았다. 잠깐의 순간이었으면 되었으니까.
크고 굉장한 희열을 느꼈으나, 이 순간조차도 그에게 있어선 짧은 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을 여실히 즐긴 테스.
그는 그제야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본 건.
“……이 망할 놈들이?”
최악의 결과였다.
* * *
“알아듣게 설명을 해!”
그 최악의 결과로 알게 된 건, 하나였다.
땅에 다시 떨어져 내린 직후, 테스는 그 진실을 가감 없이 전하였다.
“이 빌어먹을 신들은 더 이상 승천을 받을 생각이 없다. 단 하나만 더 채워져도, 신좌의 모든 자리가 완성되거든.”
“……뭐? 그게 무슨 의미인 건데.”
그 답, 신좌의 완성.
완성을 하게 되면 그 이후는 한 가지를 말하게 된다.
“이미 이전에도 한 번 일어났던 일이지. 현재의 신들이 있기 이전, 고신들의 사라짐. 그게 무슨 의미인 거 같냐?”
“……라그나뢰크. 빌어먹을. 결국 그 때문이었어?”
라그나뢰크.
신들의 황혼. 대전쟁. 신의 끝. 종말…….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표현되는 말.
테스에게 있어선 그 어떤 의미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래. 모든 게 채워지면, 비워지는 때가 오는 게 순리인 법이니까. 녀석들은 다 채워졌을 때가 두려운 거다. 그때가 자신들이 비워질 때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승천을 막는 거지.
라는 말까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굳다 못해 찡그려져 있는 베빈의 표정이 이 상황을 여실히 이해했음을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이후, 그녀의 표정은 절망으로 물들어 갔다.
평생.
아니, 다른 평범한 이였다면 몇 번의 삶을 살 만큼 오랜 기간 승천을 염원했던 그녀다. 승천에 대한 바람만큼은 그녀가 테스 이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삶을 마탑에 기꺼이 묶었었던 것이고.
다른 승천 예비자에게 그 어떠한 대우를 받더라도 괘념치 않았다. 그 어떤 편법을 써서라도 올라가려 했을 뿐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어느 순간 자신도 잊었다 했지. 어느 순간부터는 집착이었고, 또 어느 순간은 감옥처럼 갇힌 상황을 풀기 위해서라 했던가.’
그게 단지 집착에 의한 발로라 할지라도, 그 오랜 시간 그녀가 전념을 다했다는 사실만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테스는, 승천 이후 떨어짐으로 인해 온몸에 탈력감이 느껴지는 와중에도 그녀의 감정을 같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테스는 넋 놓고 절망만 느낄 생각이 없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기에 그는 한 발자국 더 나갈 방법을 그녀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저 위로 승천하지 않아도, 승천할 방법은 충분히 있으니까.”
“……말장난이라면 하지 마. 평소처럼 받아줄 상황도 아니니까.”
“아무리 나라도 이 상황에서 말장난을 할까. 어설픈 위로도 할 생각이 없어. 알잖나?”
“대체 무슨 소리야?”
“저 위로 올라갔더니 보이는 겁쟁이 신들이 한 가지는 생각하지 못했더라고. 신좌를 채운단 건 단지 그 자리에 가서 앉는다는 의미가 아니거든.”
“설마…….”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 설마다. 신좌를 채운단 건, 단지 승천자 하나가 존재함으로 끝이다. 그리고 나란 녀석은 분명 올라가 승천을 했지. 그게 뭘 의미할 거 같냐?”
“……놈들이 기어코 막으려고 했던 신좌가 다 채워졌다, 인 건가. 하지만 넌 결국에 떨어졌잖아? 그럼 승천의 실패가 아닌가?”
“아니지. 승천은 곧 신좌를 차지하여 신이 되는 것. 그 자리를 완벽히 얻지 못했다 해도, 내가 얻은 건 분명 신성이었다. 반쪽짜리라 할지라도 말야. 그런 나를 놈들은 온 힘을 다해서 이 땅으로 다시 떨어트렸지.”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이 부분만은 이해를 못 한 건가. 그녀의 표정이 다시 찌푸려진다.
테스는 그녀의 그런 표정에 상관치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뒤의 말이었으니까.
“놈들은 온 힘을 다해서, 날 땅 아래로 끌어 내렸지. 제 놈들이 아끼는 신성력을 미친 듯이 쏟아부어서 말야. 그건 신성을 얻어간 내게 있어서 분명 추락이야. 하지만 말야.”
스스스스-
테스는 저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서도, 끝끝내 보관하고 있던 작은 씨앗의 기운을 꺼내 들었다.
“……어?”
작은 씨앗이라 했으나, 그 힘의 크기는 그 어떠한 마법사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
한 인간이 가지기에는 너무도 귀한 것이었다.
그 힘이 지닌 존재감!
가까이 있는 베빈을 넘어, 이제 막 다시 반항을 시작하려 하던 성군의 병사들에게조차 느껴질 정도의 것이었다.
떨어져 내린 테스가 끝끝내 삼키고 온 작은 신성!
그만을 위해 준비되었던 신좌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하나, 신들이 끝끝내 주지 않으려 했던 그것을 그는 분명 가지고 떨어져 내렸다.
그 의미는 하나였다.
“땅에 떨어져 내리고도, 신성을 가진 존재를 단지 추락했다고 볼 수 있을까? 보통은 신성을 지니고 이 땅에 내려온 자에게 성서에서 하는 말이 있지 않아?”
“……강림.”
“그래. 바로 그거다. 거기에 답이 있어.”
그리고 그 답의 의미를 그녀와 그는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강림. 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이는 달리 이야기하면.
“고대의 성서에서는 신이 강림하여, 세상이 처음 시작되었다고 말하더라지? 까짓것 우리가 못할 게 뭐겠냐?”
테스는 제 손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그러곤 말을 이었다.
“저 위에 있는 것들이 초라해질 정도의 것으로 이곳을 바꿔 버리면 되는 이야기지. 신계보다도 더.”
“……그게 가능한 일이야?”
“불가능하다면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
이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거라면 가능하지.’
그가 신의 힘을 가져온 지금.
어리석은 머저리 신들이 테스의 힘이 아닌 제 힘들을 소모하여 테스를 아래로 떨궈낸 지금은 가능했다.
신이 강림하는 데 필요한 모든 힘의 소모는 그들이 하였고.
‘……나는 내 신좌를 품고 오는 데 성공했으니까. 그리고 이 신좌의 의미는…….’
그가 가진 신좌, 승천에 성공했을 그가 가진 자리의 의미는 다름 아닌 ‘군위’였으니까.
그 모든 걸 이해한 그와 그녀.
다른 모든 자들이 넋을 놓고 있는 가운데서도, 둘만큼은 진실로 웃을 수 있었다.
“……그럼 내가 어디서부터 뭘 도와주면 되는 거지? 아니 뭘 하면 되겠어요? 명만 내려주시지요.”
“낯간지럽게 굴기는. 그래도, 명은 내려야겠지. 제대로 만들려면 말이야. 우선은…… 그래.”
테스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새로운 걸 만들어내려면, 이전의 것을 치워야 할 테니. 저기 남은 저것들부터 쓸어버리도록 하라고.”
테스가 가리키는 방향엔, 이 상황을 이해 못 한 채, 그가 드러낸 신위 일부에 놀라 절망하고 있는 성군의 잔재들이 있었다.
드러난 균열 사이로 올라서던 테스에게 절망하던 그들.
테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음에 희망을 가졌었으나, 그가 드러낸 힘에 절망은 더 커져 있었다. 그들을 가리키며 테스가 내린 명은 하나였고.
“명대로. 바로 실행하죠.”
그 명을 수행하기 위한 자들은 테스의 주변에 여전히 넘쳐났다.
* * *
수많은 뜻을 가진 군위.
‘다중적이기에 더 위력적일지도 모르지.’
그 와중에 지닌 뜻의 하나, 군대의 위력(軍威)이었고. 그 위력은 그를 따르는 어센션군에 의해서 가감 없이 드러났다.
특별한 축언과 축복이 없이도 전에 없이 전력이 상승했다.
“쓸어버려.”
그가 만들어낸 수호자들은 그가 완벽한 신위를 얻고 난 이후에, 인공적 생물체가 아닌 하나의 종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신의 뜻대로.
종으로 인정받으며, 저마다의 의지를 지니게 된 수호자들. 그들은 각각의 개체가 되었음에도, 동시에 하나만은 여전했다.
테스를 향한 충성심.
아니, 이제 와선 신앙심이라 칭해야 할 그것을 품에 안은 채로 움직이니.
그 존재 자체로 이들은 테스의 신관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됐다.
“어찌 저것들이 신성력을!”
그럼으로 땅에 내려앉은 테스의 신성력을 전장에 흩뿌렸다.
그를 본 남은 성군의 잔재는 절망보다도 더 무거운 절규를 안은 채로, 사라져 갔다.
절규 속에 이어진 몇 시간.
“이대로 끝은 아닐…….”
“아니, 끝이지.”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피리엘의 교황이 죽음으로 성국과 어센션의 대전쟁이 막을 내렸다.
다만, 거대한 전쟁이 끝났을 뿐이었기에 테스는 곧바로 명을 내렸다.
“남은 성국의 잔재를 쓸어버려. 그럼으로써 이 세계에 내려앉은 신의 영향력을 줄여 버릴 수 있으니까.”
“명!”
살아남은 신을 모시는 자의 모든 죽음이었다.
누군가 잔혹하다고 말할 명령.
그러나 그들이 해 온 행위들을 전부 보아 온 어센션군이었기에, 그에 대한 거부감 따위는 존재할 리 없었다.
되레 그 명령을 실행하고자 온, 어센션군을 돕고자 현지의 주민들이 먼저 나섰을 정도다.
그 후 몇 달.
성국 곳곳으로 숨어들던 성국의 신관들과 지도부들이 궤멸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러한 소식을 가장 기꺼워해야 했을 테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