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편
챕터 10.
“아, 안 돼!”
교황 이드라.
어둠 신을 가장 가까이 모시는 그이기에 알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몸이 꿰뚫리는 것보다도, 그 이후가 두려웠다.
이전부터 몸을 내뺐어야 했거늘,
‘너무 늦었다.’
교단을 수호해 주던 성검은 이제 와 피하기에 너무 가까웠다.
모순되게도 어둠을 밝혀 주던 신성력은 사라져 있는 채였고. 신성력을 대신하여, 테스가 시작한 기이한 힘을 내포하고 있는 성검.
성검은 그대로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푸우욱-!
시끄러운 전장 한가운데서 그가 꿰뚫리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는 듯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그의 죽음의 의미를 알고 있는 자들 모두에겐 꿰뚫림이 크게 들려왔다.
살거죽이 찢기는 소리보다도, 그 안에 담긴 의미가!
“허으윽…….”
심장이 찢긴 가운데서도, 이드라는 한 걸음이라도 테스로부터 더 멀어지려 해 본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상관없었다. 이미 테스의 몸은 그와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어둠의 성검, 아니 이젠 단지 테스를 따르는 검이 된 그것이, 이드라를 꿰뚫은 채로 테스를 향하고 있었다.
그를 맞이하듯, 테스도 그를 향해 더 가까이 달려온다.
그보다 더 빠르게 달리는 게 있었으니.
스스스스스-!
이드라로부터 뻗어 나오는 기운이었다.
어둠 신의 교황. 나타나지 않은 사도를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어둠을 머금은 게 그의 신성력이었다.
그러한 신성력이 뻗어 나오니 일순간 주변이 어둠으로 물든다.
뻗어 나간 어둠에 주변 시야가 보이지 않을 정도.
하나, 이 장소에 있는 자들 가운데 이 정도 어둠을 꿰뚫어 보지 못할 자들은 드물었다.
대다수가 어둠 한가운데서, 테스가 쏘아져 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가 어둠을 흡수하고자 하는 그 순간까지도!
“막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자들이 그의 흡수를 막아 보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머저리들아.”
테스의 손엔 어둠이 이미 들려 있었다. 빛마저 흡수하는 어둠이 그의 손에 들린 채로 요사스러움을 뿜어냈다.
“빼앗아라!”
“다시 돌려내! 회수하란 말이다!”
남은 자들이 그 손에 쥐어진 어둠을 회수하려 달려들었으나. 테스의 손이 더욱 빨랐다.
꿀꺽!
그는 영약을 삼키듯, 제 손에 쥐어진 어둠을 집어삼켰다.
이는 미치도록 위험한 행위!
신이 내려보낸 신성력을 있는 그대로 흡수한다는 건 곧, 신의 힘이 그 내부를 파고들도록 허락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내공으로 치면 이종의 진기를 그 어떠한 방파제 없이 빨아들인 셈!
일순간, 그의 온몸이 검게 물들었다.
* * *
-멍청한 건 너였느니라!
전에 들었던 신의 음성이 들려온다.
테스는 그 음성의 주인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보지 않아도 어둠 신 아리엔인 것이 훤히 느껴졌다.
-다 끝이다!
아리엔의 말이 끝나자마자 몸에 파고든 어둠이 그의 내부를 휩쓸기 시작했다.
그 내부를 휘돌며, 그의 몸을 지배하려 했다.
온몸에 물든 어둠.
그 어둠은 테스의 몸을 지배하고자 주변에 있는 모든 남은 어둠조차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커윽…….
-케엑!
전장에 퍼져 나가 있는 모든 어둠.
그 어둠들이 테스에게로 빨려들어 온다. 빨려들어 온 어둠은 다시 테스의 몸을 지배하는 데 쓰였다.
테스는 점차 어둠에 물들여지며, 지배받고 있었다.
“오오! 신의 힘이 통하고 있다!”
“드디어! 저 간악한 것을 죽일 수 있음인가!”
“멍청한 건 역시 저자였어!”
누가 보아도 상황은 테스의 패착이었다.
“오만방자하더니!”
“감히 신의 힘을 어찌 그대로 흡수한다고!”
어둠의 힘을 그대로 삼킨 것이, 그가 어둠의 지배를 받게 된 듯 보이게 만들었다.
직접 그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 아리엔도 신나 외쳤다.
-네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일지니!
신인 아리엔이 보기에도, 그의 온몸은 검게 물든 지 오래였다. 어둠은 곧 아리엔의 힘이기에, 이 어둠 가운데서 테스가 다시 지배권을 확보할 일은 없어 보였다.
이대로.
조금만 시간이 지난다면, 그는 완벽히 잡아먹힐 것이고. 그리됨으로써.
-흐흐. 마지막 일어날 신의 대제전은 이것으로 끝이겠구나.
신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상황이 돌아갈 것으로만 보였다.
테스의 승천을 막는 것!
그 하나만이, 현재 남은 신들에게 있어 최대의 지상 과제였으니까. 그러나.
“……역시 뭔가 있었구나?”
목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 아리엔은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어찌!
지배당한 자가 어찌 육성으로 말을 한단 말인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테스의 육체는 분명, 아리엔의 손아귀에 떨어져 내렸으니까. 그래야만 하는 것이니까!
한데!
스스스스-
-커읏…….
이변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다.
테스를 지배하고자 쏘아 보낸 어둠. 주변의 모든 것들을 흡수한 어둠이 일순간 사라지고 있었다.
-어, 어디로…….
테스의 몸을 뒤덮기는커녕, 아리엔 그도 모르는 그 어딘가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의 지배를 받아야 할 어둠들이, 그의 지배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신에게 있어 공포였다.
-흐으으…….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없을, 어둠이 사라진다는 건 곧!
그가 지닌 권능이 사라진다는 말과 매한가지였으니까.
-으아아…… 아, 안 돼! 안 된다고!
그렇기에 공포에 질린 아리엔은, 테스의 몸으로부터 빠져나가고자 애를 썼다. 그에게 힘이 흡수당하는 게 두려웠다.
이대로 계속해 힘이 사라진다면, 그때는!
어둠의 신으로서 존재하는 게 불가능하게 되니까!
존재가 사라짐은 곧 소멸이었다.
그렇기에 아리엔이 빌고 또 빌어 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어떤 일보다도 소멸이 신에겐 가장 가혹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아, 안 된다……. 제발!
“안 될 이유가 어디 있지? 처음부터 내 승천을 막으려 댄 건 너희들이었잖나?”
그를 멈출 수 있을 유일한 존재, 테스.
그는 제 영에 박혀 있는 상단전에 끝없이 어둠을 흡수하는 행위를,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스아아악-!
-아아…….
되레 더 의지를 키워 가며, 제 몸에 탐욕스레 들어앉은 아리엔의 어둠을 집어삼킬 뿐이었다.
‘허어…… 많기도 하구나.’
어느새 그의 상단전에 차오른 힘이 절반을 넘기 시작했다.
‘과연 상위 영역을 지닌 신이라 이건가.’
전사의 신이나, 허울 좋은 농경의 신보다도 어둠은 더 상위의 힘. 그래서인지, 차오르는 힘의 격과 깊이가 전에 없이 드높았다.
그러한 모든 어둠을 얼마나 흡수했을까.
-…….
어느 순간부터, 아리엔의 음성은 툭 끊어진 지 오래였고. 테스의 상단전은 완벽히 차올라 갔다.
‘무한이라 명명했는데도, 진짜 무한이 아니었어.’
그는 상단전의 크기를 무한이라 했으나, 진짜 무한은 아니었던 것이다.
상관은 없었다.
‘늘리면 될 일이니까.’
그의 의지가 존재하는 한, 영적으로 존재하는 상단전의 크기를 늘리는 것 따위 일도 아니었다. 얼마가 넘치든 다시 주워 삼키면 될 일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그러한 어둠 따위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가 내리는 정의였다.
‘찾았다.’
승천의 마지막 한 조각. 어둠.
그 어둠을 온몸에 품고서, 그에 관한 그만의 정의를 내려야 했다.
그리함으로써, 그는 그가 아는 모든 힘들의 정의를 완벽히 내릴 수 있게 된다.
힘을 정의 내림은 곧 그 힘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둠에 관한 정의를 내렸다.
파아아앗-!
그가 정의를 내리는 그 순간,
‘열렸다!’
그의 바로 앞으로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 * *
거대해진 균열.
그 균열을 본 성국의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를 향해 공격하라 명해야 할 교황들조차 예외는 없었다.
“아아아…….”
“신이시여…….”
그저 그 균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대한 신성력에 놀라 꿇을 뿐이었다.
거대한 신성력.
세상을 이룬 모든 신성력이 더 거대한 균형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듯했다.
모두가 그 광경을 경외시하고 있을 때.
‘드디어…… 다시 보았다!’
그의 온몸이 희열로 젖었다.
눈앞의 균열. 그의 기억 속에 똑똑히 살아 숨 쉬는 거였다.
이 세계서는 승천을 향한 균열이요.
전생에서는 우화등선을 위한 것이 바로 눈앞의 균열이었으니까.
‘여기까지 왔다.’
승천을 위한 균열이라.
그로선 각성을 한 그 순간부터 목적지였으며.
자기 자신이 전생의 자신보다 더 낫다는 걸 증명할 최종 목적지!
그러하기에 그가 희열로 젖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균열이 드러나는 순간, 전장의 모든 폭력은 종결되었고. 성군이 무릎을 꿇은 가운데, 움직이는 자는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균열을 곧 넘어서려 하는 테스였으며. 또 다른 하나는.
“같이 가야지!”
“기억하고 있다. 그게 약속이니까.”
어느새 다가와 그의 손을 맞잡은 베빈이었다.
테스는 그녀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그녀와 함께 균열을 넘어서는 게 그와 그녀의 약속이었으니까.
이 순간을 위해서 베빈이 어떤 희생을 해 왔는지를 아는 그였다.
그렇기에 설사 그녀를 같이 데려감으로써, 그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는 능히 감당할 생각이었다.
순간, 둘의 몸이 균열을 넘었다.
그러나.
파즈즈즉-
“꺄아악!”
이번에도 베빈은 그 균열의 틈을 넘어서지 못했다.
“어째서!”
힘겹게 외치나 소용은 없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틈은 그녀를 허락지 않을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대로 구멍은 그대로 사라지나 싶었다. 하나의 승천자가 통과하고 나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균열이었으니까.
낙심한 그녀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지려는 찰나.
파즉-
균열은 그때도 사라지지 않았다.
되레, 다시 열렸다.
작게 벌어진 틈. 그 사이로 테스의 몸이 툭 떨어져 내려왔다.
“너?”
“하…….”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테스가 타인이 아닌 자신의 피로 온몸을 피칠갑 하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곳곳에 상처가 그득했다.
그 상처로 고통스러울 텐데도 그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씹어 삼키듯, 생각지 못한 진실을 놀라고 있는 베빈에게 말했다.
“베빈, 여태껏 네가 승천에 실패한 이유 알 거 같다.”
“뭐?”
“이 망할 신들은 처음부터 우리의 승천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어. 처음부터 너와 나의 자리는 없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