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편
챕터 9.
양군이 맞붙는다. 양군에 공통된 건 서로만을 향한 살의뿐이었다.
“불신자를 쳐죽여라!”
“화형에 처해!”
한쪽은 불신자를 향한 분노가 서려 있었고.
“신은 무슨! 더러운 것들이!”
“네놈들이 욕하는 제국도 네놈들처럼은 안 할 거다!”
다른 한쪽은 광신이 만들어낸 광기를 욕하며 서로 창을 겨눴다.
그 전투, 단순한 수준은 아니었다.
차르르륵-
제각기 지닌 무력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성군은 희생자를 통해 얻은 신성력을 마음껏 사용했고, 어센션군은 그간 익힌 기예를 남김없이 풀었다.
콰아앙-! 쾅!
겉으로 보았을 땐, 성군의 군세가 유리한 듯 보였다.
많은 희생을 통해 강군을 얻어낸 성국의 군대 아니던가.
신성력이 절로 뿜어져 나오고,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든 거대한 거인들이 함께 움직였다.
-광신자의 말살을!
신성의 광기가 함께하는 한, 사기가 떨어질 일이 없었고.
뒤에서 기도를 드리며 계속해 신성력을 보급하는 신관들은 굳건해 보였다.
그 위세, 분명 대단했다.
어디까지나 겉으로의 모습일 뿐이었다.
전투에 도달하기 이전.
테스가 만들어낸 이적은 둘 사이의 전력 차를 완전히 메꾸고도 남을 정도였다.
성군의 힘을 빼앗아 아군인 어센션군에게 나눠 주었으니까.
‘균형은 이미 맞춰졌다.’
버프라는 형태를 띠었을 뿐, 그 강력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선봉, 방패병을 뚫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바로 의선문 문파원들을 투입해!”
“명!”
처음의 격돌에서 이득을 본 건, 어센션군이 됐다.
힘과 힘이 맞부딪치는 그 처음!
테스가 사용한 버프가 주요하게 먹힌 덕분이었다.
어센션군으로서는 유리한 고지를 가장 먼저 차지한 셈이었다.
하나의 승점을 따낸 셈이랄까.
물론, 지금과 같은 대규모 전투에선 단 한 번의 이득으로 승리를 장담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이러한 승점을 지속적으로 따내면, 전투가 승리로 이끌어짐을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았다.
더불어 승점을 이용하여 상황을 더 유리하게 만드는 방법도!
“파고들어! 모두 에나 사저를 따르도록 해!”
“프로스! 정령을 더 소환해!”
“알았어!”
의선문 제자들은 적의 무너진 선봉의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작게 열린 틈을 이용해, 성군이 몸으로 만든 방벽을 깨 버릴 생각이었다.
성군도 필사적이었다.
문파원들의 침투를 막고자 거인들이 나섰다.
그들로선 수많은 희생을 통해 빚어낸 것이 거인들!
강력함은 이루 말할 수 없기에, 저들이 막아서면 있던 틈조차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거인들을 막고자 하는 건, 이때를 기다리고 있던 다른 자들이었다.
-감히! 어딜 가려고!
-네놈 상대는 나인 거 같은데?
그들. 테스가 만들어낸 수호자들이었다.
-어딜! 거짓 생명이!
-거짓이라, 내 눈엔 네놈들이 거짓으로 보이는데?
-네놈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건 아니지 않나? 머저리들아.
수호자.
이들은 지난 여러 전투를 통해 성장을 한 상황이었다.
외적 성장뿐 아니라, 내적으로도 전에 없이 강력한 개체들이 되고 있었다.
전장을 돌며, 수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자신에게 녹여 자신만의 의지를 구축해 가고 있는 수호자들이었다.
처음 시작은 작은 피조물 수준이었으나, 점차 하나의 생명체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
동시에 자신들을 만들어낸 창조주나 다름없는 테스를 따르게 된 그들은.
-허…… 네놈을 만들어낸 창조주를 꼭 닮은 소리를 하는구나.
-그쪽이야말로, 자신이 신인 양 행세하는군. 뭐, 더 말이 필요하나?
콰아아앙-!
광신이 빚어 만들어낸 성군을 상대로도 한 점 물러섬이 없었다.
콰드득-
신성력에 제 몸이 찢어지고, 망가지는 몸의 회복은 점차 더뎌지고 있었다.
신성력을 잔뜩 주입받은 성군의 거인들에 비해, 수호자의 몸은 아직 연약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버티고 섰다.
-주군을 위하여!
-우리가 막고 있는 동안 앞으로 가랏! 어서!
“버텨서 살아남으라고!”
-그쪽이야말로!
버티고 서서, 어센션군의 전진이 멈추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으니까.
-끄윽…….
몸이 무너짐에도 그들은 버티고 버티어냈다.
죽음이 다가옴을 여실히 느낄 텐데도.
그들이 희생하는 만큼, 성군의 틈은 크게 벌어졌다.
성국이 준비한 최대의 무기인 거인이 활약을 하지 못하는 만큼, 어센션군은 더욱 날뛸 수 있었으니까.
그러한 그들의 희생이 기껍게 여겨진 것일까.
“힘을 실어주마.”
전장을 헤집고 다니며, 무언가를 찾는 듯하던 테스가 그들을 위해 나섰다.
그는 제 몸을 날려, 거인들을 상대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격에 맞지도 않지.’
그 대신, 자신이 성군들을 상대하며 새로 머금게 된 기운들을 날렸다.
화아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성력이었던 기운들이 한데 뭉쳐 쏘아진다.
테스의 방식으로 재정립된 힘은, 그의 피조물이나 다름없는 수호자들에겐 그 무엇보다 강력한 동력원이 됐다.
-……아.
달아나던 의지가 되살아난다.
드드드득-
망가지던 몸이 수복됐다. 남은 힘은 내부에 넘실거리며, 실시간으로 몸을 강화시켰다. 수호자의 몸이 더욱 단단해진다.
몸을 단단하게 만들고도 남은 힘들은, 다른 곳에 쓰였다.
파아앗-!
수호자들에게 새로운 권능이 심어졌다. 심어진 권능은 곧 힘이 되었고.
-뚫어!
-주군을 위하여!
콰아앙-!
상황을 역전시켰다.
앞을 막아선 거인들의 몸을 되레 부수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오는 신성력의 줄기를 이능으로 끊어냈다.
처음보다 더 강력해진 힘으로!
“캬악…….”
수호자들이 거인을 몰아내고, 그 뒤를 받쳐주던 신관들을 밟아 으깼다.
순간, 균형이 무너졌다.
“길이 새로 뚫렸다!”
“남은 이군도 전진!”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뒤를 지키고 서 있던 어센션군이 틈을 파고들어 갔다.
수호자와 거인의 싸움에 승패가 정해지는 순간, 승부의 추가 크게 기울어졌다.
이 상황이 지속되기만 한다면, 저들 전부를 부수는 것은 일도 아닌 터!
지금 이 순간 테스의 입장에서는 무리를 하기보단 유리한 고지를 유지하며 승리를 완전히 굳히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 무엇보다 효율적인 방식이었고.
수없이 많은 전장을 뒹군 그다. 그걸 모를 리 없는 테스다.
그러나 정작 승리의 밑바탕을 깔아낸 테스는 그러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만족하지 못했다. 그가 얻고자 하는 건 어설픈 승리가 아니었다.
승천의 끄트머리.
단 한 걸음을 두고 멈추었던 그는, 완벽한 승리를 원했다.
‘마지막 한 조각이 필요해.’
성군. 그 뒤에 숨어 있는 신!
그들이 막고자 하는 승천을 이 순간 해냄으로써, 저들로부터 완벽한 승리를 얻고자 했다.
성국의 군대를 넘어 신의 의도까지 무너트리는 게 그에게 있어선 최상의 승리였으니까!
“비켜랏!”
“막았! ……커윽.”
그렇기에 그는 선두에 서서 적을 끊임없이 헤집었다.
더, 더 안으로!
적진에 계속해 들어가면서도, 그는 멈출 줄을 몰랐다. 자신이 원하는 마지막 한 조각을 찾기 위하여!
그리고 결국 끝끝내.
“……찾았다.”
그는 원하는 걸 찾아냈다.
* * *
테스의 몸이 튀어 올랐다.
튀어 오른 몸이 일직선으로 향하는 곳은 교황들이 모여 있는 곳. 그중 어둠의 아리엔을 모시는 교황 이드라가 존재하는 방향이었다.
콰드드득-!
“비켜!”
그는 제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치워냈다.
“너는 더 넘을 수 없……. 컥…….”
성물이란 방패를 들고 다가오는 자를 방패와 함께 으깨었다.
“성검 기사단! 출진!”
성검이라 불리는 주제에, 무려 수십여 개나 존재하는 것들을 모아 만든 기사단. 그들 기사단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을 때는.
“허접한 것들에게 좋은 연장이 쥐어진다고 좀 나아질 거 같더냐?”
스스스슥-
“어억!”
“검이!”
그들 손에 쥐어져 있는 검들의 통제권을 빼앗았다.
파즈즈즉-
의지를 지닌 성검이 반항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성검이 허락한 검의 주인, 그들이 죽을 때까지 평생토록 하나의 주인과만 함께하는 게 성검의 속성이었으니까.
비록 그 수는 수십일지언정, 신이 벼러 만든 검인 건 사실이었기에 강력한 의지가 실려 있었다. 그러나.
“네놈들 힘은 이미 이해한 지 오래라고.”
콰즈즉-!
그 의지 하나, 하나가 박살 나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성검 전부의 의지가 깨어져 나간다.
의지조차 사라진 성검이 지닌 힘은 잘 벼려진 검이라는 것 하나뿐이었다. 평범한 명검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가느다란 나뭇가지 하나가 고수의 손에 들리면 명검이 되는 법이지 않은가.
힘을 잃은 성검이라도 테스의 손에 들리면 이미 성검 못지않은 힘을 지니게 돼 있었다.
스스스스-
그의 주변으로 수십여 개의 성검들이 떠오른다.
“꿰뚫어라.”
쒜에엑-!
떠오른 성검은 그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그 방향, 그들의 본래 주인들이 있는 곳이었으니.
“커어어억!”
“……어찌!”
앞을 가로막고 있던 성검의 기사들, 전부가 멱이 꿰뚫렸다.
의지를 잃은 성검들은 주인들을 꿰뚫고도, 여전히 공중에 부유한 채였다. 테스의 명을 기다리듯 그 주변을 휘돌던 성검들에게 다음 명령이 떨어졌다.
“뚫어 길을 만들어라.”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꿰뚫란 의미.
샤아아아-!
성검들은 그 의지를 받들어 앞을 뚫어내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신이시여!”
그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들이, 자신들을 지켜주던 성검에 의하여 꿰뚫린다.
물건이나, 신성이 깃든 게 성검이었다.
그렇기에 신성시하며 대하던 성검이 그들 멱을 꿰뚫러 오는 건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낳고 있었다.
공포는 점차 의지를 앗아가기 시작했다. 앞을 막아야 할 성군의 다수가 겁을 집어먹었다.
“으으으…….”
그런 덕에 길은 점차 쉬이 뚫려 갔다.
* * *
테스는 그러한 뚫린 길을 향해서 계속해 나아가는 한편, 제 목표인 교황 이드라를 끊임없이 탐색했다.
‘도망치고 있군…….’
승천까지 마지막 남은 조각, 어둠.
이 세계서 그 어둠을 가장 많이 품은 자가 이드라였다. 다름 아닌 교황이었으니까.
그런 교황도 테스가 가장 필요로 한 게 어둠의 조각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테스의 승천을 막고자 점차 몸을 내빼고 있었다.
‘지독한 것들.’
교황으로서의 체면보다도, 테스의 목적을 방해하는 데 목적을 둔 몸부림이었다.
덕분에 테스로서는 뚫어야 할 길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교황이 몸을 내빼는 만큼, 그 길이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술래잡기나 하는 취미는 없단 말이지.’
이대론 길고 긴 술래잡기만 이어질 뿐이다. 테스로선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만 했다. 다행히도 그의 손엔 새로운 방식 하나가 이미 쥐어져 있었다.
부르르르-
수많은 성검 가운데 하나.
어둠의 신 아리엔이 빚어 만들었다는 성검이, 그의 손에 쥐어져 떨고 있었다.
일부러 의지를 살려 둔 것은 아니었다.
테스가 아직, 어둠이란 개념을 정의하지 못했기에 완벽히 의지를 앗아가는 게 무리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잠시간 조정하는 건 가능하지.’
완벽히 굴복시키는 게 불가능할 뿐이다.
잠시의 조정 정도는 가능한 일!
테스는 의념을 집중하여, 검의 의지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러곤 이내, 그 의지가 점차 사그라질 때쯤.
검에 남은 어둠 신의 잔여 신성력과 제 힘을 빚어 한 가지 의념을 심었다.
그 의념.
오롯이 교황 이드라만을 향하는 살의였다.
그 모든 살의를 담은 검을.
“가서 죽여라.”
그는 곧바로 저 멀리 도망치고 있는 이드라를 향해 쏘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