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편
챕터 8.
그 한 곳.
성국의 군대를 향해서였다.
“다 죽이면 되겠지.”
그는 흘러나오는 살기를 의식적으로 조절했다. 아군이 아닌 적군만 향하게 만들어 내는 기교 정도는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
그의 살기가 가시고, 한결 여유로워진 테론이 그제야 나섰다.
“주군, 진격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바로 진격.”
“명!”
진격을 위한 모든 준비는 완료된 지 오래.
테스가 저주를 머금어 주는 동안, 이들은 앞으로 벌어질 전투만을 준비해 왔다.
테스의 희생을 발판 삼은 준비인 것을 알기에, 그 누구보다 열렬히 준비를 해 온 그의 군대였다.
성국이 신의 세례를 받아 왔다 해도, 거침없이 달려 나간단 의미.
“진격하라!”
그렇기에 테론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은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차악- 착-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기 시작하며 점차 속도를 올려 갈 그 찰나.
테스는 총지휘관 테론이 놀랄 말을 던졌다.
“이번 선두는 내가 맡기로 하지.”
“예!? 그 무슨!”
성국과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선두를 차지하지 않던 테스. 그가 직접 선두를 차지한단 그 말에, 테론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국의 구심점이 신이라면, 어센션군은 테스.
그렇기에 그가 선두로 향하는 건 말려야만 하는 일이었으나.
“먼저 가지.”
투욱.
테스는 이미 그 발걸음을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테스와 테론의 거리가 떨어져 나갔다. 거리가 멀어진다고 해서, 테론이 갖고 있던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주, 주군의 뒤를 쫓아라! 어서!”
성국에서 떨어지던 저주를 홀로 받아내던 그의 주군이다.
이제 와 성국의 저주가 걷어졌다 하더라도, 그 후유증이 보통일 리 없었다.
그 모든 저주의 힘이 지닌 강력함은 테론이 보기에도 강력하다 못해 초월적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염려가 될 수밖에 없었다.
환골탈태까지 한 주군이라도, 그 육신이 비틀렸을 거라 여겨지니까.
그런데 웬걸.
그런 걱정 따위 완전한 기우였다.
“저, 저…… 무슨…….”
군의 선봉을 향하는 테스. 그는 단지 선봉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매 한 걸음. 한 순간의 숨을 쉴 때마다 그의 몸이 회복되어 갔다.
‘상처 정도야 재생하시는 게 당연한데…… 왜, 기운마저 상승하시는 거지?’
외부의 벌어진 상처 따위, 진즉에 치료가 된 지 오래였다.
특이한 건 그 내부였다.
테스가 앞을 향하면, 향할수록 그가 지닌 거대한 기운이 증가해 갔다.
일 갑자, 이 갑자 따위의 단순한 수치로 말할 기운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자가 됐다 자부하는 테론. 그로서도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만큼의 강력한 기운이 테스에게 실리고 있었다.
성국과 어센션군 사이,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기운들이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일순간, 두 군대 사이에 마나 진공 상태가 일어났을 정도!
“선두 포격하지 않고 뭐 하나!”
“마, 마법이 날아가지를 않습니다.”
급작스런 진공 상태에, 양측 군대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날리던 포격도 멈춰 섰다.
피시식-
신성 마법조차도 진공 상태에 이른 장소에 도달함과 동시, 완전히 사라졌다.
신성력이 사라졌다는 것은 곧, 테스가 마력이 아닌 적이 지닌 신성력조차도 흡수하고 있다는 증거!
그의 기운 흡수는 단순 대기에 있는 기운을 흡수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마, 말도 안 되는…….”
“계속해 빨려 들어갑니다!”
성군의 선봉!
어센션군을 꿰뚫고자 나선, 창 기병대. 천 일간 신성력으로 벼러 만든 5미터의 신성창이 지닌 기운조차 그를 향해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테스를 향한 공격이 아니라, 그에게 흡수되는 힘의 한 종류로!
오로지 신성창뿐이겠는가.
“다들 기운을 끌어올려 막아라!”
“통제권을 빼앗기지 마라!”
그가 가까워질수록 일선에 선 병사들의 신성력이 그에게 빨려 들어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운은 테스에게 조족지혈도 되지 못할 터.
그러나 그 수가 수백, 수천이 되면 이야기가 달랐다. 수백만 되어도 본디 테스가 지닌 기운보다 더 거대할 터였다.
제아무리 테스라도 천 단위의 힘을 단번에 흡수하는 건 안 될 일인데.
“이제 반쯤 채운 건가. 아니, 아직 반도 안 되는군. 아쉬운데.”
그는 마나 진공 상태를 이루고, 적의 기운을 빼앗아갈 정도로 기운을 모았음에도 제 몸의 그릇을 다 채우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로선 당연한 일.
‘이게 상단전의 진정한 효용이었어.’
신의 저주로부터 비롯된, 신의 힘을 이해한 지 오래. 그를 다시 자신만의 것으로 재정의함으로써 그가 얻은 가장 큰 효용은 상단전에 대한 이해였다.
육체에 묶이는 하단전, 중단전과 달리 상단전은 그의 영과 바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육신이 아닌 영 그 자체가 그가 깨달은 상단전의 존재!
상단전 자체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이기에, 그 한계는 그가 정의하는 만큼 커지는 법이었다.
그 의미는 하나.
상단전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가 어찌 정의를 내리느냐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한순간, 그를 깨달은 그는 곧바로 그 한계치를 넓히었다.
“……이조차도 내가 만든 한계일 터. 반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라 정의하고, 그걸 견뎌낼 수만 있다면.”
여태껏 흡수한 힘으로 제 상단전의 반을 채웠다는 자신만의 정의를 버렸다.
그 대신.
‘이제 시작이지. 어차피 영은 무한처럼 채울 수 있는 것이지 않나?’
무한을 그렸다.
그가 무한을 그리는 그 순간.
고오오오-
그가 지닌 흡입력이 더 강력해졌다.
“커으윽…….”
“버텨라!”
제 몸에 지닌 신성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려 버티던 성군 군대에 한계가 찾아들어 왔다.
“컥.”
선봉에 선 자들 중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 * *
-주교들은 무엇하나!
“피리엘이시여!”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교황들이, 주교들을 재촉했다. 얼마 남지 않은 주교들. 신의 세례를 받은 주교들이 나섰다.
그들이 성호를 그리고, 기도를 올렸다.
“흐으으…….”
“커흐으…… 흐…….”
그제야 테스가 만들어 낸 거대한 흡입력이 한결 가셨다. 온몸을 벌벌 떨어대며, 힘을 빼앗기고 있던 성국의 군대가 다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 모든 광경을 본 양측.
“괴, 괴물…….”
“으으으……. 저건 악마다! 악마야!”
테스가 선봉에 서기 무섭게 성국의 군대는 겁부터 집어먹었다.
그는 단순히, 제 몸을 회복하고 앞에 선 것뿐인데도 일선에 선 병사 중 몇이 공포에 사로잡혔다.
공포에 잡아먹힌 그 대가는 처참했다.
“히힉…….”
“키킥. 다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졸도하는 자는 차라리 나았다. 정신을 놓고 미쳐 버리는 자도 있었다.
온몸의 기운이 사라진 가운데, 자신의 기운을 잡아먹은 테스를 본 그들은 자신들이 모시던 신조차 잊을 정도였다.
신이 허락한 성법들을 통해서 강화된 성국의 군대가 보이는 추태였다!
그 모습을 말려야 할 지휘관들도, 몸을 떨 뿐이었다.
그 반대편.
테스의 군대라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공포가 아닌 경외감으로 앞에 선 테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승님은 대체 어디까지 가신 거야?”
“허어…….”
“주군께서…… 무엇을 얻은 게야?”
테스가 보인 위력, 드높은 경지. 그를 뒤에서 느꼈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경외요, 존경이었다.
테스가 단순히, 앞으로 나서 제 자리인 선봉을 찾은 것만으로 만들어진 양측의 반응이었다.
그의 충격적인 등장에, 정작 전투를 진행해야 할 양군의 지휘관들은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예기치 못하게 만들어진 소강상태.
그러한 소강상태를 깨는 건,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주인공인 테스였다.
그가 온몸의 기운을 크게 끌어올리며, 포효하듯 외쳤다.
“어센션군! 진격하라!”
* * *
그의 목소리가 신호였다.
제각기 고함을 치고, 소리를 내질렀다. 기도문을 외우기도 하고, 가슴을 스스로 치며 사기를 북돋았다.
사기를 끌어올린 이후, 양군이 한 행위는 진격!
양측 모두 정예군. 정렬된 상태로도 그 속도는 매우 빨랐다.
테스는 먼저 앞으로 나서는 대신, 속도를 맞췄다. 그대로 주변을 살폈다.
반대편에 있는 성국 병사들이 그의 눈에 보였다.
희생을 통해 강화시킨 몸뚱어리, 악신자와 비슷한 형태의 신의 사자, 반쯤 육신을 버린 주교와 교황까지.
인간의 군세라기보단, 신이 빚어 만든 창조물과 같았다.
그 모양새가 다소 장난스레 빚어 만든 모양이라도, 그들이 지닌 힘은 진짜였다.
테스가 상당수의 힘을 흡수하였음에도 여전히 강력했다.
어센션군이 부족하다 느껴질 만큼!
‘균형을 맞춰 줘야겠지. 아니, 아예 바꿔 버려야겠다.’
그렇기에 테스는 균형을 맞춰야 함을 느꼈다.
그를 위한 방안으로, 그는 닫혀 있던 상단전을 열었다.
스스스스-
“후으…… 좋은데?”
상단전의 개방. 영적인 열림일 뿐이지만, 그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의 크기는 극적이었다.
무한에 가까운 그릇에 채워져 있는 양은 적었으나, 아직 도달하지 못한 9클래스 마법 수십 번은 날리고도 남을 양이었다.
그 양의 일부를 테스는 현세에 다시 풀었다.
고오오오-!
거대한 기운이 그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주변을 뒤덮고도 남은 그 기운이 만족스러울 만큼 모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원하던 바를 행했다.
“육신 전체 강화, 오러와 마력 강화, 영적 강화.”
투욱-!
마법처럼 주문이 외워지며, 장난스레 그어지는 그의 손길이 있었다.
가벼운 손길과 다르게 그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지금 테스가 실행하는 것은 버프 마법류의 형태를 차용한, 그만이 내릴 수 있는 축복.
이미 마법이라기보다는, 저만의 방식으로 힘의 정의를 내린 그만의 세례였다.
샤아아아-!
그러한 세례가 어센션군 전체에 내려앉는 그 순간이었다.
그를 따르는 어센션군의 진격 속도가 수배 빨라졌다.
육신은 더욱 단단해지며 유연해졌다. 육신을 넘어 그 영까지 일순간 강화되었다.
신의 군세를 향한 인간 본연의 두려움이 씻은 듯 사라졌다.
“우와아아악!”
용기가 끓어오르고, 그에 맞춘 듯 병사들을 둘러싸고 있던 오러가 두터워졌다.
일순간 그의 군대가 배 이상 강력해졌다.
어센션군 전체에 내려앉은 거대한 축복!
마치 신이 기적을 만들어 내듯, 거대한 이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적이 군에 내려앉은 그 순간.
콰아아아앙-!
양국의 군대는 거침없이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