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0편
챕터 5.
그 고함 소리를 내는 자들. 평생을 착취당하며 숙이고 살았던 그들이 내지르는 고함이었다.
“우와아아악! 죽여 버려!”
“찔러!”
저마다 손에 쥐고 있는 건, 농기구가 아닌 둔기들이었다.
숙련자가 아닌 자들도 치명타를 먹일 수 있는 게 둔기!
목숨을 앗아갈 것도 없이, 부상만 당하여도 적에겐 치명적이기에, 둔기는 전쟁에서 애용되는 병기였다.
그러한 병기를 가져다준 자. 민란의 가장 선봉에 있었다.
“어서, 가자!”
그자, 처음 마이틀을 포함한 일행을 이곳으로 안내해 주었던 자였다.
일행이 지름길을 넘어올 수 있도록 안내자를 자처하고. 이곳까지 모두를 이끌고 온 그. 그는 이곳에 있으며 한 가지 임무를 맡았었다.
‘……영광이었다!’
얼마 전까지, 그를 구속하고 있던 데칼의 목걸이와 같은 것들. 이들을 착취당하게 만드는 모든 구속 도구를 풀게 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 임무.
오롯이 그의 힘만으로 가능한 임무는 아니었다.
그는 착취당하기만 한 자일 뿐, 새로운 이능을 각성한 능력자는 아니었으니까. 수련 시간도 없기에 내공 또한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러한 힘을 부여할 수 있는 자가 있었다.
“꽤 고통스런 일이 될 거다. 그래도, 하겠느냐?”
“얼마든지요!”
테스였다. 테스는 안내자를 자처한 그에게 힘을 부여해 줬다. 이능을 심는다거나, 내공을 심는 것 따위의 일이 아니었다.
그가 갈 이곳.
전사의 신 사도르가 영향력을 끼치는 이곳에서, 사도르의 힘을 분해할 수 있을 힘의 일부를 부여했다.
이를테면, 이 영역의 신의 영향력을 걷어내는 힘을 쥐여 준 셈이었다.
스스스-
테스는 그에게 힘을 주며 경고했다.
“지금 행한 건, 어디까지나 임시다. 네가 이 힘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건 길어야 서너 달 정도. 그마저도 후유증은 있을 거다. 갑작스레 빠져나간 힘에 탈력감이 들 거야. 꽤 절망적일지도 모르지.”
“……상관없습니다. 평생토록 겪은 게 무력감과 탈력감이었으니까요. 주신 힘으로, 저 같은 사람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충분합니다.”
“이름이 무엇이지?”
“벤슨 저트입니다.”
“좋아. 그 각오와 함께 꼭 기억하마. 잘 버텨내라.”
“……크으읏. 넵!”
그렇게 부여받은 힘이었다.
이곳 영지의 영지민을 구속하고 있는 사도르의 구속구를 해체할 수 있는 힘이었으며. 또한.
“하찮은 것들이 감히!”
“신에 눈이 멀어 버린 네놈이 더 하찮겠지!”
츠아악-!
민란의 선봉에 선 그가 신성력을 발휘하는 성군을 상대할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소모하면 다시 채워지지 않는 힘. 그러나.
‘상관없어.’
그로선 아낄 이유가 없는 힘이었다.
테스가 영약까지 사용하며 부여한 이 힘은, 그가 이끄는 민란의 선봉이 꽤 오래 선방을 하게 만들어줬다.
그러나.
“진압대! 뭣 하나!”
“진형을 형성하도록 해. 어디서 무기를 공수해 왔는지 몰라도, 훈련도 제대로 안 된 자들이다!”
그 하나만으로 민란을 성공으로 이끌 순 없었다.
“크으윽…….”
“컥.”
그가 테스로부터 받아 온 무기. 민란에 참여한 이들에게 나눠 준 무기도 잠시의 시간만 벌어줄 뿐이었다.
“머, 먼저 가네…….”
착취에 못 이기던 그 한. 한을 풀고자 나섰어도, 본질적으로 이들은 착취당하던 자들이다.
육체적으로 가진 힘이 강할 리가 없었다.
악과 깡으로 버티는 것에도 한계가 다가왔다.
“크흐…….”
“아까의 기세는 어디로 갔나!”
힘을 아끼지 않고 쓰던 벤슨 저트도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선봉을 지키던 그가 밀리니, 대번에 민란대도 구석으로 밀렸다.
“으아아아!”
악을 써 가며, 버텨 보지만 사라진 힘이 돌아올 리 없었다.
‘결국…… 여기까진가…….’
잠시 시간을 끈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 그나마도 꽤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가면서, 만들어낸 시간이었다.
‘……이 희생이…… 잘된 걸까?’
이제 남은 힘으로 몇 번이나 더 검을 휘두를 수 있을까.
세 번? 아니면 네 번?
슬슬 끝이 보인다.
목숨을 담보로 벌어들인 시간이다.
이렇게 벌어들인 시간. 이다음 단계의 희망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다음 단계가 이뤄져야만 했다.
그렇기에 이곳에 군대를 잡아 놓고 시간을 더 벌어야만 하는데.
“커윽…….”
몇 번 더 검을 휘두르자, 그의 손엔 더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결국 모든 힘을 다 소모했다. 이대로 끝인가 싶은 순간.
‘……쓸모가…….’
제가 한 모든 희생이 다 부질없다 여길 때쯤이었다.
파아아아앙-!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두 번째 신호가 터지고 있었다.
* * *
“저건 또 뭐야!?”
첫 번째 폭죽이 터지고 민란이 터졌다.
이번이 두 번째다.
진압대를 이끌던 겔르터. 광신으로 가득 찬 그도 저 신호가 심상치 않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쳐 죽일 불신자들.’
평소라면 무시했으련만.
신성홀이 터져 나가고. 민란에, 관리자들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곳도 문제가 있단 거겠지.’
자랑스럽기만 하던 영지가 무너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신호라니, 그라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얼마 뒤.
불안은 실체로 다가왔다.
“저, 적군이 옵니다!”
“불신자들의 군대입니다!”
어센션군의 본대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후, 후퇴하라!”
광신으로 무장한 진압대라 해도, 유불리는 가릴 줄 알았다.
‘당했구나!’
민란을 제압하고자, 성벽을 나온 지금.
그들의 몸을 가려 줄 방벽도, 방어를 위한 무기도 없는 상태다. 불리할 수밖에 없기에, 진압대는 속절없이 후퇴를 내뱉으며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광신자치곤 빠른 판단!
그러나, 이 상황을 만들고 온 어센션군은 노련했다.
“추격대 돌진!”
“민란을 일으킨 자들이 섞이지 않도록, 마법대는 주의하여 사격하도록!”
성군 병사가 도망칠 걸 미리 예상하여, 만든 추격대가 뒤를 노렸다. 발 빠른 자들로 만들어진 그들은, 곧바로 적의 뒤를 잡았고.
“죽어!”
“더러운 새끼들!”
곧바로 사살을 시작했다. 사살 방식은 여러 가지였다.
화르르륵-
온몸에 불을 내뿜어 태우는 자.
“으으으…….”
“반대로 착취당하는 기분이 어떠냐?”
“……그륵!”
쌓아 놓은 신성력을 기공을 이용해 빼앗는 자.
츠츠츠츠-
“커윽…… 독.”
“허으으윽…….”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독에 내장을 녹이는 자까지.
추격대는 갖은 방식으로 적을 처단하였다.
“불 화살!”
“전격의 파도!”
그 뒤에선 마법까지 날아들고 있었다.
근접에선 추격대가, 멀리선 마법사의 정밀 포격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 도망치는 성군 병사의 수는 속절없이 줄어들어 갔다.
“허어억…… 헉…….”
“곧이다!”
그럼에도 끝끝내 도주에 성공한 자들은 있었다.
그들을 보호해 줄, 방패막인 성벽이 그들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성벽을 끼고 버텨만 낸다면!
저 잔학무도한 불신자의 군대를 버텨낼 수 있을 터.
‘설사 못 막더라도, 끌어안고 다 같이 죽는 거다.’
패배하더라도, 온몸을 불살라 덤벼든다면 불신자인 어센션군에 피해를 누적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으로, 그들은 희망을 가득 안고 성벽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희망이 되어야 할 성벽 안.
“왔나?”
“흐흐. 죽을 자리로 잘 왔다.”
아군이 아닌 불신자의 군대가 이미 가득 채워져 있었다. 희망이었던 아군은 이미 죽어 저 아래 패대기쳐져 있을 뿐이었다.
“아아…….”
희망 따위가 있을 리가.
겔르터. 병사를 지휘하던 그의 무릎이 저도 모르게 굽혀졌다.
쒜에엑-
굽혀진 그의 머리 위로 무심한 칼날이 떨어져 내렸다.
* * *
다머스, 그린저, 아바트, 칵트…….
성국 수많은 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침공이 이뤄졌다.
단 한 번의 신호. 이뤄지는 동시 진격.
일반적이지 않은 전투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성국으로선 그에 대응을 하기 어려웠다. 지원군을 구성할 새도 없이 함락이 되었는데 뭘 하겠는가.
성국 서부가 순식간에 점령된 걸 보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대응은?
-지원군은 어디로 가야 하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한 몸이라도 된 듯 움직이던, 상층부. 십이 넘는 교황들이 전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수많은 위협을 견뎌 온 성국이지만, 이런 상황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들은 테스를 몰락시키고자, 철저히 그 아래의 것들까지 이용하려 했다.
그들이 착취를 위하여 묶어 놓은 자들. 구속구에 묶여 있는 성국민들을 잊지 않고 이용하려 했다.
-안에서부터 흔드는 것은?
-당장, 움직이게 만들란 말이다!
억지로 민란을 일으키게 하려 했다.
그러나 실패.
살아남은 자들 중 몇이 자살 공격이라도 하도록 무기를 쥐여 줬다.
그 무기는 되레, 쥐여 준 성국의 신관을 향했다.
모든 방식이 소용없었다.
그들을 구속하던 모든 게 사라진 지 오래였으니까.
구속구가 풀린 성국의 국민들은 되레 테스의 어센션군을 환영할 뿐이었다.
억지 기도도, 착취도 없었으니까.
계속된 실패에 성국은 혼란에 빠졌다.
-대체 어떻게 구속구를 풀었단 말인가?
-신관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것인데!
-배교한 신관이 있는 것인가?
-대체 누가!?
그들이 지닌 힘, 신성력. 그 힘에 대한 이해가 있지 않고서야 구속구를 푸는 건 불가능한 일. 한데 그러한 일이 벌어졌으니, 때아닌 내분도 일어났다.
없는 배교자를 찾는답시고, 안을 속속들이 뒤졌다.
없는 걸 찾는데 제대로 이뤄질 리가.
-악신 추종자가 문제일 것이다!
평소 악신이라면 이를 갈던, 선신 추종자들이 악신들의 남은 세력을 궤멸에 가깝게 몰아붙였다.
안 그래도, 악신 추종자 다수가 성국 군대 선봉에 서다 전멸당하지 않았는가.
힘을 잃은 그들이 급작스러운 칼날을 피할 겨를은 없었다.
“크흑…….”
“……배신자들! 내 죽어서도 기억할 것이야!”
증오 서린 저주를 날리며 목숨을 잃거나. 그도 아니면.
“가자. 우리는 이미 버림받은 지 오래이니…….”
“……다시는 신을 찾지 않을 거다.”
자신이 모시던 신을 버린 자도 다수 있었다. 상황이 이리 급박하게 몰리는데도, 자신들을 외면한 신에 대한 버림이었다.
또 일부 소수는, 오래전 박해받던 때에 그러했던 것처럼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로 숨어들었다.
성국에서 일어나는 대대적인 내부 정리는 대다수가 그런 식이었다.
되레, 제 살을 깎아 먹기에 급급했다.
서부를 먹은 어센션군이 중앙에까지 진출을 시도하는데도, 이들은 내부에서 계속해 미친 짓만을 벌일 뿐이었다.
성국의 사분의 일 정도가 먹힘에도 여전했다.
마치 무언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듯 보였다.
그들이 믿는 구석은 단 하나였다.
-신으로부터 계시는 없는가!?
-……아직입니다.
-아직도 말이더냐!?
-예. 매일 성녀가 기도를 드리고, 성자를 제물로 삼고 있으나…… 답이 없으십니다.
신이었다. 그들이 모시는 신.
착취 속에서도 찬란한 성국만의 문명을 꽃피우게 한 그들.
그들이 뒤를 받쳐주고 있음에야, 아직 승천도 못 한 테스가 성국을 이길 리는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이 그들을 다급하지 않게 만들었다.
설령 성국의 영토가 다 넘어가더라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 거란 삿된 믿음을 갖게 했다.
그러나.
-어서! 계시를 받아오란 말이다!
-더! 더 제물을 받쳐!
시간이 지날수록 슬슬 불안감이 찾아오고 있었다.
신의 음성이 더는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믿음이 깨어지려 하고 있었다.
-……버림받은 것인가?
-허어…….
절망이 가득 차려는 그 순간.
-내려왔습니다!
-계시입니다!
동시다발적으로 계시가 내려왔다.
모든 교단에!
서로 모시는 신은 달랐으나, 내려온 계시가 말하는 바는 전보다 명확했다.
모호한 말도, 암시도 없었다.
직설적이기만 한 계시들이 내려왔다.
그 계시의 내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