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179화 (178/191)

제179편

챕터 4.

09 요새 주변.

주변 방위를 책임지고 있는 영지들 사이에 의선문 문파원들이 내려앉았다.

“여깁니다요. 흐으…… 여기 있는 것들이 얼마나 악독한지 모르실 겁니다.”

“쉬잇. 자네의 말은 잘 알겠으나, 목소리 좀 낮추지.”

“아, 알겠습니다.”

그들 문파원을 안내하는 건, 자유를 얻은 성국의 국민들이었다.

발이 날랜 자들을 우선적으로 선별하여 치유한 터. 그런 덕에 이들의 안내를 받아 움직인 의선문 제자들은 금방 성국 영지 핵심부에 자리할 수 있었다.

안내자가 양손으로 제 입을 막고 숨을 죽이고 있는 사이.

“흐음…….”

테스의 의선문 제자들은 주변을 살폈다.

“여기도 비슷한 상황이네. 어딜 가나 지독하군.”

“더 지독한 거 같은데? 요새가 차라리 상황이 나아 보일 정도야.”

“……더러운 것들.”

그러곤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들을 이끌고 있는 1대 제자 마이틀마저도 작게 구역질을 할 정도로 안은 처참했다.

착취는 기본이었다.

-죽여! 죽이라고!

-우와아아!

그보다 안, 얼기설기 목재를 이어 만든 콜로세움 안에선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살인을 전제로 한 싸움이었다.

안에 자리한 검투사들은 원하지도 않는 전투인 듯, 칼을 든 손을 달달 떨어대고 있었다.

“여, 여기는 전쟁 신 사도르가 중심이 된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런 전투가 심심찮게 벌어집니다.”

“……미쳤군.”

안내자가 말하는 말. 그 말에 의선문 제자들은 역겨움을 금치 못했다.

“저 정도는 차라리 약과입니다. 심한 경우는 전쟁 성기사 하나가 학살도 벌입니다. 그들 말론…… 제물이라더군요.”

“…….”

그 뒤에 이어지는 말에는 차라리 침묵했을 정도다. 속에서 작은 쓴 물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영지서 느껴지는 역겨움 때문이다.

“저런 곳이 넘치나?”

“저, 적어도 사도르가 지배하는 곳은 이렇습니다. 다른 곳은…… 다, 다른 방식이 있겠지요.”

“다른 방식이라……. 그게 뭐든 역겨울 거 같긴 하군.”

중한 성격을 지닌 마이틀. 그의 말에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까지 달려오는 동안 사그라들었던, 분노가 다시금 끓어오르는 듯한 제자들이었다.

마음 같아선 뭐든 부수고 싶은 상황.

“……당장이라도 칠까요?”

“알잖나. 아직 아니야.”

마이틀도 같은 마음이나,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신호가 오기 전까진 아니야. 곧 때가 올 테니, 기다리자고.”

“……후으. 알겠습니다. 그날이 오면 선봉은 저일 겁니다.”

때가 아니었다.

‘한 방에 몰아쳐야 한다.’

그때가 올 때까지, 이들은 분노하면서도 가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분노를 삭이며 며칠간을 기다렸을까.

덜덜 떠는 안내자를 두고, 마이틀과 제자들은 이곳을 한 번에 뒤집기 위한 준비들을 차분히 진행했다.

그리고 얼마 뒤.

-개시!

그들이 기다리던 신호가 떨어졌다.

* * *

스스스스-

흡사 유령이라도 되는 듯 움직이는 마이틀. 그 뒤로 움직이는 제자들 모두, 비슷한 움직임을 선보이고 있었다.

“…….”

“…….”

말은 필요 없었다. 오로지 신호면 충분했다.

성국이 광신으로 무장했다면, 이들은 테스가 그간 얻은 모든 정화가 녹아 있는 자들.

마법진 수련, 진법, 무공, 이능.

그러한 테스의 정화들 중에서도 핵심을 이어받은 게 바로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움직임은 신속하며, 은밀했다.

움직이던 일행은 금방 둘로 쪼개졌다.

하나는 관리자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로. 또 다른 하나는 이 영지에서 착취의 핵심인 신성홀을 향해서였다.

이전 요새와는 전혀 다른 구조.

그러니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 똬리를 틀고, 구조를 파악했던 제자들이었다.

둘로 쪼개진 일행은 거침없이 목표로 내달렸다.

“……도착이다.”

“바로 죽여.”

신성홀에 도착한 일행은, 품에 있던 걸 소중히 꺼내 들었다.

품에서 나온 건 진법석이었다.

이전에 테스가 사고를 치는데 일조한 그것이 품에서 나와 신성홀 한가운데 안착했다.

철컥.

중앙에 안착한 진법석. 그것은 안착하자마자 마력으로 이뤄진 기다란 촉수를 꺼내 주변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됐다. 성공이야.”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단 의미!

진법석이 점령을 시작한 상황에서, 이들이 더 머물 이유는 없었다.

안으로 침투하여 들어왔던 이들은 다시금 은밀히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 저 바깥에서는 관리자를 향한 칼날이 들이밀어지고 있었다.

푸우욱-

“……컥.”

관리자 척결. 처음 시작은 은밀했다.

이 순간조차 착취가 이뤄짐에도, 이른 시간부터 쉬고 있는 관리자들은 넘쳐났다.

방심하고 있는 관리자의 목 뒤로 칼을 들이미는 게 어려울 리 없었다.

‘넷. 다섯……. 아니 셀 필요가 없는 녀석들인가?’

그 가운데, 1대 제자 마이틀의 활약은 눈부셨다.

진중한 성격을 지닌 그답게, 그의 칼은 묵직했다. 적재적소에 들이밀어지는 그의 검. 단, 일격으로 관리자의 목숨들을 앗아간 그였다.

‘이대로면 쉽게 끝이려나.’

관리자들의 멱을 얼마나 따갔을까.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침투조가 침투했던 신성홀 방향이다.

‘제대로 폭발했군. 진법석이 힘을 다 흡수한 건가.’

폭음은 침투조가 목표를 이뤘다는 의미.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데에에엥- 데엥--

급작스런 종이 울렸다.

‘……쉬운 끝은 아니겠어.’

종이 울렸으니, 이제부터 난이도는 올라갈 터였다.

적이 몰려들기 시작하겠지. 살아남은 관리자도 문제거니와, 곳곳에서 몰려들 병사들도 문제였다.

문제가 일어났으니 해결해야 할 터.

“모두 집결!”

마이틀은 소리를 높여 외쳤다. 내기 실린 그의 외침이 관리자 숙소를 울렸다. 쩌렁쩌렁한 그의 목소리에 암살조가 모여든다.

그 수가 마이틀까지 스물.

‘희생자는 없다.’

수백의 관리자를 처리하는 동안, 희생자는 없었다.

인원은 금세 더 불어났다. 진법석을 설치하러 갔던 침투조가 합류한 덕이다. 그 수, 총 서른아홉. 이 또한 희생자 없이 온 수였다.

‘여기서 울린 건가. 역시 내가 갔어야 했어.’

문제는 있다.

“어디서 당하고 온 건가?”

“마지막 나오는 길에 당했습니다. 신성력을 이용한 결계가 있었습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이더군요.”

“……그래도 죽지 않았으니 됐다. 부상자는 뒤로! 나머지는 진법을 형성한다.”

사망자는 없어도, 부상자가 있다.

상관없었다.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치료할 수 있었다. 다른 곳이 아닌 어센션에선 그게 가능했다.

부상자를 둘러싸고. 일행 모두 진법을 생성했다.

의환지변진.

의선문에서 자랑하는 진법 중 하나. 외부의 적으로부터 환자를 보호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졌던 진법이다.

현재에 이르러 테스의 깨달음을 녹여, 한 단계 더 발전한 진법이었다.

그 발전 덕분일까.

“진형 갖추었습니다.”

“개진!”

고오오오-!

진법을 개진하자마자 주변의 힘이 소용돌이쳤다. 기운은 움직여, 일행에게 뻗어 나갔다. 뻗어 나간 기운을 일행은 흡수.

“후우…….”

“이 미친 기운만 흡수하고 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단 말이지.”

자신들의 힘으로 삼았다.

본래라면 급작스런 힘의 흡수는 전투에 방해가 되는 터. 아무리 힘이 강해졌다 해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힘은 없느니만 못했다. 그러나, 몇 번의 수련으로 진법을 형성한 경험이 있던 그들이기에.

“어디, 와 봐라!”

“버텨라! 얼마간만 버티면 돼!”

후우웅-!

검을 휘두르는 그들은 정확히 힘을 배분하고 있었다.

* * *

차아악-!

얼마간의 전투가 진행됐을까.

부상자를 제외한 서른이 짠 진형으로 버티고 선 채로, 마이틀은 수십의 병사를 베어 넘긴 지 오래였다.

마이틀을 제외하고 진법을 형성한 자들까지 베어낸 병사들을 합하면 그 수가 천이 넘을 터였다.

수많은 자를 죽였다.

이쯤, 죽여 놓으면 본래 사기가 꺾여 나가야 할 터.

“불신자들이!”

“감히이! 우리의 신성력을!”

그러나 적 성국 병사들은 끝을 모르고 달려들었다.

‘망할 광신도들 같으니라고.’

광신의 힘이었다.

저들은 착취를 당하지 않는 대신에, 제대로 세뇌당한 자들. 신성홀의 신성력은 진법석에 깨져 흩어졌더라도, 저들이 지닌 신성력은 여전히 유효했다.

신성력이 허락하는 한, 저들의 광신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저들에게 있어 전투에서 죽음은 천국이자 발할라로 올라가는 매개일 뿐이기에, 죽음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았으니까.

“커윽…….”

“……내세에선 내가 널…….”

푸우우욱-!

되레 그들은 죽음을 반기었다.

특히, 전사의 신과 초대 황제를 모시는 성국의 움직임은 더 격렬했다. 마치 자신들의 신에게 어떠한 계시라도 받은 듯이!

“후우욱…… 후…….”

제아무리 의선문 제자들이라도 한계는 있었다.

거죽, 지방, 그 아래 뼈.

그 모든 걸 갈라 버리며 베어 넘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수가 백을 넘어가면, 내력이 있다 해도 온몸이 뻐근해짐을 넘어 피로가 쌓인다.

광신자를 상대로 한 정신적 피로도는 넘긴다손 쳐도, 육체의 피로도는 무시할 수 없었다.

“죽어어엇!”

그 가운데, 진법의 틈을 노리고 부상자들을 죽이려는 광신자도 있었으니.

“허튼짓이다.”

“……컥.”

막아 내고는 있으나, 피로도는 쌓여 갈 수밖에 없었다.

‘십 분. 아니 이십 분 정도가 한계인가.’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버티고 설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슬슬 신호를 보낼까요?”

“……이쯤이면 꽤 해냈겠지. 당장 신호를 보내!”

“명!”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피유우우욱-!

신호를 보내란 마이틀의 말에, 신호탄 하나가 허공으로 올라가 터진다. 그 신호탄이 그들이 가진 두 개의 희망 중 하나였다.

‘제발 먹혀들었길!’

그러나, 그 성공 확률이 그리 높은 희망은 아니었다.

제발 먹혔음을 바라며, 얼마나 버텼을까.

얼마 뒤, 곳곳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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