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편
챕터 2.
거대한 성벽. 티끌 하나 용납하지 않는 듯, 새하얗기만 한 성벽 위. 포격이 가해졌다.
파아아앙-!
마법이 아닌 마력 그 자체를 순도 높게 만들어낸 마폭탄. 수호자가 지닌 육체의 일부를 갈아 만들어 빚어진 폭탄이기도 했다.
그러한 폭탄이 성벽에 작렬하는 그 순간.
차아앙-!
“큿…….”
“저 소리는 언제 들어도 적응이 되질 않아.”
유리가 깨져 나가는 듯,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뒤에 생겨난 서늘하니 투명한 막은 마폭탄을 막고자 발악했다.
발악은 먹혀드는가 싶었다.
수십여 개의 마폭탄을 날려댔음에도, 버텨내었으니까.
“머저리 불신자들 같으니라고!”
“너희들이 성벽을 넘을 성싶으더냐!”
막이 버텨내자, 그 뒤로 들려오는, 조롱들. 성 위로 자리 잡고 있는 성군들의 조롱이었다. 누구보다 원색적이고, 저열한 욕설들이 날아든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였기에 날아드는 욕설.
아래에 위치한 어센션군 병사들은 그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저 자식들은 도무지 지칠 줄을 모르는구만.”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거겠지. 제 놈들이 막아낸 게 고작해야 각도 계산을 위한 포격이라곤 생각도 못 하는 걸 거야.”
기분이 더러워 짓는 찌푸림이 아니었다.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멍청한 성군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머저리들.”
나지막한 욕지거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이 차 포격이 날아든다.
파아앙-! 팡!
그 수가 수백 개.
“오, 온다!”
“수가 많잖아! 이 미친! 누가 포격이 금방 끝난다고 그랬어!”
마폭탄 수는 금방 불어나 천에 가까워진다.
말 그대로 일 차 포격은 각도를 재기 위한 시험 포격이었을 뿐. 이 차 포격이 진짜였다. 그 진짜를 바라본 성국군에선 난리가 난다.
“신과아아안! 어서 신성력을!”
“성기사들도 신성력을 보태!”
“피아른이시여!”
“으아아! 신이시여!”
대응을 시작하나 이미 늦었다.
드드드득-
그들 성군을 보호해 주던 투명한 막에 금이 간다. 작게 벌어진 틈은 이내 크게 찢겨 나간다.
쩌저저저정-
순식간에 사람 수십은 들어가고도 나갈 정도로 벌어지는 그 순간.
저 하늘 위에서 이 모든 상황을 그려 나가고 있던 테스의 명이 떨어진다.
-집중 포격!
단 네 글자의 명령. 그 하나면 충분했다.
-명!
-집중!
명을 들은 수호자들의 속도가 빨라졌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은, 제 손 일부를 변환시켰다.
거대한 마폭탄을 날리는 걸 대신하여, 작은 폭탄을 수없이 쏘는 형태로!
크기가 작아져, 위력이 작아진 대신.
드드드드득-!
그 연사력은 수십 배로 늘었다. 작은 마폭탄이 연사로 쏟아진다.
“오, 온다!”
“막아! 틈을 더 벌리지 못하게 하란 말이다!”
난리가 난 성국. 그들이 신성력을 불어넣어, 틈을 다시 줄여 보려 한다.
그들 성벽을 보호하는 ‘신성의 막’은 그들 방어전의 성패를 가르는 최고의 수단!
성국의 누구든 잘 알고 있었다.
그 수단이 깨어져 나가는 순간, 자신들이 제대로 방어전을 펼쳐낼 확률은 0에 수렴한다는 것을.
스스스스-!
그렇기에 신성력을 쥐어짜 보지만.
“크읏…….”
“트, 틈이 더 벌어집니다!”
저들의 발악은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수호자들이 마력포를 발사하는 행위는, 이미 여러 번 성국 군대의 방벽을 상대하며 뚫어 본 경험이 녹아든 방식이기 때문!
막에 거대한 구멍을 뚫어낸 후, 연사 공격을 날려 틈을 조금씩 벌리는 방식을 저들 성국이 막을 수 없는 걸 이미 몇 번이고 경험한 어센션군이었다.
“찌, 찢어진다!”
쯔즈즈즈즉-!
결국 막이 완벽히 찢어진다.
제가 보호하던 속살을 드러낸 막이 드러난다.
새하얀 성벽이었다.
본디 신성력을 불어넣은 신성 벽돌로 만들어낸 성벽이기에, 그 방어력은 여타 성벽을 뛰어넘을 터.
내구성과 단단함만을 놓고 보면 그 어느 성벽이라도 뛰어넘기 힘든 게 신성 요새의 성벽이었다.
그렇기에 보통이라면, 그 성벽을 끼고 있음에 성군 병사들의 사기는 어마어마하였을 터였다. 막이 찢어지더라도 성벽을 상대로 버티고 서면 적이 넘을 확률은 낮아졌을 테니까.
그러나.
어센션군은 저 성벽을 상대로 한 무기도 이미 구비해 놓았다.
-변형 개시.
-뚫어라!
“저, 저건 또 뭐야!”
“소문이 사실이었나…….”
수호자 중 일부가 제 몸을 변형했다.
변형된 몸은, 이전에 악신자가 지녔던 형태와 비슷했다. 거대한 거인의 형상에 두꺼운 양팔을 지닌 형태였다.
주먹을 대신하여 망치 같은 거대한 두 손이 눈으로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쿠우웅. 쿵.
거대한 진동을 일으킨 양손을 들고 수호자들이 성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반 병사들 일부가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떤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이곳 말고도 이미 다섯이 넘는 요새들이 어센션군의 손에 떨어진 것을.
일부지만 영토까지 넘어가게 된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어센션군의 위용이 그들을 주눅 들게 했다.
그렇기에 떠는 것이다.
그들과 달리 완벽한 광신으로 무장한 성직자들은 두려움조차 잊고 있었다.
“닥쳐랏! 불신자들이 흘리는 소문 따위가 뭐라고!”
“뭐 하는 거야! 어서 저것들을 처리하지 않고!”
그들은 되레, 덜덜 떠는 병사들을 향해 악다구니를 썼다.
“신성 화살을 날려!”
“신관들은 어서 화살을 벼려주도록!”
“준비된 공성 병기를 날려라!”
그들의 악다구니는 효과가 있긴 했다.
“아, 알겠습니다!”
“며, 명!”
병사들이 훈련받은 대로 활대에 화살을 놓고, 시위를 쟀다.
“속사!”
신성 화살을 날리고. 신성력으로 벼른 신성 마법을 날린다. 준비된 공성 병기에 포격이 시작된다.
압도적이랄 수 있을 위력!
그러나.
저들이 상대하는 건 일반적인 병기가 아니었다.
저들 수호자는.
-회피 기동.
스스로 생각하며, 다가드는 공격을 피할 줄 알았다.
그뿐이랴.
-나머지는 보호하도록.
진동을 만들어낸 일부를 제외하고, 남은 개체들은 그들을 보호했다. 더불어, 맞대응을 하기 위해 포격을 날리는 개체도 있었다.
지능이 없는 골렘과 달리, 이들은 제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개체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성국의 대응 방식은 제대로 먹힐 리가 없었다. 그 대응 방식이 순식간에 파훼됐다.
“왔다!”
그러고도 모자라, 진동을 머금고 온 수호자의 양팔이 성벽에 닿았다.
-고유 주파수 확인.
-개시!
드드드드드득-!
때로, 압도적인 물리력보다도 진동과 같은 특수한 힘이 단단한 성벽을 무너트리는 데 더 효과적인 터!
거대한 진동이 요새 안을 파고든다.
-마력 침투!
더불어, 퍼져 나가는 진동과 함께 수호자가 지닌 마력이 함께 투입됐다.
안으로 들어간 마력은 내부에서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틈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내부에 진동을 직접 투과하고, 마력도 쏟아붓는 방식!
이 순간, 여타 요새에 비해 압도적이랄 수 있는 내구성을 지닌 성군의 성벽은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었다.
“무너진다!”
“어억…….”
콰아아아앙-! 콰앙!
결국 진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성벽의 일각이 무너지는 그 순간.
-출격하라!
그때를 기다린 테스의 명이 떨어진다.
“전진!”
그 아래서, 병사를 이끌고 준비하고 있던 테론. 선봉에 선 그가 가장 먼저 달려가는 걸 시작으로, 병사들이 함께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 *
달려 나가는 테스의 군세.
“후욱…….”
그 가운데 서 있는 티리스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지쳐서 내쉰 숨이 아니었다. 새로 각성하며 얻은 이능에, 무공까지 전수받은 그였다.
무공도 그에게 딱 어울리는 거였다. 온몸을 두꺼운 갑옷으로 바꿀 수 있는 그에게 꼭 맞는 무공.
갑주공을 받았으니까.
흔한 무공은 아니었기에, 테스가 직접 전수까지 도왔던 무공이었다. 기초를 잡은 이후는 수련 도구를 통해 수련하였으나, 기초만이라도 잡아 준 게 어딘가.
의선문의 레이즈가 매일같이 주는 영약으로 내공을 늘리고. 마탑에서 주입해 주는 마력을 이용해서 이능까지 키운 그다.
고작해야 이런 전진에 그가 지칠 리 없었다.
“긴장했냐?”
“조금은.”
단지 전장이 가져다주는 긴장이 그의 숨을 거칠게 만들 뿐이었다.
“짜식, 금방 적응할 거다.”
“적응이라. 사형이나 가능한 일일 거 같은데. 나는 아무리 돌아도 전장은 적응이 되질 않아.”
숨은 거칠어졌다 해도, 그가 달리는 속도는 결코 느려지지 않았다.
“……짜식. 나라고 적응해서 움직이는 거겠냐. 다만, 해야 할 일이 있으니 하는 거지.”
“해야 할 일이라……. 해야 할 일.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여기 있었지. 아무리 봐도 여기 성국 놈들은 적응이 안 되거든.”
“그래. 그러니 더 속도를 높여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지. 더 올릴 테니, 잘 따라와 달라고.”
“오냐!”
되레 그들이 달리는 속도는 더 빨라졌다.
‘쳐죽일 새끼들.’
가까워지고 있는 성국의 성벽. 무너진 성벽을 막고자, 제 몸을 들이밀고 있는 성국의 성군. 그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
티리스는 속도를 높임과 동시에, 발 아래로 휘몰던 공력을 일부 제 몸에 흘렸다.
드드드득-
공력을 부여받은 그의 몸 전체에 비늘이 돋아난다.
전설 속 용 비늘과 비슷하여, 용갑이라 불리는 그의 이능. 오러라도 쉽게 뚫지 못할 갑옷이 그를 덮었다.
그럼에도 그는 만족을 모르고.
‘더!’
제 몸에 남아 있는 또 다른 기운, 이능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꽈악-
그러자 그의 몸을 기이한 압박감이 사로잡았다.
그는 이 압박감을 즐겼다. 느껴지는 압박감만큼이나 그의 방어 능력이 상승했다는 의미니까!
그가 제 방어 능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이유는 하나!
“새끼들아! 뒤졋!”
제 몸을 포탄 삼아, 적인 성군을 때려 부수기 위함!
콰아아앙-!
포탄처럼 쏘아진 그의 몸체가, 성군이 몸으로 쌓은 방벽을 휘몰아친다. 일부가 균형을 잃고 쓰러졌고, 없던 틈이 드러난다.
“막아!”
성군이 그 틈을 메꾸려 하나.
“이 쓰레기들이 어딜! 후욱!”
그는 숨을 들이쉬며 가빠진 호흡을 회복하고, 곧바로 적들을 휘몰아쳤다. 성군이 벌어진 틈을 다시 메꾸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애써 좁히려는 틈이 다시 벌어지고.
“짜식. 먼저 가마! 고맙다!”
“사형! 다 죽여주쇼!”
그 뒤를 기다렸다는 듯, 그의 사형 야스러가 틈을 뚫고 들어간다.
“죽어라! 광신도 새끼들!”
“불신자가 감히!”
“죽여!”
“우와아아악!”
그 뒤 벌어지는 건 학살극이었다.
광기에 들어찬, 성군. 그러한 광신도를 베어 넘기는 의선문의 제자들. 제자들이 틈을 벌려 놓으면, 그 뒤는 무공과 마력 장비로 무장한 어센션군이 들어찬다.
쯔으윽- 쯔윽-
성군이 거대한 하나의 육체라면, 그 육체 곳곳에 상처가 나고 찢어지는 형상들이 만들어진다.
들어차는 어센션군은 그 작은 상처를 벌리고 또 벌려댔다.
헤집어대는 상처를 결국, 성국 병사들은 버텨내지 못했다.
“크아아악!”
“……컥.”
제 몸들을 지켜주던 성벽과 신성 보호막, 신성력. 그 모든 게 다 소진되는 순간 그들에게 남은 건 오롯이 죽음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함락이다!”
“09요새 공략 성공입니다!”
성국이 자랑하던 요새 하나가 단 하루 만에 무너져 내린다.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 결과. 그러나.
“……이제 다음 단계로군요.”
“크흠…….”
성국의 요새를 무너트린 어센션군은 마냥 기뻐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함락을 한 이다음. 그다음 그들의 눈에 벌어질 참사를 이미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부터 벌어진, 그리고 이후로도 벌어질 참사.
그걸 예상하고 있기에,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거였다. 그 참사는.
“……어서 가지. 한 명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나?”
“그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