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편
챕터 1.
악신자를 모르는 테론. 그에게 있어 눈앞의 것들은 골렘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빛을 머금은 듯 새하얀 골렘. 그것들이 군세를 지키듯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군세의 앞이 아닌 전역에 존재하고 있었다.
어센션군을 둘러싸고 같이 전진하는 골렘들은 제각기 움직이는 듯 보였다.
중구난방으로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그것들이 뭉치는 경우는 단 하나였다.
-적, 인지.
-분쇄한다.
몬스터가 등장하였을 때.
그때가 되면, 달리 통신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순식간에 뭉쳤다.
“제법 대단하지 않습니까?”
“치밀하고 유기적이야. 대단하군.”
그 움직이는 방식이 테론조차 감탄할 정도였다.
적이 나오는 곳을 향해 필요한 전력만큼만 뭉쳐 전진. 남은 것들은, 출격하고 남은 빈자리를 알아서 메꾸었다.
이 모든 일이 누군가의 명령도 없이 유기적으로 이뤄졌다.
수백의 개체가 그리 움직였다.
한, 둘. 잘해야 기사단 하나 정도나 흉내를 낼 수 있을까.
실상, 수백이 저러한 방식으로 운용되는 건 어려움을 넘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데 그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대체 주군은 뭘 만드신 거야?’
어센션군을 이끌며, 눈이 높아진 테론으로서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테론의 눈엔 골렘.
그들을 만들어낸 테스로선 수호자라 이름 붙인 골렘들은 운용 방식만큼이나 전투도 세련되게 벌였다.
콰아앙-!
-키엑!
몬스터를 분쇄함에 힘의 낭비가 없었다.
제 몸을 무기로 사용하는 한편, 적을 몰아붙였다.
원하는 곳으로 적을 몰아붙이는 포위망이 형성되면.
-이능 사용을 허가한다.
-가장 유효한 방식은, 진동. 바로 사용하겠다.
드드득-
-키야악!
-껙!
그 뒤는 테론도 생각하지 못한, 이능을 사용하며 남은 몬스터를 분쇄했다.
피식자인 인간이 산맥에 오자, 신나서 몰려들어 왔던 몬스터들이 몰살당했다.
출몰하자마자 전멸당했으니, 그 시간이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전력의 출현이었다.
테론도 저들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 정도야 가능은 할 터.
그러나 희생자 하나 없이 저리 처리하는 건 힘든 일이었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감탄하던 그 얼굴도 얼마 가지 않아 금세 찡그려졌다.
-흡수 개시.
뒤이어지고 있는 ‘흡수’라는 행위 때문.
“저거…… 또 시작이군.”
“든든하긴 한데, 저 모습만은 적응하기가 힘들긴 합니다.”
적을 분쇄한 수호자는 제 가슴을 스스로 열어젖혔다. 블랙홀과 같은 구멍이 가슴을 통해 보여지는 순간.
스스스스스-
피, 거죽, 마석…….
그게 무엇이든 수호자들은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드드득-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들은 날카로운 무언가가 갈아대는 소리가 나며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단순 육신만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천품의 재능을 지닌 테론. 오러 마스터가 된 지 오래인 그는, 제 길을 개척하는 동안 영안도 일부 눈을 뜬 지 오래였다.
그런 그가 보기에 저것들은 단순 피륙을 넘어 영까지 흡수하고 있었다.
‘존재까지 사라지는군……. 몬스터기는 하나…… 대체 테스 님은 저것들을 만들어 무얼 하시려는 거지?’
사체와 영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면.
-흡수 완료.
-개체를 분석.
-이미 분석된 개체. 효율적으로 소화하는 방식을 도모.
그들은 테론으로선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며, 그 힘을 완벽히 흡수했다.
“그사이에 더…… 강해졌군.”
“말 그대로 흡수하는 거 같습니다.”
수호자들은 적의 힘을 흡수함으로써 전투 이전보다도, 전투 이후가 더 강해졌다.
흡사 테스가 흡수하는 손길을 이용하여, 적의 힘을 빨아들이는 것과 비슷한 행위였다.
어쩌면 그보다 한 단계 더 나갔다고도 볼 수 있었다. 테스는 적의 생기를 빨아들였을 뿐이었으니까.
저들은 세상에 남는 모든 흔적을 빨아들여 제 것으로 삼고 있었다.
저러한 수호자들이 수백을 넘어 수만이 되고. 세상을 횡보하며 모든 걸 흡수를 한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할 정도로군…….’
그때가 되면 세상에 수호자를 제외한 그 무엇이 남을까 싶은 테론이었다.
적이 아닌 아군이었기에 망정이지, 적으로 상대할 생각을 하면 오러 마스터인 그로서도 감히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강대하기까지 하였으니!
‘……저걸 상대해야 할 성국이 불쌍할 정도인데.’
저도 모르게 곧 맞이해야 할 성국에 대한 애도를 잠시 하는 테론이었다.
그렇게 테론이 점차, 수호자들에 적응해 가는 만큼 시간을 흘러 갔고.
“곧 있으면 울픈 산맥도 전부 돌파하겠군요.”
“……이틀 정도 남은 건가. 행군 이후 바로 전투가 벌어질 테니, 지금부터는 속도를 줄이며 컨디션을 조절하도록 명하게.”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적지라 할 수 있는 성국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워지는 만큼, 울픈 산맥의 수많은 몬스터를 흡수한 수호자들은.
-적의 영역 도달. 힘의 강대함이 느껴진다.
-격을 강화시킬 방안이 필요. 방안을 찾았다.
-바로 시행하도록 할 것.
이제 수호자에게 다 적응했다고 여겼던, 테론으로서도 놀랄 기행을 다시금 벌이기 시작했다.
“저것들은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 * *
수호자가 벌인 기행. 그것은 진화였다.
그간 흡수한 모든 힘들에 대한 소화를 마무리하고. 저 바깥에 있는 성국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에 맞는 진화.
까드드득-
비대해진 제 몸을 욱여넣고, 그 안에 제 힘을 압축한다. 고통스러운 게 분명할 터. 인간이라면 견디기 힘들 격통을 수호자들은 스스로 견뎌내고 있었다.
스스스-
시간이 지날수록 수호자들의 육신은 점차 작아져 갔다.
거인만 한 크기에서 인간과 비슷하게.
일종의 응축이었다.
응축된다 해서 약해지는 게 아니었다.
“순식간에 변화하는 것도 무서울 정도인데…… 힘의 크기는 되레 더 커지는군.”
“……놀라울 정돕니다.”
총사령관인 테론. 그보다 경지가 더 낮은 자들도 느껴질 정도로 힘이 강해졌다.
단순 힘만이 강해진 게 아니었다.
-새로운 육체에 적응 완료.
-으음…… 좋은 기분이다.
녀석들은 전보다 의사소통이 더 활발해졌다.
더 빠르고, 단단해졌다.
‘……전엔 익스퍼트급의 오러도 견뎌냈다던데, 지금이라면 마스터나 겨우 뚫어 보려나.’
단순 단단하기만 하지 않았다.
스스스-
응축을 자유자재로 하듯이, 그 몸을 재생하는 것도 수호자들은 쉽게 해냈다.
육체 수복 능력이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쑤욱-
일부는 제 몸의 일부를 스스로 떼 내어 무기로 삼을 정도였다. 떼어 낸 육체는 초 단위도 지나지 않아 바로 회복됐다.
그 모든 장면들이 기괴하기 그지없으나.
“적이 아닌 아군이라 다행이라 해야 하나.”
“그래도 든든하긴 하군요.”
저들이 강해지는 만큼이나, 아군의 안전은 보장될 터.
그렇기에 테론은 저들에 대한 혐오감보다도 기꺼움이 더 컸다.
‘……제아무리 성국 군대가 괴멸됐다 해도, 본국을 정복하는 건 무리 같았는데. 저들이라면…… 가능할지도.’
저들이 강력해지는 만큼, 그가 이끌어야 하는 부대의 승리도 가까워질 테니까.
“작전 계획을 저 수호자들에 맞춰서 짜 보자고.”
“예. 제대로 짜 보겠습니다. 저 힘을 활용하면, 최소의 피해로 최대의 승리가 보장될 겁니다.”
“기대하지.”
그렇기에 그에 맞춰 작전을 수립하고.
-도와 달라고?
“그래. 병사들을 계속 손 놓고만 있게 할 순 없으니까. 실전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거든.”
-……주인께서 당신들의 말을 따르라 했으니, 기꺼이 돕지.
때로 손발을 맞춰 갔다.
그러며 나아가기를 한참. 먼 듯 가까이 있었던, 성국의 요새가 그들 눈에 점차 들어오고 있었다.
* * *
공세를 위한 성국군을 제외하고. 방위를 위해 만들어진 상비군으로의 성국은 셋으로 나뉘어 있었다.
생명신 피리엘 교단 측이 이끄는 제1군.
빛의 핀도르교 측이 이끄는 제2군.
전쟁신의 제3군이었다.
이 외에 마법신 엘렐의 군세나, 아리엔의 군세는 그 수도 적거니와 병종의 특이성 때문에 특수 병종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크게 셋으로 나뉜 군대는 다시금 섞이고 나뉘었다.
제국군을 상대로 쌓은 방벽, 울픈 산맥, 저 멀리 서쪽의 이교도를 막기 위한 요새로 각기 전진 배치된 상황이었다.
그 종류도 다른 군대가 다시 또 여러 군세로 나뉘었지만, 그들을 묶는 게 하나 있었다.
신앙이다.
서로 모시는 신조차 다르나, 화합하란 신들의 명이 있기에 성국군은 그에 따랐다.
그러한 신앙으로 묶였기에, 여럿으로 나뉘었어도 성국군은 조화롭게 돌아가곤 하였다.
그러나 공세로 나선 성국군의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인 상황. 성국군을 이루는 자들의 의견은 둘로 대립하고 있었다.
-저들은 바로 올 것이 분명하오.
-제아무리 불신자의 군대라 해도, 우리 군대로 피해를 안 받을 리 없잖소. 바로 오는 건 무리요.
테스가 복수를 위해 오는 시기에 대한 의견의 대립이었다.
한쪽은 즉시라 말하였고, 다른 한쪽은 테스도 피해가 있을 것이니 그 시간이 오래 걸릴 거란 예측이었다.
어느 쪽도 타당했다.
그렇기에 한창 토의가 이뤄지던 즈음.
“급보입니다!”
성군에서 아직 제대로 된 성위를 받지 못한 신관 하나가 급히 뛰어들어 왔다.
-회의 중엔 누구도 들지 말라 명하였을 터인데!
-지금의 안건이 무엇인지 알고!
성국 내에선 신관이라 해도, 이 거대한 성국군 안에선 가장 낮은 자였기에 신관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러트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제 할 일을 잊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가 들고 온 소식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급보였으니까.
“죄, 죄송합니다. 그러나 전달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벌은 후에 받을 터이니, 이것을…….”
그는 제 품에 들고 있던 메시지를 성국군 장군 제콥에게로 넘겼다.
메시지를 받아 들면서도, 신관을 쏘아보던 제콥.
-이 일은 추후……. 허……?
메시지로 슬쩍 갔던 그의 눈이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제3 장군 에이드가 메시지를 슬쩍 보았다.
그 안에는.
바로 전까지 그들이 침공 시기를 재고 있던 어센션군에 대한 소식이 담겨 있었다.
-어센션군 성국 침입.
-제14요새 바사트 함락.
-제15요새 샤니르 지원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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