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편
챕터 24.
-드디어…… 죽음을…….
악신자와 성국의 군대가 공멸한다. 죽음이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었다.
다른 자는 몰라도 관측자인 헥사트의 눈엔 보였다.
‘……죽음도, 기운도, 영도, 흩어지지 못하고 있다.’
본디 그가 관측하는 죽음은 흩어 사라져야 했다.
혼백이 나뉘며, 혼은 제가 모시는 신에게 가야 했으며. 백은 세상에 흐트러져 그 일부가 돼야 했다.
기운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마나의 품에 회귀돼야 했다. 그럼으로, 다시 돌아가 그 흔적조차 지워지는 게 순리.
한데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들이 그가 아는 순리를 부정하고 있었다.
악신자들은 죽음을 바랐지만, 죽음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그아아아악!
그들이 맞이한 죽음은, 저 멀리 흩어지지 못했다. 영혼과 기운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들이 모시는 신을 향해 가야 했을 모든 것들이 단 한 사람을 향하였다.
‘……저걸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그 한 사람, 테스였다.
그는 죽음 이후 남은 모든 걸 끌어당기고 있었다.
단순, 끌어당김으로 끝이 아니었다.
흑마법사들이 그러하듯, 기운을 끌어당겨 제 것으로 삼았다면 차라리 나았을 거였다.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들은 자신들이 처리도 못 할 기운들을 꾸역꾸역 집어먹고 탈이 나곤 했으니까.
그들이 빠른 성장 뒤에, 금세 자멸해 버리는 이유는 바로 기운의 순정성이 떨어지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테스는 그걸 끌어당기고 삼키지 않았다.
‘차라리…… 제가 집어먹었으면 나았을 것을…….’
그는 되레 뱉어냈다.
투우욱. 툭.
그로부터 새로운 것들이 빚어져 태어났다.
태어난 그것들은 이전의 악신자들과 비슷하며 다른 존재들이었다.
악신자는 신을 믿는 영혼을 힘으로 빚어 만들어낸 것이라면.
‘……저건 대체 뭐라 해야 하는가?’
저건 영혼이며 영혼이 아닌 무언가였다.
그 무언가가 테스의 손에 빚어졌고. 서로 떨어졌으나, 하나의 군집이 되어 성국의 군대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콰아앙-!
그들이 손을 뻗어내면.
“컥…….”
성국의 군대 일각이 무너져 내렸다.
그들 앞에서 그들이 자랑하던 신앙도 신성력도 모두 무기력했다.
“성기사들이여! 뭣들 하나! 어서!”
사령관 바론이, 제 손으론 신성력을 뿜어내고. 다른 한편으론 정예기사단을 이용하여 막아 보려 하나.
카가가가가각-!
-그륵?
그들이 자랑하는 신성 오러는 저들에게 생채기를 냈을 뿐이었다.
철마저 절삭해 버린다는 신성 오러의 위력이 저들 앞에선 반감됐다.
그들이 가진 육체의 단단함 덕이었다.
그들의 육체는.
‘……신의 힘으로 빚은 육체를 이용하기 때문이겠지.’
악신자의 신체였던 것을 재료로 삼은 것이니까.
겉의 가죽은 물론이고, 그 안의 도도히 도는 혈관조차도 전부 신이 빚은 것들이 재료가 된 게 헥사트에겐 보였다.
일반 마법사에게도 신이 만들어낸 신체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재료가 될 터!
그러한 재료가 테스에게로 들어갔는데, 그 결과물을 더 말해 무엇하랴.
“헥사트! 아직도 약점이 관측이 되지 않는 것이오?”
“……보이지 않소이다.”
“허…… 어서, 어서 찾으시오. 관측자의 임무가 그것이지 않소?”
“…….”
계속된 관측으로도 절망만이 일어날 뿐이다.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쿠웅. 쿵.
-그르르…….
테스가 만들어낸 마법진의 의지를 이어받았을 그 무언가의 군집.
그것들은 결국 헥사트와 바론이 있는, 수뇌부들에게까지 가까이 다가왔다.
“캬아악…….”
“신이시여!”
그들을 대신하여 목숨을 걸 성전사들은 더 보이지도 않았다.
8만의 정병은 그 수가 채 5천이 되지 못하였다. 살아남은 자들조차 신에 대한 신앙을 대신하여 공포로 무장하고, 겁에 질려 전의를 상실했다.
1만의 신관 중 8천은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남은 2천은 죽음을 받아들이며 기도를 드릴 뿐이었다.
인간이 신을 향해 날리는 기도는 구원을 바랄 뿐, 이 상황을 구원하지는 못하였다.
성기사들이라 해서 무엇이 다를까.
정병들보다는 더 버텨내었으나, 그 수는 5천 중 남은 수가 100도 채 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죽어 남은 육체는.
“너희들의 것. 잘 쓰마.”
“사특한 불신자 같으니!”
“이곳에 쳐들어올 때부터 각오를 했어야지.”
잔혹한 학살극을 빚어낸 테스의 손에 끌려 당겨올 뿐이었다.
8만 정병의 사체보다도, 성기사 5천가량의 사체가 그에겐 더 의미가 있는 터.
악신자만은 못하더라도, 신에 귀의한 성기사의 육체는 그가 만들어낼 군집의 탄탄한 재료가 되어 주었다.
“일어나라.”
-그륵…….
성국의 군대가 쓸려나가는데, 테스의 군집은 되레 그 수가 불어나고 있었다.
그들이 자랑하던 방위군조차 손을 놓고 있는 지금.
테스는 성국의 전력을 깎아 제 전력으로 삼고 있을 뿐, 제 전력은 그대로 유지를 하고 있었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그의 전력은 더 커져 가고 있었다.
그만큼 성국의 군대가 가진 전력은 더더욱 쇠해 가고 있었고!
“막으시오!”
“어서!”
남은 수뇌는 바론을 중심으로 모여 발악을 해댔다.
그러나.
“저, 저것을 보시오…….”
“저건…….”
“……아아. 신이시여. 저희를 버리시는 겁니까.”
결국 그들은 끝까지 관측을 하던 헥사트의 손끝이 가리키는 것을 보고 남은 작은 희망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절망하는 그 끝에서 환히 웃는 테스.
“호오. 드디어 제대로 된 게 나왔구나!”
-명을…….
그가 이전과 차원이 전혀 다른 개체를 만들었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군집과 달리, 의지를 지닌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이었다.
‘……의지가 담긴 골렘, 아니 생명체라……. 그것을 탄생시키는 자를 감히 무어라 생각해야 하는 거지?’
과연 저러한 생명체를 만들어낸 존재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헥사트는 퍼뜩 떠오르는 한 존재가 있었다.
‘……신. 아니, 아니지. 그럴 리가!’
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제 생각을 부정했다. 성국에서 나고 자란 그가 보기에 신은 오롯이 천상에 있는 존재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
그렇기에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존재를 끝없이 부정했으나, 단 하나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예언이 실행됨인가.”
최후의 승천자가 성국을 무너트린다는 그 예언!
그들로선 성국의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막아내려 했던, 그 예언이 실행될지도 모른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 성국이여…….”
하기야 이제 와 그게 무슨 상관인가.
후우우웅-!
의지를 가진 군집 개체가 휘두른 손길이 바로 그 코앞까지 닿은 것을!
콰아아앙-!
“……컥.”
관측자의 눈으로도 막을 수 없는 그 공격은, 이내 헥사트의 복부를 완전히 꿰뚫어 버렸다.
후두둑 떨어져 내려오는 장기들과 이어지는 헥사트의 마지막 단말마!
제 허리를 반대로 꺾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헥사트. 그가 마지막까지 무슨 생각을 했을는지는, 이곳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콰즈즈즉-
뒤이어지는 군집의 전진에 완전히 짓밟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였으니까.
쿠우웅. 쿵.
테스, 그로부터 빚어진 거대한 군집의 군대가 성국의 마지막 잔뿌리까지 짓밟기 위해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곧 전멸하겠군.”
그는 끝끝내 성국 군대의 마지막을 제 눈에 담아가고 있었다.
* * *
어센션의 지배자가 된 지금. 용병으로 떠돌던 그때가 잊힐 법하나, 테스는 한 가지 규칙만은 잊지 않고 있었다.
바로 추격이다.
한낱 코볼트라 할지라도, 제대로 괴멸시키지 않으면 금세 그 수를 불려 오는 게 이 세계 상식.
바퀴벌레보다 더한 성국의 군대를 그는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추격대를 조성해.”
“예? 성국의 군대 중 도망친 자는 소숩니다. 그조차도, 금세 잡힐 것인데. 왜 추격대를…….”
그렇기에 추격대를 조성토록 명했다.
“보급대가 있으니까.”
“그들은 식량도 신성력으로 만들어 먹지 않습니까?”
전투 부대가 아닌 보급대조차도 그에겐 적이었으니까.
물론 그 수는 적을 거였다.
신성 비스킷.
성국의 군대가 지니고 다니는 전투 식량 덕이다.
신성력으로 빚어 만든 그것은 설사 다 먹어 버린다 하더라도, 신관의 기도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마법사가 간단한 음식과 물을 소환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
차이라고 하면, 무미 무취한 마법사들의 것에 비해 먹을 만하다는 거였다.
그러니 신성군의 보급대 수는 항상 적다.
그러나, 노릴 가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설사 보급대가 있다 해도 적을 겁니다.”
“적어도 상관없다. 신이 음식은 빚어 줘도, 무기는 빚어 주지 못하지 않나.”
“……아!”
보급대 그 자체가 아닌, 그들이 지녔을 것들이 테스는 탐이 났다. 또한, 적의 손에 다시 들어가게 되면 아군을 위협한 무기가 될 것을 알았다.
“그들도 소식을 듣고 후퇴를 하기 시작했을 터. 산맥이 비어 있는 지금이 추격의 적기다. 그러니 어서 추격대를 구성해 쫓도록!”
“당장 시행하겠습니다!”
그의 명을 받든 의선문 제자들과 남은 방비군 일부로 추격대가 구성됐다.
“전멸시키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을 각오를 하고 다녀오도록.”
“명!”
총 셋으로 만들어진 추격대는 금세 성국 보급대를 향해 날래게 몸을 움직였다. 그들의 뒤로.
쿠우웅. 쿵.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그가 빚어 만들어낸 새로운 개체. 남은 진법의 의지를 이어받은 것들. 테스로선 수호자라 명한 그것들이 추격대의 뒤를 따라붙었다.
그리고 얼마 뒤.
“크아아악!”
산맥 곳곳에서 성국 보급대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성국이 자랑하던 군세 성국군.
그들이 지닌 최대 전력이 울픈 산맥 안에서 완전히 궤멸되는 순간이었다.
그 모든 순간들을 기다리고 있던 테스. 그는 얼마 가지 않아.
‘이제 시작인가.’
또 다음 걸음을 잇기 위해, 마지막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