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편
챕터 23.
-죽여줘!
-그만 끝내 달라고!
쿠우웅. 쿵.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악신자들. 아니 허옇게 물들어, 육신에 있어야 할 악신의 손길 자체가 희미해진 저것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이름을 명명할 시간 따위. 저들의 전진을 맞이해야 하는 바론으로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수십, 수백여 번. 어쩌면 수천여 번 외워 왔던 성국의 전투 교본에 맞추어 저들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선봉군 방벽을 형성. 충격에 대비하라. 신성 마법을 날릴 수 있는 자들은 곧바로 자유 사격을 시행하도록!”
“전하겠습니다.”
방벽을 형성. 악신자의 전진을 막아내고.
충돌 이전 신전 마법으로, 속도를 떨구어낸다.
정석적인 방법. 성국에서도 교본 그 자체라 불리는 바론다운 대응 방식이었다.
하나, 그가 교본대로만 움직였다면 이 자리의 사령관에까지 오르지는 못했을 터였다. 그는 정석적 대응 뒤에, 잔혹한 명을 내렸다.
“중급 이상 신관은 방어막을 형성하여, 악신자, 아니 적 전진을 봉쇄하라. 이것으로 속도를 최대한 줄인다. 설혹 그게 실패하여 선봉군 희생자가 발생하여도 회복 기도는 도모치 말도록. 다소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전달하겠습니다.”
다소의 희생자. 아니 상당하고도 남을 만치 많은 희생자가 나올 걸 예상함에도 그는 치유 행위를 금하였다.
“남은 신력 모두 적들을 고꾸라트리는 데 사용하도록 명한다. 적의 괴멸. 이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도록!”
“……명!”
적을 확실히 분쇄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사령관이라 하나, 한 사람이 내리기에 잔혹한 명령. 선신을 모신다 하는 신관이 내리기에 어울리지 않는 듯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또한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일지니.’
이를 명령한 바론은 거리낌이나 죄책감 따위 없었다. 그저 신에게 기도하여 제 죄의 사함을 바랄 뿐이었다.
-죽여 달라고!
그에게 있어 죽음을 향해 달려드는 악신자는 변절자이자, 불신자일 따름이고.
불신자에게 그가 내리는 형벌은 가차 없는 죽음뿐이었으니.
그로선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저 그가 안타까워하는 건 하나.
‘희생이 많구나. 성국의 이름을 널리 퍼트려야 할 이때에 병사들을 잃어서야…… 쯧. 아직 갈 길이 멀구나. 멀어.’
이번에 깎여 나간 전력으로 인해서, 성국의 세가 줄어드는 것을 염려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바론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10만에 가까운 대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의 카리스마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따라야 하는 병사들로선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죽는구나…….’
‘버림받았어.’
‘신이시여…….’
‘아아. 제가 가나이다.’
그의 명령에 의해 제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절감하기 때문.
광신도로 이뤄진 군대라 할지라도, 죽음이 주는 공포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다만 희박할 뿐이다.
그 희박한 공포감을 씻어내고자 가슴께에 성호를 그리고, 작게 기도문을 읊어댄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죽음에 대한 공포 따위 씻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쿠우우웅!
-죽여 달라 했잖나!
한때는 든든한 우군이었던, 악신자가 자신들에게 부딪쳐 오는 걸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콰아아앙-!
악신자, 아니 변질자와 성국의 군대가 부딪친다.
전쟁의 양상이 뒤바뀌었다.
* * *
‘아, 안 돼!’
관측자 헥사트. 그의 눈엔 양군이 가진 힘의 크기가 눈으로 보였다. 거대한 빛의 번짐의 차이가 힘의 차이였다.
전엔 테스와 성국군의 차이가 백중지세였다.
성국은 몬스터를 이용하여 테스군의 의표를 제대로 찌르고 들어온 덕분이었다.
성국의 군대가 가진 장점은 빠른 회복력!
그를 이용해 테스의 군을 깎아내리기만 한다면, 승산은 충분했다.
그 뒤, 테스의 흩어졌던 군대가 오기 전에 그를 잡아먹으면 그의 성세는 그날로 끝을 고할 터였다.
한데, 지금은 그 예상이 정반대가 됐다.
‘너무 커!’
성국과 그의 군세의 힘의 크기가 크게 차이 났다.
단 하나.
변질한 악신자들 때문이었다.
백중세를 이끌게 하던, 악신자는 이제 적군이 되었고. 테스의 군대는 그들을 흡수하여, 그 군세가 더 커졌으니까.
아는 만큼 보인다 하던가.
관측자인 그이기에 더 잘 보였으며, 더 잘 알았고. 그렇기에 이 상황이 잔혹하게만 보였다.
콰즈즈즉- 콰즉-
“크아악!”
관측자는 성국이 자랑하는 방패병의 방패를 곤죽 냈다. 병사째로 곤죽을 내는 변질된 악신자는 죽음을 바라면서도.
-죽여 달란 말이다!
콰아앙! 쾅!
이미 곤죽이 된, 방패병들을 뼈까지 갈아대고 있었다.
제가 지닌 신력을 평생 동안 방패에 벼린 성국의 방패병. 설사 오러라도 버텨낼 수 있게 만들어진 성국 방패병이 스러진다.
방패병이 스러지자, 그 뒤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성위병이라 칭해지는 자들이었다.
“오, 온다…….”
“어서 쏴!”
성위병. 이들은 타국의 궁수들을 대신하는 병종이었다.
화살 대신 제 몸에 새겨진 성흔을 사용하는 자들. 팔에 길게 자라나 있는 성흔을 통해 만들어진 신성 화살은, 설사 기사의 갑옷이라도 쉬이 꿰뚫었다.
가장 강력한 성흔을 지닌 자는 기사 10명의 갑옷을 그대로 꿰뚫었다는 전설도 전해질 정도였다.
이들에겐 성흔의 화살을 날리는 훈련도 필요 없었다. 성흔의 화살 자체를 의지로 조종하니, 맞출 수밖에 없으니까.
이들 모두 물러나지 않고, 변질된 악신자들을 향해 성흔을 날렸다.
쉬이익- 쉭-
날아든 화살이 악신자의 가장 치명적인 곳들을 노렸다.
눈, 심장, 귀, 아킬레스건…….
하나라도 꿰뚫리면 치명상을 당하는 곳들.
설사 치명적이지 못하다 해도 상관없었다. 전장에선 작은 부상으로도 전투 불능을 만들 수 있으니까.
이들 성위병은 그러한 틈을 만들어내기만 해도, 평소의 몫을 다하는 거였다.
“어서 날려!”
“버텨라!”
“신이시여!”
변질된 악신자들이 달려듬에도, 제자리를 지키며 성흔의 화살을 날리는 이들의 모습은 일견 거룩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다! 다들 그곳을 노리면 안 돼!”
관측자인 헥사트가 보기에 이는 무의미했다.
그의 눈엔 전력의 색 번짐을 넘어, 그 안에 담겨 있는 악신자의 육체들이 보였다.
악신자들의 몸은 실제로 존재하나 동시에 허상이었다.
신의 힘이 벼려져 만들어진 가짜 육체일 따름이었다.
악신자를 죽이기 위해선, 마치 골렘의 핵을 공격해야 하듯 공격해야 했다.
골렘이 핵을 파괴하지 않으면 무한히 재생하듯, 악신자 또한 진체를 공격하지 않으면 무한히 살아날 수 있었다.
다만, 골렘은 핵이라면 그들은 죽기 전 육체가 진체를 이루었고.
그 진체는 골렘의 핵과 달리 꾸준히 이동을 한다는 게 문제였다.
정확한 시기에 정확한 곳을 때려야만 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진체가 남아 있는 악신자는 설사 사지가 무너져도 다시 살아나 달려들게 돼 있었다.
치열할 정도의 지독함이었고.
아군이던 당시엔 그 무엇보다 든든한 재생력이었으나.
“크아아악!”
“저, 적이 고꾸라지질 않는다!”
-죽여 달라니까!
-이 무능한 것들아! 크흐으……. 고통스럽단 말이다! 고통스럽다고!
-제발 끝을…….
변질자가 적이 된 이 순간엔 무엇보다 절망적인 요소가 됐다.
발이 뭉개지고, 팔이 떨어져 내려도 달려드는 변질된 악신자들. 그들을 상대로 끝까지 분투하는 성위병들.
장엄하기는커녕 지옥 같은 피폐함만이 전장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아아…….’
그에 헥사트는 절망했다.
‘……저것은 또 뭐란 말인가.’
저 뒤.
악신자와 성국의 군대를 싸움 붙인 테스의 군세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태어나고 있었으니까!
* * *
성국의 군대에 지옥을 선사한 와중.
테스는 제가 가진 군대를 물렸다. 변질된 괴멸자와 성국의 군대가 치고받아 서로 공멸하기를 바라기 때문.
서로의 공멸을 지켜보는 가운데, 테스는 제 기운을 조율하고 다스렸다.
빠져나간 기운들을 다시 보충하고.
괴멸자를 상대하면서 얻은 깨달음들을 제 것으로 삼아 갔다. 실전이란 최고의 훈련 속에서 얻은 깨달음들은 그를 다시금 진일보시켜 주고 있었다.
그 깨달음들은 특히 힘에 관한 이해로 집중되었다.
악신이라 할지라도, 신이기에 힘에 대한 이해도는 높았고. 테스는 그를 지켜봄으로써 이해도를 상승시키게 되었으니까.
얻으면 써야 하는 법이지 않은가.
‘이거 재밌네.’
스스스스-
테스는 전에도 그러했듯, 이번에 얻은 깨달음을 현실에 구현하였다.
악신들이 괴멸자를 소환한다면, 그는 그의 품에 담겨 있던 진법의 의지를 새로이 소환하고자 했다.
진법의 설치 따위가 아니었다.
이 세계에 와서도 수백, 수천 번 설치한 게 진법이다. 그의 품에 들인 마탑에도 진법을 전수하고 있는 지금이다.
고작해야 진법 설치가 그에게 흥미를 줄 리가.
이건 설치가 아닌 소환이었다.
‘의도해 만든 건 아니다만. 그래도 얻었으니.’
제 스스로 의지를 지니게 된 진법. 영지를 지킨다는 맹목적인 충성을 지니게 된 이것을 현실에 구현코자 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것은 소환이었다.
쿠우우웅-!
처음 빚어낸 개체는 골렘과 비슷하였다. 소위 진흙 골렘이라 불리는 것과 비슷한 게 태어났다.
-그어어!
의지를 지녔으나 수준은 낮았고. 계속해 흘러내리는 몸체로 보아, 유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건, 좀 엉망인데. 가서 함께하도록 해라.”
-그륵…….
그는 실패작을 전장으로 보냈다.
-그륵!
그는 실패작이라 명하였으나, 골렘과 유사한 개체였다.
“저걸 막아!”
“크윽…….”
골렘처럼 핵이 파괴되어서 망가지는 개체도 아니었다. 진법의 의지가 스며 있는 한, 저 실패 개체는 계속해 육체를 재생하게 돼 있었다.
그렇기에 말이 실패작일지라도, 강력한 전력이 되어 성국의 군대를 압박했다.
그사이에도, 그는 계속해 소환을 시도했다.
하나, 둘, 셋…….
숫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실패작들이 연이어 태어나고 죽어 갔다.
전쟁 속에 일어나는 새로운 방식의 창조였다.
그리고 이는.
“……선봉대 괴멸하였습니다!”
“추가 투입을 하여야 합니다!”
“본국에 연락을!”
성국의 군대에 끝없는 절망을 안겨 주고 있었다.
이 모든 절망 가운데서, 관측자인 헥사트는 습관처럼 전장의 끝을 관측했다.
‘……끝이 보이는구나.’
그로선 생각하기 싫은 최악이 관측되고 있었다.
쿠우우우웅-!
괴멸자와 새로운 개체가 그를 향해 점차 다가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