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편
챕터 22.
가장 먼저 악신자에 부딪친 테스.
신체의 압도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그는 정면으로 부딪침을 주저치 않았다.
-쥐새끼가!
“이리 큰 쥐새끼가 있었나?”
-죽엇!
피할 수 있음에도, 되레 더 정면을 선호했다.
쿠우웅. 쿵. 쿠웅.
악신자 여럿이 사방을 노림에도, 그는 그를 받아들였다. 악신자들이 지닌 힘을 여실히 느껴보기 위함이었다.
목숨 걸고 악신자가 된 자들. 그들로선 그런 테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이 새끼가!
-테지르여!
그들은 테스를 향해 더 강력한 공격을 날리길 주저하지 않았고.
동시에 자신들을 죽여 악신자로 만든 신들에게 끊임없이 기도를 행했다. 악신자가 된 이들의 기도는 그 누구보다 간절할 터.
스스스스-!
그들의 기도와 축언이 주변에 퍼져 나갈 때마다 악신의 힘이 퍼져 나갔다.
퍼져 나간 힘을 받아들이는 악신자의 힘이 상승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당연했다.
비단 근력만이 상승하는 게 아니었다.
샤아악-!
더 빨라졌다. 동시에 부릴 수 있는 기운이 강해졌다. 순간순간 강력해지며 그들이 대가로 바치는 건 하나.
-키이익.
-킥킥.
신의 광기를 여실히 받아들이는 것.
‘미쳐 가는군. 신의 힘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저런 상태가 되는 건가.’
테스의 눈엔 광기를 받아들이며 변해 가는 저들의 모습이 여실히 느껴졌다.
실시간으로 제 자신을 잃어 간다.
영혼이 사그라들어 가고 있다.
그 대가로 신의 힘이 스며들고, 스며드는 만큼 존재가 흐릿해진다.
‘신을 믿어 힘을 받았음이 분명할진대, 그 대가가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라.’
공짜가 아닌 대가가 있음이다.
과연 대가를 바쳐야만 힘을 주는 신은 제대로 된 신인 걸까.
진짜 신이라면 대가가 필요 없을 터였다. 없는 힘도 만들어 줄 수 있겠지. 이를테면 창조 같은 거 말이다.
그럼에도 저들이 대가를 바쳐야만 힘을 준다는 건.
‘영혼을 잃는 대신에 저런 힘을 갖는 거 자체가 미친 힘이긴 하다만, 결국 저들이 모시는 신이라는 작자들도 결국 무언가에 매여 있다는 거겠지.’
신위에 그보다 더 촘촘히 짜여 있는 그 무언가, 알 수 없는 법칙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말은 결국 신성성을 얻어 승천자가 되려 하는 테스 자신도 저러한 법칙에 얽매인단 의미였다.
‘어쩌면…… 신위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단 거겠지. 신이 되어도 끝이 아니란 건가.’
신위에 무언가라.
승천도 하지 못한 지금. 그 개념에 대해 작은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상관은 없었다.
‘올라가고 나면 알게 될 일이니까.’
그쯤이야 승천을 하고 나서 알아내면 될 일이지 않은가.
중요한 건, 테스 자신이 보기에 승천을 해낸 저들 신의 힘은 생각보다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보인다.’
저들이 진법 안에서부터 악신자로 변모하는 그 모습을 여실히 보았던 그로선, 그 부족함이 전보다 더 크게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으로 보이는 저들의 약점이 있었다.
콰아아앙-!
그렇기에 테스는 처음부터 저들과 정면 승부를 마다하지 않았다.
악신의 저주가 내려앉고.
키클롭스보다 거대해진 저들의 주먹을 스스로 맞이해 주었다.
금강불괴가 완성된 육체에 금이 감에도, 괘념치 않았다.
몸에 두른 기운이 깨어져 나가도 상관없었다.
스스스-
빠져나가는 선천진기와 내력이 점차 바닥을 드러내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 가는 육체. 여실히 느껴지는 피로도. 그런 가운데서도 그의 미소는 짙어져 갔다.
-네놈, 웃어?
-냅둬, 꿈이라도 꾸는 거 아니겠나.
-버티면 뭐라도 될 줄 아나 보지?
그를 본 악신자의 표정은 구겨져 갔지만, 그의 미소는 유지될 뿐이었다.
그리고 때가 된 지금!
환한 미소는 악신자들을 향한 비웃음으로 변해 있었다.
“네놈들, 슬슬 느껴지는 게 있지 않나?”
-키이이익?
“내부에 뭔가가 느껴질 텐데 말야. 아직 눈치를 못 챈 거면 그건 좀 실망인데.”
저들을 상대로 자신이 행한 방식이 먹혀들고 있었으니까!
“자, 이제 변하자.”
그리고, 이변이 시작되었다.
* * *
이변을 처음 느낀 건, 악신자 자신들이었다.
-뭐지?
-……어?
-키이익?
자신들을 뒤덮었던 신의 힘.
그들을 신의 대리자로 만들어 줬던, 저 천계에서 내려오는 힘의 양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스읏-
축복처럼 끝없이 내려오던 힘이 어느 순간 뚝 끊어졌다.
더 이상 힘이 내려오지 않았다.
-신이시여!?
-이…… 대체!?
이는 이변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들 내부. 숙련된 오러 마스터보다도 열 배는 됨직한 힘, 그들의 육체를 악신자로 유지하여 주는 신의 힘이 점차 사그라들어 간다.
동시 변환되어 갔다. 알 수 없는 힘으로의 변환이었다.
힘이 변환되기 시작하고, 제가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줄어들었다.
-크어억.
-뭔 짓을 한 거냐!
-켁.
그러자 악신자들은 무거운 중압감을 느꼈다.
가볍게만 느껴지던 육체가 무겁게 느껴지고. 숨을 쉴 때마다 들이차던 힘이 사라지니, 온몸이 쪼그라드는 듯했다.
젊고 강대한 육체에서, 순간 다 늙어 버린 노인이 된 듯했다. 어마어마한 탈력감이 그들을 덮쳤다.
처음부터 강대한 악신자로서 힘을 몰랐다면 차라리 나았을 터였다.
하나, 그게 아니지 않는가.
강렬하고, 강대한 힘을 지니게 된 게 얼마 전이다.
인간의 틀을 벗어던지고, 악신의 대행자라 하는 악신자이자 괴멸자가 된 지금에 와서 급작스런 힘의 이탈이었다.
그 원인. 누구인지는 뻔하였다.
콰아아앙!
-저, 저놈 때문이야!
-크르르…….
“이제 좀 눈치챘나 보구나. 하지만, 늦었다.”
저들과 부딪치고 있는 테스였다.
테스는 자신들이 탈력감을 느끼는 것과 반대로 변해 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지닌 기운이 더 강력해지고 있었다.
마치, 그들이 악신자로서 지닌 기운을 흡수하기라도 하는 듯이!
* * *
자신들이 약해진 만큼 저자는 강대해지고 있었다.
덮쳐 온 탈력감에 의지가 옅어져 가고 있는 지금. 테스가 그들의 힘을 변환시키고 있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악신자들은 제 가슴 한편에 잊었던 감정 하나가 차오름을 느꼈다.
그 감정.
두려움이었다.
공포요, 절망이었다.
-우, 우리 힘을 뺏는 건가.
-으으으으.
-시, 신이여…… 저희를 버리신 겁니까? 제발 힘을…….
딱. 따다닥.
이빨을 떨어대며, 신을 향해 외쳐 본다. 절망이 들어찬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이 기도였으니까.
-…….
하나, 침묵뿐이었다.
기도를 드릴 때마다 저들에게 힘을 주던 신의 가호도. 그들 육체에 내려앉았던 축복도 점차 쪼그라들고 있었다.
절망이 악신자들 사이로 내려앉고 있었다.
목숨을 걸어 가며 이어 갔던 그들의 의지가 사그라들어 갔다.
“이제 시작인데, 왜들 그리 죽상이야?”
그러자, 이들 내부에서 또 다른 이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 *
“엇?”
그리고 그러한 두 번째 이변은 저 멀리 성국의 군세를 이끌고 있던 헥사트가 가장 먼저 느꼈다.
관측자 헥사트.
양군이 부딪치는 지금. 군세를 아우르는 책략가로 분해 있던 그였다.
군세를 이끌기에 관측자만 한 능력은 더 없을 터.
그는 의선문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어센션군을 상대로 분투를 벌이고 있었다.
서로가 밀고 밀리는 전투가 벌어지던 그의 눈에 힘의 변화가 잡혔다.
“히, 힘이 변한다고!? 시, 신의 힘이? 아무리…… 악신의 힘이라 할지라도…… 이건…….”
저 멀리 악신자들을 묶어 두고 있던 테스. 그로부터 힘의 변환이 시작됐고, 그 변화가 이내 악신자들을 잡아먹는 게 그의 눈엔 여실히 보이고 있었다.
신의 힘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진 신의 힘을 대신해, 이전에 보았던 기운이 들어차고 있었다. 그 기운은 어딘가 익숙했다.
바로 얼마 전, 그들을 막고 있던 그것이 떠올랐다.
“……아까 그 마법진의 기운인가?”
그가 마저 관측을 하려는 찰나.
그 옆에서 병사들을 같이 이끌던 바론이 외쳤다.
“어서 지휘를 하지 않고 대체 뭘 하는 것이오!”
“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오이다.”
“지금 이 순간 병사들을 이끄는 거보다 중요한 게 무에 있다고!”
“…….”
소리치는 바론.
헥사트는 대답을 대신하여 손을 들어 올렸다. 악신자들이 있는 방향이었다.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가는 바론. 얼마 가지 않아 그의 눈이 헥사트의 것보다 더 크게 뜨였다.
“벼, 변한다고……!? 마, 말도 안 되는…….”
악신자. 동시에 괴멸자.
악신의 뜻을 대리한다는 그것들의 몸이 변환되고 있었다. 검게 변하였던 몸이 희게 변하며, 동시에 그들이 내포하고 있던 기운도 변화하였다.
그 기운은 그들이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헥사트가 처음 알아챘듯, 그들 앞을 가로막았던 진법의 기운과 같았으니까.
신들에게 다 잡아먹힌 줄 알았던 기운이 크기를 키웠고. 거대해진 기운이 역으로 악신자를 잡아먹었을 뿐이었다.
단순히 잡아먹음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어어어어!
-켁…….
기운은 악신자의 바탕이 되었던 악의 추종자들의 의지를 함께 잡아먹었다.
그들이 모시는 신이 진법의 의지를 잡아먹었듯이.
저 기운도 그들의 의지를 잡아먹을 뿐이었다.
-……차라리 죽여. 죽여 달라고.
-사, 살려…….
-제발! 제바아아알!
순간. 죽음조차도 꺾지 못했던 악신자들의 의지가 꺾였다.
영조차 고갈되고, 그들을 이끌던 신의 힘조차 사라진 지금. 그들이 자신의 의지를 더 이어 가는 건 무리였다.
테스로선 그 지점을 완벽히 꿰뚫었을 뿐이었다.
-아아아…….
쿠우웅. 쿵.
의지가 무너져 내린 악신자들의 무릎이 스스로 꺾였다.
그들 모두의 무릎이 굽혀지는 그 순간.
저들 내부의 힘을 장악한 주인공 테스. 그는 짙게 지었던 비웃음을 지우고, 의지가 꺾인 것들에게 명령 한마디를 내렸다.
“살고 싶다면, 아니 차라리 죽고 싶다면 저것들을 죽여.”
그의 명령이 가리키는 곳. 성국의 군대를 향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