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편
챕터 21.
수만이 넘는 몬스터가 갈려 나간다.
수만에서 수천으로.
추종자를 대신해 갈려 나가던 몬스터들이 사라지니, 그다음 순서는 자연스레 그들에게 넘어왔다.
“……컥. 빌어먹을!”
악마의 뿔피리를 불며, 몬스터를 이끌던 추종자가 멱이 따이며 죽었다.
“켁!”
주문을 외던 악실른의 추종자 하나가 입이 찢어지며 무너졌다. 두 다리가 끊어지고, 팔이 끊어진다. 주문을 대신해 수인을 외던 손이 으스러진다.
그 누구보다 잔혹한 방식으로 추종자를 잡아먹는 테스의 마법진!
신의 힘에 한 번 당했기에, 테스의 마법진은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 이런 상황에 제 스스로 몸을 들이미는 적을 보았으니, 잔혹하게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진이란 씨앗을 뿌린 건 테스였고. 그러한 테스의 성정을 마법진이 그대로 닮은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자신의 사람에게는 누구보다 자애로우나, 적이라 판명될 경우 그 누구보다 잔혹해지는 게 테스의 방식.
마법진의 처리 방식은 그와 똑 닮아 있었다.
꽈드득-
쿵! 퍼어억!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마법진은 추종자를 무너트리고, 죽여 갔다.
사방에 죽음만이 가득한 이때.
오십도 남지 않은 악의 추종자들은 결단의 때가 왔음을 알았다.
“……드디어인가. 키킥.”
“캭……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게 뭐 좋다고 웃어. 영혼은 저 아래로 쳐내려갈 텐데.”
“어쨌건 복수를 할 수 있지 않나?”
“복수? 복수는 무슨…… 누가 우릴 죽인 거냐?”
콰즈즉-
“저기 저 미친 마법진? 아니면 우리를 이리로 던진 성국? 그도 아니면 이 순간에도 우리를 위해 변덕을 부리지 않는 신이더냐? 케실런, 대답을 해 봐.”
“……아직도 변덕을 부리지 않으신다. 그러니 우린 따를 수밖에.”
“망할!”
결단의 때. 즉,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때를 말함이었다.
남은 오십의 악의 추종자.
추종자들 중에서도 정예며, 성국의 신분제로 치면 이들은 신관을 넘어 최소 주교급에 다다른 자들이었다.
그들이 모시는 신의 힘이 선신의 것들에 비해 부족할 뿐, 개개인을 놓고 보면 그 어느 신관들보다도 뛰어난 게 이들이었다.
신의 힘이 약하기에, 성국에서도 저 아래 어둠을 자처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 하나가 뛰어난 재원. 테스라도 눈독을 들이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자들이었다. 그런 자 중 하나가.
푸우우욱-!
“그럼 나는 먼저 가지. 키킥.”
제 손을 심장을 향해 찔러 넣었다. 손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심장을 헤집었다.
“키키킥…….”
핏줄이 끊어지고, 드러난 심장이 반으로 나뉜다. 제 심장을 꿰뚫으면서도 내뱉은 건 단말마가 아닌 웃음이었고.
지독한 광기였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만들어내는 광기. 그 광기가 연료가 되어 피어났다.
핏줄은 마법진을 구축하는 얕은 선처럼 길게 이어져 나갔고. 심장은 마법진 한가운데 박혀야 할 마석처럼 굳으며 중앙을 차지했다.
“먼저 간다아!”
파아앙-!
시체가 찢어지며 거대한 진식을 만들어냈다. 마법진도, 진법도 아닌 오로지 신의 의지만을 대변하는 술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크기만 하여도 3미터!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진식은 만들어지자마자 심장이 뛰듯 뛰어댔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듯 맥동해대는 그 모습. 착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심장이었고. 찢어지며 남은 피륙은 심장을 길게 잇는 핏줄이 됐다.
심장과 핏줄, 그 나머지는 그럼 어딨을까?
사방 천지에 널려 있었다.
“시작됐군.”
“……흡수한다! 오오오! 에튼이시여!”
수없이 많은 죽음이 그들 곁에 자리해 있지 않았던가.
몬스터의 시체, 피, 심장, 피륙, 마석…….
남은 육체를 전부 만들고도 남을 재료들이 사방 천지에 널려 있었다.
그뿐이랴.
악신의 추종자들이 모시는 자는 악신이다!
그들의 본질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탐욕, 교만, 음욕, 식탐, 질투…….
죄욕에 본질을 둔 그들이다.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 타인의 것을 빼앗는 걸 주저치 않는 게 악신이란 족속이었다.
자신을 모시는 악신의 추종자.
몬스터의 사체.
마석.
이런 여러 가지를 제하고도 그들의 탐욕이 뻗어 나갈 만한 게 딱 하나 남아 있었다.
“게걸스레 먹어 버려!”
“이 잡스런 마법진을 잡아먹으라고!”
그것은 바로 마법진!
테스가 저들을 막기 위해 설치한 마법진이며, 그 안에 심어져 있는 의지와 힘이었다.
산맥의 수많은 몬스터와 적을 잡아먹고 자라나고 있는 마법진은 악신자를 조합해 만들고 있는 신들의 구미에 딱 맞는 재료였다.
제 힘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 지상에 악신자이자 괴멸자를 생성해 내기에 충분하고도 남은 힘이었으니까!
꽈드드드득-!
신은 추종자들이 보낸 힘을 제물 삼아, 마법진의 일부를 뜯어냈다.
제아무리 테스의 마법진이라도 신의 힘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수백 년, 아니 수십 년만 묵었더라면 버텨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까지 허락된 시간이 짧았다.
드드드득-
고작해야 몇 년 사이 발아한 의지. 그 의지가 이내 한계를 드러냈다.
새하얀 속살이 작게 뜯어지는 그 순간, 마법진의 의지는 와르르 무너져 내려갔다.
찢기고, 잘리고, 흡수된다.
-그어어어!
길게 비명을 질러 보지만, 그를 보고 동정을 할 위인은 이 자리에 없었다.
“좋구나!”
“흐흐. 다 죽여 버려라! 죽여! 죽이라고!”
자신들의 앞길을 막았던 마법진이 뜯겨 나감에 그 자체를 즐기고 기뻐할 뿐이었다.
악신의 추종자인 이들은 자신의 기쁨보다도, 타인의 고통을 더 즐기는 자들.
자신들을 잡아먹던 마법진이 뜯겨 나가는 걸 보자, 그들은 환희하며 미소를 지었다.
짙고 비릿한 미소를 지음을 넘어 바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나도 가마!”
“다음엔 저 지저에서 보자고!”
푸우욱- 푸욱- 푹!
자신들의 심장을 스스로 찢어갔다.
49, 48, 45, 31, ……1.
그 수가 다 줄어 전멸에 가까워질 때까지 계속!
그 결과 태어난 자들이 있었으니.
-크르륵.
-키키키킥. 이게 괴멸자의 몸인가.
-이리 강대한 힘일 줄 알았으면, 진즉에 죽어 줄 것을!
-아아. 좋아. 미치도록 좋다고!
악신의 추종자들의 최종적인 모습. 괴멸자이자 악신자의 모습을 갖춘 자들이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 광대한 장면을 홀로 바라보던 케실런.
마지막 생존자이자, 악신 추종자의 마지막 기록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어둡게 침잠돼 있었다.
‘이리 되면 당신들의 추종자 모두가 사라지는 걸 모르시는 겁니까? 대체 저 뒤에 무엇이 있기에…….’
안타까움과 절규, 절망.
온갖 부정적 감정으로 점철된 채로 그는 제 심장에 비수를 박아 넣었다.
박아 넣은 비수가 그의 마지막 숨을 멎게 하는 그 순간.
-…….
가장 거대하고, 음울한 악신자가 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 * *
드드드드득- 드득-
오십의 악신자. 진법 속에 살아남은 영수급 몬스터들. 그들은 살아남아, 신이 찢고 남은 진법의 남은 부분들을 삼키기 시작했다.
-이거, 괜찮은 별미인데?
-키킥. 그리 입 놀리는 사이에 어서 처먹기나 해.
인간의 형태를 벗어던지고 악신자가 된 이들.
이들에게 있어 가장 큰 진미는 음식이 아닌 이러한 기운과 같은 것들이었다.
오로지 기운만이 그들의 육체가 이 현세에 현현하는 양식이 되어 주니까.
그런 이들에게 잘 숙성돼 가는 진법은 진수성찬이 돼 줬고.
-그어어어!
-저새끼는…… 완전히 미쳐 버렸군.
-냅둬. 원래 미친 새끼였다고. 흐흐.
이제 막 태어난 악신자들이 크기를 키우는 데 지대한 도움이 됐다.
쿠우웅. 쿵.
이 현세에 악신자로 현현한 그 자체로 강대할 터인데, 이들은 진법을 찢어발겨 먹으며 더욱 강해졌다.
시시각각, 초 단위로 강해져 가는 그들은 진법을 찢어가며 앞으로 전진해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끝인가?
-이거, 아쉬운데.
그들의 앞을 막았던 절망적인 벽. 진법이 완벽히 무너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스으으-
산맥을 다 가리고도 남던 거대한 크기가 사라졌고, 이내 작은 흔적만이 남아 약한 마력의 잔향을 흘릴 뿐이었다.
남은 잔향마저도 이내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질 터.
잔향마저 사라지면 성국의 군세를 막아내던 진법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때 그 남은 약한 잔향을 곱게 챙겨 드는 자가 하나 있었다.
“……고생했다.”
스으으-
테스였다.
그는 의지조차 소멸돼 가는 진법의 흔적, 그를 구성하고 있던 작은 마법진을 제 품에 담아 넣었다.
진법을 처음 만들었을 창조주나 다름없는 그.
그가 품에 진법의 잔향을 집어넣자, 산맥에서 끝끝내 버티고 있던 진법의 남은 일부들이 무너져 내렸다.
그그그긍-
그것으로 성국의 군세를 막아내던 진법은 완전히 스러졌다.
-키킥. 끝이구나!
악신을 받아들인 악신자 무리. 영주급 몬스터. 그 뒤를 이어 성국의 군대가 테스의 영역으로 모습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발판이 만들어졌다.
저 거대한 군세를 막아내기에, 홀로 서 있는 테스는 너무도 작아 점조차 되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군세란 파도가 움직이면 이내 쓸려나갈 것처럼 보이는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하나,
‘이 정도라면, 나중에 언제고 살릴 수 있겠어. 의지를 지닌 진법이라…… 생각지 못한 걸 내 손으로 만들어 버렸을지도.’
제 품에 담은 진법의 잔해를 완전히 수습하는 데 성공한 그에게서 위기감 따위는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산 존재라면 자연스레 두려움을 느껴야 할 악신자들 앞에서, 그는 되레 더 당당했다.
-저 녀석이 테스다!
-죽여!
쿠우웅. 쿵.
열을 올려 달려오는 악신자 무리를 보고도, 흔들림 없이 제 마력을 흩뿌릴 뿐이었다.
악신자에 비해 작은 그.
그에게서 뻗어 나오는 마력의 향연!
“네놈들이 먼저 시작한 이 전쟁, 끝을 내 보자고.”
거대한 마력의 잔향이 퍼져 나가며, 주변을 휩싼다. 그 순간이 전투 시작의 신호가 됐다.
콰아아앙-!
악신자 무리와 테스가 부딪치기 시작하고.
“우와아아악!”
“불신자들을 죽여라!”
“전진!”
저 멀리 서 있던 성국의 군대와 테스의 방위군이 마주 달려 속도를 올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