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170화 (169/191)

제170편

챕터 20.

“어떻게 하면 되겠소?”

“적잖은 희생이 필요하오. 하나, 우리 힘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오.”

“오오. 대체 무슨 방법이기에?”

“저들!”

헥사트는 손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 앞에 선봉대로 나가던 몬스터가 있었다.

-키이이.

그들의 수는 상당히 줄어 있었다.

헥사트가 손을 들어 병사들을 막기 이전. 선봉대로 나갔던 몬스터들은 이미 진법에 들어갔기 때문.

미처 막을 새가 없었다.

설사 막을 수 있었다 해도 헥사트는 몬스터들이 꾸역꾸역 진법 안으로 들어가도록 두었을 터였다.

그에게 있어 악신이 이끄는 종자들은 같은 성국의 일원이 아니요. 오롯이 선신의 뜻을 위한 이용물일 따름이었으니까.

악신의 종자도 이용물일 따름인데, 그보다 못한 몬스터를 챙길 리 없었다.

“저것들을 이용하면 되오.”

“이용이라? 이미 선봉으로 이용하고 있잖소?”

“단순 그 정도 수준에 머무르면 안 되오.”

그러한 그의 시선과 같은 시선을 지닌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총지휘관 바론이었다.

그는 꽤 많은 희생을 해야 한다 말하는 데에, 한 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되레 그 희생자가 성국의 시민이 아닌 몬스터임에 만족하는지 짙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몬스터를 희생시키기 위해선, 뒤에서 이끄는 악신의 추종자들도 일부 희생을 감행해야 함을 분명 알 터.

그럼에도 그의 미소는 시간이 갈수록 더 짙어져 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겠소?”

“지금부터 내가 관측해 준 길로 나가면 될 거요. 다만 그 길이 다소 부정확하니, 제대로 된 길에 들어서지 못한 것들은 죽겠지.”

관측을 시작하고, 말투가 달라지기 시작한 헥사트.

그런 그의 말투를 괘념치 않는 바론은 말을 들으며 턱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길이라…… 얼마나 죽을 것으로 보이오?”

“최소 칠할. 최대 구할이요.”

몬스터가 죽는 만큼 그를 이끄는 악신 추종자도 같이 죽을 터.

그럼에도 그는 더 반색하고 기뻐했다.

“허허. 저것들이 다 죽는다는 거로군. 그거 아주 좋은 방식 아니오?”

“다만, 그들이 죽으며 하나를 태어나게 할 것이오.”

“설마…….”

“악신자들이 태어날 거요.”

“……망할!”

악신자. 그들은 마족과 다른 존재, 흔히 악마라 불린 존재들이었다.

악신을 따르는 자식이며, 때로 선신을 배신해 태어난 신의 자식이 악신자였다.

스스로 신이 되지 못하나, 신의 피를 타고났기에 강대한 힘을 지닌 것들이었다.

선신들은 그러한 악신자를 배척했으나, 악신들은 그들을 품에 들여 이용한 터. 그렇기에 살아남은 모든 악신자는 악신의 종을 자처했다.

그들은 악신을 따르는 자식이며, 그 외 모든 걸 배척하는 괴멸자!

그러한 삿된 존재를 바론이 모를 리가.

악신자란 존재를 떠올리자마자 그의 인상이 찡그려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 또한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오.”

“대체 왜 그렇소?”

“내 관측으로 보아하니 저 마법진은, 안에서 죽은 것들의 영과 힘을 흡수해서 힘을 키우는 녀석이오. 그런 것에게 저 몬스터들을 가져다 바치면 어떻게 되겠소?”

“……손도 대기 힘들 정도로 힘이 더 강해지겠군.”

하나 악신자란 존재보다도 성국의 군대를 이리로 이끌게 만든 테스란 존재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바로 그거요! 저 기이한 마법진에 힘을 주느니, 차라리 악신자를 소환하는 게 낫지 않겠소? 악신들도 멸망이 무서운지 힘을 실어주고 있는 이 판국에?”

“으으…….”

이를 드러내며 말하는 헥사트의 말에 바론은 감히 반발할 수 없었다.

‘……몸을 드러내는 악신자조차, 결국 우리 성국을 위한 희생자가 된다면 그 또한 신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일지니!’

그는 그렇기에.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 악신자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과 테스를 상대하는 것,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혼란을 말이다.

‘이 배덕은…… 모든 전쟁이 끝나고 씻어내면 될 일이다!’

혼란이 끝이 나고, 마음이 정해지면 빠른 실행력을 지닌 게 광신도가 지닌 저력이지 않은가.

인상을 찌푸리던 바론은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올림으로써, 제 마음의 평정을 다시 찾았다.

그러곤 그가 명했다.

“좋소이다. 내 구할! 아니 십할이 전부 죽는다 해도 상관없이 여길 터이니 어디 한번 그들을 이끌어 길을 열어보시오.”

“……큰 결단이올시다. 바로 준비하겠소.”

그의 명을 들은 관측자 헥사트는 황금빛 눈을 빛내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 * *

제 몸을 귀히 여기는 헥사트.

그는 제 스스로 진법에 몸을 들이미는 무식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이 관측한 것들을 그려 악신의 추종자들을 향해 전달토록 했다.

“이걸 받으시오.”

제대로 된 도식도, 표식도 없이 만들어진 지도. 괴발개발로 만들어진 듯한 지도를 건네주면서도 헥사트의 표정은 당당했다.

“이게 뭐요?”

“뭐겠소. 이게 이곳을 기준으로 그대들이 갈 길이요.”

“……이걸 보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오?”

그건 난잡하다 못해 정신없이 그려진 지도였다.

이걸 들고 안으로 들어가라 말하는 건 곧 길을 잃으라는 거나 다름없는 이야기였다.

저 마법진 안에서 길을 잃음이 의미하는 건 곧 죽음.

이 난잡한 지도를 건네주며 저 안으로 가라 하는 건, 악신의 추종자들에게 있어 스스로 죽으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악신 추종자 케실런의 표정이 구겨졌다.

“차라리 죽으라 하시오. 우리 신께서 변덕을 부려 그대들을 이끌어 달라 말하였으나, 이건 아니지 않소.”

“……허. 그 변덕이 설마 끝났소? 아직까지 그대들의 신이 우리를 이끌라 하는 변덕은 유효할 터인데.”

“크흐…….”

제아무리 광신자인 그라도, 스스로 가 죽으라는 건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다.

‘데실런이시여…… 이게 정말 답이었습니까?’

그러나, 이번만은 성국의 편에 서서 길을 이끌라 말하는 신의 변덕은 도무지 바뀔 줄을 몰랐다.

…….

속으로 몇 번이고 기도를 올려도, 응답은 오지 않았다.

‘……죽으라 명하시는 겁니까. 저 하나가 죽는 것이야 문제가 아니 되겠으나, 남은 자들은 어찌하란 말입니까?’

그 대신 어서 들어가라는 듯 위에서 아래로 빛이 내려왔을 뿐이었다.

샤아아아-

어두운 빛.

빛이나 어두운 존재 자체로 모순적인 빛이 내려와 케실런의 신력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크흐으…….”

어두운 빛이 지닌 의미는 단 하나. 어서 들어가라는 재촉이요. 그 뒤에 죽음만이 남더라도, 이를 따르라 말하는 신의 변덕이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순간을 관측자인 헥사트가 모를 리 있겠는가.

관측자이기에 더 잘 아는 터. 그렇기에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케실런을 보며 더 짙게 미소 지었다.

“흐흐. 어서 가라 명하고 계시지 않소?”

“……내 이 일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우리 신 또한 언제고 변덕을 부리실 터이니! 그때를 두고 보지요!”

그 미소. 헥사트가 경멸하는 악마의 미소와 닮아 있으나, 이를 짚고 넘어갈 자는 없었다.

“과연 악신의 종자다운 말이구려! 자자, 어서 들어가시구려. 살아서 볼 수 있다면 또 볼 터이니!”

“……망할 것들. 내 죽더라도 괴멸자가 되어 나타날 것이오!”

케실런이 날리는 저주. 그 말을 들으면서도 헥사트는 그를 조롱했다.

“과연. 그때가 돼서 날 공격할 수 있을 것 같소? 그대들의 신이 변덕을 부려, 악신자이자 괴멸자가 된 당신에게 저 어센션을 부수라 말할 확률이 더 높을 거 같은데?”

“이이익!”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떠는 케실런. 그러나 그의 분노를 해결해 줄 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샤아아아-

그저 어두운 빛을 뿌려내며 그에게 안으로 들어가라 종용할 뿐이었다.

어두운 빛이 진해지는 만큼, 헥사트의 조롱도 더 짙어져 갔기에.

“흐흐. 어서, 가기나 하시오. 어서!”

“……가자.”

분노에 점철된 케실런은 더 말을 않고, 주문을 욀 뿐이었다.

어두운 빛을 담은 그의 주문이 점차 짙어지고. 이내, 그의 온몸이 검게 변하였을 때.

-키에에엑!

-켁!

허접한 종이 하나에 기댄, 성국의 몬스터 군대가 죽음이 도사리는 진법 안으로 스스로 몸을 들이밀었다.

들어서는 케실런의 뒤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악의 추종자인지 알 수 없을 비릿한 소리였다.

* * *

케실런이 이끄는 길. 엉망이었다.

단 한 걸음, 한 걸음이 생사를 갈랐다. 조금의 방향만 틀려도 죽음이 다가왔다.

-키야아악!

콰즉!

다가온 기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다. 그저 닿는 순간, 죽임을 당할 뿐이다.

콰즉- 콰즉-

시시각각으로 죽음이 다가왔다. 그들이 이끄는 몬스터들의 사체가 주변으로 그득 쌓여 갔다.

쌓여 가는 죽음 속.

악신의 추종자들은 몬스터를 조종하면서, 한편으로 입을 나불거리길 주저치 않았다.

“이 망할 놈들이……. 이 지도를 보고 대체 어떻게 가란 겁니까?”

“X불. 이건 다 죽는 거 아니오.”

“하…… 대체 우리 신의 변덕이 어디까지 닿을려 이러는지.”

불만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선신의 사도들과 달리 악신의 사제들은 위선조차 없는 터. 용병보다 더 걸쭉한 욕지거리를 날리는 자들이 넘쳐났다.

그런 악신 추종자를 막아야 할 케실런. 그는 막기는커녕, 그들이 입을 나불거리는 걸 지켜볼 뿐이었다.

끝내 추종자 중 하나가 열불을 내며 그에게 다가왔다.

“…….”

“케실런, 무슨 말 좀 하시오. 이 종이 쪼가리 하나 보고 대체 어딜 가라는 거요?”

“이 빌어먹을 마법진을 뚫으라는 거 아니겠나.”

“제대로 표시도 안 된 데다가, 길도 여럿인데? 이 중 하나만 진짜 아니오? 그런데도 가라고? 당신은 그걸 받아 왔고?”

“……신이 변덕을 부리시질 않는다.”

“젠장할! ”

책임자인 케실런에게 묻기 위함. 그러나 그가 원하는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신의 새로운 계시가 없는 지금. 이제 와 이 마법진을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제아무리 악신이라도 뜻을 따르지 않는 신도에겐 벌을 내리니까.

이따금 변덕을 부려 살려 주긴 하나, 그 확률이 희소한 터. 그를 믿고 빠져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가면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는 아오?”

“……죽음이겠지.”

원망은 이들을 이끄는 케실런에게 쏠린다.

“망할! 그걸 아는데 이러오! 여기서 우리도 다 죽고. 저 몬스터 새끼들도 다 죽으면! 그러면 그때는……. 아, X발! 설마? 그거요?”

“…….”

원망을 한참 내뱉던 악신 추종자들. 그들은 결국 원하지 않던 진실을 하나 깨달았다.

“……우리가 다 죽고 새로 태어나길 원하는 거군. 악신자가 되라는 거야.”

“하.”

“믿음에 대한 대가가 이거라니.”

결국 이들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단 진실. 죽어서 악신자로 다시 태어나서야, 진법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불쾌한 진실이었다.

진실을 깨달았음에도 멈출 수 없었으니.

“가지.”

“……죽여 버릴 것들!”

그들은 죽음을 향하여 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