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편
챕터 19.
테스가 성국을 멸망시키고. 더 나아가 이 세계를 멸망시킨다는 예언!
예언의 진위 여부를 따질 필요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모든 신들이 이리 발 벗고 나서는 것이로군요.”
“그렇지요. 저들도 관측과 예언을 믿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저런 것들이 끼어 있는 건 영 마음에 안 듭니다만은…….”
테스가 멸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저 악신의 추종자들이 저리 활발히 움직일 리 없었다.
악신의 추종자들은 성국에 귀의해 있으면서도, 제멋대로 움직이곤 하는 자들.
자신들의 뜻과 맞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 저들이 움직이는 것만으로 예언은 사실이나 다름없었다.
더불어, 모든 선신들도 악신에 대한 견제를 멈추고 성국 군대에 힘을 빌려주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결국 이들 모두가 움직이는 이유는 테스 하나 때문임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 * *
앞으로 있을 저들만의 성전. 테스가 보기엔 광신자의 테러에 불과한 짓을 벌이는 주제에 이들 군대는 쉼이 없었다.
“듣기로 그 멸망의 종자가 용병이던 시절도 있었지요. 그때 죽였어야 할 것을…….”
“이제라도 힘을 합쳤으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후우. 그리되겠지요. 아니, 그리되어야만 할 겁니다.”
저들은 깊이 염려하면서도, 앞으로 향하는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앞을 향해 나아갔을까.
스스스스-
관측자 헥사트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처억. 그가 멈추라며 손을 들자, 모든 군대의 걸음이 일순간 멈춰 섰다.
잘 훈련받은 정병임을 보여주는 정돈된 모습. 그러한 모습에 감탄할 새도 없이, 헥사트는 앞을 향해 나섰다.
* * *
앞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헥사트.
그는 걸음을 내딛음과 동시에 제 능력을 발현시켰다.
그의 눈이 황금빛으로 번쩍임과 동시에 짙은 신력이 주변을 향해 퍼져 나갔다.
관측자로의 능력 발현!
제 몸이 지닌 신력과 수명을 담보로 하는 관측 능력을 아낌없이 뻗어낸 헥사트. 그는 능력을 유지한 그대로 허공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그의 기이한 행각을 바라보는 바론과 악신 추종자 케실런.
“관측자여. 갑자기 무슨…….”
“신의 행렬을 막을 참인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는 둘에 상관없이, 헥사트는 관측 능력을 유지한 채, 손을 뻗은 그곳을 향해 제 힘을 뻗쳤다.
관측. 상태의 변화, 추이를 관찰. 그에 맞는 측정까지 하는 게 관측의 원 의미.
관측자로서 지닌 헥사트의 능력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그는 구현화가 가능했다.
보이지 않는 어떠한 현상조차도 관측할 수 있는 게 그의 능력 중 하나였다.
그중 하나를 발현하니 그의 손끝에 무언가 드러났다.
“……이걸 보시죠.”
“허어.”
“……!!”
그의 손끝, 투명한 막이 걸려 있었다. 막은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거대했다. 육안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 막의 정체!
“……이게 그가 사용한다는 마법진인가!”
“으음…….”
이 세계에서 오롯이 테스만이 사용한다 알려진 진법을 활용한 마법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테스는 씨앗을 던졌을 뿐, 이제 와선 산맥의 몬스터와 지기를 잡아먹어 제 스스로를 키우고 있는 그 무언가였다.
무생물이나 생물에 가까운 어떠한 의지를 지녀가고 있는 마법진.
오로지 테스만의 명을 따르는 그 마법진이 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제 정체를 강제로 드러내게 된 덕일까.
그르르르-
막은 몸을 흔들며, 관측자인 헥사트의 손으로부터 피하려 했다.
그러나, 헥사트는 이러한 마법진을 만들진 못할지언정 관측에 있어선 최상위에 자리한 자였다.
이미 그의 눈에 한 번 포착된 이상 끝이었다.
더 이상 그가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마법진은 그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었다.
고오오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마법진은 분노한 듯했다. 포효하듯 주변에 마력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으읏…….”
“큿. 과연 사특한지고!”
분노의 표출만으로 주변의 마나가 요동쳤다.
“크아아악!”
“내 귀!”
“켁.”
능력이 아래에 있는 자들은 고막이 터져 나갔고. 온몸이 욱신거리며 쪼그라드는 듯 압력이 느껴졌다.
그뿐이랴.
신력이 약한 자들은, 그 육체를 비집고 들어오는 마력을 이겨내고자 온 힘을 써야 했을 정도였다.
“크흐…….”
쿠웅. 쿵.
더 버텨내지 못하고 성국의 병사 여럿이 쓰러졌다. 처음 한, 둘에서 시작한 쓰러짐은 이내 수십으로까지 번져 갔다.
“엘레그시여!”
“아리엔이시여 저희를 보우하사!”
만에 다다라 있는 신관들이 기도문을 외우고. 축언으로 그 파장을 지우려 하나, 막아내기는 어려워 보였다.
겨우 제 몸을 이끌고 버텨낼 뿐이었다.
마법진이, 그 존재감만으로 성국의 군대를 압도했다!
마법사인 베빈이 본다면 그 시야가 한 차원 탈각해 오를 정도의 위력! 성국의 군대를 걱정하기 이전에 여유를 가질 만한 위력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국에도 막을 수단이 없는 건 아니었다.
몬스터가 제 종족을 제물 삼아 제 몸과 힘을 키운다면, 성국은 다른 방식으로 제 신자들의 몸을 제물 삼곤 하였다.
“다렌. 자네가 희생해 주겠는가.”
“……그러기 위해 오지 않았습니까. 몇 달도 남지 않은 이 몸, 기꺼이 보내드리겠소이다.”
성국의 준비된 순교자들!
죽을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자. 수십여 년간 성국의 신전에 머무르며 세뇌당한 자들.
신을 위해서라면 얼마든 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들이 성국엔 넘쳐났다.
푸우욱.
신을 위해 제 몸을 불사르는 광신도들은 제 스스로 칼을 박아 넣었다.
심장의 정중앙에 아로새겨진 그네들 종교의 상징. 그 상징을 스스로 찢어발기고, 맥동하는 심장을 꿰뚫는 그 순간.
샤아아아-
영혼이 떠나가고, 오롯이 광기만이 남아 있는 순교자의 몸엔 잠시나마 신이 깃든다.
신의 강림!
강림의 때가 너무도 짧아 촌각조차 되지 못하는 순간이나, 상관없었다.
그들이 믿는 신은 그 짧은 시간, 순교자가 지니고 있던 모든 가능성을 불사르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녔으니까!
남은 생, 그간 쌓은 신력, 신실함, 미래의 개화 가능성…….
강림한 신은 그 모든 가능성을 손수 불살랐다.
그 불사름으로 남은 모든 신도들의 보호를 원하였으니.
-삿 된 힘 이 로 다!
그들의 말, 의지가 신력이 되어 펼쳐진 진법의 파동에 대응했다.
파아아-!
퍼져 나간 신의 말이 격류가 되고. 그 격류 가운데 실린 의지가 제 살갗을 드러내 분노하는 마법진의 의지를 내리 짓눌렀다.
그르르-
그 짓눌림에, 마법진이 성난 작은 악마처럼 울부짖는다.
그러나, 수십, 수백여 명이 이어져 가며 만들어진 신의 강림엔 제아무리 진법이라도 이겨내기 힘든 법이었다.
스스스스-
진법이 스스로 만들어낸 파장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신도들을 짓누르던 압박이 사라지고. 사라진 가운데 활력이 돌아온다.
그 모든 광경이 살아남은 광신의 군대에겐 기적처럼 여겨졌다.
그렇기에 그들은 울부짖듯 외쳐댔다.
“오오오! 신이시여!”
“사도르여!”
“아리엔의 축복이시다!”
저마다 자신들이 믿는 각기 다른 신들의 이름을 불러댔다.
이 모든 일은 순교한 희생자들이 만들어낸, 제 스스로 거세시킨 가능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적일진대도 이들은 괘념치 않았다.
그저, 제가 믿는 신의 이름을 외고, 또 욀 뿐이었다. 그럼으로써.
고오오오-!
“오오…….”
“시, 신력이 들어찬다.”
광신은 믿음이 되고. 더 강화된다.
강화된 신력은 다시 또 믿음을 일으키는, 그들만의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그러한 선순환에.
“……새 힘을 주시는도다!”
“강한 악적을 무너트리기 위한 선물을 내려주시니!”
이들은 마법진의 파장에 수천이 무너져 내려 죽은 기억 따위는 어느새 잊어버렸다.
눈엔 광신이 더 그득 차올랐다. 아니, 차오르다 못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그들 눈엔 신력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스스스-
흘러내린 신력의 눈물이 그들 몸을 강화시켰고.
“흐으으으!”
“좋구나!”
수천이 죽어가며 깎여 나갔던 신성국 군대의 전력이 다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 * *
때아닌 광신을 겪은 성국의 군대!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마법진의 파장을 신이 내린 시련으로 생각할 뿐이었고. 그 시련을 이겨내었으니 자신들 앞엔 오롯이 승리만이 있을 거라 자축하며 더 앞으로 나아가길 원했다.
하나.
저들이 파장을 이겨냈다 해서, 그 파장을 만들어낸 마법진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크게 일어났던 파장은 그저 분노한 마법진의 몸짓이었을 따름.
마법진이 지닌 진실된 힘은 그 내부에 있었으니!
광신자인 이들 식대로 표현하자면, 이들에게 남은 시련은 더욱 컸다.
그 사실을 성국의 군대를 이끄는 지휘관들이 모를 리 없었다. 광신자라 할지라도 제 상황을 가늠할 지성을 지닌 자들이 지휘를 맡고 있으니까.
광신의 군대가 있는 이곳.
신을 향한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총지휘를 맡은 바론은 찬송 가운데 신앙을 즐기기보단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관측자 헥사트를 향해 묻고 있었다.
“저 삿된 힘. 저 힘을 무너트릴 방안이 있으시오?”
“방안이라. 그 또한 관측해야겠죠.”
“……믿겠소.”
믿는다는 말이 끝나자 헥사트는 다시 제 수명을 깎았다.
파앗-
발현되는 관측의 능력.
성국에서도 그 의미가 각별한 게 관측이었다. 그중 최고라 할 수 있는 건 헥사트가 진행하는 관측이었다.
그는 오로지 테스만이 알아야 할 마법진의 허점을 찾고자 했다.
“크흐으…….”
시시각각 제 수명이 깎여 나가고.
“……먼저 가겠소이다.”
“컥.”
그를 보조하던 다른 관측자들이 쓰러진다.
쓰러진 자는 단순 기절함으로 끝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생기가 메말라 가기 시작하며, 온몸이 미라처럼 변했다.
그러다 이내, 마지막 생명의 숨을 내쉬다 죽음을 맞이했다.
쿠웅. 쿵.
동료들이 죽어 나감에도 헥사트의 관측은 멈출 줄을 몰랐다.
‘허어…… 얼마나 지독한 힘이기에…… 이리 오래 걸린단 말인가.’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바론이 기함을 토하던 어느 순간.
“크윽…… 끄, 끝났소이다.”
헥사트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을 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관측으로 빛나던 빛은 사라지고 원래의 흰 눈동자로 돌아와 있었다.
온몸에 피로가 가득해 보였으나, 바론은 그에 상관치 않고 물었다.
저 거대한 마법진. 신의 힘을 동원해서야 버텨낼 수 있을 마법진을 파훼할 방법을 찾았느냐고!
“관측한 거요?”
그리고 그 대답은.
“물론이오!”
“오오!”
“신이시여!”
성국으로선 만족스러울 지경의 축언이나 다름없었으며, 테스로선 그리 듣기 좋지 못할 확언이 던져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