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편
챕터 18.
“허…….”
한 방, 아니 두 방을 먹은 듯했다.
제아무리 테스라도 이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산맥을 뚫고 오고 있다고?”
“그냥 오고 있는 게 아닙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몬스터들이 공격조차 않고 있습니다. 마치 선발대처럼 앞을 내달리고 있을 뿐입니다.”
“……쯧. 결국 그리 나오겠다는 건가.”
선두에 선 몬스터의 행렬. 그 뒤를 따르는 성국의 군대.
인류의 적이라 할 수 있을 몬스터.
그런 몬스터를 퇴치하지도, 공격당하지도 않는 군대를 두고 누가 인류의 군대라 믿을까.
‘선을 넘었구만…….’
전쟁에 선악을 논할 건 없다. 그러나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대체 무슨 수를 사용한 걸까요? 제아무리 성국이라도 몬스터를 다룰 방법은 없을 텐데요.”
성국은 그 선을 넘어섰다. 몬스터를 이용하고 있으니까.
그 힘을 이용하는 방식. 전이라면 예상치 못하겠지만, 지금은 능히 예상이 되는 테스였다.
“……악신의 힘을 쓴 거겠지.”
“악신이야.”
그 옆에 있던 베빈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리고 이 둘은 그 힘의 방식을 예상함과 동시에, 성국이 이전부터 벌였을 일들에 대한 문제를 깨닫고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악질들이로구만. 전부터 이런 식으로 몬스터를 쓸 수 있었다면……. 달리 이야기하면 이미 오래전에 몬스터 세력을 줄일 수 있었다는 의미거든. 그 힘을 이용하면 될 테니까.”
“문제는 그뿐이 아니지 않아?”
“알지.”
“이번 일이야 승천자 문제로 발등에 불이 떨어져 대놓고 쓴다지만, 이전에는 드러내지 않고 썼을 거잖아?”
“바로 그거야.”
몬스터의 사용은 선의 문제일 뿐. 일단 사용만 한다면, 그것이 가져다주는 이득은 무궁무진했다.
몬스터의 진격을 이용해, 상대 세력을 깎아내리는 것은 기본이다. 단순히 몬스터를 존재케 함으로써 상대를 견제할 수도 있다.
병법 중 최상이랄 수 있는 이이제이(以夷制夷)도 사용 가능했다.
몬스터와 몬스터의 전투를 붙여 놓음으로써, 몬스터의 세력 자체를 깎을 수도 있었다.
단순 세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질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전부터 엄청난 이득을 봐 왔겠어.”
“몬스터를 쓰는 덴 자원도 필요 없을 테니까.”
특히 오래도록 살아 온 베빈은 짚이는 바가 많은 듯했다.
“어쩐지, 이제 이해가 가네. 오래전부터 성국 적대 세력이 몬스터에 당하는 경우가 많았거든. 반대로 성국은 득을 꽤 봐 왔고. 단순히 신의 축복이 몬스터의 침략을 막아주는 거라 여겼는데…….”
오래전부터 몬스터로부터 얻은 성국의 이득. 그 역사를 그녀는 직접 몸으로 겪은 터.
전이라면 의문만 가졌겠으나, 몬스터를 대놓고 조종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그 짐작이 실제 사실임을 깨닫는 그녀였다.
“막아주는 정도를 넘어서 조종을 해 준다는 거겠지. 하기는…… 신 중 악 계열도 그들의 교황청에 자리해 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던 거야.”
“그래도 이전까진 은밀히 그 힘을 사용했는데 말야. 이런 식으로 대놓고 사용한단 건…… 결국 한 가지 의미겠네.”
그런 성국이 대놓고 움직이고 있다.
천 년.
어쩌면 그 이전 성국의 성립 이전부터 숨겨 왔던 능력을 사용해 가며, 이곳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었다.
테스가 예상해 놓은 모든 루트를 깨고서!
몬스터를 끼워 넣음으로써 그가 예상하는 이상의 전력을 지니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다.
“그만큼 성국이 다급하다는 거겠지.”
“전심전력이란 의미기도 해.”
저들로선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바로 이번 침공에.
이쯤 되면 한 가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테스. 네가 결국 관측자들에 의해서 관측된 거야.”
성국이 예비 승천자인 그의 존재를 알아냈다. 수십여 개의 진법석, 온갖 정보 교란을 사용한 그의 위장막을 결국 그들이 뚫어냈다.
언제고 닥칠 일이었으나, 이런 식은 원하지 않았거늘.
일은 이미 벌어졌고, 그가 해야 할 선택은 결국 하나였다.
“제리코. 전역에 있는 모든 방위군에게 이곳을 향해 다시 오라고 명을 전하도록 해.”
“……산맥 소식이 들려오는 그 순간, 이미 전부 명을 전해 놓았습니다.”
“잘했어.”
결국 저들이 선택한 전장에서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
‘저들이 숨긴 힘을 사용할 결심을 한 순간부터…… 몇 대는 맞고 시작하는군.’
그러나 전장을 그들이 선택했다 해서, 계속해 질질 끌려다닐 이유는 없었다.
성국의 급작스런 침입에 제리코는 잔뜩 긴장을 한 듯하나.
적의 침공로가 밝혀진 지금.
테스는 되레 여유로워졌다.
“방위군이 올 때까지…… 그 시간은 어떻게 벌까요?”
“시간? 그건 걱정하지 마. 저들은 하필 울픈 산맥을 통해 온 거 자체를 후회하게 될 테니까.”
“예? ……아!”
그 여유의 의미. 명석한 제리코는 금세 알아들었다.
“아…… 그게 있었지.”
“……쯧. 스승님의 덫에 다 걸린 거네요.”
“머저리들.”
그 주변을 지키던 자들도, 그 의미를 금방 읽었다.
저들이 달려오고 있는 침공 루트.
그 끝에 도달했을 때, 그들이 가장 먼저 맞이해야 할 건 테스의 방위군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이전.
“진법부터 뚫고 와 보라지.”
오래전부터 테스가 마음먹고 설치한, 그 진법을 상대해야 했다.
* * *
관측자 헥사트.
교황들의 대리를 맡은 주교 바론.
숨은 18번째 기사단장이자 악신 추종자 케실런.
“이쪽으로.”
관측자 헥사트가 인간 병사들 앞을 이끄는 가운데, 바론이 그 옆을 지켜가며 병사를 이끌었다.
그보다 더 앞.
“aprad? ¿Poson bastardos aprad?r qué astardo…….”
케실런을 따르는 악신의 추종자들이 기이한 주문을 외우며 앞을 거닐고 있었다.
희멀겋게 뜬 눈과 질질 흘러내리는 침. 그런 가운데서도 외워지는 기괴한 주문 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아우라.
그들 곁을 머물던 아우라는 힘차게 솟구쳐 앞을 향해 나아갔고.
-키이익!
-케엑!
그 아우라에 닿은 몬스터들은 희열에 찬 듯 몸을 떨어댔다.
스스스-
그중 일부는 아우라를 흡수하더니 이내 덩치가 커지기까지 하였다. 몬스터에게 성장은 곧 쾌락이고, 그 무엇보다 강력한 행동 동기가 될 수밖에 없을 터.
-키에에에엑!
-키킥.
-크르륵…….
악신의 추종자들이 주는 쾌락을 맡은 몬스터들은 앞으로, 더 앞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나가는 그만큼, 더 많은 쾌락을 준다 약속한 악신 추종자들의 말을 믿고 있기 때문.
과연 악신 추종자들이 그 약속을 지킬지는 알 수 없으나.
-크흥…….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테스의 영역이 있는 그곳으로.
* * *
아우라를 받아 지치지도 않으며, 쉬지도 않는다.
그러며 전진하는 몬스터의 속도는 빠를 수밖에 없었다.
점차 거리가 벌어져선 안 되기에 군대를 이끄는 신관들은 쉼 없이 주문을 외워야 했다.
“회복을!”
“생명의 피리엘이시여! 활기를 불어넣어 주소서!”
“사도르시여!”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축언을 외고, 기도를 올려온다.
샤아아아-
그 결과는 같았다. 몸이 회복되고 지치지 않는다.
아우라의 종류만 다를 뿐, 저들이 받는 효과는 몬스터들이 받는 회복 효과와 같은 종류였다.
결국 몬스터나 성국 군대나 전부 축언을 받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따르는 신의 종류만이 다를 뿐이었다.
그럼에도,
“언제 봐도 소름 돋을 정도로 징그러운 것들이군요.”
“피리엘 님의 허락이 없었다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들이지요. 쯧.”
군을 이끄는 헥사트와 바론은 짙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교황들께선 왜 저러한 것들을 박멸하시지 않는지…… 저들이 없었더라면, 인세가 더 밝았을 거 아닙니까.”
“쉬잇. 다른 자들이 듣겠습니다. 물론, 저도 헥사트 님의 말에 동의합니다만은…… 어쩌겠습니까. 악신도 신이신 것을요.”
“……모든 것은 신의 뜻일지니 이해는 하나. 도무지 그분들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는 없겠습니다. 저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요!”
자신들과 다른 속성을 지닌 악신의 사제들을 지극히 혐오하고 있었다.
몬스터 전력을 이용하고 있는 주제에,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건 지독한 위선 중 위선!
그럼에도 여기 있는 자들 중 그 위선을 꼬집는 자는 없었다. 되레 그 옆을 지키고 있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제 자신들의 썩어 버린 위선에 대해 고칠 여지가 이들에겐 일 점 없어 보일 정도였다.
하기사, 이곳에 존재하는 이들 모두 신을 위해 영혼을 바쳤다 하는 광신도들이었다.
경전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신을 믿지 않는 자를 불신자라 칭하며 불 지르기를 즐겨 하는 게 성국을 이끄는 이들이었다.
그러한 이들에게 있어 자신들이 부리는 위선은, 위선이 아닌 선 그 자체였을지도 몰랐다.
“저도 바론 님의 말을 이해합니다.”
“후우…… 예비 승천자라고 제 자신을 칭하는 그 재앙만 없었더라면 일이 이리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재앙. 말살할 녀석이죠.”
되레 그들이 군대를 동원하게 한 자, 재앙이라고 칭하고 있는 테스를 원망할 뿐이었다.
테스를 원망하는 말을 내뱉고, 위선을 부리기를 한참.
그들은 그러다 은근슬쩍 대화의 주제를 바꾸며 전진해 나갔다.
그 주제, 성국이 이리 움직이게 된 계기. 숨기고 있던 힘을 드러내게 한 계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나저나 그가 라그나로크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예언이 잠시 돌았다지요?”
“……신들의 전쟁이라. 차라리 그러한 라그나로크면 나았지요! 듣기로 그자가 멸망을 불러일으킨다는 관측이 있었소이다.”
신들의 전쟁 라그나로크, 멸망, 대제전…….
성국에서도 금기시하는 단어들이 그들의 대화 속에서 읊어졌다.
“허어…… 멸망이요? 멸망이 관측됐다 이 말입니까?”
“고작 한 인간이 멸망이라…… 믿기지는 않으나, 그리 관측된 게 사실이니 어쩔 수 있겠습니까. 몇 번을 확인해도 같은 관측이 되었습니다.”
“허어…….”
예언, 계시, 관측, 주시…….
결국 여러 가지로 말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주제는 한 가지로 귀결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