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편
챕터 17.
‘제국의 도움이라…… 타이밍이 공교로워.’
이전이라면 저들의 제안에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을 터였다.
그러나 제국이 그에게 정보를 차단하고 있는 지 오래였다.
정보 길드에도 제국의 손길이 뻗쳐 있는 건지, 그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아르델 공작도 어떤 압박을 받는 게 분명했다.
‘연통을 보내는 주기가 점차 길어지고 있지. 안에 적히는 내용도 점차 줄어들고 있고.’
제 자식을 구해 줬기에 가진 그의 호감은 분명 진심.
그런데도 그 내용은 그에 대한 호감을 보이긴커녕 점차 딱딱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변화요. 그 변화를 보며 얻는 이면의 정보를 모를 테스가 아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제국은 날 적대한다. 설혹 적대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날 견제할 생각은 하고 있어.’
적어도 제국은 그를 견제하기에 정보를 차단한 거다.
그런 상황에 대번에 제국이 도와주겠다라?
세상에 의미 모를 호의는 없다. 차라리 아르델 공작이 개인적으로 돕는다 했다면 모를까. 이런 식의 도움은 분명 그 속에 함정이 있었다.
‘이 도움은 받아선 안 돼.’
근거?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의 감도 말해 주고 있었다.
이 도움을 받아들여 제국의 것들을 어센션 안으로 들이는 그 순간.
‘무언가 벌어진다.’
대범람이나 침공 당시에 그러했듯,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벌어질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 제안 고맙긴 하나, 거절하지.”
“예?”
생각지 못한 답을 들었다는 듯 표정을 짓는 우레안 후작이었다.
제국의 대사로 다닌 그가 거절을 받는다는 경험 자체가 생소할 터였다.
“잘 이해하지 못했다면 다시 말해 주지. 거절이라고. 혹 거절 받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가?”
“……없습니다.”
당황해하는 우레안. 그를 향해 테스는 한발 더 나아가 뻔뻔해졌다.
“그럼 된 거군. 굳이, 도움을 주고 싶다면 이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라면 받아 주도록 하지. 이를테면 군 식량이라든지, 무구들 정도는 얼마든 받아 줄 수 있네.”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군요.”
뻔뻔한 가운데, 그 안에 조롱의 의미가 있음을 읽어 들인 걸까. 우레안은 그제야 황당함을 지우고 인상을 굳혔다.
그런 우레안을 보며, 테스는 그의 내심을 읽어 들이려 하였다.
그가 가진 기운의 움직임, 표정 변화, 심장의 박동…….
보통은 읽지 못하는 것들.
그러한 것들을 읽어 들임으로써 테스는 정보를 얻으려 한 거였다.
그렇기에 평소보다 더 뻔뻔히 나갔던 것.
그러나.
‘후음……. 딱히 읽어 들여지는 건 없군. 역시 제국의 대사는 대사라 이건가.’
테스가 후작으로부터 읽어 들이는 건 곤혹스러움, 짜증, 분노라는 감정이었을 뿐이다.
그 외에 다른 정보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건 둘 중 하나네.’
우레안 후작도 제국 황제의 내심을 전혀 모르거나, 그도 아니라면 테스의 생각 이상으로 제 진짜 내심을 잘 숨길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테스가 경지에 이른 지 오래인 지금, 그의 눈을 피해 갈 확률은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으니 결국 답은 하나였다.
‘후작급이라 할지라도 모를 정도로 제국 내에서 은밀히 무언가 획책하고 있는 거다.’
적어도 공작급 정도는 돼야 알 만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
몰래 칼을 벼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벼려진 그 칼은, 어느 방향으로 튈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본래라면 성국에 가야 할 게 분명한데, 왜인지 그게 아닌 듯하단 말이지.’
얻은 정보가 있으나, 결국 답은 혼란이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혼란 속에서 영양가 없는 회담은 한참을 이뤄졌다.
“……이 일은 분명 황제께 전해질 겁니다.”
“얼마든 그리하게나. 나 또한 기억하고 있을 터이니.”
“다음에 뵙지요. 어센션의 왕이시여.”
결국 그 끝은 서로 간 아무런 성과 없는 회담의 종료였다.
* * *
우레안 후작은 며칠을 더 머물다, 어센션을 떠나갔다.
그사이 테스는 내부에 머무르는 후작을 감시하는 동시에 은밀히 어센션 내부를 살피고 명령을 내렸다.
제국이 숨긴 비수와 상관없이, 성국이 쳐들어온다는 정보는 사실일 터.
‘대체 어디로 올 생각이냐.’
그렇기에 그들이 어디로 쳐들어올지를 살피는 그였다. 그는 저들을 살핌과 동시에 성국의 어센션을 향한 진격 방향을 몇 군데 예측했다.
성국의 이전 침공 당시 경로, 그들과 연결된 도로 등을 기준으로 예측지를 잡았다.
그러곤 예측 경로에 따라 병사들의 배치를 명했다.
“사인 영지, 마스키지언 북부 2 요새, 휘슬 쪽으로 우선 군대를 동원시켜. 그곳 영주들의 군대는 바로 움직이게끔 명하고.”
“총 셋이나 갈라지는 겁니까?”
“우선 성국이 올 만한 경로는 그 셋이니까. 이 외에 다른 도로로는 그 대군이 움직이지 못해.”
정보가 부족하니 성국 침공 후보지는 늘었다.
“레브스나 울만으로도 올 수 있을 텐데요?”
“그쪽엔 내가 시야를 심어 둔 지 오래야. 그런데도 포착된 게 없으니 남은 건 그 셋이겠지.”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둘 정도는 줄였다는 정도다. 레브스나 울만의 도로는 꽤 컸기에, 대군이 움직이기 편한 곳.
그렇기에 미리 정보원들을 배치한 덕이다.
그럼으로 나눠져 배치된 곳은 셋.
“으음…… 알겠습니다. 바로 명령하신 대로 배치를 명하죠.”
“셋이라 할지라도 남은 둘은 언제든 지원이 가능할 거야. 설사 늦어져도 성벽을 끼고 버티는 거 정도는 충분히 될 테고.”
“버티는 거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듯싶긴 합니다. 영지군, 아니 이제 어센션 정규군의 수도 많이 늘었으니까요.”
셋 모두 자력으로 방어는 가능할 정도의 전력이었다.
테스가 가르쳐 전수되어 내려오는 무공, 영약, 장비의 힘 덕분이다.
설사 십만의 대군이 오더라도, 능히 몇 달은 막아 낼 수 있을 정도이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전력이 강하단 자신감이 없었더라면 그도 이런 식으로 병사를 나누진 않았을 터였다.
결국 이번 방어전의 요체는 하나다.
셋으로 나눠 예상되는 모든 곳을 방어.
적의 침공이 이뤄진 이후, 방어에 전념하며 시간을 벌어 남은 두 개의 군대를 결집.
결집된 군대를 이용하여 성국 침공군을 괴멸.
방어, 결집, 괴멸이란 세 요소가 물처럼 흐르도록 작전을 짜놓았다.
아쉬운 게 있다면 하나.
제국이 성국의 움직임을 알려준 게 아니라, 테스의 어센션 스스로 침공 정보를 읽어 들였다면 더 좋았을 터였다.
‘내부는 몰라도 외부 정보력이 아직 부족한 거겠지. 이거야…… 시간이 지나면 분명 채워질 거다.’
결국 정보력의 부재가 이런 상황을 낳은 셈이었다.
성국의 모든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의 정보력이 있었더라면.
“방비를 철저히 해야 할 거야. 저들이 쳐들어오고 있음에도, 여전히 알아내지 못한 건 분명 패착이니까. 한 방 먹었으니 제대로 갚아 줘야 하지 않겠어?”
“……당연한 이야깁니다. 한 방, 아니 두 방은 더 먹여 줘야죠.”
크게 한 방 먹을 일은 없었다.
그뿐이랴.
셋으로 병사를 나눌 것도 없이 모든 병사를 집중시켜, 적의 침공을 대비했을 터였다.
방비에 시간을 끌 필요도 없이 단번에 적을 몰아쳐 괴멸시키는 것도 가능했겠지.
그 여세를 몰아 이용한다면, 성국을 향해 곧바로 진격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분명 아니었다.
‘미리 정보만 알았더라면 성국이 침공에 실패하고…… 그사이 있는 힘의 공백기를 이용할 수 있었을 텐데. 쯧.’
아쉬우나 어쩌겠는가.
결국 일은 벌어졌으니, 아쉬운 대로 적에 대비를 할 수밖에.
“좋은 마음가짐이야. 자, 바로 움직이도록 하게나.”
“명 받겠습니다!”
테스의 명대로 어센션 정규군이 된 군대가 셋으로 나뉘었다.
-전군 출진하라!
최소의 방비를 제외한 자들 대다수가 사인, 마스키지언 북부 2 요새, 휘슬을 향했다.
충실히 무장한 그들의 움직임은 테스가 보기에도 단단했다.
수많은 훈련과 실전을 통해 만들어진 저들의 힘은 분명 강병이라고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출진하는 수가 총 5만이었다.
단 몇 년 사이 만들어진 어센션의 군대치고는 굉장히 많은 수였다.
지난 몇 년간 영지와 의선문뿐만 아니라 군대의 수도 크게 불린 결과였다.
수를 크게 불려놓았음에도, 어중이떠중이 병사는 없으니 그 전력은 막강했다.
이후, 동부에서 오는 군세가 추가적으로 움직일 터이니 그 수는 계속해 불어나기까지 할 터였다.
‘저 정도라면…… 가능하겠어.’
그 막강함을 여실히 느끼는 테스였다.
그렇기에 그로서도 출정하는 병사들의 움직임을 보며 든든함을 느꼈다.
“저 정도라면 제아무리 성국이라도 쉽게 선을 넘지는 못할 겁니다.”
“내 예상 이상의 위용이야. 테론 장군이 고생이 많았겠어.”
“후후. 그 말씀, 나중에 테론 장군이 승전보를 울리고 오면 직접 이야기해 주시지요. 매우 좋아할 겁니다.”
“승전보라…… 그걸 울리고 오면 몇 번이고 해 줄 수 있지.”
“그 말씀 장군에게 따로 전해도 되겠습니까?”
“왜?”
“그 말을 들으면 꽤 사기가 치솟을 게 분명하거든요. 후후.”
“……쯧. 제리코 자네, 잔수만 늘었다니까. 그래도 한번 전하긴 해 보게. 말 몇 마디로 장군의 사기가 오른다면 못 할 것도 없으니.”
“꼭 전하지요.”
병사들이 가진 든든함이 전해진 것일까.
정보전에선 밀리었으나, 성국 침공의 방비에 대한 걱정은 꽤 사그라들게 된 테스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으로 또 다른 준비를 하기는 하였으니.
“문파원들의 준비는?”
“아직 수준이 낮은 아이들은 제외. 이류 이상의 실력을 지닌 제자들은 출정 준비가 되었습니다.”
“마탑도 준비 완료야. 다만, 우리가 이런 식으로 나서게 되면 언제고 성국의 보복이 올지 모르니 이 부분은 확실히 보호해 줘야 할 거야.”
“보호는 당연한 이야기야. 피를 쏟아준 만큼 충분히 대가는 치를 테니 걱정 말라고.”
의선문 문파원, 마탑의 마법사, 야만인, 마스키지언의 용병…….
정규군을 제하고도, 테스가 준비할 수 있는 전력은 최대한 끌어모았다.
‘성국. 만만히 볼 녀석들이 아냐.’
제국과 비등한 역사를 지닌 성국. 그들의 전력을 결코 얕잡아 보지 않기에, 차고도 남을 준비를 하는 거였다.
특수군으로 남게 될 이들은, 성국의 침공이 이뤄진 이후 곧바로 활약을 하게 될 터였다.
마탑의 텔레포트를 이용, 어센션 영지 어디든 순간 이동으로 지원이 가능할 터였다.
결국 문파원들을 비롯한 특수 전력들은 성국을 향한 적의 비수나 마찬가지였다.
그 비수의 든든함도 정규군 못지않았기에.
‘어떻게든 한 방 먹여 주마.’
테스는 곧 있을 성국의 침공을 기다리며, 제 심중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결국 성국의 침공 소식이 전해졌다.
“주군! 적 출현입니다!”
“어딘가?”
한데, 그 침공 장소가 테스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