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챕터 12.
베빈과 텍트. 저 둘의 활용이었다.
‘문파원들이 많아진 만큼, 나 홀로 다 가르치는 건 어렵지.’
그가 온 힘을 다하여 가르친다 해도 그 수는 백을 넘기 어려웠다. 깊이 가르침을 준다 하면 그 수는 더더욱 줄어든다.
이 상황에 천이 넘는 인원들을 가르치는 게 결코 쉬울 리 없었다.
설사 제자들이 돕는다 해도 이는 어려웠다.
이미 3대로 받아들인 새 제자들을 2대 제자들이 기초를 잡아 주고 있었다.
에나가 그러했듯, 그들도 지옥 조교가 되어 굴러주고야 있다만.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기초. 의선공을 제대로 대성한 아이도 드물어서, 그 이상은 힘들다.’
이미 한계치가 보이고 있었다.
기초 이후를 가르칠 수 있는 2대 제자가 너무 적다.
몇 달 뒤 기초 수련이 끝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수련이다.
이 수련을 도맡아 줄 방안이 필요했다.
기초만 가르치는 게 가능한 2대 제자를 제외하고. 남은 제자들이 있기는 했다.
1대 제자다.
이들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 수가 적었기에 테스가 기초부터 잡아줬다.
의선공을 손수 전수했음은 물론이고, 선천여의생공도 전수한 지 오래다.
다들 테스의 가르침을 체득해냈다.
체득한 무공을 기본으로 하여, 1대 제자들은 한 발자국 더 나갔다.
마스키지언에선 피의 마녀로도 불리는 이소프처럼 제 피를 각성해 괴물이 돼 가는 아이들이 슬슬 모습을 드러냈다.
또 일부는 에나나 프로스처럼 저만의 경지를 만들어 가기도 했다.
에나는 연류신공의 대성을 넘어, 그 이상의 무공을.
프로스는 오행신공을 넘어 정령과 합일하는 경지를 추구하고 있었다.
그 둘에게 자극을 받았을까.
1대 제자들 중 다수는 저만의 무공을 만들고자 몰두하고 있었다. 마법과 연금술을 대입하는 자도 있었고, 제 피에 담긴 힘을 이용하고자 하는 자도 있었다.
또 일부는 이번 각성 사태에 같이 각성하여, 얻은 새로운 능력을 키우는 자도 있었다.
하나같이 서로 달랐다. 추구하는 바도, 배우는 바도 달랐다.
1대 제자 모두가 백인백색(百人百色)의 길을 걷고 있었다.
1대 제자들이 저만의 길을 열고 있는 상황.
‘지금이 한창 중요할 때지. 방해해서는 안 되는 시간이기도 하고.’
저들에겐 완벽한 몰입의 시간이 필요했다.
평생의 그 어느 시간보다도, 현재가 중요함을 테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 시간에 몰두하는 1대 제자들에게 새로 들어온 제자와 2대 제자를 가르치라 말할 순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요한 건, 새 수련법이다.
테스와 1대 제자가 없어도, 의선문의 무공을 가르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답이 눈앞에서 툴툴대고 있는 둘이었다.
“내가 만들 줄 아는 거라고는 보구를 담을 그릇 따위라고. 사실, 그 외에 무구 같은 건 너희 영지도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지 않느냐?”
“물론이지, 우리 영지에 들어온 드워프들 수가 꽤 되니까 말야.”
“그런데도 왜 날 부른 거냐. 네놈 덕에 얻은 영감으로 몇 년은 작업실에 푹 박혀 있을 생각이었건만!”
툴툴거리는 텍트. 무게감은 낮아도, 그가 지닌 경지는 높았다.
그는 테스를 보기 이전부터도 드워프족이 쳐주는 장인 중 하나였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발전하기까지 했지.’
테스 곁에 있으며, 얻은 영감을 통해 그 실력이 더 진일보했다. 수십여 개의 보구를 조율하고, 그 사용 방식을 조종하면서 얻은 영감 덕이었다.
그의 부족을 떠나, 드워프 전체를 놓고 봐도 손꼽히는 명장이 그였다.
그런 그에게서 테스가 필요한 건 역시 하나.
“그 보구를 사람을 담을 정도로 크게 만들어 줬으면 하는데?”
“사람을 담을 정도? 미친, 설마 아이언메이든이라도 만들어 달라는 거냐? 그건 무기도 그릇도 아닌 고문 도구다, 이 미친 인간아!”
텍트의 욕지거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보구가 필요했다.
‘그것도 수련에 딱 맞는 보구가 말이지.’
다른 자라면 몰라도, 이 눈앞의 텍트라면 분명 만들어 줄 수 있을 터였다.
테스가 보기에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았다.
문제는 그 대가.
“대가는 충분히 지불해 주지.”
“헹. 대가는 무슨. 온갖 금은보화도 필요 없고. 보물도 내 손으로 만들면 돼. 내가 받을 건 또 없다!”
실존하는 거의 모든 걸 만들어낼 수 있는 텍트. 그에게 줄 만한 대가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이런 자에겐 물질적인 게 아닌, 다른 대가를 줘야 했다.
“누가 금은보화를 준다고 했나. 알고 있지 않나? 나도 돈은 없어. 한 번 망한 나라를 수복하는 게 보통 일일 리가 없잖아?”
“헹. 없기는. 지 욕심 때문에 돈을 들이붓고 있다 보니, 잠시 모자란 거겠지. 어쨌거나, 더 할 말이 없으면 나는 이만 돌아가지!”
“거, 참. 성격하고는. 내가 금은보화 따위를 대가로 줄 리가 없잖아?”
“호오. 금은보화가 아니면 또 뭔데?”
“새로운 영감!”
그 대가. 텍트의 창작욕에 기름을 부을 영감이었다.
어찌 보면 한없이 가치가 없는 것이나, 장인인 그에게 있어선 최상이 될 수밖에 없는 대가기도 했다.
문제는 그걸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는 거였다.
금번에 텍트가 영감을 받은 것도, 대범람 정도나 되는 재앙을 겪은 끝에 얻은 거였다.
그만큼 큰 사건이 있어야 가능한 일.
한데, 고작해야 문파에 관련한 일을 가지고 또 영감을 얻는다?
다른 수준 낮은 장인이라면 모를까. 텍트 정도 되는 수준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텍트가 욕지거리를 하지 않고, 묻는 이유는 하나. 그간 그가 겪은 테스가 허투루 장담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새로운 영감이라……. 그게 생겨날 거라고 어찌 장담을 하는데?”
“한번 들어 봐. 아아. 이참에 베빈 당신도 같이 듣도록 해.”
“나는 승천 아니면 다른 건 관심도 없는데? 꼭 들어야 해?”
“당신도 꼭 들어야만 해.”
“왜?”
“그게 내 승천에 도움이 되니까. 베빈, 당신도 봤잖아. 내 1대 제자들이 내게 어떤 영감을 가져다주는지. 2대와 3대가 성장하면 또 어떤 영감을 가져다주겠어? 그것들이 모여 내게 힘을 가져다주다 보면…… 그 뒤는 알지?”
“새로운 힘을 깨닫게 되고, 성장한다 이 말이지?”
“그래. 내 성장이 곧 승천에 닿는 길이니 베빈 당신도 도와줘야 하는 거지.”
“……뻔뻔하기는. 갈수록 능글맞아지기만 한다니까, 분명 처음 봤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야.”
“후후. 옆에 있는 누구한테 배우는 거지.”
“그게 설마 나란…….”
“자자, 됐고. 우선 설명부터 들어보라고. 둘한테도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이번에 내가 만들 건 말이야…….”
흥미로워하는 텍트. 설득됐으나 반쯤 귀찮음이 남아 있는 베빈.
이 둘을 데리고 테스는, 진득한 음모라도 꾸미는 듯 제 머릿속에 있던 것을 끄집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테스의 설명이 끝나자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오오오! 인간 녀석! 꽤 재밌는 짓을 벌이려는구나!”
“……마탑에 이미 비슷한 게 있긴 한데. 마법이 아니라 무공이란 것에 대입이라. 그거 꽤 재밌는 일이긴 하겠네.”
텍트는 완벽한 호응을.
베빈은 시시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하나,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시시하다는 반응이었다.
‘눈빛까지 숨기지는 못하지.’
그녀는 테스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처음 테스를 봤었던 때처럼.
그 눈빛. 명백히 이번 테스의 설명에 흥미가 생겼다는 의미다.
테스가 새로 구상한 수련 물품. 그것은 그리 어려운 개념의 물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주입기였다.
혈도, 심법 구결, 초식, 무의 개념, 이론, 의선문의 정신…….
수없이 많은 것들을 주입해야 했다. 실상 여기까진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었다.
혈도와 구결은 외우게 하면 될 문제고. 초식은 한 명이 대표로 나와 익히게 만들면 되었다.
세심하게 배우지 못하더라도 반복 과정 중에 체화되는 게 있으니, 이도 문제없었다.
개념이나 이론, 정신. 그 모든 것들도 다 따로 가르치는 게 분명 가능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뒤에 나올 하나다.
바로 기운 주입.
“그릇에 네 기운을 담아놓고, 이를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식이라…… 웬 미친 짓인가 했다.”
“그 기운을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건 물론이고, 상태까지 봐야 했다니까요. 하아……. 이런 연구는 마탑에서도 잘 안 한다구요.”
“……미친놈.”
“……맞아요, 미친 사람이죠.”
테스는 수련 기구 안에서 심법을 돌리는 중에 의선공의 기운이 저절로 스며들길 원했다.
스며든 기운을 체화하여 성장을 북돋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기운을 주입하는 건 그리 어려운 개념도 아니었다.
본래라면 그 스승이 제자를 돕기 위해 자주 행하는 것이었으니까.
쉬우나 그 효용은 막대했다.
같은 심법을 익힌 하수에게 고수가 기운을 주입해 주면, 그 하나만으로 얻는 바가 많았다.
기운을 제 것으로 체화하며 내공이 크게 증진하기도 하고. 심법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하여, 경지가 오르기도 했다.
때문에 대 문파에서는 기운 주입을 자주 행하곤 했다.
심한 경우 기운 주입을 의무로 두기도 했다. 주입을 통해 제자의 성장을 이끌고, 크게 키워 그 성세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테스도 1대 제자들에겐 자주 행했던 일이다.
처음 심법을 익혔을 때도 그러했고, 틈이 날 때마다 심법을 돌리는 아이들에게 기운을 주입해 성장을 도왔다.
하나, 지금에 이르러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나라도 천이 넘는 아이들에게 전부 해 주는 건 무리지.’
그 홀로 기운 주입을 하여 성장을 돕기엔 제자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렇기에 만들어낸 수련 장치였다.
진법에 마법, 텍트의 드워프 공학까지 들어간 물품이었다.
이를 만들어내는 데 소모된 시간은 약 삼 개월.
소모된 시간 이상으로 효과는 막대했다.
‘이걸로 다들 의선공 기초는 금방 떼겠어.’
3대 제자들 모두 의선공에 입문하는 데 성공했다.
기초 이후 수련 받아야 할 무공들을 장치를 통해 스스로 익힐 수 있게 됐다.
3대 제자들이 스스로 익히니, 그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야 할 2대 제자들에게 여유가 생겼다.
시간이 생긴 2대 제자들. 그들은 제 수련을 위해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됐다. 그들도 새로 만들어진 장치에 들어갔고,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수련 장치 하나로 모두에게 여유가 생겼다. 일종의 선순환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그런 가운데, 몇 가지 실험을 통해 테스는 새로운 성과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이건 나도 생각 못 한 일이었지…….’
그 성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