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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60화 (159/191)

제160화

챕터 10.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테스가 자니른에게 한 제안. 달리 어려운 제안은 아니었다. 본래부터 자니른이 원하는 제안이기도 하였으니까.

그는 자니른이 자신의 품에 들어오길 원했다.

‘쓸 만한 녀석이야.’

각성한 발화 능력이 뛰어남은 말할 것도 없다.

중요한 건 그 인성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전투 벌이기를 주저했다.

제 힘에 취하지 않았단 증거다. 힘에 취한 녀석이라면 도적이 모습을 보이자마자 전투를 시작했을 거다.

그것만으로도 합격점이라 할 수 있는 자니른이었다.

그러니 곧바로 제안을 할 수밖에.

“시원하니 좋군. 이대로 쭉 서쪽으로 가게. 얼마 가지 않아서, 행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야. 가선 이걸 주도록 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자니른에게 테스는 품에 있던 명패 하나를 꺼내 줬다.

스스-

세밀하게 새겨진 문양에 마나가 흐르는 명패.

얼마 전까지 평범한 장원민으로 살아 왔던 자니른이 평생을 가도 보기 힘들 만한 세공품이었다.

그가 받는 걸 주저하며 묻고 있었다.

“……이거, 꽤 귀한 것 아닙니까? 저 같은 녀석에게 이런 걸 뭘 믿고 주시는지…….”

“푸핫.”

그 모습이 꽤 진지한지라, 테스로선 웃음이 비어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목숨이 오고 가서 긴장한 주제에. 이제 와 물건값에 놀란다라. 꽤 재미난 녀석일지도.’

이 상황에 명패의 귀함 따위를 물을 줄 누가 알았으랴.

제아무리 테스라도 예상키 힘든 일이었기에 웃음부터 비어져 나온 거였다.

그 웃음에 대한 해석을 오해했는지, 자니른은 괜스레 몸을 떨었다.

그런 자니른의 어깨를 테스는 툭툭 두드려 주며, 안심하라 말했다.

“자네가 내 제안을 받아줬으니, 이 정도쯤은 당연히 해 줘야지. 추후에는 지금 받은 거보다 더 귀한 걸 받을 수 있을 거야.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 명패거든.”

“……허업. 이게 임시라니요. 대체…….”

‘어센션 영지는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이런 걸 임시로 쓰는 겁니까.’라는 말까지는 용케도 입 안으로 삼키는 데 성공한 자니른이었다.

“여튼, 가 보게. 나는 또 구할 자들이 있는 듯하니 먼저 가 봐야겠어. 궁금한 게 있다면 가서 물어보게나. 내가 말한 그곳에 가면 지금부터 자네가 뭘 해야 할지 알려 줄 자들이 있을 테니까.”

“네, 넵!”

“나중에 보지.”

“옙! 나중에 꼭! 뵙겠습니다!”

선망 어린 눈초리를 보내는 자니른.

눈초리를 보내면서도 손에 쥔 명패는 손때라도 묻힐 듯 꽉 잡곤 테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한 자니른의 태도가 우스워 테스는 픽 웃음을 지어 보이곤, 발을 박차 그 곁을 떠났다.

도적들의 시체 사이에 홀로 남은 자니른.

“후우…….”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곤, 테스가 말한 서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정지! 어센션의 제4 순찰대다! 신원을 밝히도록!”

“제, 제대로 왔군요. 이, 이곳에 용무가 있어 찾아왔습니다!”

테스의 말대로 기다란 행렬을 만날 수 있었다.

어센션의 깃발이 달린 수십여 대의 마차와 그 뒤를 따르는 병사들. 병사들의 가슴팍에도 어센션의 상징이 달려 있었다.

‘제대로 왔다!’

상징들을 본 자니른은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에 금세 도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용무지?”

“여, 영주님…… 아니 테스 님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그는 떨리는 가슴을 추스르며, 손에 쥐고 있던 명패를 병사에게 내밀었다.

“오…… 이걸 받았다고?”

“네, 넵!”

명패를 받아 든 병사의 표정이 환해진다. 명패가 가진 의미를 알기 때문이었다.

“이 명패. 테스 님이 직접 주셨다는 의미군. 그분을 뵌 건가?”

“옙. 이리로 가면 다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아무렴! 그분의 명패를 들고 온 자인데, 설명 하나를 못 해 줄까. 몇 번이고 해 줄 테니 걱정 말게나. 자자, 이리로 오게.”

테스가 주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병사는 자니른에게 호감을 품은 듯했다.

그 모습에 자니른은 의아함을 느끼기 이전에 감탄부터 했다.

‘……과연!’

자니른이 지난 평생 겪은 자들 중 높은 자는 장원이나 기사 정도 수준이었다.

잘해야 멀리서 한 번 본 자작의 얼굴이 다였다.

준귀족이나 귀족들.

그러한 자들을 보면 장원민인 그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공포와 두려움에 차 덜덜 떠는 거였다.

그들의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에 반응을 잘못했다가는 바로 목숨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자니른에게 있어 귀족과 상급자는 공포의 대상이었지, 존경의 대상은 결코 아니었다.

한데 지금은 뭔가.

그의 명패를 하나 들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병사가 호감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그를 이끄는 병사가 테스에 대한 존경이 없다면 보일 수 없는 태도였다.

자니른으로선 전에 느끼지 못한 신선함을 느낄 수밖에.

‘그런 분이 나를 받아주셨단 말이지…….’

그런 그가 느낀 신선함은 자연스레 테스에 대한 존경과 호감으로 치환돼 가고 있었고.

“자, 여길세. 자네는 명패를 받았으니 정착을 넘어 의선문의 새 문파원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일 터. 그렇기에 들을 게 많네. 가능하면 적든가 기억하게나.”

“네, 넵! 귀 씻고 잘 들어보겠습니다!”

“커흠. 그래, 바로 설명을 하자면…….”

호감이 커져 가는 만큼이나 병사가 설명해 주는 모든 걸 뼈에 새기듯 듣고자 하고 있었다.

* * *

자니른이 순찰대와 조우해 정착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을 무렵.

테스는 기감을 키운 채로 움직이고 있었다.

‘구할 자가 많아.’

새로운 각성자가 넘쳐나고 있는 지금. 그가 가야 할 곳이 많았다.

제 능력을 각성하고도 움직이지 않는 자를 찾아 설득해야 하고.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자들이 더 빨리 올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여기에 더불어 일이 하나 더 벌어졌으니.

‘이런 시국에 서로 보듬어도 모자랄 판국에, 이런 식으로 일을 만들어댈 줄이야. 쯧.’

그건 인간끼리의 충돌이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니른처럼 제 힘에 취하지 않는 자는 되레 드물었다.

힘이 있으면 쓰고 싶은 법이었다.

특히, 급작스레 힘이 주어진 경우 제 힘에 도취되기 쉬웠다.

절제되지 않은 힘은 파국을 낳는 법이었다.

그가 자니른 앞에서 죽인 도적 두목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차라리 도적 두목 같은 자는 처리가 쉬웠다.

문제는 제 힘을 겉으론 숨긴 채로, 몰래 일을 벌이고 다니는 경우였다.

그러한 경우들을 테스로선 처리해야 했다.

전 카르소니아 왕국령이 그의 영역이 된 지금.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는 건 지배자로서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런 가운데, 자니른과 같이 제대로 된 능력자를 품에 들이기까지 해야 했으니.

“쯧…… 차라리 용병 시절이 좋았을지도 모르겠어.”

계속해 벌어지는 일을 처리해야 하는 테스로선, 그 심상에 짜증이 배어날 수밖에 없었다.

스스슷-

그럼에도 멈출 순 없었다.

‘혈통이나 새 능력의 개화. 그런 것들을 모아서 배우고, 익히면 익힐수록 승천에 더 가까워지겠지.’

각성자가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

많은 자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그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길이니까.

타아앙-!

그의 몸이 벌처럼 쏘아진다.

* * *

두 시간만 굶주려도 죽음을 맞이하는 벌새처럼.

테스는 쉼 없이 몸을 움직였고. 많은 자들을 구하고, 제 품에 들였다.

그 수만 하더라도 수천여 가량.

그가 따로 꾸린 순찰대가 데려온 각성자들의 수까지 합하면, 그 수는 이미 만 단위에 들어선 지 오래였다.

그만큼 많은 능력자들이 생겨났다는 이야기.

‘대범람의 수기와 마기가 어우러진 결과라고 하기엔…… 심하게 많긴 해.’

이는 테스나 레빈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규모기도 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하기는 위기 때마다 이런 각성자들이 나왔으니, 인간이란 개체가 여태껏 이 세계에서 문명을 이룩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드래곤, 엘프, 드워프, 마족, 정령…….

인간과 격이 다른 힘을 지닌 존재들. 그러한 개체들이 이 세계를 누비기를 주저하지 않고, 제 힘을 사용하는 데 거침이 없는 게 이 세계였다.

그러한 이 세계에서 인간이 살아남았다는 거 자체가 기적이었다.

테스가 지금의 힘에 도달하기 이전부터,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하였다.

거친 이 세계의 수준에 비해서, 인간은 한없이 초라하니까.

수를 무기로 하기엔 오크보다도 약하며, 마법은 전설상의 드래곤까지 갈 것도 없이 엘프보다 약하다.

생산 능력은 드워프에 비할 바가 못 되고.

자연을 다루는 능력은 자연 그 자체나 다름없는 정령에 비견될 리가 없다.

그런데도 살아남음을 넘어, 문명을 이룩한 게 언제나 의문이었다. 지금에 와선 그러한 궁금증이 전부 풀렸다.

“위기가 닥치면 이런 식으로 힘을 각성하는 자가 넘쳐나니 살아남은 거겠지. 후…….”

“이제 반 정도 데려오셨어요. 아니, 지금 새로 각성하는 자들도 있을 테니 일부라고 해야 할까요?”

“……그다지 듣기 좋은 말은 아니군.”

문제는 궁금증이 풀린 빈자리에, 새로운 일거리가 들어왔다는 거 정도.

그가 몸을 아끼지 않고 각성자들을 구해 오고, 품에 들였음에도 아직까지 들여야 할 자들이 넘쳤다.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도 무리가 가지 않는 그지만.

‘쉼 없이 힘을 사용하면서, 쉬지 말라고 하는 건 나라도 무리란 말이지.’

현재의 상태는 무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건, 제 욕심 때문이기도 했다.

최종 목적인 승천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더 많은 자를 받아들여야 하였으니까.

해서, 베빈에게 푸념을 하면서도 끝없이 움직였고.

이젠 순찰대를 넘어, 마탑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계속해 움직였다.

하루, 이틀, 한 달, 반년여…….

그조차 기력이 고갈될 만큼의 강행군이 이어졌다.

그렇게 꽤 많은 자들을 받아들인 결과는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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