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챕터 9.
“후우욱…….”
자니른은 숨을 들이쉬었다. 몸에서 느껴지는 심장의 떨림. 예사롭지 않았다.
‘거의 다 왔는데! 왜 여기서 막혀서는!’
앞을 막아서는 자들이 떨림을 더 크게 만들고 있었다.
멀대같이 큰 키. 손에 쥔 창과 낫들. 한때 농민이었을 게 분명한 저들은 유랑민을 넘어 도적이 돼 있었다.
“어이. 살고 싶으면 가진 것만 내놓으라니까?”
“킥킥. 준다고 살려 주려고?”
“아, 그건 또 아니지. 어이, 살려 주진 못하고, 고통스럽진 않게 보내 줄게! 어때, 딜?”
비웃어 대는 폼을 보아하니, 숙련된 도적들이었다.
자니른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들과 비슷한 처지였다.
굶주림과 함께 다가오는 죽음은 큰 고통이었고, 그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으니까. 남을 죽여서라도 스스로 살아남으라는 선택 말이다.
“야. 저 새끼 쫄았나 본데?”
“흘. 그럼 뒤져야지.”
그렇기에 무기를 치켜들고 오는 저자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하진 않았다.
하지만 마음을 이해하는 거와 저들의 행동을 납득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태어나 자란 고향에서도 순한 성격으로 알려진 그였지만, 자신을 해하려 다가오는 자들을 용납할 성격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며 그다운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오, 오지 마. 더 다가오면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그로선 진심이었다. 그러나.
“이야. 드 다가오면 으쯔할 줄을 모른단다.”
“어뜨케 할지를 모르게써요?”
상대는 그 경고를 알아듣지 못하고, 혀를 억지로 꼬아가며 그에 대한 비꼼을 더했다.
‘어쩔 수 없나.’
경고는 여기까지였다. 인간을 공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도 어쩔 수 없었다.
화르륵-
결심을 다 한 순간 그의 양팔에서 화염이 자라났다. 자라난 화염이 양팔을 감쌈을 넘어서, 그의 온몸으로 번져 갔다.
“혀, 형님 저거!”
“저 새끼……! 각성자잖아!”
도적들의 웃음이 깨져 나갔다. 그들의 입술은 더 이상 호선을 그리지 못했고. 되레 몇은 겁을 먹은 듯 손을 덜덜 떨기까지 했다.
저들도 얼마 전까지는 평범한 농민이었을 터. 제 피의 힘을 각성하거나, 마기의 새로운 힘을 각성한 각성자를 쉽게 상대하긴 힘들 테니까.
저들의 모습을 보고 자니른은 희망을 불태웠다.
‘그래. 그렇게 겁먹고 가라. 어서 가.’
순박한 그로선 저들이 물러나기를 바랐다. 저들이 겁먹고 물러나기만 한다면, 자니른은 더 쫓을 생각도 없었다.
“어, 어서 꺼져!”
그렇기에 재차 외쳐 본다. 하지만 불태운 희망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형님. 형님이 처리해 줘야겠는뎁쇼?”
덜덜 떨던 도적들이 뒤를 바라보고 외쳤다.
“하, 이거. 요즘은 해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니까. 그렇지 않냐?”
미처 보이지 않던 그루터기 위. 그 위에 언제 왔는지도 모를 거대한 덩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고개를 까닥이며 점차 거리를 좁혀 오는 그.
“오, 오지 마!”
“그런다고 안 갈 거 같냐?”
화르륵-!
그도 자니른과 같은 각성자였다. 덩치의 몸은 금방 화염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망할!’
척 봐도 자니른 자신보다 짙은 화력이었다!
“쉽게는 못 죽여 준다.”
다가오며 보이는 살기. 번들거리는 살기로 봐선 이미 사람 여럿은 죽인 자였다.
실전이 거의 없는 자니른에 비해 저자는 실력자였다.
“뭐 허냐! 가서 시선 끌어. 그래야 쉽게 죽이지.”
“네, 넵!”
“알겠수다. 빨리 좀 와 주라고!”
거기다 부하들까지 동원하는 품새가 여간 여유로웠다.
‘……죽을지도.’
큰 덩치가 다가옴에, 자니른은 자신의 죽음도 같이 다가옴을 느꼈다. 애써 피해 왔던 죽음이 다시 다가오는 듯했다.
그러나 물러날 수는 없잖은가.
‘도망도 늦었다.’
부딪칠 수밖에.
화아아악-!
자니른은 정신을 집중하고, 화력을 키웠다. 그대로 돌진!
콰아앙!
“억…….”
“뒤졋!”
쉽게 죽느니, 죽이고 죽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바로 앞에 있는 도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허접한 놈이!”
도적도 쉽게 당하지만은 않았다. 놀라며 거리를 벌렸고. 동시에 양손에 쥔 긴 낫을 휘둘렀다.
쒜에엑-!
빠른 속도! 다가드는 낫의 날카로운 날.
‘여기서 뒤지긴 싫다고!’
“큽…….”
자니른은 그 날을 손으로 잡아챘다.
날에 닿은 손이 찢어졌다. 찢어진 상처 사이로 손이 타는 소리가 났다.
그가 뿜어내는 화염은 그의 속까지 보호하지는 못하였다. 상처가 벌어지는 그 순간, 되레 그를 자해케 하는 무기가 됐다.
‘뜨거워……! 뜨겁다고!’
날에 찢긴 창상에, 화상이 더해지며 느껴지는 고통은 배가 됐다.
그럼에도 그는 그 특유의 독기를 살렸다.
그대로 날을 잡고.
“이, 이 새끼가 안 놔!”
“너라면 놓겠냐.”
퍼어억-!
남은 한 손은 도적의 복부를 향해 후려갈겼다.
복부를 후려갈긴 손에 화염이 집중되며, 안을 파헤쳤다.
도적의 앞섶이 타오르기가 무섭게 보호하던 피부도 같이 타올랐다. 그도 모자라 화염의 열기가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순간.
“……켁!”
낮은 단말마와 함께 힘껏 뛰어대던 도적의 심장이 멈췄다.
“허억…… 헉…….”
한 방. 그 한 방으로 상처 하나와 적의 숨을 교환하는 데 성공했다.
도적으로선 등가 교환이라고 하기엔 억울한 교환 비율이었다.
그러나 더 억울할 것도 없었다. 단말마와 함께 쓰러진 도적은 이미 숨을 거둔 지 오래였으니까.
되레 억울한 쪽은 자니른이었다.
“이 새끼가!”
“한슨!”
비명을 지르며 달려드는 도적의 수는 열이 넘었고.
“하, 이거 깽값도 안 나오겠는데. 오늘은 텄어. 망할.”
화르르륵-!
그보다 더 큰 화염을 불리며 다가오는 덩치는 여전히 유효한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하나를 죽이는 데 상처 하나라면, 열하나를 죽이는 덴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얻어야 하겠는가. 상처를 넘어 목숨을 대가로 끝을 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 자리서 가장 억울한 건 자니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와, 오라고! 다 같이 죽자! 죽어!”
화르르륵-
그는 의지를 더 일으켰다. 이미 서로 선을 넘은 지 오래인 지금이다. 죽이고 죽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 * *
파아앙! 팡!
“커윽…….”
“켁…….”
상처 둘, 셋에 적 도적 하나씩.
“이 독한 새끼!”
도적 하나를 죽이는 사이, 적 두목이 화염으로 때림을 버텨 가며 매서운 일전을 이어 나갔다.
“큭…….”
버티고 버티어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이어 나간 분투에 성과는 있었다. 그 손으로 죽인 도적이 넷. 화상을 입은 자가 다섯이다.
문제는 남은 둘.
“요 새끼! 요 새끼! 어디 이거나 먹어라!”
각성도 하지 못한 주제에 속도 하나는 빨라 치고 빠지는 도적 하나와.
“이 새끼 거의 다 끝났어. 다들 빼지 말고 어서 애써 보라고!”
아직까지도 그보다 더 큰 화염을 피우고 있는 도적 두목이었다.
이 둘을 처리하지 않고선, 그가 살아남을 길은 요원해 보였다.
문제는,
스스스스-
자니른 자신의 화염이 점차 사그라든다는 거였다. 각성 된 지 얼마 되지 못한 이 힘.
불타는 의지 속에서 그의 예상보다도 더 큰 힘을 지속해 줬지만, 그조차도 슬슬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파아앙-!
“커윽…… 혀, 형님!”
결국, 치고 빠지길 반복하던 도적 하나를 죽이는 걸 끝으로 그의 온몸에 피어오르던 화염도 사그라들었다.
몸이 무거워졌다. 모든 힘이 사라졌다.
피쉬식- 피쉭-
다시 화염을 일으키려 해도, 작은 불길만 일다 사그라질 뿐이었다.
“이익!”
자니른의 그 모습을 보고. 힘을 비축하고 있던 도적 두목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음 지었다.
“흐흐. 이 새끼. 이제 뒤질 때다.”
제 승리를 자축하는 웃음이었다. 승리가 바로 앞까지 다가옴을 직감한 두목은, 그 특유의 잔혹성을 발휘할 생각인 듯했다.
“쉽게는 못 뒤져. 애들 데리고 간 몫만큼은 고통스러워야지 않겠어? 응?”
“큿…….”
퍼어억- 퍽-
화염이 사그라든 자니른을 단 한 방에 죽일 수 있음에도. 상대는 힘을 조절해 가며, 그에게 고통을 안겨다 줬다.
“컥…….”
화염에 그슬리고, 타박상을 당한 지가 수십여 차례.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몸은 계속해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의지로 버티고 있으나, 그 의지도 금방 사그라질 듯했다.
퍼어억-!
여태껏 화염을 휘두르는 눈앞의 도적은 자니른에게 있어 큰 벽이자, 뛰어넘지 못할 존재였다.
이대로 자니른에게 허락된 건 오롯이 죽음뿐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었다.
“……크아아악!”
자니른이 아닌 도적 두목으로부터 거친 비명이 터져 나갔다. 생각지 못한 비명을 듣고 자니른이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어리석은 놈들이 쉽게 힘이 주어지니 날뛰고 다니는구나.”
그는 전에 단 한 번 보았던 존재가 눈앞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테, 테스 님?”
대범람 시 그의 마을을 지켜주었던 구원자. 마기 폭풍이 날아들 때, 그를 살라먹었던 절대자.
고향을 떠나 그를 이곳에까지 오게 만들었던 그 존재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가 절대적 벽이라 느꼈던 적을 단 한 수에 심장까지 으깨고 있었다.
이 급작스런 상황을 뭐라 해석해야 할까.
“화, 환상인가?”
자니른으로선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죽음이 다가와 말도 안 되는 환각을 보았노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환상이라. 퍽이나 재밌는 놈이로구나.”
스스스스-
그 환상 속의 존재가 그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잡았을 때. 환상은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아아…….”
테스의 손을 타고 흘러들어 온 알 수 없는 기운. 자니른 자신이 각성으로 가진 기운보다도 더 거대한 기운이 그의 온몸을 휩쓸었다.
그 기운이 다시 테스의 손으로 회수되었을 때.
‘나, 나았다?’
자니른의 온몸은 이전보다 더 강건하게 변해 있었다. 호흡은 정상으로 돌아오고, 다 소모된 듯 보였던 기운도 다시 돌아왔다. 아니 이전보다 더 커져 있었다.
“호오. 네 녀석 흡수까지 하는구나. 이거 재밌는 녀석인데.”
그런 그의 변화를 테스는 재밌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각성.
급작스런 첫 전투.
그리고 생각지 못한 만남.
자니른으로선 정신이 없을 만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 해야 할 것을 잊지 않았다.
“사,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가왔던 죽음을 무너트린 테스. 그에 대한 감사 인사를 올리는 거였다.
대범람, 마기 침공, 이에 이어 방금의 전투까지. 세 번의 목숨을 구원받았기에 인사를 해 올리는 자니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감사합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 오는 그 인사를 테스는 손을 휘저어 막았다.
“감사는 되었고. 그리 감사하다면, 한 가지 선택을 해 주었으면 하는데?”
“무, 무엇입니까! 그게 뭐든 말씀만 해 주신다면…….”
“그건…….”
그러곤 자니른으로선 못내 바라면서도, 말하지 못한 한 가지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