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챕터 8.
보고를 하겠다는 레빈.
그녀는 테스에게 두툼한 종이 뭉치들을 가지고 다가왔다. 그 양이 상당하여 그녀의 몸 대부분이 가려졌다.
그 양은 테스가 봐도 질릴 정도였다.
“이게 우선 일차로 봐야 할 녀석들이에요.”
“이게 다 보고할 서류라고? 나는 간결하게 가져다주는 걸 좋아해.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알죠. 추리고 또 추려서 이만큼이 된 거예요.”
“하…….”
일에 있어 그녀는 확실한 성격을 지닌 터.
저리 당당한 눈으로 말하고 있는데 거짓은 없을 터였다.
‘결국 다 봐야 한다는 거군.’
테스가 손을 내밀자, 그녀가 두터운 서류를 건네줬다.
“이건, 어센션 영내 첩자들에 대한 건가.”
“네. 생각보다 많죠?”
“이미 뿌리를 뽑았다고 여겼는데, 잘도 기어들어 왔군.”
“대륙 어디를 가도 이곳만큼이나 궁금한 곳이 또 없으니까요.”
“……쯧.”
안에는 첩자들의 목록부터 시작하여, 그를 보낸 조직들에 대한 것까지 담겨 있었다.
일부는 이미 아군이라 할 수 있는 북부나 남부 귀족들이 보낸 자도 있었다.
‘못 믿겠다는 거겠지.’
북부나 남부 귀족 모두 테스에게 충성 맹세를 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첩자를 따로 보낸 그네들의 심정이야 그로서도 이해는 갔다.
앞으로 그들의 군주가 된 테스로부터 자신들의 흥망이 정해질 터. 그렇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가장 먼저 정보를 얻고 싶어 첩자를 보낸 것이겠지.
그 심정은 분명 이해한다.
그러나 그대로 둘 이유는 없었다.
“첩자를 보낸 자들의 리스트를 따로 추리고 감시하도록 해.”
“다른 마음을 못 먹도록요?”
“그래. 이런 녀석들은 기회만 되면 같잖은 수작질을 부리려고 하거든.”
“공감하는 바예요. 이 부분은 바로 파견하도록 하죠.”
테스는 역감시를 명하였다. 여기에 그녀는 한 수를 더 더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회유도 할게요.”
“회유? 누구를?”
“파견된 첩자들이요.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했는데, 이만한 숙련자들을 또 어디서 구하겠어요. 하는 김에 일부는 이중 첩자로 심는 것도 좋겠네요.”
“허…….”
회유였다. 테스로선 생각지도 못한 수. 회유함으로써 적의 첩보력을 깎아내고, 자신은 되레 첩보력을 키울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로선 꽤 신선함이 느껴졌다.
적을 보면 압살부터 하는 그였지, 이런 식으로 품에 들이는 경험은 적었으니까.
테스의 질린 표정에 그녀는 되레 신이 난 듯했다.
“이런 방식은 기본이에요. 영지에서 키운 첩자야 수준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쯤이야 저희가 키워 주면 되겠죠. 아, 그리고 이다음 서류를 보시면 더 재밌는 자들이 나올 거예요.”
“뭔데? 후음……. 이거는…….”
그녀는 열을 더 올리며 말을 이어 갔고.
그러며 또 다른 서류를 건네주는 걸 잊지 않았다.
“테스 님 영역 전체에 걸쳐 뿌리내린 정보 길드에 관한 정보들이죠.”
“이건 또 의외군.”
그 안엔 일개 영지서 보낸 첩보원이 아닌 정보 길드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안에 담긴 정보는 세밀했다.
제이넌. 레어드. 바스턴.
대륙의 삼대 정보 길드에 대한 정보가 모두 담겨 있을 정도였다.
이를 보고 테스는 한 가지를 느꼈다.
“제이넌 길드의 정보를 내게 준다는 의미는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 건가?”
“네. 확실히 하겠다는 거죠. 제가 이런 정보를 건네줬다는 걸 레이넌이 알면, 어떻겠어요?”
“자네가 다시 돌아갈 길은 완전히 끊어지겠지.”
이 정보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다.
그녀를 향한 목줄이기도 했다.
그녀가 이걸 직접 건네줬다는 의미는 아주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테스에게 완벽히 적을 두겠다는 의지를 보인 거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가 본래 적을 두고 있던 제이넌의 정보를 넘기진 않았을 거였다.
테스가 그녀를 새삼스레 바라봤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자네를 잘 들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푸훗. 그게 뭐예요.”
그녀는 제 할 일을 한 거라는 듯, 한 번 크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러곤 설명을 보충해 주었다.
“이 세 정보 길드를 완벽히 몰아내는 건 무리일 거예요. 이래 봬도 대륙의 삼대 길드 정도 되면, 결코 약한 세력은 아니거든요.”
“그렇겠지. 그런데도 정보를 꺼내 들었다는 건, 이들을 몰아낼 방안이 있다는 거겠지?”
“오, 바로 알아채셨네요. 몇 가지 계책만 들어간다면 충분히요.”
그녀는 곧바로 그 계책을 설명했다.
정보 길드끼리의 교란, 세력 와해, 세력 간 이간질, 간계…….
그 계책의 치밀함과 악랄함은 듣는 테스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걸 다 스스로 짠 건가?”
“당연하죠. 이 정도는 기본이에요.”
과연 기본일까 싶다만, 그녀는 당당하기만 했다.
‘계책의 천재가 여기 있었을지도.’
그가 악랄한 계책을 스스로 짜낼 일은 없다.
하지만, 그녀가 짜 온 계책을 계산하는 것 정도는 그도 쉽게 가능했다.
그렇기에 그는 그녀가 짜 놓은 계책들을 순식간에 점검하였고.
“……가능성은 충분하고도 남는군. 몇 가지만 보충하면 성공률은 더 올라갈 거고.”
“여기서 더 올라갈 여지가 있었어요?”
“당연한 거 아닌가?”
“……와.”
이번에 놀라는 건 그녀였다. 그녀로선 최선을 다해 짠 계책에 다시 보충할 부분이 있다는 건 상상치 못하였으니까.
“어려운 건 아냐. 이를 시행할 길드원들의 힘을 내가 손봐줌으로써 전력을 올릴 수 있을 거고. 그를 통해 적의 틈을 더 크게 열 수 있겠지.”
“그게 돼요?”
“내 영지에 있는 영약 몇 개면 충분해. 여기에 내가 가진 비술 몇 개를 더 얹어 주지. 그러면 정보력이 배는 오를 거야. 그를 통하면 적보다 정보력이 몇 배는 더 오르겠지.”
“……여기서 더 정보력을 올릴 수 있을 여지가 있을까 싶기는 한데. 허투루 말하실 분은 아니니…… 하, 정말 여러 번 놀라네요.”
그녀의 놀람 속에서 테스는 몇 가지 비술을 전수해 줬다. 그중엔 간단한 진법과 천리지청술도 포함돼 있었다.
‘이제 완벽히 내 사람인데 비법을 아낄 것도 없지.’
이는 그녀가 정보 길드의 정보를 줌으로써, 그에게 완벽한 선을 댔기에 주는 포상이기도 했다.
그녀는 금방 그 비술의 요점을 이해했다.
“……지금까지 왜 영지 내부 탐색이 어려웠는지 알겠네요. 이런 비술들이 있으니, 뚫지를 못한 거죠.”
그럼으로써 자신이 왜 테스 영지 정보를 얻지 못하였는지를 확실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서로에 대한 몇 번의 감탄을 이어 갔을까.
근 몇 시간 만에 그의 영역 내 모든 첩보원과 세력을 쓸어 버릴 계책이 완성되었다.
앞으로 쓸려 나갈 첩보원들로서는, 이 둘이 만든 가벼운 자리에서 그들의 미래가 결정된 셈이었다.
억울할 수 있는 일이나, 그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자는 없을 터였다.
테스가 그린 그들의 미래에 그러한 선택권은 없었으니까.
‘일이 빠르게 처리되네. 이래서 좋은 인재를 들여야 하는 법이라니까.’
테스가 만족스레 다른 서류를 살필 때쯤이었다.
이미 다 놀랐다 여겼던 그로서도 또 놀라운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이걸 벌써 다 했다고?”
“네. 차라리 이건 쉬웠어요.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으니까요.”
그 안, 각성자들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정보들이었다. 이들을 어떻게 그의 품으로 들이고, 이용하느냐에 따라 앞으로가 정해질 터였으니까.
그러한 정보를 레빈은 잘도 정리해 왔다.
“생각보다 많군.”
“예. 많은 자들이 이미 출몰했고, 또 앞으로 더 출몰할 걸로 보여요. 실시간으로 각성이 이뤄지고 있는 거죠. 흡사 제국 성립 시기와 비슷해요.”
“제국 성립 시기? 그때도 이러했나?”
“모르셨어요? 역사를 모르는 많은 자들은 제국 성립 시기에 나온 영웅들의 이야기를 설화이니 과장이니 하지만 아니에요. 과장이 아니라 되레 축소됐죠. 온갖 능력자들이 나오고, 동시에 생각도 못 한 강자들이 나왔었으니까요.”
“축소됐을 정도라…… 그건 생각도 못 했군. 보통은 과장을 하지 않나?”
“보통은요. 하지만, 제국 옆에 있는 자들이 있잖아요. 성국이요. 그들은 수백 년간 죽어라 제국의 영웅들을 깎아내렸죠. 그 결과로 축소가 될 수밖에요.”
“후음……. 알 만하네.”
테스로선 그 의미를 쉽게 이해했다.
‘신이 된 제국의 초대 황제. 그를 신으로 모시나, 동시에 인간이란 건 인정할 수 없기에 축소를 했단 건가.’
승천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그를 막는 성국이라면 충분히 할 만한 일이었다.
인간 영웅이 신이 된다는 정보를 막기 위해선, 초대 제국 성립 시기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막아야만 할 테니까.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다면 하나.
‘제국은 대체 왜 그를 두고 봤을까? 막으려면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성국에 비견되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힘을 지닌 제국. 그들이 대체 왜 자신들 선조의 역사를 왜곡하는 걸 두고 보았느냐였다.
‘내가 겪은 아르델 공작은 분명 제 선조가 신이 된 것에 자부심이 있었어. 그런데도 왜곡되는 걸 그대로 뒀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테스로선 수상한 간극이 느껴졌다. 테스가 알지 못하는 퍼즐 조각이 분명 있었다.
문제는 여전히 그 간극을 알 수 없단 거였다.
이에 대해 레빈에게 물었으나.
“……생각해 보니 이상하긴 하네요? 그런데 대체 왜 저는 이상하다는 걸 이제야 느낀 걸까요? 생각해 보면 그 간극을 느낄 만한데 말이죠.”
“……여기에 뭔가 있군.”
그녀조차도 명쾌한 답을 내주지는 못하였다.
그녀의 기색으로 봐선 그를 속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진심으로 궁금하단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이건 아무래도, 내가 알아봐야겠군.’
테스는 이 미묘한 간극에 대해 더 이야기하지 않고 접었다.
이대로 그녀에게 일을 맡겨 보아야 더 얻을 건 없어 보였다.
근거는 없으나, 그의 직감이 그리 말해 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야기를 접으며, 바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그 주제, 그녀가 정리해 온 각성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정보를 가져왔다는 건 이들을 받아들일 방안도 가져왔단 뜻이겠지?”
“물론이죠.”
“그게 뭐지?”
“후후. 뭐겠어요. 영주님 영역 내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하나죠.”
레빈은 그녀다웠다. 정보를 가져옴을 넘어 방안까지 마련해 왔으니까.
문제는 그녀가 말하는 각성자를 데려오는 방식이었다. 테스로선 꽤 귀찮을 방식을,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바로 영주님이 움직여 주시는 거죠. 각성자들 다수가 영주님을 떠받드느라 바쁘거든요.”
“……하.”
그 방법. 바로 테스의 투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