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챕터 7.
테스에게 결정을 촉구하는 그녀.
저 위에 제국에서 다시 돌아온 레빈이었다.
정보 길드의 지부장 자리까지 올라갔던 그녀.
이곳에 돌아온 후 돌연 적을 두던 길드를 떠나, 테스의 어센션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따라 같이 정보 길드를 나선 자가 스물 정도 있었다. 겉보기와 다르게 인덕이 꽤 컸던 게 분명했다.
길드를 떠나 갈 데가 없어진 그녀를 테스가 받아 준 게 얼마 전의 일이었다.
테스로서도 몇 번의 이야기와 일화로 그녀와 인연이 있기에 들어 준 일.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어센션에 머물던 그녀가 해 온 요청은 단 하나였다.
어센션에 자신을 받아주는 것.
테스로서도 의문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물었었다.
“최연소 지부장. 나와 인연도 있으니, 이대로면 정보 길드에서 최고 자리에 오르는 것도 가능했을 건데, 대체 왜 떠나온 거지?”
떠나온 이유에 대해서. 그때 그녀의 대답은 꽤 의외의 것이었다.
“그곳보다 이곳에 미래가 있으니까요.”
“선문답을 하는 취미는 없는데?”
“선문답이라뇨. 저는 그저 본 대로 말할 뿐이에요. 제 예측대로라면 테스 님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어요. 영주나 왕. 고작해야 그런 거에 만족할 분이 아니잖아요?”
대답하는 그녀의 눈에는 큰 확신이 서려 있었다.
‘재밌는 대화였지.’
그 대답을 한 일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테스는 그 순간의 그녀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승천자란 그의 목적.
그의 가신 일부와 베빈 같은 소수를 제외하곤 아무도 모르는 목적이었다.
제아무리 정보 길드의 간부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녀가 차지한 자리는 일개 지부장이었다.
승천자란 것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자리였다.
그 나이대에 비해 높은 자리라 할지라도, 전체적인 직위로 보면 일개 도시의 지부장일 뿐이니까.
그러니 아무리 그녀라도 그의 목적은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정보가 부족하였으니까.
그런데도 이곳에 미래가 있다 말하는 그녀의 눈에 있는 확신은 또렷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낼 눈빛이 아니었다.
정보가 없음에도 그리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하나다.
‘통찰이지.’
통찰. 혹은 육감. 그 어떠한 근거를 뛰어넘어, 예언에 가까운 예측을 하는 자들이 간혹 있었다.
어쩌면 레빈도 그러한 육감에 근거하였을지도 몰랐다.
이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오롯이 감만으로 움직인 거다.
이성 있는 자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선택이다.
그러나 때로.
‘그런 육감이 지독하게 잘 들어맞는 자들이 있는 법이지.’
근거를 초월한 육감이 가져다주는 통찰은 그 무엇보다 뛰어난 재주기도 했다.
실제, 그가 있던 중원에서도 그러한 육감을 무공에 승화하여 경지를 이룬 자도 있었으니까.
통무자(通武者).
자신이 가진 육감을 강화, 그를 체계화시켜 강호백대고수에까지 이른 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통무자와 레빈이 테스의 머릿속에선 계속해 겹치고 있었다.
이전엔 그러지 않았다.
그저 수완이 좋은 정보 길드의 길드원일 뿐이었다.
다소 그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이 정도 직감을 가졌다 보긴 어려웠다.
사람이 변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변할 만한 계기는.
‘생각해 보면 넘쳐나기는 하네.’
꽤 여러 번 있었다.
테스의 영지 어센션에 있으며, 각성의 기회를 일차적으로 엿보았을 거다.
지금 사태 이전에도 영지의 많은 자들이 각성을 해 왔으니까.
대범람 때 진법을 연동시키는 당시도 분명 기회였다.
마지막, 마기 폭풍이 몰아치던 그때도 그녀에겐 각성의 기회가 있었다.
‘본래부터 가진 재능과 각성이라는 톱니바퀴가 맞물렸을지도…….’
그리 보면 지금 그녀의 변화와 선택은 테스로서도 이해가 가능했다. 기회가 생기면 잡는 게 그녀다웠다.
그런 그녀가 묻고 있었고.
“어서 결정을 듣고 싶은데요. 여기까지 오셨다면, 무엇 하나라도 수확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답이 되지 않아? 그 정도 눈치는 있을 텐데.”
테스는 물어오는 그녀를 꾸준히 탐색했다.
각성을 했을 거라는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에 대한 탐색이었다.
그러다 결국 결론을 내렸다.
‘맞네. 각성이야.’
그녀에게서 전에 없던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마법도 무공도 오러도 아닌 그 무엇.
그건, 전에 없던 다른 흐름이었다.
그 흐름.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나마 비슷한 게 하나 있다면…… 관측자로서 능력인가.’
그레놀이 지닌 관측자로서의 능력과 엇비슷하였다.
그러나 같은 건 아니었다. 비슷하다 할 뿐이지, 그 진짜 능력은 다를 게 분명하였다.
성국의 관측자와 그레놀이 서로 차이를 지녔듯, 그녀도 전혀 다른 결의 능력을 지니고 있을 터였다.
어쨌거나 좋다.
그녀가 스스로 찾아와, 테스로부터 답을 원하고 있었다.
“알죠. 시간을 헛되이 쓰시는 분이 아니니, 이 자리를 마련했다는 걸로 절 받아들일 거라는 걸요.”
“그런데도 묻는다는 건, 직접 확답을 듣고 싶은 거로군?”
“맞아요. 저 꽤 오래 기다렸잖아요. 그 정도 대답을 듣는 건 당연하지 않겠어요?”
“당연이라…….”
왕국에 온 각성자를 받아들이려는 지금.
그를 위해서 손이 필요한 지금에 제 발로 새로운 각성자가 찾아왔지 않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결국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을지도 몰랐다.
테스는 그리 생각하며 답을 해 주었다.
“좋아. 직접 듣고 싶다니 답을 해 주지. 레빈, 그쪽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겠어. 자네를 포함한 데려온 전부를 받아들여 주지. 내 사람이 되어 주겠어?”
“기꺼이요.”
그녀가 원하는 확답. 그 확답을 듣자 그녀는 그제야 생긋 웃어 보였다.
주변이 환해질 정도의 아찔한 미소였다.
그러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레빈은 그녀다움을 잊지 않았다.
“단, 우리 조건은 한번 이야기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 후후.”
“……허, 참. 그래, 이야기해 보자고.”
그녀다움. 정보 길드 출신으로서, 제 가치를 매기는 일이었다.
‘받아들이는 것보다 이 조건 설정이 더 힘들지도…….’
테스는 오랜만에 강적을 만났다 생각하며, 그녀와 조건을 이야기했다.
인재를 대우함에 아낌이 없는 테스였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가 하는 제안은 일종의 거래이자 이전부터 이어지던 작은 승부였다.
그렇기에 그는 최선을 다하였고.
“……정말 못 당하겠다니까요. 그래도 나쁘지는 않으니. 좋아요. 그 조건 받아들일게요.”
“좋아. 거래 성립이야.”
결국 그녀의 항복 선언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저야말로요.”
전에 없던 인재, 레빈이 그의 아래로 들어왔다.
* * *
레빈을 받아들인 그.
그는 당장 본래 있던 정보관을 본격적으로 둘로 나눴다.
한 명은 정보관을 초기부터 다루고 있던 자 레므나다.
제 재능을 살려 영지 내부 단속을 도맡아 왔던 그다. 그런 그의 능력 또한 레빈에 비교하여 결코 낮지 않았다.
‘서로 결이 다를 뿐이지. 정보를 다루는 능력은 레므나도 최상이야.’
그런 레므나를 그녀를 들였다 해서 이제 와 팽할 필요는 없었다.
둘 모두를 품어야 했다.
지금 테스가 하는 건 그를 위한 나눔이었다.
“자네는 이제부터 다른 영역을 맡아 줘야겠네.”
“어이쿠야. 이거 새로운 인재를 들였다고 저부터 버리시는 겁니까?”
“시원찮은 소리를 하기는. 그럴 리가 있겠나. 앞으로 더 부려먹으려고 자리를 옮길 뿐이야.”
“……이미 많이 부려먹고 계십니다만은. 그래요, 어디로 가면 됩니까?”
“정보관을 음지와 양지로 나눌 거야. 이미 잘 알려진 자네가 어디로 갈지는 뻔히 알겠지?”
“저는 바깥을 돌보겠군요.”
“그래. 그리고 양지로 나온 정보관의 이름은 따로 바꿀걸세.”
“뭡니까?”
“감찰관.”
겉으로 알려진 양지의 자리.
감찰관.
감찰을 위해선 정보를 가져야 함이 필수기에, 지금의 그에게 딱 맞는 자리였다.
그 또한 그 자리가 마음에 드는 듯, 볼을 푸드득거리며 크게 웃어댔다.
“오오오! 감찰이라. 거, 구미가 쏙 당기는 일이로군요!”
“그래. 본래 하던 일을 본격화하는 거지. 영지 내부를 갉아먹는 것들을 잘 처리해 달라고. 지금까지 해 온 거처럼 말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감찰관이라. 흐흐. 앞으로도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테스가 동기를 부여해 줄 필요도 없이, 레므나는 이미 의욕이 커 보였다.
‘됐군.’
얼마 뒤.
영지에 감찰관이 신설되고, 그 감찰관장 자리에 레므나가 가서 앉았다.
본래 정보관을 맡고 있던 대원 중 일부가 감찰실로 갔음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감찰관이 하는 일은 영지 외부가 아닌 내부를 살피는 일.
내부를 좀먹는 자들을 잡아 오는 데서부터가 감찰의 시작이자 끝이었고.
“테스 님, 제대로 잡아 왔습니다!”
레므나는 제 일처럼 열을 올리며 영지의 감찰을 강화해 나갔다.
용병 출신으로 장원주에까지 성공한 그였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부터 높은 자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경험과 설움을 겪은 게 레므나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 감찰관이라는 자리는 지금까지 그가 살아 온 궤적을 승화시키는 데 딱 걸맞은 자리였다.
온갖 설움과 경험 끝에서 어떤 자가 어찌 해먹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그였으니까.
그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제 사리사욕을 챙기는 부분을 금세 찾아내었고.
찾아낸 그 순간, 뼛속까지 그곳을 뒤집어엎어 가며 제 배를 채운 자를 벌했다.
‘어쩌면 이게 가장 천직이었을지도?’
그 모습을 보며 테스조차 감탄이 일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그럼 또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엔 어딜 가려고?”
“남부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흐. 그곳이 챙겨 먹을 게 많은 거 같더군요.”
“……적당히 하게.”
“에이. 그리 말씀 안 하셔도 아직 적당히 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제대로 했으면, 더 털어먹었겠지요.”
“허…….”
“어쨌거나, 다녀오겠습니다요!”
경망스러움은 여전하나, 감찰관으로선 누구보다 믿음직한 레므나.
그가 영지 내부 단속을 강화하며 내실을 튼튼히 다지는 그사이.
본래 있던 정보관 자리를 맡고, 조직을 새로 꾸리는 데 성공한 레빈도 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뒤.
“보고드릴 게 있는데요?”
“뭐지?”
그 결과물을 테스에게 가지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