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챕터 6.
수많은 자들이 테스의 어센션을 찾아들었다.
자작이라는 작위 아래에 있는 테스가 작위를 내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가 내려 줄 수 있는 작위라야 남작위 몇이었다. 그나마도 단승위였다.
기사 작위는 제대로 된 작위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이를 넘어가면, 실제 그가 귀족으로서 가진 권한은 적었다.
그러나.
찾아드는 자들 모두 그에게 고개 숙이길 마다하지 않았다.
“테스 님에게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새로운 근간을 이루신 테스 님에게 영광을.”
저마다 다른 말, 다른 축언을 가지고 오지만 목적은 같았다. 테스에 대한 충성의 맹세였다.
카르소니아 왕국이 멸망하고. 남은 왕가의 인물 중 제1 공주를 테스가 제자로 데리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 최대의 명분을 가진 것도 그이며.
‘지금 그를 거슬러서는 안 돼.’
‘그의 지원이 없다면…… 당장 끝이다.’
온갖 수난이 몰아친 가운데, 힘을 가진 자도 그였다. 가진 힘의 여유로움이 넘쳐, 타 영지를 지원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 * *
남부의 귀족들이 가장 먼저 충성을 맹세하였고. 괴멸된 동부의 생존자들은 테스의 영지로 찾아들어 와 새 터전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다 의외의 인물 하나도 테스에게 찾아왔으니.
“이렇게 뵐 줄은 몰랐소이다.”
“전처럼 편히 말을 하시지요.”
뒤늦게 찾아든 그는 처음 테스에게 작위를 내렸던 데프 백작이었다.
오랜만에 테스를 찾아든 그는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눈빛은 형형하여, 그 정신이 맑음을 동시에 보이고 있었다.
‘과연 북부의 사자. 여전한데.’
근래 들어 초췌하기만 한 귀족들을 상대했던 테스. 그로선 데프를 보며 꽤 신선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전히 귀족적인 자였고, 그 자리에 어울리는 자였다.
“하, 편히 말을 어찌하겠소이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처지가 다른 것을.”
“지난 몇 년간 많은 게 달라지긴 하였죠.”
“많이 달라졌다 뿐이겠소. 천지가 개벽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 그나마 나는 테스 님의 곁에 있어 사정이 나았습니다만은, 다른 치들도 그렇진 않으니 말입니다.”
“개벽이라…… 어울리는 말이긴 하군요.”
그렇기에 테스는 그가 고개를 숙임에도, 그를 결코 낮게 대우하지 않았다.
이는 자신에게 처음 작위를 내어준 자에 대한 존중이요, 재난 속에서 제 힘을 수호하는 데 성공한 자에 대한 예우였다.
그 예우를 받아들면서도, 데프는 정중함을 잊지 않았고.
“해서, 이제 저도 선택을 할 때가 온 것이겠지요.”
“어떤 선택을 하신 겁니까?”
“이쯤 와서 고개를 숙이면 뻔하지 않습니까? 젊은 날의 패기는 다 사라진 지 오래인 놈이 고개를 숙이는데 받아주시겠소이까?”
그는 제 고개 숙이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데프 백작은 그의 영지에 관한 전권만을 가져온 게 아니었다.
이 자리에 함께 오진 않은 테스론, 앙스, 휘슬 등의 전권을 함께 가지고 왔다. 즉, 카르소니아 북부의 모든 전권을 가지고 들어온 셈이었다.
이는 데프가 현실에 순응한다는 걸 뜻했고.
동시에 데프 곁에 자리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는 오샤프 백작이 만들어 온 성과기도 했다. 현자의 이름에 걸맞은 성과였다.
테스는 현자 오샤프에게 눈짓을 하면서도, 동시에 고개를 숙여 오는 데프에게 그 영광이 지속될 것임을 약속했고.
“어센션이 존재하는 한, 북부의 사자란 이름은 대대로 전해질 것을 약속하오.”
“……때로 당신의 검으로, 또 때로는 당신을 지키는 방패로서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데프는 한쪽 무릎을 꿇어 이를 받아들이며 충성을 맹세했다.
바야흐로, 그가 북부를 손에 넣는 순간이었다.
* * *
북부의 사자가 그에게 무릎을 꿇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과연, 현자라더니 믿고 맡길 가치가 있었군.”
“아직 전부 끝난 게 아닙니다. 북부의 통합 작업을 마치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좋군. 그때를 기다리도록 하지.”
찾아들어 왔던 오샤프는 곧바로 데프를 따라 올라갔다.
북부의 사자인 데프와 오샤프가 있는 한 북부의 안정화는 금세 이뤄질 터였다.
이는 처음 충성 맹세를 했던 남부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테스 님이 주시는 이번 달의 지원입니다.”
“오오. 이번에도 또! 잘 받았다고 전해주시게!”
테스가 보내 준 지원 물품들을 통하여, 그들은 제 영지를 추스르고 있었다.
빠르고 확실한 지원이 이뤄진 덕에 이전의 성세를 찾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이유는 없었다.
남부가 복구 작업을 서두르는 사이, 동부에서 어센션에 찾아든 자들은 자신들이 짓기 시작한 새 터전에 완벽히 정착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생각지 못한 자들이 속속 출현하였다.
“마나 친화력이 높은 자들이 그리 많다고?”
“예. 그중 몇은 정령 친화력까지 지녔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살아남은 자들 자체의 육체가 워낙에 튼튼합니다. 보통 이상으로요.”
이곳 어센션까지 와서 새로 정착한 정착민들.
대범람과 마기 폭풍 가운데서도 살아남은 이들의 생존력은 말할 나위 없이 강력했다.
그러한 생존 능력이 각성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마나 친화력을 지닌 자에, 정령에 재능을 지닌 자까지 수두룩했다. 육체는 강건하였고, 그 가운데 잊혔던 혈통을 각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경우가 대규모로 터져 나왔다.
“허…… 이런 경우가 있었나?”
“……제국이 성립되기 이전, 고대 시대엔 이런 경우가 꽤 있었다는 기록이 있긴 합니다. 그때 살아남아 성세를 이룬 자들이 지금의 귀족이 되기도 하였고요.”
“있긴 하다는 거군. 쉽게 말해, 위기가 닥치면 이 세계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 각성을 한다는 건가.”
이는 전에도 있던 일이긴 했다.
생존을 위한 적응력 하나만은 뛰어난 게 인간 아니던가.
살기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해내는 게 인간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인간은 이 척박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으로 몇 번이고 각성을 해 왔다.
마나를 느끼고, 정령을 소환하는 정도는 그중에서도 기본.
육체 자체가 벌모세수를 받은 것처럼, 강건해지는 경우도 더러 발견되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지금의 비율은 너무 높았다.
살아남은 자들 대다수가, 각성을 하거나 강해지고 있었다.
그 이유를 제리코는 테스의 업적 중 하나에서 찾아냈다.
“그럴 겁니다. 거기다…… 주군이 설치했다는 마법진, 아니 진법이라는 것이 그 각성을 가속화하기도 했을 거고요.”
“가속화라……. 가능성이 없진 않군. 안 그래도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 놓았으니까.”
그것, 바로 진법이었다.
테스는 전역에 설치해 놓은 대진법을 그대로 두고 있지 않았다.
어센션을 제외하고 그의 영역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최대의 활용을 했다.
‘마기를 지기로 변환해서 땅의 지력을 상승시키는 건 기본이었지.’
일부는 또 수기로 전환하여 땅이 메마르는 법이 없도록 만들었다. 지기와 수기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농업 생산력은 극대화됐다.
이미 어센션 영지가 몇 번이나 증명한 생산력 극대화가 그의 영역 전체에 펼쳐진 것이다.
테스는 이로 만족하지 않았다.
‘농사 지을 땅이 있으면 뭐 하나, 사람이 죽으면 말짱 꽝인데.’
사람을 살릴 방안을 마련했다.
의선문 제자들이 파견되어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다지만, 그도 한계가 있는 터.
테스의 의술은 깊으나, 그가 세운 의선문의 역사는 얕았기에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테스는 이것에 대진법을 이용했다.
‘마력이 빠르게 돌도록 활성화시키고, 재생력을 증가시키면 작은 상처 정도는 빠르게 회복되겠지.’
재생력 증가, 마력 활성화, 생명력 강화…….
생을 이어 가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것들을 대진법을 통해 강화시켰다.
하나, 하나를 놓고 보면 버프 마법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미약한 마법들.
하지만 모아 놓고 보니 예상치 못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마 이게 시작일 겁니다. 동부의 마탑도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잖습니까. 더 많은 각성자가 나올 겁니다. 각성의 위력도 더 강력해질 거고요.”
“……허, 그럼 이들을 어떻게든 챙겨야겠군.”
“가만두어도 어센션 영지로 들어오고는 있지만…… 이를 가속화할 방안을 마련해야겠지요. 설사 어센션으로 오지 않더라도, 주군의 영역엔 남게 해야죠.”
테스는 생각지 못한 이 각성자들을 다수 자신의 품으로 들이고자 마음먹었다.
영역은 획득했어도, 사람이 부족한 지금.
늘어난 각성자들을 활용한다면, 순식간에 그의 전력이 급상승할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많았다.
“그래야겠지. 그에 관련된 방안을 마련하려면…… 정보가 필요하겠군.”
“예. 그들을 분류하고, 데려와 키우려면 정보는 필수입니다. 마탑과 관측자의 눈을 사용한다 해도 빈틈은 있을 거니까요.”
그중 하나가 정보였다.
정보의 그물망을 촘촘하게 짜 놓아야만, 인재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자면 한 가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결국 그녀를 데려와야 하나…….”
“예. 다소의 위험은 감안하고 데려와야 할 듯싶습니다. 정보 부장이 된 레므나도 손이 부족한 상황이니까요. 여기서 일을 더 시켜 봐야 빈틈만 드러날 겁니다.”
“흐음…….”
정보를 다룰 인재가 필요했다. 각성한 새로운 인재를 들이기 위해, 또 새로운 인재를 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제리코나 테스 둘 모두의 머릿속에 동시에 스쳐 지나가는 자가 하나 있었다.
‘걸리는 게 많은데. 어쩔 수 없나…….’
그들의 머리로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능력은 말할 나위 없이 뛰어났다.
그러나 그녀에겐 여러 가지 걸리는 바가 있었다.
그럼에도 당장 인재가 부족한 게 현실.
결국 테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만남을 주선하도록 해. 미뤄 뒀으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겠지.”
“조속히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사이 자네는 새로 받아들일 자들을 어떻게 품어야 할지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고.”
“그 또한 명 받잡지요. 그럼…… 바로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 * *
제리코는 그의 결정에 따라 신속히 움직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빠르게 그려졌다.
“드디어 결정을 내리신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