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155화 (154/191)

제155화

챕터 5.

통합이란 명목하에 테스가 지배권을 공고히 하고 있는 사이. 외교관들을 지키기 위하여 파견된 병사들은 두 번째 임무를 이어서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 옆에 길게 늘어서 있는 마차가 임무를 위한 물품들이었다.

“다들 길 줄게 서 있는 거 보이지 않나. 얼른 내리도록 해.”

“옙! 속도를 더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그 물품들의 정체는 바로 구호 물품.

그 종류는 많았다.

마차 안에 공간 주머니를 이용해 따로 실은 식량. 그 안은 밀과 보리, 말린 과일에 불려서 먹을 만한 부드러운 육포까지 담겨 있었다.

이외에 잃은 터전을 다시 세울 수 있게 할 자재와 도구들이 각기 한 자리씩 차지했다.

이러한 물품들을 정리하는 병사들.

그들이 마차에서 하차한 물품을 살피는 사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찾아와 줄을 서고 있었다.

* * *

일을 길게 끄는 법이 없는 테스의 영지군은 정리가 되자마자 곧바로 구호를 시작했다.

“어디 마을의 누구라고?”

“배럭 자작님의 영지, 투스르 마을의 자콥입니다. 여기 왕국 신분증입니다.”

“……투스르 마을 자콥. 알겠네. 내 기록하지.”

구호는 단순히 물품을 나눔으로 끝나지 않았다. 물품을 받아가는 자들을 하나, 하나 기록하는 병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기록을 함으로써, 재앙이 불어닥친 이 왕국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수를 세고 있었다.

“가족은 몇이라고? 혹여나 속일 생각은 말게. 하루, 이틀로 끝날 구호가 아니니까 숫자를 늘려 말해 식량을 쌓을 필요도 없네. 혹 속이다 걸리면 되레 식량을 주지 않을 것이야.”

“네, 넷입니다! 본래 여덟 명은 되었는데…… 이번 일로…… 크흑…….”

“……안됐군. 다섯 명분을 챙겨 줄 테니, 남은 식량으로 죽은 가족들을 기리게나.”

“가, 감사합니다!”

기록하며, 식량을 건네주었다.

그러며 동시에 인심을 얻고자 하였다. 어차피 내줄 식량, 넉넉히 내줌으로써 사람들의 감사함을 사는 거였다.

그러곤 구호를 하는 병사들은 한 가지를 꼭 잊지 않고 시행했다.

“내게 감사하지 말게. 이 모든 식량은 주군인 테스 님이 건네주신 것이니! 꼭 그분의 이름을 기억하게나.”

“오오오! 그분이 말입니까! 전엔 대범람에서 저희를 구해주시더니!”

그 한 가지. 바로 테스에 대한 각인이었다.

테스가 귀족들 사이에서 카르소니아 왕국령의 지배를 공고히 한다 해도, 그 아래 평민들이 남아 있었다.

소수의 귀족에 비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 평민.

귀족에 비해 비록 무력은 떨어질지라도, 이들이 존재치 않고는 국가 자체가 성립될 수 없었다.

그를 잘 알고 있는 테스였다.

그렇기에, 테스는 위로는 귀족을 손아귀에 휘어잡고. 평민들은 베풀며 후하게 인심을 삼으로써 품에 들이고 있었다.

실상, 이러한 일을 하지 않아도 평민들 기억 속에 테스는 퍽이나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오. 자네, 그걸 기억하고 있군?”

“하늘을 날면서 움직이시는 걸 저는 직접 보았으니까요! 베트랑트 언덕 위에서 그분 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본 게, 평생의 자랑 중 하납니다요! 그분이 이리 챙겨 주실 줄이야!”

대범람에서의 그의 활약을 기억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실상, 대범람이 아니더라도 마계의 침공 당시에도 그의 활약에 대한 소문은 상당히 크게 나 있었다.

“후후. 평생의 자랑이라. 내가 다 뿌듯하군. 자자, 여기 식량 다섯 명분일세. 기다리는 자들도 많으니 얼른 가져가게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감사함을 꼭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안 그래도 좋은 인상에, 구호 물품까지 베풀어지는 상황.

평민들에게 있어 가장 좋은 지배자는 베풀어 주는 자이지 않은가.

“……정말로 식량이다.”

“다시 집을 보수할 수 있겠어.”

“사, 살았다.”

물품을 받은 평민들의 호감도가 크게 치솟아 가고 있었다.

* * *

테스는 단순히 물품을 나눠 주고, 호감을 사는 것으로 끝을 낼 생각이 없었다. 호감을 사며 얻은 민심에 완벽한 쐐기를 박고자 했다.

그 쐐기. 그에게 있어 특기랄 수 있는 방안이었다.

그 방안. 바로 치료였다.

죽을 자를 살리고 은혜를 베푸는 것.

사람을 품에 들이는 데 그보다 더 나은 방안은 또 없었다.

그를 위해 파견된 건, 테스가 아닌 다른 자들이었다.

바로 그의 제자들이었다.

진신 제자 중 다수가 의술을 전수받았고, 속가제자도 소수 의술을 전수받았다.

여기에 그들을 보조하기 위한 인원들을 몇 추려 넣었다.

이들은 각 영지에 파견되어 바로 움직였다.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아선 일이 더 커집니다. 우선 중증도에 따라 분류하도록 하세요.”

“이미 분류하여, 각기 나눴습니다.”

“오. 그래요? 잘했습니다. 바로 들어가 보죠.”

“네. 미크 님, 이리로.”

임시 병실을 세우고, 환자들을 분류하여 모았다.

이다음 필요한 건 본격적인 치료.

문제는 이들의 실력이 테스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는 거였다. 제아무리 테스가 공들여 키운 제자들이라도 경험이 부족했다.

이를 채우기 위해서 테스는 몇 가지 방안을 마련해 놓았다.

그중 하나가 그들의 의료 행위를 보조할 물품들이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게 마력이 도는 병실!

스스스스-

스스로 마력이 도는 병실은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의 생명력이 소모되는 걸 막아 주고 있었다.

의선문의 연금술사 레이즈의 작품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선 의선문 제자 미크.

그녀는 재생력 상승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임시 병상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 참혹해.’

이 병실 안에 있는 자 모두 그녀가 치료해야 할 환자였다. 그녀가 보기에 그들의 상태 모두가 좋지 못하였다.

“끄으으…….”

대다수 신음을 흘리며, 끙끙 앓고 있었다. 차라리 신음이라도 흘릴 수 있는 자는 상황이 나았다.

신음조차 내지 못한 채 숨이 꼴딱 넘어갈 듯한 자들도 다수 보였다.

그러니 미크의 표정이 심각할 수밖에.

“많아도 너무 많군요.”

“사제들이 죄다 국외로 빠져나갔으니까요. 성국에 가서 치료를 하고 있겠죠. 덕분에 이리 환자들이 많은 거고요.”

“후우……. 평소엔 그리 자비를 부르짖더니, 정작 필요할 때는 없다니까요.”

“말이 신관이지 않습니까. 그저 성국의 개들일 뿐이죠.”

“개들이라……. 딱 그게 맞는 말이네요.”

이들 모두를 그녀가 치료해야 했다.

현재 그녀가 들어선 병실은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의 병실. 환자들 모두 중증도가 높다지만 그 종류는 대개 둘 중 하나였다.

‘마기 침식이 일어났거나, 외상을 당했는데 제때에 치료하지 못한 자가 다수야.’

마기 침식이나 외상. 둘 모두 신관들이 나섰더라면 금방 치료할 수 있는 종류들이었다. 이리 병을 키울 이유가 없는 자들이었다.

‘신에 미친 광신도들.’

미크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날리며, 가장 다급한 환자부터 찾아가 치료를 시작했다.

“꺼어억…….”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환자를 향해 그녀가 손을 날렸다. 혈을 짚어 고통을 마비시키고, 혈류를 올바르게 흐르도록 만들었다.

그 뒤 곧바로 침을 꺼내 들어 재생력을 대폭 상승시켰고.

“바로 투여하겠습니다.”

“어서요.”

미리 준비한 약재들을 환자의 몸에 바로 처방했다.

외상엔 재생 연고를 발라주고, 내상엔 연금술을 통해 만들어낸 특제 포션을 이용하였다. 테스의 수기로 말미암아 약효가 대폭 강화된 것들이었다.

이걸로 외상을 치료하는 건 쉬운 일!

그러나 외상이 깊어져 생겨 버린 내상을 치료하는 건 이러한 약재들로도 부족했다.

이때, 다시 나서야 하는 게 미크의 의술이었다.

‘천돌혈과 그 주변이 막혔고, 극문혈 주변을 다시 살려내야겠는데…….’

맥을 짚어 환자의 상태를 바로 알아낸 미크. 그녀는 박아 넣은 침을 통해서 자신이 지닌 내공을 스며들게 하였다.

스스스-

그녀가 익힌 심공은 둘.

의생문의 기초를 이루는 의생공과 선천진기를 쌓을 수 있게 하는 선천여의생공이었다.

선천여의생공은 이제 막 입문하여 깊은 경지까지는 이룩하지 못한 상태.

그러나 선천진기를 다룰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오오…… 점차 살아나고 있습니다.”

“쉿. 조금만 더 집중하자구요.”

“……예. 조심하겠습니다.”

그 효과는 뛰어났다.

환자의 몸에 들어선 의생공의 진기가 회복력을 상승시켜 막힌 혈을 뚫어 갔다.

완전히 망가진 혈도는 선천진기가 움직이며, 혈을 다시 재건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회복 시간이 빨라!’

그 효능은 실제 집도를 하고 있는 미크조차도 놀라울 정도였다.

“흐읏…….”

숨이 넘어갈 듯싶었던 환자의 숨이 편안해졌다.

그녀가 느끼기로 순식간에 고비를 넘겼다.

그뿐이랴.

순식간에 회복을 해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면 완치도 가능할 듯 보였다.

순식간에 이뤄진 치료였다.

‘익힐 땐 고통스럽기만 했는데. 선천여의생공…… 고통스레 익힐 가치가 있었어.’

미크는 환자를 치료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자신이 해냈다는 흐뭇함을 느끼고 있었다.

고통스럽기만 한 수련 과정을 이겨내고 실전에서 환자를 치료했다는 보람참은 그녀의 상상 이상으로 컸다.

그래서일까.

“후우…… 일단 이분은 됐어요.”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많이 안 좋으신데…….”

“내공 소모가 순식간에 일어나서일 거예요. 잠시만 심법을 돌리면 되니 괜찮아요. 그러니 바로 다음으로 가죠.”

“예!”

소모된 내력만큼 피로함이 느껴짐에도 그녀는 곧바로 다음 환자를 찾았다.

마치, 처음 테스가 의료 행위를 시작하였던 그때의 모습과 환자를 찾는 그녀의 모습이 겹치는 듯했다.

지금 바로 여기 테스가 없음에도. 그의 가르침을 올바로 따라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변화되어 가고 가르침을 이어받고 있는 건 이곳의 미크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으로 파견된 그의 제자들이 하나둘씩 제대로 된 의원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성장해 나가는 만큼이나, 많은 자들이 다시금 생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 결과.

“……한스!”

“아? 여긴 대체…….”

“내가 죽지 않았다고?”

“신이시여! 아니, 테스 님! 감사합니다!”

살아남은 많은 자들이 은혜를 베푼 그를 향한 경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경외, 흡사 승천해 버린 신들에게 보내는 경외와 비슷하기까지 하였다. 일종의 신앙과 같은 모습이었다.

테스로선 민심을 얻고자 벌인 일이, 그가 예상한 것 이상의 결과를 그려내고 있었다.

* * *

그렇게 많은 굶주린 자를 구하고, 죽을 자를 살려 가며 많은 자들을 그가 품에 들여 가고 있을 때.

-때가 온 것이야!

-지금이 그를 품을 때요. 어서 사람을 보내시게!

그의 영역 바깥. 두 곳에서 그를 향한 상반된 시선을 가진 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