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챕터 3.
왕국의 수복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젠 왕국이라 할 것도 없었다.
카르소니아 왕조는 완전히 끝이 났다. 소수의 왕족이 제 혈통에 서린 피의 힘을 주장하며 일어나고 있으나 그뿐이었다.
그들을 따를 귀족들은 이미 진 지 오래였다.
되레, 그들 피를 이용해 새로운 힘을 얻으려는 자들이 넘쳤다.
카르소니아 왕가가 지닌 수많은 혈통의 힘 중 하나는 결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위기가 넘치는 지금에 이르러 결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가치 있는 힘이었으니까.
그들이 고귀하다고 여겼던 피의 힘은 그들을 지키기는커녕, 되레 더 위험케 만드는 힘이 된 셈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소수의 몇을 제외하곤 왕국을 다시 일으키겠다 말하는 자는 없었다.
아니 전멸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한 상황에 옛 카르소니아의 영토의 회복을 위해 온몸을 여실히 움직이고 있는 게 테스였다.
‘고쳐야 할 게 너무 많군.’
그는 꽤 여러 일들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 * *
시작은 가까이서부터였다.
오샤프 백작. 백작이란 작위 이전에 현자란 말을 가장 먼저 들은 그. 영지에 찾아든 그가 테스를 찾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현자. 행정에도 재능이 남다르다고 했던가.’
언제나 인재가 고픈 테스였다. 영지의 행정가들이 모자란 상황. 새로운 인재의 등장에 테스는 시간을 쪼개 그를 만났다.
“오랜만이로군. 왕도 방문 이후 처음인가.”
“예. 먼발치에서 잠시 뵌 게 다였을 뿐인데, 기억해 주시는군요.”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현자를 기억해 두는 건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래, 무슨 일로 왔나?”
“청이 하나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에둘러 말하는 습관을 지녔다 알려진 오샤프. 그로서도 마음이 급한 건지, 곧바로 용건을 내보였다.
그가 한 요청은 테스의 예상 범위 바깥의 것이었다.
“내게 남은 후손들을 챙겨 달라고?”
“공주님, 아니 이젠 전왕의 여식이라 해 드려야 할까요. 그분만 거둬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가장 좋은 방식은 의선문이란 곳의 제자가 되는 것이겠지요.”
“흐음…….”
요청을 들은 테스는 턱을 쓸어내렸다.
‘망국의 공주를 거둬 달라라…….’
망국이라 하더라도 그 핏줄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혈통에 많은 힘이 부여되는 이 세계의 특성상, 공주가 지닌 힘이 결코 적을 리 없었다.
특히 카르소니아 왕국의 제1공주는 그 특출남으로 유명한 터였다.
지금이야 문제 될 건 없었다. 거둬들인 망국의 공주가 혼란스런 정국에서 무언가 일을 획책하긴 어려울 테니까.
문제는 후다.
후에 상황이 나아지고 나서 공주가 자신의 핏줄을 명분 삼을 수도 있다.
명분을 이용해 사람을 모아 내부의 혼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왕이 아닌 여왕도 가능한 카르소니아이기에 그 가능성은 더욱 컸다.
현재 그의 지배력이라면 그쯤이야 해결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그러나.
‘일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이 벌어지기 전에 예방하는 거지.’
내부의 소란스러움을 지양하는 테스의 성격상, 영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내심을 짐작한 걸까.
선수를 치고 들어온 건 오샤프였다.
“무엇을 염려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다만, 테스 님께서 염려하시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분은 결코 사람을 모을 분이 아니니까요.”
“아무리 현자라도 그걸 어떻게 증명하지?”
“증명이라…… 미래의 일을 완벽히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지요. 그러나 그분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건 제 선에서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그분의 족쇄가 되는 거지요.”
“족쇄라…….”
오샤프의 눈엔 확신이 서려 있었다.
확신 선 눈을 유지한 채로, 오샤프는 망국의 공주를 제어할 방안을 말하였다.
현자는 피로 이어지는 힘을 제어하는 방식을 알고 있었다.
‘과연 현자인가……. 재밌는 방식들을 알고 있네.’
그 방식을 이용하여 피의 힘을 잠재운다면 제아무리 그녀가 제 피의 힘을 명분 삼는다 해도 사람이 모일 리는 없었다.
힘없는 목소리는 단지 공허할 뿐이었으니까.
그 방식은 테스로서도 꽤나 구미가 당기는 식이었다.
문제는 그 대가다.
“자네 말대로라면 가능은 하겠군. 그러나 내가 굳이 받아 줄 이유는 아직 듣지 못한 거 같은데?”
“반대급부를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반대급부라?”
“카르소니아의 몇 안 되는 적녀를 품에 들였다는 명분. 그 적녀를 따라 제가 들어왔으니, 현자가 따른다는 명분이 더 더해지겠지요. 여기에 제가 고안한 몇 가지의 수를 더하면, 망국의 공주를 받아들인 대가론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후음…….”
공주와 현자. 뒤이어 계책이라.
단지 망국의 공주를 받아들임으로 세 가지를 얻어냄은 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특히, 테스는 두 번째 대가가 마음에 들었다.
바로 현자 오샤프 그 자체다.
‘쓸 만한 자야. 이자를 이용하면 쉽게 해결될지도.’
산적한 많은 문제가 있는 가운데, 제 발로 들어온 인재. 그만큼 가치 있는 자가 또 없었다.
“좋네. 그 정도라면 받아 줄 수 있지.”
“감사합니다. 이 선택, 적잖은 이득을 안겨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제 제안이 받아들여질 걸 이미 예상한 걸까. 고개를 숙여 보이는 오샤프는 당당해 보였다.
‘이걸로 현자 확보인가. 행정관장 제리코가 가장 신나겠어.’
과연 그 당당함이 얼마나 갈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테스는 곧바로 명을 내렸다.
“이득이라. 그 이득을 바로 보고 싶은데 말이야.”
“후후. 무엇부터 하면 되겠습니까?”
뒤이어진 테스의 말에 오샤프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중앙과 북부. 그 남은 잔재 세력을 전부 해결해 주게.”
“……허허.”
중앙과 북부의 잔재 세력.
왕도가 마기 폭풍에 의해 쓸려 나갔으나, 모든 자가 전멸한 것은 아니었다.
그 가운데 살아남은 소수는 분명 있었다. 그들 모두가 강자였고, 동시에 그곳의 귀족이자 토호 세력이었다.
중앙의 그들은 차라리 사정이 나았다.
문제는 북부다.
테스의 옆에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북부의 세력은 많은 힘을 보존할 수 있었다.
대범람 당시 테스의 진법 연동의 수혜를 가장 먼저 받았고. 마기 침공은 오기도 전에 테스가 막아섰으니까.
그들 세력은 여전히 강력하단 의미.
세를 보존하는 데 성공한 그들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이 상황에서 이득을 얻고자 하고 있었다.
테스와 친분이 있는 테스론이나 데프는 괜찮지만, 문제는 그 나머지다.
지난 영지전으로 원한이 쌓인 앙스나 휘슬, 피해를 거의 복구해 가고 있는 페넌도 문제였다.
이들 세 세력이 뜻을 합하면 그 힘이 결코 작지는 않을 터.
힘을 합침을 넘어, 저 멀리 북동부의 오시아 왕국에라도 넘어가면 문제는 커지게 돼 있었다.
결국 최종 문제는 북부였다.
테스는 오샤프에게 이 둘을 해결하라 말하고 있었다.
‘힘으로 해결하면 못 할 것도 없다만, 그래 봐야 괜한 힘만 빠지거든.’
이 임무는 오샤프에게 있어서 일종의 시험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어려운 것부터 이야기하시는군요.”
“큰 건부터 해결하는 게 내 방식이어서 말이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가능이라.”
시험을 들은 오샤프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뒤 오샤프는 답을 들고 왔다.
“테스론과 데프를 품에 들이시고, 남은 세 영지는 초토화될 겁니다. 대신, 북부에서 더는 문제가 일지 않겠지요. 실행하시겠습니까?”
“후음. 초토화라…….”
“평화로운 방식도 있습니다만…… 그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겁니다. 문제는 테스 님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겠죠.”
“잘 아는군.”
그 방식은 현자가 가져온 것치고는 꽤나 과격한 방식이었다. 세 영지를 제물로 바치고, 테스론과 데프를 들이는 방법이었으니까.
그 결과를 얻기까지, 갖은 수단을 동원해야 할 거였다.
그러나 그 수단과 계책도 결국 오샤프가 고안하고 실행할 일이었다.
테스로선 그를 지원하는 것만으로 북부를 얻을 수 있을 듯 보였다.
‘나쁘지 않은데.’
“실행을 할까요?”
나쁘지 않다 정도가 아니라 되레 좋았다. 그렇기에 테스는 곧바로 답을 내렸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북부와 중앙을 가져오도록 해.”
“……명 받잡겠습니다.”
그 답. 긍정이었다.
얼마 뒤, 오샤프는 일단의 무리를 데리고 북부를 향해 움직였다.
그 무리 중 일부가 쪼개져 중앙을 향해 갔다.
‘동시 공략인가.’
테스의 예상보다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가 움직이는 대가를 테스는 바로 지불했다.
“에미스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아니, 돼요.”
“성은 버린 건가?”
“이제 와 망국의 성을 따를 이유는 없으니까요. 백작님이 더 이상 백작님이라 불릴 필요가 없듯이요.”
“재밌는 말이군. 또한 지켜졌으면 하는 말이고.”
“적어도 제 대에는 지켜질 거예요. 그 후까지는 저도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푸흐흐. 미래까진 장담 못 한다는 건가. 뭐 어쨌거나 좋다. 에미스, 이제부터 너는 의선문의 제자다. 자, 사제의 예를 올리도록 하자.”
“스승님의 뜻대로.”
북부와 중앙을 대가로, 의선문에 새로운 제자 하나가 들어왔다.
‘꽤 재밌는 녀석을 들였을지도.’
새로이 맺어지는 사제의 연이었다.
* * *
일을 행하면서도 동시에 테스는 가르침을 내렸다.
‘거래를 통해 받은 제자라 할지라도, 제자는 제자야. 제대로 가르칠 게 아니면 받을 생각도 없었다.’
그는 곧바로 제자 에미스를 불러들였고.
“오샤프는 네 피를 제어하여 잠재우는 걸 택하라 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 힘을 이용하도록 하자.”
“예?”
그녀를 위해 연성한 새로운 가르침을 바로 전수했다.
“네 피에 깃든 힘을 연료로 삼아, 내게 배운 내공을 키우잔 소리다. 왕가의 피는 방어에 특출나다 소문이 났었으니, 그에 맞는 걸 익히면 금상첨화겠지.”
“……대체 무슨 소리신지 이해가 안 가는데요. 저로선 힘을 완전히 잃을 거라고만 생각했었으니까요.”
피를 타고 전수되는 힘을 연소하고. 연소된 힘을 육체에 깃들게 하여, 육체 자체를 강건하게 만드는 게 그녀에게 전수될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대가가 없는 건 아니었다.
“직접 겪으면 알게 될 거다. 꽤 강해질 거다. 그 대신 고통스러울 테지만 말야.”
“이미 고통은 숱하게 겪었어요. 강해져서 절 지킬 수만 있다면, 그거면 돼요.”
그 대가는 육체의 담금질을 위한 고통이었다.
“좋은 각오다. 지금부터 네가 배울 건 금강연공이다. 오롯이 너만이 배울 방식이지.”
“……금강연공. 기억했어요.”
“좋아. 바로 시작하자꾸나.”
그녀는 그조차도 받아들였고, 테스는 바로 가르침을 시행했다.
* * *
오샤프를 북으로 보내고. 새로운 제자가 가르침의 틀을 소화하기까지 시간을 들이는 한편.
테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하앗!”
의선문의 새로운 제자 에미스가 기틀을 닦고 있는 의선문. 그 안으로 의선문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 그의 부름을 듣고 찾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