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챕터 2.
마스키지언 연합의 시장 거리.
상점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연합의 시장 거리는 언제나 북적거리는 게 당연했다.
그런 당연함이 근래 들어 깨지고 있었다.
“어딜 가는 건가?”
“요즘 연합이 영 시원찮지 않나. 일자리를 찾으려면 저 북쪽으로 가야지.”
“허. 자네도? 이거 이 속도로 가 버리면, 나중에 연합에 사람이 없겠어.”
마스키지언 연합은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여러 도시의 집합체. 그중에서도 용병이나 상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도시의 집합체였다.
대범람 이후, 꽤 많은 전력이 깎였다 하더라도 그 전력은 결코 약하지 않은 게 연합이었다.
그러한 연합에서 점차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연합을 구성하는 많은 자들이 점차 이동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연합인데 그러겠나. 나 같은 상인이나, 용병들이 일거리 찾자고 몇 빠지는 거지!”
“그게 모이니 상당한 거 아닌가. 지금도 옆을 보게나. 사람이 많이 줄었잖나.”
본래 교역을 위해서 이동을 하는 게 당연하다만. 연합 내부에서가 아닌 외부로 빠져나가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연합을 떠나가려던 상인이 보기에도 시장 주변은 한산했다.
오늘이 한 달 중 열리는 가장 큰 시장이란 걸 감안하면, 처참할 정도다.
“큼…… 그렇긴 하구만. 그래도 가야지 않겠나. 나 같은 상인은 돈 도는 곳에 있어야 하니까.”
“하, 참. 돈 번다는데 말릴 수는 없지.”
그렇다 해도 떠나지 않을 순 없었다. 상인의 돈이 굳음은 곧 파산을 뜻하였으니까.
“몇 달 뒤에 보지.”
“잘 다녀오게나.”
“그려. 좋은 모습으로 보자고.”
마스키지언 연합의 일을 걱정하면서도, 떠나는 행렬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러한 행렬을 저 멀리서 멀거니 바라보는 자가 있었다.
그레놀이었다.
연합을 지배하기 위해서 찾아든 그. 그로선 점차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행렬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북쪽이라…….’
점차 사람이 떠나가니 그로선 일이 쉬워지고 있었다.
그를 견제해야 할 자들도 떠나가고 있고. 여러 세력들의 힘이 빠지기 시작하니, 그로선 전보다 움직이기 수월했다.
그는 그 틈을 제대로 노렸다.
비욘이 재빨리 유적지의 시험을 치르게 집어넣었고. 에나와 다론은 용병 도시로 침투시켜 세력을 이루게 만들었다.
테스가 보내준 이소프도 예상외의 활약을 해 줬다.
“후음…… 게으름을 부리려면 빨리 처리해야겠지?”
“예?”
“할 일을 다하고 쉬면, 그건 뭐라 하지 않으시는 게 스승님이니까…… 조금 기다리고 있어. 도시 하나 금방 건네줄 테니까.”
“대체 무슨 소리인지…….”
“그럼 갈게.”
“허…….”
그레놀로서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더니, 그녀는 곧바로 도시 베선을 향해 갔다.
연합의 대도시 베선.
연금술과 약초학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곳. 두 학문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약과 물품들을 판매하며 세를 이룬 곳이 도시 베선이었다.
그러한 대도시에 스며든 그녀는 곧바로 일을 벌였다.
‘나조차도 놀랄 정도의 전광석화였지.’
출처 모를 자금을 이용하여 약초와 상가를 매입.
그 상가를 중심으로 매입한 약초를 가지고 약을 조제했다.
기존에 어센션 영지에서 재생 연고라 칭하는 것을 만들어 팔았다.
전보다 더 강화된 위력을 지닌 재생 연고였다.
그뿐만 아니었다. 그녀는 테스의 비전이라 할 수 있는 파워 홀스를 제조할 줄 알았다.
현재까지 극도의 개량을 거친 파워 홀스였다.
이러한 파워 홀스를 만들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해냈단 말이지.’
자신도 파워 홀스를 만들어내고자, 연구를 하였던 그레놀이었기에 그 어려움을 더더욱 잘 알았다. 그러한 약이 그녀 손에선 쉬이 만들어졌다.
“테스 님이 파워 홀스 만드는 비전을 알려주신 겁니까?”
“따로 비전은 받은 적 없는데?”
“그럼 대체 어떻게 만든 겁니까?”
“음? 만드는 법이 보이지 않아? 쉽던데.”
“……허.”
그녀는 단순히 만들어냄에 그치지 않고 개량을 해내었다.
파워 홀스의 버전을 몇 가지 더 만들어 냈고. 이도 모자라, 기존의 도시 베선에 있던 약들을 가져다 강화시키기까지 했다.
그게 고작 지난 몇 달 사이 일어난 일.
‘대체 무슨 피를 타고난 건지 모르겠다더니…… 말도 안 되는군.’
약 하나,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수년이다.
그러한 약을 개량하는 것은? 약을 만들 때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애써 만들어낸 약의 배합을 깨지 않으면서도, 강화시키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니까.
한데, 그녀는 너무도 쉽게 해내고 있었다.
테스가 이소프를 일행에 끼워 보내며, 그녀의 행동거지를 잘 살피라는 이유가 그제야 이해가 되는 그레놀이었다.
피로 타고난 건지, 재능으로서 타고난 건지 알 수 없는 그녀의 능력!
‘거기다 점점 더 강해져 가고 있기도 하지.’
관측자로서 온갖 경험과 관측을 해냈다 자부하는 그레놀. 그로서도 이소프의 특출함은 기이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레놀의 궁금증이 커져 가는 가운데, 그녀의 도시 베선에서의 영향력도 점차 커져 갔다.
‘이 도시는…… 가장 늦게 얻을 거라 여겼는데, 아닐지도.’
그녀의 상가는 도시 내에서 가장 커졌고.
커진 상가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도시 의회에 적을 둘 수 있게 됐다.
의회에 들어선 그녀는 제가 만든 개량식을 이용하여 의회의 사람들을 꾀어내기 시작했다.
의회의 의장이고 의원이고 가릴 게 없었다.
도시 베선의 의원이기 이전에 이들 모두가 약학사이자 연금술사였다. 그런 그들에게 새로운 공식과 개량 방법은 금보다 귀했다.
그 어떤 상인이 가져다주는 뇌물보다도, 이소프의 개량식 하나가 더 귀하였다.
그걸 이용하여 금세 세력을 이룬 그녀.
‘사람을 부릴 줄도 알고. 수완도 좋아.’
꾀어낸 자들을 자신의 품으로 들이더니, 돌연 의회의 의장 자리까지 차지해냈다.
그 뒤로는 복잡한 전략이나 작은 계략조차도 필요 없었다.
도시의 가장 큰 축을 이루는 의회를 잡아먹었지 않은가.
“정치는 내가 잡았어. 무력은 에나 사저를 모셔 오면 될 거 같은데?”
“그녀도 자리를 잡았으니 가능은 할 겁니다. 그런데 에나는 사저라고 하며 높이고, 저는 왜 낮추는 겁니까? 이래 봬도 지배자 역을 해야 할 몸인데.”
“그냥? 높여 주는 게 안 내켜. 그래서 불만인 거야?”
“……내 말을 말죠.”
관측자의 눈으로도 도무지 그 행동을 짐작하기 힘든 이소프.
그녀는 의회를 잡아먹자마자, 남은 축인 무력을 손보고자 했다.
그 무력을 도맡아 주는 건 용병 도시로 가서 움직인 에나였다.
“오랜만이야, 사매.”
“헤헤. 사저,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요청을 듣고 바로 도시에 들어왔다.
“……에나한테는 애교까지 부리는 겁니까!?”
그레놀의 놀람 따위에 상관없이, 이소프는 에나를 데리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그녀가 원하는 건 하나.
“저 멍충이는 그대로 두고, 일 이야기를 할까요?”
“푸훗. 그래. 내가 어디까지 움직여 주면 되는 거지?”
“이곳 베선의 모든 용병대를 지배하에 둬 주세요. 합류하는 자는 받아들여 주시고, 반발하는 자들은…… 아시죠?”
“물론이야. 처리해야지.”
도시의 무력을 담당하고 있는 용병대의 통합.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예요. 바탕은 제가 깔아 뒀으니까요.”
“든든하네. 그럼 바로 가 볼게.”
“예! 부탁드려요!”
본래라면 오래 걸릴 일. 그러나 이소프는 제가 깔아 뒀다는 배경이 무언지 여실히 보여줬다.
그녀는 의회의 권한을 이용했다.
‘이러려고 의회부터 장악한 건가. 대체 어디까지 계산을 한 건지…….’
용병과 도시 간의 재계약 연장을 거부했다.
동시에 도시에 있는 일거리를 대폭 줄여 갔고. 남은 일자리는 에나가 데려온 용병대가 독식했다.
반발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반발은 에나의 무력과 이소프의 권한을 통해 눈에 녹듯 사라져 갔다.
그렇게 다시 한 달.
에나와 이소프는 합작을 통해 도시 베선을 완벽히 지배하에 뒀다.
동시에 에나는 다시 자신이 왔던 용병 도시로 움직여 다론피터와 재연합을 구축. 영향력을 키워 가던 용병 도시를 완벽히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사이 비욘이 들어간 유적지는 일 차 시험이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는 신호를 보내기까지 하였으니.
‘일은 잘 돌아가고 있어. 분명 잘 돌아가고는 있는데…….’
여기까지가 그가 얻은 성과.
종합하여 보면 그가 이곳, 연합에 돌아와 얻은 성과는 막대하다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미 연합 세력의 반을 먹었다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인상은 펴질 줄을 몰랐다.
현재도 떠나가고 있는 자들이 그의 눈에 가득 들어차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합의 북쪽이면 카르소니아 쪽인데. 아니, 이제는 어센션이라 해야 하나. 어쨌거나, 대체 북쪽에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테스의 어센션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떠나면 떠날수록, 연합의 힘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어느 곳이든 사람이 곧 힘이었으니까.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곤 있는데…… 이거 참, 이대로면 완전히 먹혀 버리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완전히 흡수될지도 모르죠.”
“하. 흡수라…… 카르소니아보다 더 오래 버텨 온 게 연합인데. 이런 식으로 먹히는 건가.”
“그나마 카르소니아가 먼저 망해 버린 게 위안이라면 위안 아니겠습니까?”
위안이라. 그 말에 그레놀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식의 위안은 필요가 없는데 말야. 어쨌거나…… 그럼에도 이미 달리기 시작했으니, 멈출 수는 없겠지.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주군만 들어가시면, 연합의 남은 반은 주군께 들어올 겁니다.”
“……드디어인가. 가자고.”
이미 오래전,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었다. 지금에 와 멈춰 봐야 남은 건 자기 자신의 죽음일 터. 끝까지 갈 수밖에 없는 그였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연합의 지배에 쐐기를 박는 중요한 날 중 하나였으니.
‘어센션에 대한 궁금증은 우선 접어 두자고.’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그는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따르는 기사들의 안내를 받은 그.
“시작해 볼까.”
콰아앙-!
그레놀의 가문을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보이던 도시 던든의 의회. 그가 그곳 의회장의 문을 크게 열어젖혔다.
“뭐, 뭐야!?”
“저자가 대체 왜 여기에!”
급작스레 문을 열어젖히며 등장하는 그레놀. 그의 등장에 켕기는 게 있는 의회의 의원들이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혼란 가운데, 그레놀은 여유로이 의회의 중앙 자리에 걸터앉았다.
“어이들. 우리 남은 빚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게 있지 않던가?”
가장 상석을 차지하고, 빙긋 웃어 보이는 그레놀. 그의 표정은 테스가 상대를 잡아먹을 때 짓는 것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이를 당장 지적할 자는 없었다.
“무, 무슨 계산을 말인가!”
“어허!”
그에 반발하는 자들도.
“주군. 처리할까요?”
그를 따르는 기사들도, 미처 그를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었으니까.
“시작해.”
“명!”
그레놀이 연합의 미래를 걱정하던 그날. 연합의 도시 던든이 그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그리고.
힘을 비축하겠다고 나선 테스는 그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