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챕터 1.
여전히 의문 어린 표정을 짓는 베빈이었다.
몬스터 사체가 쌓이는 것도 좋다. 쌓인 몬스터 사체를 이용하여 온갖 마법 실험을 벌일 수도 있을 거다. 평소라면 좋아했겠지.
지금은 아니다.
실험은커녕 방어에 열을 더 올려야 할 판이다.
“그래서? 이 몬스터들을 가지고 당장 우리가 이용하긴 힘들다고. 확장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쌓여 봐야 실험은 불가능하니까.”
“알지. 나로서도 실험을 하라고 가져온 건 아니야.”
테스도 그걸 모르지 않을 터였다.
그는 베빈의 지적이 타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사체들이 계속해 쌓이면 여기는 곧 황폐화가 될 거다. 너도 알다시피 사체는 음의 마력을 뿜어내니까.”
“혹시 잊은 거야? 내가 전에 어떻게 마기를 변환시켰는지 말야.”
“아.”
베빈의 눈에 놀람이 서린다.
그녀의 웃음에 빙긋 웃어 보이는 테스에게 베빈의 물음이 들려온다.
“설마, 그게 마기가 아닌 사기에도 가능하다고?”
“더 쉬워. 음습하기는 마기나 이거나 비슷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연하거든.”
“……미쳤네.”
그녀의 물음에 대한 테스의 답은 긍정.
‘전역에 대진법이 설치돼 있는데, 그깟 사체의 마나를 바꾸는 게 어려울 리가 없잖아.’
마기를 변환하고, 대범람의 수기까지 흡수하여 이용했던 그다.
이제 와 몬스터 사체에 쌓인 마력을 변환하는 것 따위. 지금의 그에게 있어서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답을 들은 그녀는 주변에 쌓인 마나를 가늠했다.
그리고 내려진 결론.
“이 정도 양이라면 마탑에 준비된 모든 마법진을 활성화시키고도 남겠어.”
“이야. 아직도 활성화되지 못한 마법진이 있었던 거냐? 설계도엔 그런 게 없던데.”
마탑은 텍트와 테스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테스라도 마도의 총아라 할 수 있는 마탑을 만드는 게 쉬울 리 없었다.
리페로부터 건네받은 설계도가 존재했기에 마탑을 쌓을 수 있었다.
‘설계도를 건네준 리페도 내가 9층 전체를 다 쌓을 거라곤 예상 못 했을 거지만 말이지.’
그러한 기초 위에 대진법 일부를 연동시킴으로써 만들어낸 게 현재의 마탑이다.
그의 손길이 들어갔기에 전보다 영역이 더 넓어진 마탑. 이러한 마탑 안에 그도 모르는 마법진이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테스로서도 놀라기엔 충분했다.
“설마 설계도에 전체 마법진을 다 그려 뒀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우리 마탑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고.”
“나름의 비전을 숨겨 뒀다 이건가.”
“네가 몬스터를 데려오고, 그걸 마력으로 치환하는 방식을 숨기듯이 우리도 우리 방식으로 숨기는 게 있는 법이지.”
마탑의 비밀 대다수를 알아냈다 싶었는데, 아직 더 많은 게 남아 있는 듯싶었다.
‘오히려 좋지.’
그들을 첨병 삼아야 할 테스로선 나쁘지 않았다. 저들이 숨긴 힘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을 부리고 있는 테스의 힘도 강력해진다는 의미였으니까.
어쨌건 좋은 아군을 들였다.
이제 그 아군을 더 강화시켜 줘야 할 때지 않은가.
“바로 마력을 변환시켜 주지.”
* * *
테스는 마탑 바로 옆에 존재하고 있는 보구를 향해 몸을 옮겼다.
베빈이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고 그 옆을 따랐다.
그녀는 그의 옆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마탑의 바깥을 잠시나마 걸을 수 있는 것 자체가 그녀로선 수백 년 만의 일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테스가 마탑의 영역을 진법과 조율함으로써 조종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걸음은 그녀로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영역을 넓힌 건지 모르겠지만…….’
마음 같아선 영역을 넓히는 원리를 알아내고 싶은 베빈이었다. 하나, 테스가 그걸 가르쳐 줄 리 없었기에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즐길 뿐이었다.
편법이라고 하더라도, 마탑 바깥을 걷는 그 기분 자체가 그녀에게 자유를 가져다주고 있었으니까.
자유로운 걸음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기와 마기. 테스 특유의 마력이 주입된 보구가 가까이에 있었으니까.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보구구나.”
“아. 베빈 너로선, 직접 보는 건 처음이긴 하겠네. 꽤 재밌는 녀석이지?”
“확실히. 온갖 마력이 뒤섞인 주제에, 잘도 작동하고 있단 말이지.”
땅에 박혀 있는 검 형태의 보구. 보구는 그녀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오래 그것을 살필 수 없었다.
그녀와 보구 사이에 테스가 끼어들었다.
“탐구는 나중에 해 보라고. 지금 당장은, 마력 변환부터 해야겠으니까.”
“……흐음. 알겠어. 어서 변환을 시켜 보라구.”
스스스-
테스는 대답 대신 마력을 일으켰다. 그가 일으킨 마력에 보구가 동조하기 시작했고, 얼마 뒤.
“와아…….”
오랜 세월을 살아 온 그녀로서도 처음 보는 화려한 마력의 향연이 시작됐다.
* * *
그로부터 뻗어 나간 마력은 주변을 감쌌다.
감싼 마력은 이내, 주변의 마나와 동조하기 시작하며 이곳 전체를 둘러쌌다. 보구를 중심으로 사방 십 킬로미터에 거대한 막이 생겨났다.
하나의 보구가 만들어낸 장면이라고 하기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그조차도 모든 총력을 다한 건 아닌 듯, 마나 막을 만들어내고 있는 테스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베빈도 들은 바가 있어 알고 있었다.
‘리페는 이게 일부라 했지?’
전에 테스는 카르소니아 왕국 전역에 대진법을 형성했었다.
왕국 전역의 크기가 고작해야 십 킬로미터 정도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왕국 전역에 비하면, 십 킬로미터의 연동 따위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
그러니 여유로울 수밖에.
드드드득-
베빈이 감탄하는 사이. 테스는 모든 계산을 끝마쳤다.
십 킬로미터에 형성된 마나 막. 그 안에 갇혀 있는 몬스터 사체가 품고 있던 음의 마력을 끌어당겼다.
뒤이어 끌어당긴 마력을 마탑의 마력과 비슷하게 연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마탑의 마법사라면, 누구나 사용하기 쉬운 마력의 형태가 됐다.
모든 마력을 연동시키고 나서야 테스가 고개를 돌려 베빈을 바라봤다.
“이제 사체로부터 흘러나온 마나가, 전부 마탑으로 향할 거다. 꽤 클 텐데. 받아들일 수 있겠지?”
“물론이야. 그 정도쯤은 해내야지.”
“좋아. 그럼 바로 보내주지!”
고오오오-!
산재해 있던 모든 마나가 뭉쳐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었고. 그 마나가 마탑의 십 층을 향해 쏟아졌다.
그 모든 마나를 조율해야 할 베빈.
“…….”
그녀는 어느새 자신과 영까지 묶여 있는 마탑과 함께 동조하며 마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 * *
그녀는 받아들인 마나를 마탑의 활성화에 전부 가져다 썼다.
마탑의 강화가 곧 그녀의 강화. 그렇기에 활성화된 마나를 들이붓는 그녀에겐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고오오-!
쌓인 모든 마력을 아귀처럼 잡아먹은 마탑의 존재력이 증폭됐다. 증폭된 존재력은 단순 감각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 작동을 시작하였으니까.
쯔아아앙-!
마탑의 꼭대기에서 붉은 다발이 그려졌다. 다발은 수십 개의 선으로 나뉘어, 다가드는 몬스터를 향해서 쏘아졌다.
“광선인가?”
“빛 마법의 간단한 응용이지. 본래는 효율성이 떨어져서 잘 사용하지 않지만, 지금은 효율을 따질 것도 없잖아?”
쏘아진 광선이 몬스터를 직격한다.
콰드드드득-
직격당한 몬스터의 몸이 가루로 변했다. 세어 볼 법도 없이 수많은 조각으로 나뉘어 산산이 부서졌다.
몬스터를 부수고도 힘이 남은 광선은, 쭉 옆으로 그어졌다.
-크륵!?
-켁.
광선이 닿는 족족 몬스터의 몸이 으스러졌다.
어마어마한 위력.
“재밌는 방식이군.”
“이게 일 차야. 남은 건 다섯이 더 있고.”
그러나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그녀 말대로 남은 무기들이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 위로 떠 있어야 할 구름이 내려앉으며, 주변을 뒤덮었다. 뒤덮은 구름 안은 어느새 독으로 가득 차 살아 숨 쉬는 것들을 독으로 집어삼켰다.
땅이 솟아나며 탑의 형상을 취하였고. 그러한 탑 안에 불길이 일기 시작하며 또 다른 광선 다발이 만들어졌다.
속성은 유지한 채, 형상은 계속해 변하였다.
광산 다발이 거인의 형상을 이루기도 하고. 독 구름이 액체 줄기가 되어 쏘아지기도 했다. 액화된 물질은 다시 고체화되어 몬스터를 씹어 삼키기도 했다.
흡사 신화 속에 나오는 심술궂은 신이 자기 멋대로 힘을 사용하는 형상이다.
그 안에서 테스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물었다.
“신의 힘을 흉내 낸 방식인가?”
“맞아. 나도 한때 예비 승천자였으니까. 승천을 위해서는 신의 힘을 비슷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거든.”
“그게 패착이었겠네. 승천을 위해선 신의 힘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너 자신만의 것을 만드는 게 정답이었을 거니까.”
정말로 정답이었을까.
제가 드러낸 힘에 자부심을 보이고 있던 그녀의 표정에 놀람이 번진다.
“……어떻게 벌써 그걸 아는 거야?”
“다 아는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정답을 어떻게 알아냈는지까지는 알려줄 생각이 없는 테스였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이 정도라면, 너희 마탑을 동부의 첨병으로 세워도 무리가 없겠어.”
“……대놓고 우리 마탑을 이용하려고 하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어.”
“그렇다고 다른 방법도 없지 않아? 지금 네 상황을 벗어나는 덴 내 승천이 필수일 테니까.”
“하여간에 약아빠졌다니까는. 그렇다 해도…… 나쁘진 않으니. 좋아, 받아줄게. 이 동부, 그보다 더 멀리까지 나오는 몬스터를 전부 막아주지.”
그녀가 이곳 동부, 어쩌면 전 카르소니아 왕국 전역의 첨병이 되어 준다는 것이었다.
테스가 진법으로 몬스터를 끌어들이고. 끌어들인 몬스터를 마탑이 처리. 처리하고 남은 마나를 테스가 활용하는 선순환의 방식.
그에 당하는 몬스터들 입장에선 그보다 더 큰 재앙은 없을 터이나, 테스가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테스로선 자신을 대신해 몬스터들로부터 영역을 지켜줄 자들을 구했다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여긴 우리가 버텨 준다 치고. 이젠 뭘 할 거지?”
“다음 단계로 바로 가야지.”
“다음이라…….”
그리고 이다음. 든든한 아군을 둔 가운데, 힘을 비축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