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챕터 23.
“다녀오겠습니다!”
떠난다 말하는 그레놀. 온몸 곳곳에 멍이 가득했지만 그의 표정은 밝았다. 에나, 비욘, 다론. 여기에 테스가 후에 추가하여 준 독의 이소프까지 다섯.
언제나 그레놀 옆을 따르는 기사를 붙인다 해도 그 수는 총 여섯이다.
이 여섯으로 연합을 정복하러 간다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어지간한 각오 가지고는 감히 시도조차 못 할 일.
그런데도 이제 막 떠나는 그레놀의 표정은 심할 정도로 밝았다.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닌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누구 때문에 말입니다. 어디 가서 횡액당할 일은 없게 됐으니, 자신만만할 수밖에요.”
실력이 오른 덕분이다.
지난 시간. 테스는 마탑과 교신하고 있는 리페를 두고, 그레놀의 수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말이 수련이지, 겉으로 봐선 괴롭힘에 가까운 일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관측 능력을 타고나, 강자로 군림하였던 그레놀. 그로서는 약자가 되는 생소한 경험이기도 하였다.
그런 그에게 잠도 재우지 않고, 뼛속까지 박아 넣는 수련이 행해졌으니.
그가 떠나는 이 순간에도 아쉬워하기는커녕, 기뻐하는 게 되레 당연해 보일 지경이긴 했다.
“허어. 그 누구가 과연 누굴지 궁금하긴 하군.”
“……큽. 정말 끝까지 이러실 겁니까?”
“뭘 말인가?”
“아닙니다. 내, 앓느니 죽죠. 어쨌건…… 뼛속 깊이 가르침은 잘 받았으니, 꼭 살아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당연하고, 올 때 하나는 잊지 말아야지. 연합을 통째로 들고 와.”
“휘유. 그걸 맡겨 놓은 과자 꺼내듯 말씀하실 일입니까?”
“자네는 해낼 걸 아니까.”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시기는. 말씀하신 대로 해내고 오겠습니다. 그 기간, 일 년 내로!”
“호오.”
테스의 말에 한술 더 뜨기까지 하는 그레놀이었다.
‘일 년이라. 나쁘지 않군.’
재밌는 건, 그가 보기에도 일 년이면 그가 연합을 정복하는 게 가능할 듯 보인다는 거였다.
그가 데려가는 인원은 고작 여섯이지만, 그의 계획대로라면 금세 그 수가 불어날 테니까.
수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가 연합을 정벌하기 위해 준비한 건 사람뿐 아니라 그 피에 종속된 힘도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의 발현을 위해선,
‘이쪽도 준비를 해 줘야 하긴 한다만. 가치는 충분해.’
카르소니아에 남아 있는 테스로서도 바삐 움직여 줘야 할 터였다.
어쨌거나 예상되는 결과물이 나쁘지 않다.
“그럼 갑니다!”
그렇기에 그레놀 다음으로 인사를 해 오는 제자들을 보냄에도 걱정되는 바가 전혀 없는 테스였다.
“다녀올게요.”
“그래. 다치지 말고 오도록 해.”
“노력할게요.”
“다음에 올 땐, 이어서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얼마든지.”
열의를 보이는 에나와 다론.
“새 시험이라니. 통과하고 나면, 그때는 한판 더 하는 겁니다?”
“이길 거라 생각하나?”
“에이. 해봐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테스와 격차가 크게 벌어졌음에도, 승부욕을 태우는 비욘.
“으으. 귀찮은데요. 그래도 가야겠죠?”
“너는 대체 어디의 피를 타고난 건지 모르겠구나. 힘이 강해질수록 그 반동으로 게을러지는 이유가 대체 뭐냐?”
“그게 규명되면, 그때는 한 발자국 더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스승님이 규명을 해 주셔야 하고요.”
“……노력해 보마.”
처음 제자로 받아들일 때와 다르게, 점차 변해 가는 이소프.
과연 이 녀석에게 큰일을 맡겨야 하나 싶으면서도, 그 능력은 출중하다 못해 뛰어난 그녀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며 자리를 떠나갔다.
‘움직이자마자 마차라. 저리 키운 적은 없는 거 같은데.’
여정에 오르자마자 마차에 오르는 게 퍽이나 그녀다웠다. 얼마 가지 않아, 마차에 누워 잠드는 게 기감으로 느껴졌다.
안정되고 고른 호흡이었다.
‘저걸 재주라 해야 할지…… 느긋하다 해야 할지.’
초기에는 독에 취해 잔혹한 방식을 보이더니, 이제는 만사를 귀찮아하는 제자라.
자식도 그러하듯, 제자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성장하길 바라는 건 무리인 걸 안다. 하지만 저 모습을 기감으로 느끼고 있자니, 대책이 없긴 하였다.
‘원인을 규명해 주긴 해야겠지. 대체 어디의 핏줄인 건지 알아내긴 해야 해.’
하기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란다 해도 여전히 제자는 제자이지 않은가.
마냥 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기에 제자를 키우는 게 재밌는 것이기도 했다.
전생으로 말미암아 많은 걸 깨달은 그로서도 예상치 못하는 방향으로 가게 만들어 주는 변수였으니까.
그러한 변수에 맞춰 움직이는 가운데 얻는 바도 있지 않은가.
이 또한 재미이니.
“다음에 보면 또 얼마나 성장해 있으려나.”
테스는 후에 돌아올 제자들의 새로운 모습을 기껍게 바라볼 준비가 돼 있었고.
그러한 테스를 뒤로하고, 그레놀 일행은 저 멀리 멀어져 갔다.
* * *
그레놀을 떠나보낸 테스. 그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그 일 단계. 재료의 준비는 그를 대신한 자가 있었다.
“이 미친 인간아. 이걸 다 날라 오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느냐?”
“아공간 주머니까지 내줬는데, 고작해야 재료 나르는 게 뭐가 어렵다고 난리야?”
“주머니에 담아도 특수 물품들은 무게가 그대로란 말이다. 옮기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란 소리지.”
“호오. 특수 물품은 무게가 그대로라…… 그건 몰랐군.”
특수 물품. 그 자체로 마나를 품거나, 드워프의 보구와 같이 처리된 물품들을 말했다.
그러한 물품들은 아공간에 들어가서도 특유의 성질을 내뻗치곤 했다.
아공간에 넣었음에도 무게가 느껴짐은 기본. 때로 특수한 마나를 뿌려 몬스터를 끌어당기는 경우도 있었다.
‘새로운 사실이군. 하기는 아공간이라 해서 만능은 아니니. 일종의 패널티 정도로 생각하면 될지도.’
테스로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음에, 미소를 지었다. 반대로 그 미소를 본 텍트는 와락 인상을 찡그렸다.
“마법사 같은 녀석. 고생하고 온 드워프 앞에서 그게 내보일 표정이냐?”
“이래 봬도 마법사는 맞지 않나? 마법사가 마법사다운 걸로 왜 욕을 먹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쳇. 갈수록 말발만 늘어나는구나. 어쨌거나, 받아라.”
텍트는 툴툴대면서도, 필요한 재료들을 전부 건네주었다.
석재나 나무와 같은 재료가 아닌, 모두가 특수한 물품들이었다.
마법사의 탑. 탑이면서 동시에 기이한 공간을 내포하고 있는 게 마탑의 특색이었다.
그러한 특색을 살리기 위한 재료들의 무게가 테스에게 여실히 전해졌다.
‘과연…… 이 정도쯤되니, 마탑이라 이거겠지. 그러니 쉽게 영역 확장을 하지도 못하는 거고. 재료 자체가 구하기가 힘드니까.’
테스가 감탄하는 사이.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텍트가 손을 탁탁 털며 물어왔다.
“여기까지 이 재료들을 가져왔다는 건 뻔한 이야기지?”
“그래. 여기에 마탑을 지을 생각이다.”
“역시! 내 그럴 줄 알고 달려왔지. 오랜만에 재미난 걸 만들 수 있게 되겠구나.”
그는 테스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제 손으로 마탑을 만든다 말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마탑을 만든 경험이 있었나?”
“내가 몇 년을 살았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당연한 소리지.”
“오호.”
테스로서는 숙련된 경력자가 제 발로 찾아 들어온 셈. 찾지도 않았는데 찾아지다니, 그로서는 행운이었다. 그러나.
“그런데 내가 언제 같이 만들자고 얘기를 한 적이 있던가?”
“뭐, 뭣!?”
“이 재미있는 걸 만드는 걸, 같이 꼭 공유할 필요가 있냐 이거다.”
“…….”
쉽게 그를 받아 줄 생각은 없는 테스였다.
‘아쉬운 소리 하며 시킬 것도 없이, 먼저 아쉬운 소리를 했잖아? 그러면 이쪽에서 제대로 부려먹어 줘야지.’
상황이 반전되었으니까.
먼저 부탁할 필요도 없었기에, 테스는 짐짓 여유를 부렸다.
터억. 턱.
아공간 주머니에 있는 재료들을 꺼내 들며, 텍트와 입씨름을 했다.
급작스런 협상이나 마찬가지. 그러나 테스로선 선기를 잡은 지 오래기에, 텍트와 거래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 망할…… 드워프 등골까지 다 뽑아먹을 녀석 같으니라고.”
“그 칭찬 고맙게 듣지. 후후.”
“이익!”
결국 텍트의 완벽한 항복 선언이 있었다. 그리돼서야 테스는 그에게 쌓아 놓은 재료를 만질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따아앙- 따앙-!
“망할 녀석. 저런 녀석이 어찌 후보자가 돼서는. 쯧…….”
텍트는 구시렁거리면서도 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
스스스스-
테스는 제 마력을 일으켜, 그를 보조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마탑 지부. 동시에 테스를 대신하여 이곳 동부의 첨병이 될 요새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 * *
테스가 마탑을 세우는 그 짧은 사이.
그레놀 일행은 이미 남부 마스키지언 연합에 들어서고 있었다.
“마스키지언에 다시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래. 오랜만이군.”
연합에 다시 들어서는 그레놀. 그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결코 곱지만은 않았다.
경계, 호기심, 불안감, 분노, 원한, 질시…….
한 사람이 받아들이기에 매서운 감정들이 그를 때리고 있었다.
‘여전하기는…….’
안으로 들어서는 그를 결코 반기는 기색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레놀은 그러한 시선들을 쉽게 받아넘겼다.
그러한 시선을 잘 받아넘기지 못한 건 일행 중 비욘 정도였다. 야만인인 그녀로서는 저런 복잡한 시선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물었고.
“왜들 너를 그리 보는 거지?”
“온갖 족속들이 섞인 연합이라 해도, 다들 변화를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
그 답은 그녀가 듣기에 꽤 재밌는 이야기였다. 해서 그 변화에 대해서 깊게 물었는데,
“네가 오면 변화가 시작되리란 걸 알 거란 건가?”
“다들 그 정도 머리는 돌아가니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또 다른 대답이 하나 들려왔다.
“이게 다 그레놀 님이 오면 사건이 터져서인 거 아닙니까? 전부터 워낙 사고를 쳐댔어야 말이죠. 흐흐.”
“스터스! 빨리도 왔군!”
“왕자님이 찾는데 와야지요.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어느샌가 다가온 자 하나. 늙수레한 외모와 달리 그 몸은 탄탄하기 그지없는 자가, 일행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스터스.
그를 부르며 그레놀은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를 보고 남은 일행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미 이들 모두 스터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
“호오. 저자가 네가 말했던 조력자 중 하나구나?”
“강자네.”
“재밌는 힘이잖아?”
“……적당히 거슬리는데. 잠이 깰 거 같다고.”
각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스터스란 자에 대한 품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품평을 받는 스터스는 딱히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되레 그도 품평했을 따름이다.
“재밌는 자들을 데려왔군요. 하나같이 특색들이 있어요. 후후. 이 정도라면, 왕자님의 말대로 가능성이 있을지도요?”
“헹. 가능성이 아니라, 가능하다고. 그렇지 않았더라면 데려오지 않았을 테니까.”
“후후. 그거야 두고 볼 일이죠. 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가능성이 떨어지면 바로 물러날 겁니다. 자자, 이쪽으로.”
그러며 그는 일행을 한쪽으로 이끌어 갔다. 그레놀이 미리 요청한 준비에 따라 일행을 이끌어 가는 거였다.
일행은 그런 그의 안내를 받으며 마스키지언 연합에 확실히 발을 디디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얼마 뒤.
각자가 그레놀이 짜 놓은 계획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게 시험이란 거지.”
비욘은 시험에 닿기 위해서.
“이 많은 자를 다 처리해야 한다고?”
“허. 재밌는 곳에 우리를 집어넣었구려.”
다론과 에나는 살육전에 발을 디뎠다.
“이건 재밌겠네.”
그리고 마지막, 테스가 추가하여 주었던 이소프는 전혀 다른 일 하나를 맡으며 모든 일행이 각자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이는 그사이.
“완성이다!”
따아아앙-!
텍트의 외침과 함께 첨병이 될 마탑이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