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챕터 22.
거래를 인정한 그레놀.
인정한 뒤 행동이 빠른 게 그의 강점 중 하나였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관측 능력을 이용해 사람을 추리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관측안을 불러일으킨 빛나는 눈.
그 눈을 가지고 동부에 모인 모든 자를 살폈다.
의선문 제자, 영지군, 마법사, 야만인.
꽤 많은 수를 살피었다.
덕분에 빛나는 그의 눈을 두고 놀라는 자가 소수 있긴 했으나, 특별히 소동까진 일어나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 특색 하나 없는 이가 없었으니까.
되레, 그레놀이 끝끝내 숨기고 있던 관측안을 제 스스로 보인 게 신기할 뿐이었다.
‘내 사람이 되겠다 마음먹었으니, 숨기지 않고 힘을 쓰겠다는 거겠지. 역시나 재밌는 녀석이야.’
그런 그레놀을 테스가 살피는 사이.
그레놀은 동부에 있는 모든 자들을 살피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결과를 내려, 테스를 찾았다.
“단 세 명이면 충분합니다.”
“세 명이라. 생각보다 적군. 하긴 수가 아니라 질이 중요하긴 하지. 그래, 누굴 원하나?”
“정식 제자 중 에나가 필요합니다. 다론 피터가 속가 중 필요하고. 마지막 하나가 제일 중요합니다.”
“누구지?”
들려오는 답은 의외였다.
“비욘. 주군에게 붙은 야만인 수장. 그녀가 가장 필요합니다.”
자연스레 주군이란 말을 붙이며 그가 찾은 자는 비욘.
용병 시절 테스의 동료였으며, 현재에 이르러선 그에 복속된 야만인들을 이끄는 자가 비욘이었다.
얼마간 대전사 칭호를 따낸 것을 넘어, 대족장 칭호까지 따낸 그녀였다.
그 무력을 두고 따로 말할 필요는 없지만, 그의 영지엔 그녀를 넘어서는 자도 많았다.
그런 그녀를 찾는다라.
테스는 호기심이 물씬 피어오름을 느꼈다.
“왜지? 차라리 프로스를 찾으면 이해했을 거야. 나 다음으로 강한 게 그 녀석이거든.”
“프로스라. 그를 데려가면 편해지기야 하겠죠. 하지만 그는 비욘이 가진 걸 갖고 있지 못합니다.”
“후음…….”
오로지 비욘만이 가진 게 있단 의미. 그 의미가 대체 무얼까.
강해서는 아니다.
그녀도 강자이나, 이 영지에 그녀보다 강자는 더 많았다.
대족장이란 위치 때문인가.
그도 아니다.
그녀는 이 동부에 있는 야만인 중에서 강자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다.
“그녀만이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 있는 거로군?”
“오, 이걸 맞추실 줄이야. 맞습니다.”
“시험이라…… 하기는 마스키지언 연합에도 야만인들이 순례를 하기는 했지.”
그가 야만인 신을 만남으로써 멈췄으나, 본디 순례는 야마인의 전통이었다.
전사의 길을 따라 평생을 떠돌며 시험을 받는 자들.
시험을 받아 강해지나, 동시에 통과하지 못하여 다수가 끝내 스러지는 삶을 사는 게 야만인.
그렇기에 그들은 강했으나 강하지 못하였고, 약하였으나 강하였다.
그런 그들이 모든 시험을 통과했을까.
‘그럴 리가.’
남아 있는 시험은 넘칠 터였다.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을 통과하지 못한 시험도 있을 터였다.
그레놀은 그러한 시험에 그녀를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그녀가 시험을 통과하면 얻을 게 있나?”
“있습니다.”
그레놀은 확언했다.
“마스키지언이 왜 연합이겠습니까. 온갖 족속들이 모였기에 연합이죠. 그러한 연합에 야만인의 피가 섞인 자가 없겠습니까?”
“넘치겠지.”
“그리고 그러한 혼혈인들이 시험을 받을 수 있을 기회를 얻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허…… 그런 시험이 있는 건가?”
“예. 단 한사람만 통과하는 데 성공한다면, 설사 혼혈이라 해도 시험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곳이 있습니다. 문제는 적어도 오백 년간 시험을 통과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건데…….”
“네 관측안으로 보기엔 비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군.”
“그런 거죠. 그녀만이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하…….”
오백 년간 통과한 자가 없었다는 시험이라.
위험성이 알려진 근 몇십 년 동안은 시험을 시도한 자가 드물었을 거다.
그러나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시험에 응하려는 자는 많았을 거다.
수많은 인간 중 불가능에 도전하는 걸 본능처럼 가진 자들도 넘치니까.
자유분방한 야만인이니 만치, 초기엔 수많은 도전자가 있었겠지.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무도 없었을 거야.’
그곳은 금지(禁地)가 됐을 거다.
시험의 터라 만들어져 있지만, 수많은 자들을 잡아먹은 곳은 더 이상 시험의 장이 아닌 학살장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러한 곳에 보낸다라.
“도박에 취미가 있었나?”
“전혀요. 그녀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을 뿐입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겠지. 그렇다 해도…… 성공만 한다면 연합의 세력 일부가 자네를 따르겠군.”
“네. 그렇기에 그녀가 프로스를 제치고 선택된 겁니다.”
가능성 하나만 보고 그레놀이 그녀를 선택했다라.
그럴 리 없었다.
몇 년간 그레놀을 상대했던 테스였다.
가벼워 보이는 듯해도, 그 안에 담긴 치밀함을 모르지 않는 테스였다.
그레놀은 단순히 비욘의 가능성만 보고 그녀를 선택한 게 아니었다.
“재밌군. 그리고 꽤나…… 영악해.”
“……흐. 들켰습니까?”
“그래. 내 보기에도 그녀가 시험을 통과할 확률은 칠십 퍼센트 정도. 하나, 그레놀 너 같은 자가 그런 확률에 목숨을 걸 자는 절대 아니지. 그녀가 실패하면 너도 죽을 확률이 오를 텐데도 말야.”
“이런. 저를 너무 잘 아시는데요.”
빙그레 웃는 그레놀을 무시하고. 테스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네가 그녀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 남은 삼십 퍼센트를 채울 방안이 있어서겠지. 그리고 그 방안을 가진 건 바로 나고.”
“네. 바로 그겁니다.”
제 속셈을 들켰음에도, 그레놀은 뻔뻔했다.
이전에 보인 테스의 뻔뻔함을 그대로 배운 듯 보일 정도였다.
“제가 보기에 테스 님은 전보단 꽤 유해지셨거든요. 아니, 적어도 전보단 제 사람을 챙기게 되셨죠. 아닙니까?”
“관측안이 그런 것도 관측할 수 있나?”
“그럴 리가요. 이건 순전히 제 분석입니다.”
과연 가진 게 관측안뿐만이 아니라, 제 능력도 있다는 건가.
그레놀이 말하는 의미는 명백했다.
용병으로 굴러먹고, 수많은 목숨의 위협을 받던 일들은 모두 옛일이 됐다.
절대자에 가까워져가고 있는 테스다.
현재의 테스는 전에 없이 여유로워졌고, 승천을 위하여 모은 제 사람을 챙길 정도의 능력은 충분히 있었다.
또한 그러한 자들을 챙김으로써, 그가 승천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레놀은 그의 그러한 점을 꿰뚫어 봤다.
‘삼십 퍼센트의 확률로 비욘을 죽게 만들기 보다는, 내가 그녀를 챙겨 주어 확률을 높일 거라는 걸 안 거겠지.’
테스, 그가 비욘은 당연하고, 그레놀 자신도 챙겨줄 것을 알고 있는 거다.
그럼으로써 그는 비욘이 수백 년간 실패해 온 시험에 통과할 거라는 확신을 얻었겠지.
꽤 영약하나, 나쁘지 않은 방식이다.
그레놀이 그의 품에 들어온 지금.
그가 가진 영악함 조차도 그에게 도움이 될 능력이었으니까.
“이건 알면서도 당해 줄 수밖에 없는 분석이군.”
“후후. 칭찬 감사히 듣죠.”
“쯧. 이런 식으로 놀아나는 건 본래 취미가 없다만, 이건 나쁘지 않은 기분이야. 비욘이 시험에 통과할 수 있도록 챙겨 주지.”
“감사합니다!”
어디 그가 비욘만 챙겨 줄까.
같이 가는 에나와 다론 피터도 따로 챙겨 줄 요량이 있는 테스였다.
새로운 길을 열어 가고 있는 에나에겐 검의 길을 보여 주면 될 것이고.
속가 제자기에 많은 가르침을 주지 못하였던 다론은 이 참에 정식 제자로 들이며 새로운 무공을 가르치면 될 터였다.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비욘, 에나, 다론.
셋 모두 출중한 재능과 의지를 지니고 있는 자들이었다.
약간의 가르침도 스펀지처럼 흡수하여, 제 것으로 삼을 터였다.
그리함으로써 저들이 살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자리하고 있는 그레놀도 저들의 힘을 빌려 연합을 먹을 확률이 상승하겠지.
그렇다 해도 여전히 수는 적었다.
셋을 데려간다 해도 자신을 포함해서 고작 넷이다.
항상 데리고 다니는 기사를 포함해도 그 수는 고작 다섯이다.
‘이 수를 가지고 어떻게 연합을 먹겠다는 걸까.’
단 다섯으로 온갖 음험한 음모가 도사리는 연합을 먹겠다라.
다른 자가 말을 했다면 미친 소리를 그만하라 했을 거다.
그러나 관측안을 지닌 그레놀이 실수를 했을 린 없다.
분명 그 눈으로 가능성을 봤을 거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테스는 함께하지 못한다 해도 공유는 하고 싶었다.
“가게 되면 항시 연락을 하도록 해.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거든.”
“후후. 여부가 있겠습니까? 계속해서 지원을 받으려면, 당연히 보고를 해야죠.”
“뻔뻔하기는. 그래도 도움은 충분히 주지. 고작 셋을 지원해서 연합을 떠먹여 주는데, 그 정도도 못해 줄 리가 있는가.”
“쯧. 뻔뻔한 게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그 과정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테스로선 셋을 지원해 주는 게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봄으로써, 그도 얻는 게 있을 터였다.
그레놀이 움직이는 방식, 계책, 전략, 경험.
그 모든 게 공유되어 그의 양분이 될 거다.
앞으로의 성장을 위한 양분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양분이 아주 잘 자라기 위해서는, 한 가지를 잊어선 안 됐다.
“생각해 보면 한 명을 빼먹을 뻔 했어. 그래선 안 됐는데 말야.”
“예?”
“자네도 예외일 순 없지 않나. 자네가 데려간 셋이 제대로 일을 처리해 준다 해도, 자네가 몸이 상하게 되면 일은 실패로 돌아갈 테니까.”
“그, 그게…… 제가 몸이 상할 일이 있겠습니까. 적어도 전 관측자 중에 하나인데요. 제게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없을 겁니다.”
담담히 말하는 테스.
그러한 테스로부터 어떤 기색을 관측해 낸 걸까.
그레놀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난다. 그리고 손짓을 해 가며 거부 의사를 일으켜 보지만.
“자자, 이리 와 보게. 자네만 예외로 두면, 섭섭할 거 아닌가. 내 자네가 갈 때까지 확실히 하나는 가르쳐 주지.”
“뭘 말입니까?”
“압도적인 적에게서 살아남는 법.”
테스는 한 박자 쉬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장 자네에게 압도적인 자는 나겠지. 자, 지금부터 나에게서 살아남는 걸 연습해 보자고.”
“네? 그 무슨 억지가…… 크헛! 오, 오지 마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