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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46화 (145/191)

제146화

챕터 21.

동부를 지켜 낼 첨병.

그는 멀리 있으며, 동시에 가까이에 있는 존재였다.

“이렇게 소원을 들어주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 참에 불러들이는 것도 좋겠군.”

“불러들인다는 거면…… 하, 그건 불러들이는 게 아니라 제대로 써먹는 거지 않습니까?”

그의 말을 가장 먼저 알아들은 건 그레놀이었다.

그레놀은 질린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이 동부에 마탑 지부를 세우려는 거군요. 베빈으로서는 마탑이 존재하면, 그를 지켜야 하는 게 당연하니까.”

“커흠, 이용이라니. 베빈이 그리 마탑 지부 확장을 원했으니 들어주는 것뿐이야. 어차피 이곳 동부도 이젠 내 영역이나 다름없게 되었으니까.”

베빈이 마탑 지부 확장을 원한 건 사실이다.

지부가 늘어나면 갇힌 그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늘어나게 되니까.

마기 기둥을 처리함으로써 테스가 이곳 영역을 차지하게 된 것도 사실.

왕실이 무너진 가운데서, 그를 두고 이곳 영역의 주인을 자처할 자는 없었다.

설사 있다 해도 테스의 힘에 밀려날 터였다.

그러니 저 멀리 서부에서부터 이곳 동부가 모두 그의 영역이었다.

사실, 남부라해서 다를 것도 없었다.

일전에 던전 사태로 도움을 받은 남부의 귀족이 자제들을 제자로 보내지 않았던가.

제자로 보냈던 자제들은 대범람 당시 자기 가문을 돕는 데 일조했다.

그뿐이랴.

테스가 후속으로 보낸 정식 제자들도 같이 움직여 피해를 막았다.

그러다 보니 남부 귀족 다수는 이미 그의 편이나 다름없었다.

설사 그를 원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이미 대세는 기울어 있었다.

그들이 제자로 보낸 자제들.

그들은 의선문에 들어오며 이미 테스의 심복이나 다름없게 된 상황이었다.

그런 제자들이 제 영지에 찾아가 영지 후계자를 자처한다면?

다소의 소요는 일어날 수 있으나, 그 힘을 이겨낼 자는 없었다.

설사 제자 하나를 어찌 무너트린다 해도 그 뒤는 테스가 있었다.

결국 북부 일부를 제외하고 남부, 동부, 서부가 넘어왔다.

‘원해서 시작한 건 아닌데, 왕국 전체를 다 먹어 버린 거나 다름이 없군.’

말을 하다 보니, 새삼 자신이 지닌 영역을 자각한 테스였다.

그리고 제 영역을 자각함에 그는 더 뻔뻔해지기로 하였다.

그레놀이 비꼬듯 말을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로군요.”

“힘을 가지면 틀린 말도 맞게 되는 법이지.”

그조차 쉬이 받아쳤다.

그리곤 되레 그레놀을 더 압박했다.

“이야. 그리 철판을 까시면, 또 할 말이 없습니다만…….”

“맞는 말을 했을 뿐이야. 그나저나, 우리 이전에 했던 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이참에 마무리하는 것도 좋겠지.”

일전의 거래 이야기를 꺼냈다.

대범람 이후, 제 세력을 잃은 그레놀이다.

연합의 왕자로 불리던 시절도 옛일.

테스의 영지를 돕는 사이 그의 세력은 더 깎였을 게 분명하였다.

이제와 테스의 도움 없이는 그 영역을 되찾는 것조차 무리였다.

이전의 성세를 뛰어넘어, 연합 자체를 먹는 건 더 힘든 일이 됐단 의미.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테스의 도움이 필수였다.

그러니 얘기를 들은 그레놀이 반색했다.

“거래라 하심은…… 이제 연합의 일에 도움을 주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도움 정도가 아니라, 연합 자체를 차지하게 해 주지. 지금에 이르러선 그게 가능할 듯 보이거든.”

“자기 힘을 과신한다고 말씀드리고 싶긴 한데…… 보아하니, 가능할 것 같기는 하군요. 관측이 되니까요.”

“그렇지.”

관측자의 피를 타고난 그레놀이다.

세상 모든 걸 수치화할 수도, 또한 세상 바깥의 것을 관측하여 막아낼 수도 있는 존재가 관측자였다.

이 힘을 이용하여 그의 가문은 막강한 세를 이루었고, 꽤 오랜 역사동안 지배자로 살아오기도 하였다.

관찰의 힘을 오롯이 예비 승천자를 죽이는 데만 사용한 성국에 비해 꽤나 실용적인 사용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누구보다 테스의 힘을 실감하고 있었다.

‘이번 동부 일전에 불러들인 사람들이 이자, 테스의 모든 힘일 리가 없다. 그런데도 마계 침공을 깨부쉈단 말이지. 후에 다른 문제가 예상되기는 한다만…… 이것만으로도 힘은 충분해.’

어쩌면 테스가 깨닫고 있는 그 이상으로 그 힘을 잘 알았다.

테스, 이자는 그에게 연합을 안겨 주는 게 가능하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테스의 힘을 빌려 연합을 얻었을 때.

그때 그에게 줄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다.

거래를 위해 그 거래의 대가를 파악하는 건 기본이니까.

“그 대가는 무엇입니까?”

“대가라. 쉽지 않은가. 내가 힘을 써줘 힘을 얻었으니, 그 힘은 다시 어디로 돌아와야 하겠는가?”

그리고 그 대가를 들었다.

테스는 대단스럽지도 않은 걸 원하는 듯, 가벼이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그레놀의 얼굴이 굳어진다.

‘하…… 모든 것을 원하는 거구나.’

그가 원하는 건, 관측자인 그레놀의 완벽한 복속이었다.

그레놀, 그리고 그를 넘어 그가 가질 모든 걸 원하고 있었다.

이전이라면 듣자마자 말도 안 된다고 할 이야기.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아니었다.

‘차이가 너무 벌어졌어.’

카르소니아 왕국 대다수를 잡아먹어 버린 테스.

연합을 잃고 온 그레놀.

둘의 격차는 이전에 비해 컸다.

지금 이 순간도 그 차이는 차차 벌어지고 있었다.

테스가 먹어 버린 이 영역.

후에 예상되는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해결하면, 그의 영역은 더욱 성세를 이루게 될 터였다.

반대로 그레놀은?

‘시간이 지날수록 연합에 남긴 내 세력도 줄 게 되겠지. 영악한 것들이 많으니까.’

그의 세력은 차차 줄어들고 있었다.

대범람으로 본거지가 망가졌고. 겨우 남아 있는 그의 본가는 그에게 있어 수백 년 된 골동품 정도의 가치밖에 되지 못하였으니까.

그가 골동품이라 칭하는 그 저택을 원하는 연합의 이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다시 세력을 재건하기 위한 종잣돈으로 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걸 패로 쓴다고 해서 다시 성세를 이루는 게 가능할 리가…… 젠장. 역시 그때 대화에서 거래를 확실히 끝마쳐야 했어.’

입안에서 쓴맛이 느껴지는 그레놀이었다.

어쩌랴.

당장 그 옆을 지키고 있던 리페만 하더라도.

“베빈에게 연락을 할까요? 그녀는 이곳 동부에 마탑을 세우는 걸 찬성하는 대신에 다른 곳에도 세워주길 원할 거예요.”

“그 정도야 해줘야겠지. 한번 자리를 만들어 보라고.”

줄을 확실히 섰다.

베빈에게서 빚어져 만들어진 주제에, 테스의 편을 들고 있었다.

그로부터 흩어지던 생명력을 받았으니, 전에 없던 호감이 생겼겠지.

또한 그에게 힘을 실어 주면, 리페는 더 이상 베빈에 종속되는 게 아닌, 그녀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을 확률이 있는 터.

그렇기에 그녀가 테스에게 확실히 선을 대는 것도 무리는 아닌 일이었다.

상황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를 머리로 여실히 깨달은 그레놀.

‘테스가 카르소니아 왕국을 먹었고. 그 위에 마탑을 세워 첨병으로 이용한다. 그리되면…… 결국 답은 하나였구나.’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테스님이 일개 장원주이던 시절에 확답을 받아 놓을 걸 그랬습니다. 제 편이 돼 달라고요.”

“후후. 그때는 나보다 자네가 가진 판돈이 더 크긴 했지.”

“그리고 지금은 역전되었고요. 하, 관측자이면서도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도 못 했다라…… 큰 실책입니다.”

“때론 그런 실책 하나가 모든 걸 역전시키는 법이기도 하고. 자, 그래서 답은 뭔가?”

“드리겠습니다. 마스키지언 연합, 그리고 이 몸까지도 다 드리죠.”

“미안하지만 남자를 가지는 취미는 없는데?”

“크큭. 그걸 농담이라고 하십니까. 자자, 어디 한번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죠. 어디까지 어떻게 가지고 나눌지를요.”

“기꺼이.”

씁쓸해 하는 그레놀.

반대로 테스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기에 활짝 웃었다.

그는 웃으며 잔을 들었다.

“이런 날 좋은 술이 빠지는 건 아쉽겠지.”

“흐. 상황이 이렇지 않으면 더 달게 들었을 겁니다.”

“술에 취미는 없지만, 어디 한번 마셔볼까요?”

그레놀은 투덜거리며 같이 잔을 들었다.

반대로 리페는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잔을 들었다.

이전엔 실시간으로 생명력이 빠져나가던 리페.

그녀로선 자신의 생명력을 잇는 거 외에 달리 다른 관심사는 없던 터였다.

아니, 관심을 갖기에는 그녀의 삶 자체가 혹독했다.

그러나 테스를 통해서 여유를 가지게 된 지금.

‘이런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지도.’

그녀는 자신의 개성을 새로이 개화해 가고 있었다.

개화해 가는 가운데, 좋은 이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좋은 의미를 지닌 터.

그녀는 기꺼이 손에 들고 있는 잔을 테스를 향해 마주 부딪쳤다.

차아앙-

세 잔이 부딪치며 맑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동시에 테스가 작게 외쳤다.

“세 세력의 합일을 축하하며.”

“후후. 축하하며!”

“……큽. 축하해야죠, 암요!”

그에게 호응하는 둘.

동부의 작은 막사 하나.

그 안에서 세 영역의 미래가 정해졌다.

망국이 된 카르소니아.

왕국의 숙적이었던 마스키지언 연합.

그 어느 곳에서도 중립을 지키려 하였던 마탑.

세계 전체를 놓고 봐도 결코 작지 않은 세력들 셋의 미래를 논하게 된 테스였다.

그 결과물이 결코 작을 일은 없었으나, 당장 이들의 움직임을 깨달을 자는 없었다.

테스가 정한 바를 행하고 움직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있을 수밖에.

앞으로 대륙의 판도를 바꿔 놓을 결정.

그러한 결정을 하였음에, 테스는 한 모금 담긴 술을 삼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소박하다고도 할 수 있으나, 그에겐 이 보상이 나쁘지 않았다.

굳이 물질적으로만 보상을 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미래, 그의 최종 목적인 완벽한 승천, 그것을 위한 판을 깔았다는 것만으로 그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일개 용병, 장원주, 영주, 그리고 그를 넘어 이곳에까지 왔다.

그가 지금까지 얻은 힘과 지식.

그리고 마계 게이트로부터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가 가야할 마지막 길은 이전보다도 더 고될 수도 있을 터.

그 길을 가기 전, 그는 이 작은 자축을 통해 미래를 향한 마지막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다음이다.’

자축을 하였으니, 이제 행동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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