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챕터 20.
무너져 내려가는 마기 기둥.
-그어어…….
-어찌…… 크흑…….
-내 이번은 부서지더라도…….
그 주변을 가득 채우던 언데드가 무너져 내렸다.
스스로 타락한 자들 또한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제 몸을 무너트렸다.
타락한 자들은 일반 언데드와 달리 언제고 몸을 일으킬 수 있을 존재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타격이 적지는 않았을 터이니, 앞으로 수백 년은 다시 몸을 일으키기 어려울 터였다.
눈앞에 존재하던 적들이 궤멸됐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자들은 환호를 내질렀다.
“해냈어!”
“이겼다고!”
기쁨에 가득 차 소리를 지르는 자들. 그중 일부는 힘이 빠진 듯, 저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
“이번은 정말 죽을 뻔했다.”
긴장이 풀리며 육체에서 모든 힘이 빠진 게 분명했다. 그러나 피로한 와중에도 기쁜 표정만큼은 풀리지 않았다.
자신들, 그리고 테스가 해낸 성과가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거대했던 마기 기둥.
기둥이 일 년, 아니 한 달만 더 유지가 됐어도 패배하는 쪽은 인간이 되었을 터였다.
이 차 파동도 테스가 재빠르게 대진법을 연동시켜 쉽게 막아냈을 뿐이었다. 이 주마다 삼 차, 사 차가 이어지면 그 뒤는 테스로서도 막아내기 힘겨웠다.
이 차 태풍이 일던 이전과 달리 삼 차 태풍 때는 이미 테스의 대진법 연동을 알고 있기 때문.
저들도 테스의 대진법이 가진 힘을 몰랐기에 당했을 뿐이었다. 정보를 알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하여 대진법부터 때렸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번 전투에서 테스의 패배는 곧, 마계 침공의 성공이었다.
여기 있는 자 중 그 의미를 모르는 자가 없으니 기뻐할 수밖에.
* * *
승자가 됐다.
그중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고 있는 게 영지군.
“영지군 모두 쉬엇!”
“명!”
그들 다수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몇몇의 병사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움직이는 자들은 전투가 아닌 보급을 위해서 이 끝까지 따라온 자들이었다.
보급병이라 해서 결코 약한 자들은 아니었다.
다른 영지군들과 달리 테스는 보급병에 꽤 많은 신경을 썼다. 보급병을 수로 채우는 대신에, 소수의 강자로 채웠다. 정예병만은 못해도 제 한 몸을 건사하고는 남을 전력들이었다.
그는 보급병 수를 줄이며 대신 장비를 더해 줬다.
그 영지의 보급병들은 어지간한 정예 병사들 급의 장비로 무장했을 정도.
여기에 보급을 위한 도구 하나를 더 더했다.
그 하나, 아공간 주머니였다.
저마다 다른 크기의 공간을 지닌 게 아공간 주머니. 마탑의 수익 일부를 차지할 만큼 귀한 마법 물품이었다.
이것을 테스는 저 스스로 꽤 많은 수를 만들어냈었다.
마탑의 비전을 사용한 건 아니었다.
게이트와 던전 핵, 그곳에서 얻은 지식을 사용했다. 그로선 새로 얻은 지식을 활용하며 제 것으로 체득하고자 벌였던 일이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상급의 아공간 주머니가 만들어졌다. 안에 담긴 아공간 크기만 해도 어지간한 창고를 넘어섰다.
이 아공간 주머니를 활용하여 테스는 보급병의 정예화를 이뤘다.
이러한 보급병들이 움직이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뒤처리.
“치료 받으실 분들은 마련한 의무실로 오시면 됩니다!”
“외상은 이쪽으로요!”
공간 주머니에서 꺼내든 의무실.
금방 이동 치료실이 마련되고, 그 안에 부상자들을 채워 넣었다.
“끄윽…….”
“이제 사, 살았다.”
제아무리 강병이라도 사상자가 없을 수 없다.
금방 의무실엔 부상자들로 가득 찼다. 가득 찬 의무실 안을 재차 채우는 건 문파원들과 기본 의료 지식을 배운 의무병들이었다.
“아플 거예요. 비명 질러도 되니까, 우선 버텨 봐요.”
“여기 포션 가져다줘! 침 놓기 전에 포션부터 놔야겠으니까!”
“끄아악!”
“이번은 참으라니까. 자자, 거의 다 끝났어.”
뒤이어 비명과 고통이 가득 찬 의무실.
그 소리가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나, 그 결과는 좋을 터였다. 부상을 달고 들어간 자들이 얼마 가지 않아 쌩쌩하게 돌아올 테니까.
뒤처리는 부상병 치료로 끝이 아니었다.
“모든 부산물들을 챙겨. 자연 언데드는 쉬이 나타나는 게 아니니, 이걸 사용하면 영지 마법사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다.”
“넵!”
“아, 마석도 빠트리지 말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흐흐.”
“혹여나 챙기다 걸리면, 뒤진다. 그러니 잘들 하라고.”
일부는 전장의 부산물을 챙겼다.
그들이 챙겨들 것들은 결코 적지 않았다.
자연 언데드나 마족 시체는 물론이고, 변종이 되어 버린 몬스터 사체도 그들이 챙겨야 할 일 순위 부산물이었다.
또한, 전쟁 도중에 망가지고 남은 물자도 챙겨야 했다. 망가졌다 해도 이 안에 남은 보급품은 여전히 가치가 있었으니까.
부상자를 치료하고, 부산물을 챙기는 사이에도 움직여야 할 이유가 있었다.
“음식은 얼마나 준비할까요?”
“얼마나가 어딨어. 다들 죽어라 퍼먹고 마실 거다. 우선 주머니에 있는 거 다 꺼내도록 해.”
“전부를요?”
“걱정 말고 꺼내. 부족한 건 공간 이동을 해서라도 받아낸다고 하셨으니까, 걱정 말고.”
“마기가 이렇게 도는데 그게 될까요?”
“이제 다 흐려졌잖아. 공간 이동을 막을 마기도 없고, 마법진도 다 부서졌으니 염려 말아. 자자, 준비하자고.”
“그렇다면야…… 당장 풀겠습니다.”
이들은 승자.
승자는 승자다운 대우를 해 줘야 이 뒤의 전투도 수행할 수 있는 법이었다.
용병으로 굴러먹었던 테스가 이를 모를 리 없잖은가.
살아남은 자들의 정신적 피로도를 치유해 줄 필요를 테스는 충분히 알았고. 그에 따라 축제를 준비하도록 명하였다.
정신적 치유는 의무실이 아닌 축제장에서 만들어지니까.
물론, 이 한 번의 축제만으로 모든 전장의 피로가 씻길 리 없었다. 잠시의 휴식 정도만 될 것이다. 이 축제가 지나가고도 남은 피로도도 상당할 터였다.
그럼에도 이 축제는 충분히 할 가치가 있었다.
이 순간 피로를 쓸어내리는 것만으로도, 전장의 광기에 잠식되는 걸 막아 줄 테니까.
피로는 남더라도,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만으로도 공을 들여 축제를 벌일 가치는 차고도 남았다.
금방 자리가 마련됐다.
자리는 소박했다. 테스의 영지, 어센션에서 매해 이뤄지는 축제에 비하면 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자 중 기대에 차지 않은 얼굴이 없었다.
모두가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테스의 한 마디를 기다렸다.
그 한 마디. 바로 축제를 즐기라는 허락.
길고 긴 축사보다도, 당장 한 잔의 술이 피로를 씻어내는 법이었다. 테스는 길게 끄는 법 없이 한마디를 하며 손에 있는 잔을 들어 올렸다.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며!”
그러곤 들어 올린 잔을 마시며 외쳤다.
“감사하며!”
“위하여!”
이를 기다렸다는 듯, 똑같이 잔을 들었던 자들 모두 손에 든 잔을 입으로 가져다 댔다.
축제의 시작이었다.
* * *
테스의 수족들은 축제를 즐길 줄 알았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 가장 약체로 평가받은 영지군. 이 자리에서만 약자일 뿐이다. 다른 곳에선 충분히 베테랑 취급을 받고도 남을 자들이었다.
공으로 베테랑이 된 게 아니었다. 수많은 전투를 수행하고, 정예병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예이자 베테랑이기에 하나를 정확히 알았다.
“먹고 죽자고!”
“즐겨. 지금 안 즐기면 언제 즐기나.”
치열했던 전투에서 살아남았다면, 그 어느 때보다 편히 즐겨야 한다는 걸 아주 잘 알았다.
그리하지 않으면 끝끝내 무너지는 건 자기 자신이란 경험을 여러 번 해 보았으니까.
다른 자들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의선문의 제자들이나 속가도 그들 사이에 껴서 축제를 즐겼다. 하물며, 소수지만 전투를 돕겠다고 달려온 야만인들도 축제에 꼈다.
서로 문화와 삶의 방식은 다르다만, 상관없었다.
“너, 넘어간다!”
“우와아악! 내가 이겼어! 돈 내놓으라고!”
“스바. 무슨 야만인이 일반인한테 지냐고!”
“다시 해!”
“흐흐. 얼마든지 도전해 봐라.”
적어도 이 축제 안에서는 서로 어울릴 수 있었다. 다른 걸 떠나, 적어도 전우로서 전장을 함께하였으니까.
억지로라도, 혹은 뒤이을 다음 날을 위해서라도 다들 분위기를 띄워 가며 즐기고 마시었다.
그런 가운데 이 축제를 즐기기 어려운 자도 있었으니.
‘어찌한다…….’
정작 이 축제를 열어 놓은 테스였다. 그는 기뻐하기만 하며 이 축제를 즐기기 어려워하고 있었다.
* * *
상석에서 내려와, 자신을 위해 마련된 막사에 들어온 테스.
그는 당장의 축제가 아닌 이 이후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그려지는 미래는 결코 희망적이지 못했다.
‘이미 알고 핵을 부수기는 했다만…….’
그리고, 그 미래를 예상하는 자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이후의 관측은 관측자가 아니더라도 다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동부에서만 뭉쳐 만들었던 게이트가 곳곳에서 나오겠죠. 거기다 마족이나 몬스터도 횡행할 거고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번에 상대한 스스로 타락한 자 같은 자들도 다수 나올 겁니다. 마기 농도가 짙어졌으니, 유혹도 강할 테니까요.”
리페와 그레놀. 둘 모두 이 이후의 상황을 예견했다.
“막장이로군.”
“네. 지금까지의 일이 우습게 여겨질 정도예요.”
“이렇게 상황이 흔들리다 보면, 다른 자들도 슬슬 움직일 겁니다. 예를 들면 제국이라든가, 성국도 있겠죠.”
“쯧……. 혼란스런 와중엔 외부에 적을 만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니까.”
“네. 그런 겁니다.”
둘의 입술 사이에서 구체화되는 미래. 상상보다도 더 좋지 않은 미래가 예견되고 있었다. 횡행하는 마족 사이에, 인간들끼리의 전쟁까지도 그려진다.
‘아니라 말하고 싶으나 확률이 높다.’
전쟁이 일어나면 지금보다도 더 최악이 그려질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또 하나 남아 있었으니.
“그중 가장 피해가 큰 건 역시 다시 이곳 동부가 될 겁니다.”
“마기 농도가 가장 짙어서겠지?”
“예. 보아하니 관측되는 여파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외부에선 전쟁을 하자고 찾아올 수도 있는데, 이 상황에 동부도 지켜야 한다라. 허, 참.”
“그렇다고 지키지 않을 수도 없죠. 동부를 제대로 틀어막아 놓지 않는다면 앞뒤에서 적이 찾아오는 셈이니까요.”
미래의 전쟁이 아닌, 당장 문제가 될 이곳 동부. 마기 기둥을 부수고도 여파가 남아 있는 동부를 처리할 첨병이 필요했다.
문제는 테스로선 마냥 영지군이나 문파원을 이곳에서 놀리고 있을 수만도 없는 상황이란 거였다.
‘새 전력이 필요해. 그리고 그들이 첨병이 돼 줘야겠지.’
이를 해결해 줘야 할 새로운 힘이 필요했다.
“흐음…….”
어찌해야 할까.
제국을 끌어들여야 할까. 아니면, 북쪽의 오시아 왕국을?
‘믿을 만한 것들이 없군. 그나마 아르델 공작이 믿을 만한데, 그에게도 이번 사태의 여파가 있을 터…….’
한참을 머리를 굴리는 테스였다. 그러다 결국.
“아, 이 수가 있었나.”
“네?”
새로운 수를 찾아낸 테스였다.